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은 센과 치히로중에 " 또 다시 " 라는 곡이에요!!
이 글과 함께 읽어야 좋은 노래!
볼륨 업 해주세요~♡
동우를 먼저 교실로 보내고 운동장에 서있는 우현과 성규.
남고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시끌벅적거리며 남학생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 난 수업들어가야하는데 어쩔꺼야 ? "
" 너 몇시에 끝나는데 ? "
" 오늘 토요일. 11시에서 12시 사이. 지금이 9시 거의 다 됐으니깐 2시간에서 3시간있으면 끝나. "
" 그래 ?...그럼 그냥 기다리지,뭐. 이 옷입고 날 수도 없고... "
" 뭐하면서 기다리게 ? "
" 그냥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할 일들. "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하는 성규의 모습에 우현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가끔 보면 천사맞나싶을 정도로 뭔가....멍청하달까...
" 그럼 저기 운동장 벤치에 앉아있던가.난 들어간다."
" 응. "
성규가 손을 힘껏 흔들었고 우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로 들어갔다. 원래 고3은 토요일에도 늦게까지 자습을 하지만 이미 도망에 도가 튼 우현과 동우는 그냥 보충을 제끼고 토요일을 즐겼다. 담임도 이미 손을 놓은 상태고. 저번주에는 동우와 우현에게 제발 말은 하고 가라는 부탁도 담임이 했었다.
창가로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조그맣게 벤치에 앉아있는 성규가 보였다. 일단 앉아있으라고 했는데...더럽게 신경쓰이네.
그것도 잠시 책상위에 올려진 가방에 머리를 댄 우현이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
" 우현아 ! "
" ...그르릉..."
얼씨구.코까지 고신다. 비행기 이륙 데시벨을 능가하는 소리의 남고 쉬는시간인데 우현은 아주 포근한 자세로 잠만자고있다. 이미 나갈 준비를 다 마친 동우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뒷문이 열리고 역시 학교를 나갈 준비를 마친 명수가 자고있는 우현을 가리키며 물었다.
" 얘 어디 아파 ? "
" 아니. 숙면."
명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성큼성큼다가가 우현의 책상을 잡더니 양쪽으로 빠르게 흔들었다.
" 야!야!야!야!야!야!! 좀 일어나봐라... 어떻게 코까지 고냐."
" 어으...김멍수새끼...몇시야... ? "
" 11시 50분.빨랑 나가자."
" 벌써 ? ...아,참. "
우현이 볼을 긁적거리며 창가로 향했다. 에어컨을 틀어놔 잠시 닫아놓은 문을 열자 저멀리 벤치에 앉아있는 성규가 보였다. 정말 2시간 내내 앉아서 생각만 했나. 책상위에 올려진 가방을 챙겨멘 우현이 명수와 동우와 함께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 야...아니 성규형."
" 어,끝났네?"
" 진짜 앉아서 생각만 했냐 ? "
" 응. 이것저것."
" 누구 ? "
동우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동우의 가슴팍을 꼬집으며 장난을 치던 명수가 물었다. 아,또 말해줘야해 ? 우현이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또 다시 성규를 설명했다.
" 먼 시골에서 살던 아는 형인데 서울 올라왔고 한달동안 우리집에서 지내기로 했고 이름은 김성규고 나이는 대략 24살.아니,대략이아니라 아무튼 24살임. 오키?"
" 아,그렇구나.. 안녕하세요.명수에요.김명수. "
" 으응,안녕...우현아, 일단 얼른 나가보자. 잉란 찾아야지."
" 잉란 ? 잉란이 뭔데요 ? "
동우가 땡글땡글하고 초롱초롱거리는 눈으로 물었다. 그러니깐 잉란이란 말이지...성규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우현을 쳐다봤고 볼에 남은 가방자국을 문지르던 우현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아...쓰흡. 존나 시골에서 데려온 개새끼인데 잃어버렸대."
" 아,그 강아지 이름이 잉란이야?"
" 어어. 야,장동우. 너 병원가지 ? "
" 나 ? 응. 조금 있다가 가는데 왜 ? "
" 아냐. 오늘은 그냥 일찍가.얼른."
" 왜~? "
" 얘랑...아니아니 성규형이랑 시내에 볼일이 있거든. 얼른가."
" 아냐! 아직 시간있을텐뎅. "
" 텐뎅이고 오뎅이고 얼른 가라고.할아버지 너 보고싶어하실꺼야.얼른. "
제기차듯이 동우의 엉덩이를 툭 찼다. 울상을 지은 동우가 다음에 또 보자며 성규에게만 인사를 했고 성규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저멀리 동우가 사라지자 이번엔 혼자 멀뚱히 서있는 명수에게 말했다.
" 김멍수.너도 얼른 가. "
" 나 ? 나 할 거 없..."
" 너 동우네 할아버지 계신 병원 안 간지 꽤 됐지 ? 얼른 가."
" 야,야.왜 이래."
" 얼른 가.잘가.빠이."
우격다짐으로 명수를 밀어보낸 우현이 손을 탁탁 털어냈다. 두 명의 떨거지들 제거 완료. 동우과 명수가 사라지자 성규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진짜 맑다."
" 뭐가?"
" 저 동우라는 애 말이야. 굉장히 하얀 영혼이야. 때묻지않고 순수한 맑은 영혼."
" 순수한거냐.멍청한거지. 그럼 명수는 ? "
" 음..명수란 아이도 맑아. 그냥 다 맑고 착한 애들이네."
" 그럼.누구 친구인데."
근데 왜 넌 그 모양이야 ?
목 끝까지 차올라 입밖으로 뱉어버릴뻔한 성규가 얼른 잉란을 찾아보자며 재촉했다. 일단 천천히 걸으며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 야,근데 나도 볼 수 있긴 있는거냐 ? "
" 뭘 ? 잉란을 ? "
" 어. 너도 집중해야 보이는 거라며."
" 잉란이 아직 어려서 가끔씩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경우가 있긴해."
"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데 ? "
" 음...정확히는 못 말하겠구...대충 도깨비불같은 모양에...색은 딱히 말할 수 없는 오묘한 빛깔.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형태로 생겼어."
" 그래 ? ...오묘한 색깔에...도깨비불....."
성규와 나란히 서서 걷던 우현이 걸음을 멈췄다. 색을 딱히 말할 수 없는 오묘한 빛깔에 도깨비불...헐 ?
" 야야...나 며칠전에...그 잉란본 거 같아!!"
" 뭐어? 진짜 !? "
" 어어어! 확실히는 모르겠는데...그니깐..막 연기같은게.. 푸른것도아니고 붉은것도아닌데 아무튼 연기같은게 둥둥 떠다녔다니깐 ! 사람들 사이를 막 지나다녔다가 눈깜짝할사이에 없어졌어 ! "
" 어디서 봤는데!? "
" 따라와봐! "
우현이 성규의 손목을 덥석 잡고 시내 사거리에 위치한 아이스크림점으로 향했다.
*
" 그니깐 내가 여기에 이렇게 딱 앉아있었거든 ? "
" 응응."
" 근데 진짜 여기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 "
" 왔다가!? "
" 잠깐 고개돌렸다가 다시보니깐 없어졌어 ! "
며칠전. 엄마의 심부름으로 아몬드 봉봉을 사러 이 곳에 왔을때.그때 분명 내가 본 게 잉란이 맞을것이다. 아,그때는 그냥 눈이 이상하려니 하고 넘겼었는데 그게 잉란이었던거다. 아오썅. 바로 눈앞에서 놓친거잖아...
" 그래도 다행이다...이 주변에 있는 게 확실해."
" 그런가...다른데로 안 갔을려나 ?"
" 응. 분명해. 멀리는 못 갔을꺼야. 하아...한 숨 놓인다..."
김성규가 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왜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싸가지없게 반말이냐고 ? 뭐 ? 지금 나한테 뭐라했냐 ? 디질래 ? 내 맘이다.흥.
아무튼 잉란이 주위에 있다니 다행이다. 그나저나 따가운 여름날에.그것도 해가 제일 뜨거운 12시에 여기까지 뛰어왔더니 땀이 뻘뻘 난다.
" 야,아이스크림 먹을래 ? "
" 아이스크림 ? "
" 응. 아주 기절할 정도로 맛있을껄 ? "
얼떨떨한 김성규를 데리고 아이스크림대로 향했다. 길게 쫘악 늘려진 아이스크림통을 보는 김성규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천상이 잘 났어도 이런건 없을꺼다.
" 뭐 먹을래 ? "
" 사실 하나도 모르겠어..사랑에 빠진 딸기 ? 이걸 많이 먹으면 사랑에 빠지는거야 ? "
" 아니.이만 잔뜩 썩지."
점원이 내 말에 움찔했다.
" 모르겠다..."
" 그럼 이거 어때.엄마는 외계인. "
" 뭐어 !? 너네 엄마 외계인이셔 ? "
" ......에휴.그냥 내가 골라주는거 먹어라.파인트로 엄마는 외계인이랑 아몬드 봉봉이랑 음....딸기 주세요.먹고갈꺼에요."
딸기는 너무 시큼새큼해서 평소에 잘 먹지않는 맛이지만 딱히 좋아하는 걸 모르겠어서 대충 골랐다. 잠시후 둘이 먹기엔 좀 커다란 파인트사이즈가 나왔고 아이스크림을 받은 뒤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 이게 아이스크림이야 ? "
" 어. 천상에도 아이스크림있냐 ? "
" 응...비슷하게는...근데 이렇게 안 생겼어.."
먼저 한 술을 떠 입에 넣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내가 먹는 모양새를 빤히 보던 김성규가 숟가락을 들어 아이스크림을 뜨더니 존나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는다.
" 어때 ? "
" 와아.완전 맛있네 ?! 이게 유일하게 천상의 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아! "
그리곤 다시 한입을 떠 입에 넣는다. 그렇게 서로 번갈아가면서 퍽퍽 떠먹다보니 커다란 파인트가 어느새 바닥을 내보였다.
" 근데 우리 잉란 안 찾고 너무 한가한 거 아니냐 ? "
" 아,맞다 ! 깜빡했다. 얼른 나가자 !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성규가 쫄쫄 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향했고 가방을 고쳐메며 따라나섰다.
" 아오...오질나게 덥네. "
" 그래 ? ...난 모르겠는데."
김성규는 땀 한 방울 흘리지않고 쌩쌩하다.
" 넌 존나 천상에서 왔으니깐 그렇지...그나저나 이 졸라게 넓은 서울에서.야,차 온다."
갑자기 확 튀어나오는 마티즈차량에 김성규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홱 끌어당겼다.
" 아,미안. "
" 아무튼 존나 막막하다. 주변에 있긴 있어도 그 잉란을 어떻게 찾냐..."
" 아냐.찾을 수 있어 ! "
" 내가 가다가 잉란을 찾으면 어떻게 해야해 ? 손으로 덥석 잡으면 되는거야 ?"
" 너가 맨 손으로 잡으면 절대 안돼 !!
김성규가 깜짝놀라며 소리쳤다.
" 왜 ? "
" 인간이 함부로 만지거나 잡으면 부셔질수도 있단 말이야. 파수꾼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주 조심히 다뤄야하는거야...아! 우현이 니 방에 있는 내 가방에 잉란 담는 주머니가 있는데...깜빡하고 놓고왔어,어쩌지 ? "
" 야.그걸 놓고 오면 어떡하냐 ? 존나 멍청해요,천사가. "
" 아,어쩌지."
" 뭘 어떡해. 오늘은 말짱 꽝인 거지. "
" 집에 잠시 다녀오면 안 될까 ? "
" 뭐 ?! 안돼. 나 집들어가면 고3이라고 밖에 못 놀게 한단말이야."
" 아아..."
" 쯥. 오늘은 그냥 일찍 들어가자.날씨도 너무 덥고 지친다."
조금 무책임한 발언인 것 같기도 한데 오늘 날씨가 너무 말이 아니다. 강한 햇빛에 정수리가 따끔거린다.게다가 선크림도 안발라서 시골아이마냥 시커멓게 타는 건 더더욱 안 된다.
" 휴우...그래,그럼..."
" 아,잠깐 어디 좀 들리자."
" 어디 ? "
" 병원. "
" 병원 ? 병원은 아프면 가는 곳이잖아. 너 어디 아파 ? "
" 아니.동우네 할아버지계시거든.잠깐 들렸다가자.동우도 거기 있을꺼야."
" 그래,그럼."
작년 이 맘때쯤에 암 선고를 받으신 동우네 할아버지는 내내 병원에만 계신다. 동우가 의사에게 듣기론 더 나빠지진 않을테지만 더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동우의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내느라 동우 부모님들은 모두 맞벌이에 동우가 병원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찾아가 병간호를 한다. 동우가 성격이 밝고 명랑해서 그렇지 실상 알고보면 제일 불쌍한아이다. 시험기간에도 다들 도서관가거나 집에서 할때 동우는 책들고 병원 간병침대에서 스탠드만 켜놓은 채 공부한 애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미닛메이드 주스세트도 사들고 아이스크림점에서 멀지않은 희망병원으로 향했다.
+
" 으으..."
엘리베이터에서 동우 할아버지가 계시는 3층에 내리자마자 성규가 갑자기 주춤하며 몸을 움츠렸다.
" 왜 그래 ? 어디 아프냐 ? "
" 아니...아냐... "
휴게실에 모여 수다를 떨고있는 아줌마 환자들과, 꺄르르거리며 간호사 누나와 장난을 치고 있는 꼬마아이가 보이는 평화로운 분위기.하지만 기분나쁘고 음산한 죽음의 기운이 잔잔하게 깔려져있다. 사관부의 사람이 아닌 생관부의 성규가 느낄정도로 짙은 죽음의 기운. 능숙하게 병실을 찾아간 우현이 싱긋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 할아버지.저 왔어요. "
" 이게 누구야.우현이 아니냐 ? 어쩐일로 ? "
" 어쩐 일은요.그냥 할아버지 보고싶어서 왔죠."
능숙하게 주스를 미니냉장고에 채워넣은 우현이 물었다.
" 근데 동우가 안 보이네요 ? "
" 가습기 간다고 방금 나갔지."
" 아아.."
" 안녕하세요. "
동우의 할아버지에게 뒤늦게 꾸벅 인사를 한 성규가 우현을 따라 창문 앞 틀에 살포시 앉았다.
" 그래. 날 더운데 뭣하러 여기까지와.뭐 마실꺼주리 ? "
" 아뇨!괜찮아요. "
" ...... "
성규는 자꾸만 병실안을 이리저리 훑어보게된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뭔가 음울한 기운을 뿜는 사람들이 자꾸만 보인다. 들어오자마자 있는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 한 분과 그 앞에 누운 중년남자.그리고...동우네 할아버지까지. 이 세명에게 특히 기운이 세게 느껴진다.
" 어 ? 언제왔어?"
반팔와이셔츠를 벗고 하얀 반팔만 입은채 가습기에 깨끗한 물을 받아온 동우가 가습기에 물통을 끼우며 물었다.성규형도 왔네요 !? 동우의 밝은 목소리에 두리번 거리던 성규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 그나저나 너희들 점심은 먹은게야 ? "
" 아뇨.아직..동우 너 점심 먹었어 ? "
" 아니.나도 아직...할아버지 밥 드셨어 ? "
" 할아버진 아까 먹었지.어서 친구들이랑 가서 맛있는 거 사먹고 와. 할아버지가 용돈..."
옷걸이에 걸린 점퍼에서 돈을 주시려는 할아버지에 우현이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는 말과 함께 동우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 아직 점심도 안 먹었냐."
" 너도 안 먹었으면서."
병원 지하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간 세 남자. 익숙하게 주문하는 동우와 우현과 달리 성규는 또 그냥 멀뚱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성규형은 안 드세요?"
" 나 ? 아,난 괜찮아.너네들끼리 먹어."
성규는 패스트푸드점에 가득 차있는 기름냄새와 느끼한 냄새에 손을 연신 코앞에서 휘젓고 있었다. 온통 자극적인 냄새들로 가득하다. 잠시후에 콜라 두 잔과 버거,감자튀김,새우튀김이 나왔고 성규는 신기한 눈으로 콜라잔을 들여다봤다.
" 이게 뭐야 ? "
" 예 ? 그거 콜라잖아요."
버거를 입안에 한가득 넣고 우물우물거리던 동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컵에 뭐가 묻어있어서...이제 능숙하게 거짓말로 둘러댄 성규가 조심스럽게 빨대를 입에 넣고 힘껏 쭉 빨았다.
" 푸흡 !!!!!!!!!! "
" 으악!!! "
" 아,뭐야!!!존나 !!!"
" 켁켁!!!!!콜록!!!!!!!"
*
" 존나 모르면 먹지나말던가."
" 미안..."
" 아,끈적거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반팔와이셔츠를 벗어 가방에 넣은 우현이 자꾸만 궁시렁거리며 걷고 있었다.
검은 물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고 톡톡톡 튀는 물이 신기해서 한번 맛보려한건데 한 모금 입에 담은 순간 타들어가는 입안과 따끔거리는 기분에 그대로 뿜어버렸다. 다행히 성규의 옆에 앉은 우현은 팔만 조금 젖었지만 바로 앞에 앉아있던 동우는 얼굴 가득 성규의 입에서 나온 콜라로 흠뻑 젖었다.
만약 우현이 푸흡하고 뿜었다면 죽일듯이 치고 박았을 동우였지만 우현이 아닌 성규였기에 화는 내지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괜찮다는말을 하며 티슈로 얼굴을 슥슥 닦았다.
" 날씨 죽인다,진짜."
오후 2시. 태양이 장렬하게 빛나고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징글징글한 아지랑이가 미친듯이 피어오르고 있다.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만큼의 땀이 나온 것 같은데도 연신 땀이 흐른다. 반대로 땀하나 흘리지않고 시원해 보이는 성규.땀에 젖은 우현의 머리칼과는 다르게 잠깐잠깐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거릴정도로 땀방울하나없다.
" 넌 좋겠다.땀 안 나서."
" 그럼 너도 착한 일 많이해서 천국오면돼. "
" 일찍 뒤지라는 거야 ? "
" 아니..."
항상 우현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우현의 질문,거기에 대한 성실한 성규의 답변, 병신같은 우현의 빡침.또는 우격다짐.
" 다녀왔습니다~"
" 어어~얼른 와. 밖에 많이 덥지 ? 뉴스에서도 무더위라고 그러...던데..."
동시에 들어온 성규와 우현을 본 엄마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물었다.
" 우현이만 마라톤했니 ? 어째 성규는 땀방울하나 없어 ? "
" 아...제가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이라서..."
" 그러니 ? ...어머,그래도 어째 땀방울하나가 없어 ? 부럽다,얘.어서 올라가서 쉬렴."
2층 우현의 방으로 들어간 성규와 당장 샤워를 하겠다며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간 우현. 자신의 가방을 뒤져 하얀 노트와 길털이 보송보송 달린 펜을 꺼낸 성규가 책상에 앉아 무언갈 열심히 적기 시작한다.
" 하아...성열이 보고싶네. "
맨날 까불까불거리던 성열도 보고싶고 잉란관리실에 있을 귀여운 잉란들과 때론 무섭지만 따뜻하신 삼신할매도 보고싶어진다. 괜히 기분이 울컥해진 성규가 코를 긁적이며 열심히 적어내려갔다.
" 아,이제야 좀 살 것 같네.뭐하냐 ? "
" 그냥 뭐 쓸게있어서. "
" 일기 ? "
" 비슷해. 그냥 인간세상 체험담같은거지."
" 뭐라썼냐 ? 줘봐."
" 아,안돼."
우현이 노트를 홱 집어가려하자 안 뺏기려는듯이 힘을 준 성규가 후다닥 자신의 가방안에 넣고 끈을 조여맸다.이건 절대로 못 보여준다.
" 어쭈."
" 안돼.비밀이야."
" 내 욕 존나 적었지."
" 난 너처럼 욕할줄모르거든 ! 그리고 너 친구들앞에서는 성규형.성규형.그러더니 왜 맨날 반말쓰고."
'어~쩌~라~구'하며 수건을 목에 건 우현이 성규에게 다가가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아얏!하면서 자신의 이마를 감싸쥔 성규가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 그리고 맨날 때리고. "
" 시끄럽다.나 컴터하게 비켜."
책상 의자에서 일어난 성규가 휙 우현을 째렸다.'어쭈,눈빛봐라.'하며 도리어 성규를 약올린 우현이 콧방구를 뀌며 능숙하게 컴퓨터를 켰다.
" 너 천사한테 이렇게 대하면 너만 안 좋을껄 ? "
" 누가 우리엄마 잉란 잃어버렸더라."
" 그,그건...내가 일부러 그런거 아니란 말이야!"
" 아오.뭐야.점검이야 ?! "
'죄송합니다. 서버 오류로 인해 잠시 4시간...' 4시간이 잠시였나 ? 이 놈의 게임새끼는 왜이리 점검을 많이해 ?
우현이 분노의 마우스질을 하던말던 가방을 구석에 밀어넣으려던 성규가 가방에서 자신의 옷을 꺼낸뒤 화장실로 가 갈아입고 잉란을 담을 주머니가 있는 가방을 멨다.
" 나 나갔다올께."
" 어디가게 ? "
" 잉란찾으러."
" 그래?..."
컴퓨터를 끈 우현이 하얀옷과 가방을 멘 성규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옷입으니깐 진짜 천사같네...' 그래.진짜 천사긴 한데 내 옷을 입었을땐 전혀 천사같아보이지는 않았다.
" 왜 그렇게 빤히 봐 ? "
" 아니.그냥."
" 왜 ? 같이 가주게 ? "
" 니가 책임지고 찾아와라.어차피 내가 발견해도 못 잡잖아."
" 치이...암튼 다녀올께!"
가방끈을 움켜쥔 뒤 책상위로 낑낑 거리며 올라가 창문을 열어재끼는 모습을 보던 우현이 핀잔을 준다.
" 야.그냥 현관문으로 나가면 안되냐 ? "
" 이렇게 나가면 아주머니가 이상하게 보실까봐."
" ..미련을 떨어요.."
" 그럼 갔다올께~"
몸을 숨긴건지 갑자기 창문에서 사라진 성규의 모습에 후다닥 달려가 창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 야! 너무 늦게오면 그냥 잠그고 잘꺼야 !!"
" 컹컹컹 !! 컹컹!! "
옆집 개도 하늘을 바라보며 짖어대기시작했다.
*
어느새 서서히 노을이 지고 어둑어둑해진 시간. 우현은 컴퓨터를 하는둥마는둥하다가 책장으로 향해 안네의 일기를 펼쳤다가 덮혔다가,다시 펼쳤다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초조해했다.
" 애들아,저녁 먹어~ 어머. 성규는 ? "
" 어? 아,걔 잠깐 볼일 있대서 나갔어."
" 성규 나가는거 못봤는데 ? "
" 에이.모,못 봤나보지.나 오늘은 저녁안먹을래.입맛이 별로 없어."
" 참나...니가 저녁을 안 먹고 왠일이래."
콧방구를 뀐 엄마가 나가고 우현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냥 왠지 기분이 싱숭생숭거린다.왼쪽으로 누워도 싱숭생숭.오른쪽으로도 누워도 싱숭생숭...다시 왼쪽으로 비비고,오른쪽으로 비비고.아,이게 아닌데.아무튼 성규가 생각보다 늦어지자 무슨 일이 생겼나하는 생각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찾아오다가 길을 잃었을까싶어 방안의 불을 켜놓고 창문까지 열어놔서 방충망에 잔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태였다.
" 잉란 찾다가 길을 잃었나...아니면..."
잉란 찾다가 도무지 못 찾을 것 같은 기분에 그냥 하늘로 토꼈나 ? 그건 아닐 것 같다. 분명 찾아준다해놓고 그냥 도망갈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벌써 시간은 8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싶어 밖으로 나갈채비를 하던 도중 방충망이 스르륵 열리더니 성규가 눈앞에 나타났다. 따라들어오는 벌레들을 홱홱 내저은 성규가 힘겹게 책상에서 내려와 가방을 벗었다.
" 흐아. 힘들다."
" 야! 너 지금 몇시야."
" 대충 8시 되지않았어 ? "
" 8시 훨씬 넘었거든 ? "
"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깐 깜빡했네,미안. 걱정했어 ? "
" 걱정 ? 웃기고 있네.걱정은 무슨...잉란은 ? "
성규의 가방을 힐끗 우현이 물었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은 성규가 가방을 벗어 구석에 잘 놓고 아까 벗어놓은 우현의 옷을 들고 화장실로 가 갈아입고 돌아왔다.' 이제 완전 지 옷이네.'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은 성규를 본 우현이 중얼거렸다.
" 힘들다."
" 훨훨 날아다녔을텐데 뭐가 힘들어."
" 계속 몸 숨겨가면서 날아다니는게 얼마나 힘든데~ 인간은 몰라."
" 그럼 걸어다니면 되지."
' 그러다가 잉란이 하늘에 둥둥 떠있으면 어떡해. 다 들킬텐데.'하며 자신의 이불을 깐 성규가 살포시 누워 ' 나 피곤하다. 먼저 잘께.'하고는 눈을 감았다.
" 천사는 하나도 힘들거없는 것 처럼 말하더니..."
" 인간과는 다른의미로 힘든거야."
" 뭔 말만 하면 인간,인간,인간..."
눈을 감고 아무 말이 없는 성규를 보던 우현이 '에휴..'하며 환한 형광등을 끄고 창문쪽에 에프킬라를 뿌려댄 뒤 침대에 누웠다.
평소에는 지금보다 훨씬 늦게까지 컴퓨터를 하다가 잠에 드는 우현이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성규를 따라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천장만 멀뚱멀뚱보고 있자니 성규의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되게 거슬리네...
" 야. 존나 야한 생각하냐 ? 천사 숨소리가 왜 그렇게 커."
" 평소랑 똑같은데 ... "
" 아,몰라. 좀 살살 쉬어."
" 치이..."
' 괜히 그래...' 중얼거리며 이내 여전한 숨소리로 잠에 든 성규였다.
+
어둑어둑한 밤. 성규도 잠들고 우현도 잠들고 거리에 사람들도 줄어들었때쯔음. 개집안에서 그르릉거리며 코를 골던 옆집 개의 귀가 쫑긋거리더니 갑자기 벌떡일어나 개집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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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서 드디어 수열 나옵니다.기대많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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