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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같은, 여름같은 남자







06.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 









 그 날 이후로, 박우진의 태도는 묘하게 달라졌다. 변함없이 싸가지가 없기는 했는데, 그게  마냥 싸가지가 없는게 아니라 약간의 친절함이 추가되었다고 해야하나.

식탁에서 밥을 먹을때 내 몫으로 놓여진 국에 밥만 말아서 먹고 있으면, '먹는 사람 밥맛떨어지게 먹네'라고 말을 하면서 내 앞으로 고기가 든 접시를 밀어준다거나,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다가 내 방문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박우진을 발견해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화들짝 놀라며 '내 집에서 내가 나와있는것도 너한테 말을 해야되냐'라고 말을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도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갈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다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가방을 벗어놓고 있으면 박우진이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뭐지, 설마 또 쓰러질까봐 걱정이 되어서 기다린건 아니겠지.



 

 재환이는 며칠동안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을 한번도 볼 수 없었다. 일부러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같이 등교를 하려고 준비를 다하고 기웃거려봐도 재환이의 머리카락조차 볼 수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얼굴 한번 보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 수록 혹시 어디 아픈게 아닌가하는 걱정도 늘어만 갔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는것 같은데, 무리해서 하다가 쓰러진건 아니겠지. 연락도 해 볼 수 없고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한채 시간만 흘러갔다.



 잘 자다가 한밤 중에 갑자기 눈이 떠져서 다시 잠에 들지도 못하고 앉아서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밖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김재환인가 싶어서 급하게 침대위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약한 조명이 켜진 불빛 아래에 피곤한 얼굴을 하고는 축 쳐진 어깨로 서있는 사람은 김재환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움과 서운함도 잠시, 며칠사이에 안쓰러울 정도로 핼쑥해져있는 재환이의 얼굴에 걱정이 더 앞섰다. 





"김재환, 너 며칠동안 얼굴도 안보이더니, 계속 이렇게 늦게 들어온거야?"


"...."


"얼굴 좀 봐, 너 곧 쓰러질것 같애. 괜찮아?"


"미안, 알바 끝나고 많이 기다렸어?"





 입을 닫고 내 얼굴만 보던 김재환은 괜찮냐고 물어보는 내 말에 동문서답을 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공부하느라 바쁘고, 이제 매일 데려다주는 것도 귀찮아져서 더이상 기다려주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사과를 하는 재환이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서운한 감정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또 미안, 앞으로도 계속 같이 못갈것 같아."


"왜?...아니 서운해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갑자기 왜?"


"바빠서...더 열심히 해야되거든, 공부든 뭐든,"


"..."


"나 먼저 들어갈게, 늦었는데 빨리 들어가서 자."





 이제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며칠만에 다시 본 김재환은 처음 만났을때처럼 친절하지만 선을 두는 것같은 김재환으로 돌아와있었다.







 다시 멀어진 것 같은, 어쩐지 내게 박우진을 잘 부탁한다고 말을 할때와 비슷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김재환의 얼굴때문에 결국, 다시 방에 들어와서 늦게까지 잠을 못이루고 뒤척거리다가 새벽녘에 살풋 잠이 드는 바람에 완전 늦잠을 자버리고 말았다.


 '누나, 우리반 지각비 5만원이에요. 엄청 살벌하죠? 누나는 지각할일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알아둬요.'라고 마을 하던 대휘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멍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5만원이 라니 5만원이면 2주는 식비로 쓸 수 있을 돈인데. 세수도 하지못하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으며 교복을 입고 급하게 방을 나왔다. 전속력으로 뛰어가면 아슬하게 지각은 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운동화 끈을 질끈 묶으며 바로 뛰어나갈 준비를 하는데 뒤에서 잡아당기는 손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반동에 몸이 휘청거렸다.





"야, 나 지금 늦었거든, 급하니까 그 손 좀 놔줄래?"


"싫은데"


"지금 너랑 장난칠 시간 없거든, 진짜 급하니까 놔달라..야! 내 가방!!"


"늦었다며, 같이 가."





 막무가내로 내 가방을 손에 들고 앞서 나가던 박우진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대기하고 있던 차에 쏙 들어가버렸다.

 




"나 그냥 걸어가면 되니까 빨리 가방줘."


"그냥 타라니까. 너때문에 나도 지각하겠다."






 내 가방을 잡고 주지않는 박우진때문에 시간을 더 날려버려서, 이렇게 실랑이를 하다가는 진짜 지각을 할 것 같아서 결국, 박우진의 말대로 차에 탔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박우진은 절대로 넘겨주지않던 가방을 바로 내게 던져주었다. 이렇게 바로 줄거면 진작 주면 좋으면 얼마나 좋아. 차까지 얻어타고 싶지는 않았는데. 거울을 통해 보이는 기사님의 눈빛이 나를 탐탁치않아했던 아저씨의 모습과 겹쳐보여 잡고 있던 가방을 꽉 잡았다.






"좀 편하게 앉지?"


"...."


"니가 앉았다고 닳는거 아니니까 다리 편하게 하라고."





 박우진의 말에 들고 있던 발꿈치를 내리고 조금 더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은근히 세심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차안에서 박우진과 함께 내리는 나를 본 애들이 수근거렸다. 내가 왜 박우진의 차에서 내리는지에 대해서 소설을 쓰고있겠지. 그래도 혹시 내가 박우진과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 많은 애들 속에서 유난히도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는 예쁘장한 여자애의 시선을 받으며 박우진에게 먼저간다고 인사를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어딜 먼저 가려고."


"왜?"


"차까지 얻어타놓고는 그냥 가겠다고?"


"그럼 뭘 어떡하라고"


"..같이 가자고."






 학교를 가는 내내 등교를 하는 애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아무도 건들이지 못하는 문제아랑 전학온 사배자랑 나란히 등교를 한다라, 충분히 시선을 받을만했다. 더구나 같이 차에서 내리기까지 했으니 호기심이 안 생기려고 해도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난 원래 이런 좋지않은 시선에 익숙해있어서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박우진은 그렇지 못할까봐 걱정되어서 옆을 쳐다봤으나 간간히 사나운 눈빛을 보내며 묵묵히 걷는게, 나보다 더 괜찮아보였다. 하긴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이미 종이 친지 한참이 지났으나, 서두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박우진의 옆에서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3분을 남겨놓고 뛰어가겠다는 손목을 잡은 박우진은 매너없게 지금 혼자가냐며 말을 했다. 그에 내 손목을 잡은 박우진의 손을 떼어내며 늦으면 오만원이래 그러니까 나 먼저간다. 넌 천천히 와라고 말을 하는데, 박우진은 다시 내 손목을 잡으며 내가 내 줄게 그냥 걸어가, 아침도 안 먹었잖아라고 말을 하며 손을 놔주지않고 걸었다.






"니가 잡은거니까 진짜 니가 대신 내줘야한다. 딴 말하기 없어."


"알았다고.알았어. 한번만 더 말하면 열번째다. 그냥 뛰어가게 둘 걸 그랬다."


"그러니까 먼저 간다니까. 괜히 붙잡아 가지고. 학교에 소문도 다 나고 이게 뭐냐. 모른척하고 지내자고 했더니."


"아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 하고 지내냐, 머리는 나빠가지고."





 딱히 나보다 그렇게 머리가 좋아보이지 않는 박우진이 머리가 나쁘다고 하며 이마를 치면서 말을 하자 묘하게 더 기분이 나빴다. 머리가 나쁘긴 한데, 너한테 그런말 들으니까 어째 더 욕처럼 들린다. 김재환도 아니고 니가 그런 말을 하니까.





"아...야!"


"왜. 기분 나쁘냐?"


"기분도 나쁘긴 한데, 그게 아니라 재환이 요즘 무슨일 있어?"


"뭐?"


"그냥, 요즘 얼굴 보기도 힘들고 안색도 안좋은거 같길래... 니 형이잖아. 그러니까 뭐 좀 아는 거 있을 거아니야. 무슨 안 좋을 일 있대? 응?"


"....니가 알빠냐, 알아서 뭐하게"


"치사하게 좀 가르쳐주면 안되냐..."


"어 안돼. 그러니까 묻지마."





 그거 알려주는게 뭐 그렇게 큰 일이라고 속 좁게 못알려준데. 내가 알면 뭐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표정을 쎄하게 굳히며 먼저 교실로 들어가는 박우진의 등을 열심히 째려봤다. 같이 가자더니 지는 먼저 들어가는 것 좀 봐. 어휴, 그 싸가지 좀 죽었나 했더니 아직 그대로 살아있네, 살아있어.







 

 박우진이랑 무슨 사이인지 호기심을 가득담은 눈빛들과 계속 귀찮게 물어보는 애들을 피해서 교실을 나왔다. 원인 제공자인 박우진은 또 수업을 빼먹고 어디에 박혀있는지 교실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다.

 

 쓸데없이 넓은 학교탓에 길을 잃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모퉁이를 돌다가 김재환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모르게 뒤로 숨어 버렸다.





"이번에 모의고사 점수가 좀 떨어진거 알고 있지?"


"네"


"재환군은 잘하니까, 걱정은 안하지만 그래도 더 열심히해요."


"네"


"어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죠, 무슨말인지 알겠죠?"


"...네."




 저번에 한번 봤던 교감선생님이 김재환에게 존댓말을 꼬박꼬박 써가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김재환은 그저 기계적으로 네라고 대답을 할뿐이었고. 그냥 들으면 그냥 학업을 격려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아버지라는 말에 힘을 주며 말을 하는 교감선생님과 고개를 숙인채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재환이의 모습을 본다면 평범한 대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감선생님이 지나가고, 혼자 남은 김재환에게 아는척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결심을 하고 한발짝을 떼는데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언제쯤이면 숨을 쉴 수 있게 해줄겁니까...."







------------------

적절한 사진을 찾지못해서 오늘은 사진이 없어요..ㅠㅜ

쓰다보니 오늘 우진이 분량이 좀 많은 느낌? 재환이 분량 좀 늘려야겠어요. 알고보면 다정한 남자 우진이, 알고보면 슬픈 남자 재환이..ㅠㅜ


오늘도 함께 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



암호닉 ♡

[바구진], [김재환라뷰], [0618], [쥬쥬], [짹짹이]

[우진이덧니충성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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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8.54
어ㅜㄴ어우어어ㅓ웅 제 암호닉이 되다니
비회원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
마지막 대사 재환이가 혼잣말하는건가요 ..
뭘까요..ㅠ 작가님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1
0618입니다.. 마지막 너무 찌통이네여ㅠㅠㅠㅠㅠㅠㅠ눈물ㅠㅠㅠㅠㅠㅠㅜㅠㅜ잘읽고갑니다ㅠㅠㅠㅠ남은 하루 좋은 하루 되시거 좋은글 감사해요!❤❤
6년 전
독자2
바구진입니다ㅜㅜㅜㅠㅠ 저런 재환이도 분위기..... 완전 멋있어요!!!! 진짜 궁금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ㅜㅜㅠ
6년 전
독자3
아 재환아ㅠㅠㅠ맘이 아프다ㅠㅠㅠ 힘들지마로 재환 ㅠㅠㅠ
6년 전
독자4
쥬쥬에용! 재화니.. 무슨 사얀이 잇는고야...ㅠㅠ 우진이 츤데레 면모에 오늘도 덕통사고 당하고 갑니다..ㅎ
6년 전
독자5
ㅠㅠㅠ 작가니뮤ㅠㅠㅠ 진짜 이거 너무 슬프거 아련한데 설레고 재미있고ㅠㅠㅠㅠ 및겠어요ㅠㅠㅠ 내일 개학인데 여서 정쥬행한 독자 는 죽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 우아어우유ㅠㅠㅠㅠㅠ [나침반]암호닉 신청할게요ㅠㅠㅠ 다음폄 목빠지게 기다려요ㅠㅠㅠㅠㅠ 잘읽었어요ㅠㅠ
6년 전
독자6
짹짹이입니다 ㅠㅠㅠㅠㅠㅠ 도대체 이집안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재환아 ㅠㅠㅠㅠㅠ 어떻게 된고야 ㅠㅠㅠㅠㅠ 잘보고가요 작가님!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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