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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그XX | 인스티즈

 

 

 

 


그XX

 

 

 

*

 

 

 

수정이는 나를 만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제 최승현을 만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수정이를 마주하면 내 가슴은 찢어진다.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리고 그 웃음이 곧 눈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장담하기 때문에. 하나뿐인 나의 사랑아. 그 새끼를 위해 웃지마. 네가 웃은 만큼 더 아플테니까.

 

 

 

"어제 승현오빠랑 영화 보고 왔어. 재밌더라."


"......"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죽는 게 좀 그랬지만.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최승현, 그 영화 세번 봤어."


"뭐?"

 

 

 

수정이의 당황스러운 물음에 나는 머릿속으로 수백번을 고민한다. 너를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걸 숨겨야 할까 아님 나를 위해 모든 걸 밝혀야 할까. 수정이는 당황하는 모습도 너무 예뻐서 날 멍청하게 만든다. 결국 난 나를 위해 그녀가 아파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아무것도 아니야.

 

 

 

*

 

 

 

술집에서 최승현을 만나기란 너무 쉬운 일이였다. 수정이만 모르고 있을 뿐. 수정에게 최승현은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와는 거리가 아주 먼 젠틀하고 모든 면에서 출중하지만 겸손한 그런 남자였으니까. 입에는 담배를 물고 옆에 앉은 여자를 거의 끌어 안 듯이 하고 저 새끼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하나뿐인 친구였다.

 

 

 

"왔냐."


"수정이 만나고 왔어."


"걔 요즘 너무 징징거려."


"그래서."


"그만 만나려고."

 

 

 

수정이를 알기 전 까진 최승현의 너무나도 가벼운 연애방식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이젠 달랐다. 그녀를 위해선 내 자존심도 버릴 수 있다. 너 같은 새끼에게 그녀를 맡겨 놓은 내 가슴은 찢어지지만 그녀의 행복이 너라면.

 

 

 

"왜 귀엽던데. 더 만나봐."

 

옆에 앉은 이름 모를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술을 마시던 최승현은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원체 장난기가 많은 녀석이지만 뭔가 달랐다. 뜻 모를 미소를 입가에 걸친 최승현은 나에게 술을 따라 내민다. 난 그 잔을 받으며 떨리는 손을 감추려 노력했다.

 

 

 

"너 수정이 좋아하냐?"


"...미친 새끼."

 

 

 

*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건너편으로 들리는 수정이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전화기를 제대로 잡고 수정이를 다독였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승현 오빠랑 연락이 안 돼..."


"... 언제 부터."


"3일 정도 됐는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응?"

 

 

 

이런 상황에서도 최승현을 의심하기는 커녕 걱정을 하며 나에게 전화를 건 수정이가 너무 미워서 순간 전화기를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숨을 가다듬고 수정이의 말을 경쳥하려고 노력했다. 분명 그 새끼는 몇 일 동안 술집에서 술에 꼴아 있거나 다른 여자와 여행을 간 것 둘 중 하나일게 뻔한데 수정이는 너무나도 착한 목소리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일이 밀려서 그럴거야."


"오빠가 좀 전해줘. 시간 나면 연락 좀 해달라구."


"알았어. 끊자."


"부탁할게. 고마워."

 

 

 

전화가 끊기고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난 너에게 아무 존재도 아니겠지만 난 아니야. 내가 언제까지 이런 꼴을 두고봐야 하는지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해야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

 

 

 

내 예상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최승현은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여행을 갔다 왔고 나는 그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 수정이는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을텐데 너는.

 

 

 

"3일 노니까 질려."


"......"


"클럽 갈래?"


"수정이는."

 

 

 

이성이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이해가 안 가. 천사같은 그녀를 왜 기다리게 하고 울리는지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가. 오늘 아침까지도 수정이는 나에게 전화를 해 승현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전화기를 결국 집어 던졌다. 최승현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내 주먹은 결국 그 잘난 얼굴을 향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최승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권지용. 미쳤냐."


"정신 차려. 개같은 새끼야."

 

 

 

최승현의 뒤로 놀란 모습의 수정이의 모습이 보였고 수정이는 한걸음에 달려와 최승현을 부축하며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천사와 악마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

 

 

 

그 일이 있고 3일 뒤 수정에게 전화가 왔다. 왜 그랬냐고. 자신은 괜찮았는데 더 기다릴수도 있었는데 왜 그랬냐고. 나는 대답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천사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빠가 나 생각해준건 고마워."


"......"


"그래도 승현 오빠 때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

 

 

 

최승현의 턱에 무리가 왔고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입원했다는 말과 함께 내일 병실로 와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잔인한 말을 내뱉은 천사는 병원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눈물은 말랐고 허탈함만이 내 가슴 속에 가득 차버렸다. 결국은 그 자식 편이구나, 너는. 나는 너를 위해 한 일인데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결국 이렇게 되버리는구나. 최승현을 보고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래도 난 천사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집을 나섰다.

 

 

 

*

 

 

 

똑똑. 노크를 하고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 안은 악마와 천사의 웃음소리로 가득 했다. 주먹이 쥐어지는 걸 참고 천천히 그 둘에게 다가섰다. 놀란 눈의 수정과 담담한 표정의 최승현이 나를 반겼다. 수정은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고 난 그 뒷모습을 눈에 천천히 담았다. 문이 닫히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푸흡, 정수정이 시켰냐."


"그래."


"그런 네 반응 때문에 정수정 만나는거야."

 

 

 

고개를 들어 악마같은 자식의 눈을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결국 나 때문에 수정이가 힘들어하고 난 그런 수정이를 보며 아파하고 그런 나를 보며 이 새끼는 즐거워 하고 있었다는 거다. 수정아, 내 천사야. 너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노력했는데 그런 노력은 모두 헛수고였어.

 

 

 

"그만 놔줘."


"처음엔 나도 그럴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


"정수정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 나오게 만들어 봐, 네가."

 

 

 

*

 

 

 

수정이는 예전과 달리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최승현을 때린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내 시선을 피하고 자꾸만 핸드폰을 시계를 보며 앞에 놓인 물을 마시며 내 눈치를 보는 수정이는 그래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수정아."


"응, 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시선을 피하는 수정이가 제발 내 말을 믿어주기를 너무나도 간절히 바랄뿐이였다. 최승현의 얘기를 꺼내면 분명 수정이는 지금의 태도와 다르게 집중 할 게 뻔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수정이에게 1순위는 최승현이였으니까. 안타깝게도 최승현의 1순위는 수정이가 아닌 모든 여자였다.

 

 

 

"저번 일은..."

 

 


"괜찮아. 승현오빠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아니. 나 사과 하려는 거 아니야."

 

 

 

수정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제서야 나와 시선을 마주한다. 수정이는 분명 내가 자신과 최승현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예전과 같이 편한 사이로 돌아가는 그런 행복한 생각을 하며 이 자리에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만은 수정이를 아프게 해야했다.

 

 

 

"......"


"최승현, 너만 있는 거 아니야."

 

 

 

*

 

 

 

수정이는 나의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수정이는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 서 물컵에 담긴 물을 나에게 뿌렸고 그렇게 나에게 등을 돌려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수정이의 뒷모습을 잡으려 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수정이는 나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는 자신의 사랑을 깨버리려는 나쁜 놈에 지나지 않는 거였다. 그 일이 있던 이후로 1주일 째 집 밖을 나가지 않았고 수정이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최승현 앞에서는 당연히 그 냉정함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테지만.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고 핸드폰에 뜬 이름은 최승현이였다.

 

 

 

"뭐야."


"재밌어졌어. 정수정."


"헛소리 할 거면 끊어."


"화장실 갔다오는 동안 내 핸드폰 훔쳐보더니..."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걸 느꼈다. 수정이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였다.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였지. 수정이는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 분명했다. 최승현의 핸드폰은 잠금 따위는 없었다. 최승현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여자들의 번호와 그 여자들과 한 음탕한 대화들을 지우지 않았다. 최승현을 만나는 수정이를 뺀 모든 영악한 여자들은 알았을 것이다. 최승현의 핸드폰을 보는 것은 자신에게 자신이 칼을 들이대는 일이라는 것을. 난 최승현이 내뱉을 말이 너무나도 알고싶었다.

 

 

 

"......"


"디저트 뭐 먹을 거냐고 물어보더라."

 

 

 

&

 

 

 

거의 한 달 동안을 술만 마시고 지냈다. 수정이는 모든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최승현의 옆에 있겠다는 수정이는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모든 것을 알려주기 전부터 수정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연기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 나는 최승현의 여자들을 욕했고 혐오했다. 그 여자들은 최승현의 반반한 외모와 엄청난 재력에 몸도 주고 마음도 주는 그런 멍청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들을 지워버리게 만든 존재는 수정이였다. 수정이는 그 여자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로지 최승현의 사랑만을 원했고 최승현이 주는 돈과 선물들을 부담스러워 했고 같이 식사하고 영화를 보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순수한 아이였다. 최승현은 그런 수정이가 신기하다며 나에게 소개시켜줬다. 수정이는 수줍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했고 나는 눈 앞에 있는 천사에게 마음을 빼았겨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최승현이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감시하게 되었고 수정이가 아플까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나의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최승현의 관용 덕분인지 2개월을 채 못버티던 최승현의 연애는 거의 1년을 수정이와 함께 하게 되었다. 그 1년 동안 나는 그 둘 앞에서 미소를 짓고 속은 타들어가는 그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아파도 수정이 행복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정이는 보기좋게 나를 엿 먹였다. 그래도 수정이는 나의 천사이고 사랑이다. 수정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수정이는 그저 그 개 같은 새끼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할 뿐이다. 수정아. 내가 그 새끼보다 못한 게 뭐야. 도대체 왜 나는 널 가질 수 없는 거니. 나는 잘 모르겠어. 하늘에서 널 바라보고 있으면 그제서야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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