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제목없음 上 , 中 , 下
Written by.기성용하투뿅
上
*
괜히 시간만 흘려보며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너를 위한 내가 할수 있는 배려라 생각했다.구지 티를 내지 않으면 좋으련만,이건 어서 끝내달라는 네 재촉과 같았다.네 바람을 모르는 건 아니였다.우리가 자던 안방에 내가 쓰지 않는 회사의 립스틱이 있는 걸 보고는 대충 눈치를 챘다.그것에 가슴이 철렁하거나 하는 그런 슬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분노는 더더욱이였다.이미 식어버린 내 감정에 너를 향한,너의 그 사람을 향한 필요없는 감정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나도 너를 따라 바람을 피니까.내가 뭐라 할 입장도 아니였다.드라마 속에 나오는 적반하장의 나쁜년은 되기 싫었으니까.근데 나는 이렇게 너처럼 대놓고는 안해.
넓은 침대에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이미 시곗바늘은 2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네가 크나큰 착각을 한 듯 하다.나는 이렇게 너만 기다려주는 그런 착한 사람이 아닌데 말야.그래도 다행이야.이렇게 되면 너는 내 바람은 모른 채 헤어질수 있는 것이다.그럼 너는 바람을 피운 나쁜놈이 되는 거고,나는 그 나쁜놈의 피해를 입은 불쌍한 여자가 되는 거지.
"미친"
너도 생각하는 건 똑같아 000.어쩜 그리 그 사람하고 생각이 똑같니.어리석게 그 사람하고 지낸 3년의 시간동안 너는 고작 그런 걸 배웠다니.그냥 네 자존심지키며 당당하게 털어놓고 떠나는 거야.니가 불쌍해지기보다 그 사람을 불쌍하게 만들어버림 되잖아.꼴랑 여자에게 차인,그런 남자가 되는 거지.생각하는 것도 너답지 않게 창의적이지가 않아.그 사람한테 얼마나 빠진거야,신물 날 정도로 뼛속까지 그 사람같아.
*
날이 샜다.결국 너는 들어오지 않았다.어디서 뭘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걱정보다는 오늘은 또 어떤 여자와 뒹굴고 있을지라는 그런 너를 향한 비웃음.이게 내 마음이야.휴대폰을 들어 전화기록 속 네 이름을 찾았다. '...' 네 이름대신 차지 하는 점 3개.이게 나란 사람 속 너란 존재야.딱히 정의는 내릴 수 없는 그런 점3개같은 사람.한숨을 푹 내쉬다가 휴대폰의 통화버튼으로 손을 가져갔다 다시 되돌아왔다를 반복했다.괜시리 밀려오는 짜증에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를 헝클였다.엊그제 네일아트를 받은 손톱을 깨물었다.손톱의 매니큐어가 뭉개졌다.그렇게 고민하기를 몇분 한숨을 내쉬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왜 안들어와?"
'..그게 지금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왜 안들어와라는 말은 새벽에 했어야지.'
"그럼 너 지금 들어와있니?아니잖아.새벽이고 지금이고 네가 집에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잖아?이 질문은 지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드는데."
"..끊어,지금 갈게."
'0:47'이게 너란 사람 속 나의 위치야.1분도 안되는,그렇다고 1분에 가깝게 어정쩡한.이게 내 위치야.아무느낌도 안 나야하는데,나는 너의 대한 감정따위 버린지가 오래인데,너를 생각하고 네가 생각하는 나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니 괜히 섭섭하고 서러웠다.해가 밝아오는 6시,그 시간 속에서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
시원하게 울고나니 속이 편해진 듯 했다.이건 너를 향한 눈물이 아니였다.그저..그저 나를 위한 연민의 눈물이라 치기로 했다.그렇게 생각하려 했다.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가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있자니 네가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항상 그렇듯 실내화를 질질 끌며 들어왔다.그런 소리가 싫다고 그리도 말했건만,너란 사람은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너는 내게 눈길한번 없이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그런 너의 동선을 흥미롭게 관찰하듯 보다가 컵에 커피를 담아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너는 상관도 안 쓴다는 듯이 옷을 벗고 갈아입고 있었다.나는 한숨을 쉬고 유리창 앞으로 다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뭐했어?"
"알 바 없다고 생각해."
"성용아,우리 끝낼래?"
*
中
*
네가 예상과는 달리 놀랐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나는 그런 그를 향해 아무감정 없는 표정만 내빛혔다.너는 항상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관자놀이 쪽으로 오른쪽 손을 가져다대는 것이 습관이였다.내 말이 그리도 골치가 아픈 거였나,좋아할 줄 알았는데.넌 멍한 표정으로 오른손만 올려 관자놀이를 만지고 있었다.그런 너를 바라보다 의자에 앉았다.앉아 그를 올려다 봤다.따라 앉으라는 무언의 말이였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생각 밖이네."
"이런 얘기 듣고 좋아할 사람이 어딨는데."
"음,아마 네 옆에 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어떻게 알았어."
오늘은 내가 이기는 듯했다.네 혼이 나간 표정에 알듯말듯한 승리욕이 오르며 비소가 흘렀다.나도 맞바람을 폈다는 걸 알면 얼마나 표정이 더 찌그러질까,궁금해졌다.너는 한숨을 깊게 뱉고 마른 세수를 했다.나도 창 밖을 바라보다 한숨을 뱉었다.묘한 적막감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실망이네,한번은 변명할 줄 알았는데."
"이미 알아버린 사실에 변명을 뭐하러 해."
"너는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야.나를 향한 배려따윈 없는."
*
간편하기 그지없었던 대화를 끝내곤 방에 나와 다 먹지 못한 커피를 개수대에 부어버렸다.이미 식은 커피임에도 향이 올라와 역겨웠다.너와 나의 사랑은 이렇다.식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질구레한 향을 남기는,그게 우리 사랑이다.
'이미 알아버린 사실에 변명을 뭐하러 해.'
이 말 한마디가 이리도 비참할 줄이야.나는 네 애인인데.나만 그렇게 생각한 듯한 현실에 비참했다.너란 놈에게 3년이란 시간을 허비한 내가 미웠다.그 흔한 노랫가사 속 아름다운 이별,그 딴거 우리한텐 없었다.그저 서로가 상처받고 끝내는,그게 우리 이별이다.
*
밤이 됬는데도 나가지 않은 너를 보다 와인을 안방으로 들고와 앉았다.너도 따라 내 앞에 앉았다.무심결에 보니 내가 와인잔 2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내 자신이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한잔,두잔,비워지는 잔의 수만큼 시간도 흘렀다.어두워진 밖에는 여러불빛들이 어울려 밝게 빛났다.와인잔을 들고 일어나 창가에서 마셨다.이 적막함이 좋기도,싫기도 했다.모순이다.그래,너와 내 사랑도 모순인데 이 상황은 어떻겠어.창밖을 바라보던 몸을 돌려 앉아있는 너를 바라봤다.네 차가운 눈이 나를 바라봤다.그런 네 옆의 벽으로 와인잔을 던졌다.잔에 맞은 벽은 조금 패였고,와인잔은 검붉은 와인과 함께 와장창 깨져 카펫 위에 어지럽게 떨어졌다.흘려진 와인처럼 나도 눈물을 흘렸다.
"뭐하는 짓이야."
"..넌 유리잔 같은 사람이야.처음엔 멀쩡해.내가 조심히 다뤄도,내가 가만히 들고 있어도,너는 너무 약해.
내가 너무 힘들어 이렇게 던져버리면 금방 깨져버려,그럼 나는..나는 너를 이제 더 이상 못 잡아..못 잡는다고."
*
下
*
피말리는 3일이란 시간이 지났다.원래 집은 네 것이였으니 내가 나가기로 했다.3일 동안 내 짐을 챙기면서 한 얘기라곤 짧은 한마디의 대답들이 전부였다.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너는 내 바람은 모르는 듯 했다.아니다.모르는 척 해주기로 하는 듯 했다.너란 사람이 모를리가 없었다.이제 코앞이다.너를 떠나가는 시간이.해탈한 웃음이 계속 새어나왔다.너는 옅게 웃는 나를 따라 작게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미안해."
현관에서 구두를 고쳐신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네게 건낸 말이였다.작은 가방을 들고 네 집 문을 나왔을 땐,그땐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알듯말듯한 감정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한 걸음 내딛을수록 너는 멀어져갔다.근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인적 드문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드디어 느꼈다.이건 집에서 쫓겨난 듯한 나를 위한 동정도 아니였으며,나를 향한 연민은 더더욱 아니였다.이건,너를 향한 사랑이였다.
*
더보기 여자는 사랑을 했고,남자는 좋아했다.
사랑과 좋아함은 다른 것이다.
love와 like는 다르듯이.
여자는 종속적인 사랑을 했고,남자는 그저 좋아했을 뿐이였다.
아무리 밉다밉다 생각을 하고 감정비운척 연기를 해도,아직도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다.
안녕해요.안녕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