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우산이 없어 데리러 와주면 안돼? "
한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을 흠뻑 적시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멍하니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 우산 없는데
그제서야 내게 우산이 없음을 인지했다. 핸드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를 입력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연결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졌고
내가 기다리던 음성이 흘러나왔다.
" 어, 왜 "
" 나 우산이 없어 데리러 와주면 안돼? "
사실 기대도 안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창 밖을 바라보니 서서히 비가 멎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넌 예상을 깨고 어디있는데 라는 말을 전해왔다.
내심 기뻐하면서도 절대 표현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무심한듯 시크하게
" 학교, 얼른 와 기다릴게 "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늘은 느낌이 좋은데, 가는 길에 로또라도 사야지 싶었다.
예상대로 비는 오래 가지 않아 그쳤고 하늘은 그 사이에 먹구름이 걷혀있었다. 날카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다 부신 눈을 꼬옥 감았다.
어두웠으나 빛줄기가 동그랗게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살며시 감은 눈을 뜨자 네가 서 있었다. 그것도 우산을 들고.
" 어, 너.. "
" 굳이 내가 올 필요는 없었는데 "
" .. 늦게 온 네 잘못이야. 우산은 왜 하나인데? "
" 우산은 하나, 사람은 둘. 낭만적이니까 "
" 낭만 좋아하시네 "
어깨를 툭 치고는 먼저 앞서 걸었다. 붉어진 볼을 감추려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어느새 큰 보폭으로 걸어와 내 옆을 지킨다. 그 모습에 두근.
혹여 마음을 들켰을까 또 두근. 혼자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어 노을이 지고있었다. 늘
지나치는 길을 걸어갈 뿐인데도 오늘따라 길이 짧고, 길가에 핀 꽃이 유난히도 아름다워 보였다. 평소에 하지도 않던 꽃을 꺾어 괜스레 김종인의
귀에 꽂아넣고는 저 혼자 박장대소 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쉬워졌다. 노을을 등에 지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앞으로 드리워졌다. 용기내어 손을
뻗자 그림자 또한 같이 움직인다. 김종인의 큰 손을 꼬옥 붙잡았다. 차가웠던 손에 김종인의 온기가 닿아 따스함이 퍼져나간다.
" .. 노을이 너무 밝아, 우산 좀 펴 "
" 괜히 말 돌리기는, 펴줄테니까 잠깐 손 좀 놔봐 "
괜히 헛기침을 하며 멋쩍게 잡은 손을 놓았다. 곧이어 우산이 펴지고 내 어깨에 팔을 둘러 제 품 속으로 끌어당긴다. 갑자기 왜 이렇게 박력있는건데 또.
길을 걷다 우뚝 멈춰서더니 내 손에 우산을 꼭 쥐어주고는 내 어깨를 돌리더니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알듯 말듯한 네 눈빛에 더욱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긴장했는지 손에 쥐어진 우산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고 키가 훨씬 큰 김종인의 머리에 우산이 닿았다. 살짝 웃음을
터트리고는 내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인다.
" 키는 조그매가지고.. "
" 야, 니가 큰거야! "
순식간이었다. 빠르게 김종인의 얼굴이 다가왔고 우산은 바닥에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다닌다. 급작스러운 입맞춤에 당황해서는 눈알만
도록도록 굴리다 두 눈을 꾸욱 감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입맞춤은 오래가지 않았고 머지않아 입술이 떨어졌다. 당황해서 얼굴이 터질것만
같았다. 잽싸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는 두 볼을 감싸쥐었다.
" 바,방금 뭐한거야? "
" 뽀뽀 "
" 그,그건 나도 아는데.. 왜 했어? 뭐야? "
참고있던 웃음을 푸하하 터트려 버린다. 자꾸 멍청히 말을 더듬어버린다. 왜, 왜 웃는건데 또! 무어라 한소리 하려 했더니 빠르게 다가와선
한번더 쪽, 입을 맞춘다. 또 당했어,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에서 또 다시 쪽, 쪽 입을 맞춰온다. 다시 한번 다가오자 눈을 꼭 감았더니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입이 열린다.
" 왜 했을것 같아? "
" .. 몰라 "
" 낭만을 모르네 "
" 그놈의 낭만 타령! "
한소리 더 하려는데 내 팔을 잡아 끌어 제 품으로 가둬버린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인다.
" 좋아해. 아주 많이 "
" .. 빨리도 말한다 "
손을 들어 김종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두근두근 서로의 심장소리가 전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