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지권] Find love in your song 06 |
아- 이거 뭐야. 여기가 어디야……. 코 밑을 간질이는 이상한 느낌에 실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낯선 풍경이었다. 천장도 커튼도 모두 처음 보는 것 같은. 음? 진짜 어디지? 다시 원래대로 고개를 돌리니 내 머리맡을 유유히 지나가는 노랗고 토실토실한 털 뭉치가 보인다. 헐? 그럼, 여기 설마!
재빨리 몸을 일으킨 지호가 놀란 눈을 하고 주변을 살폈다. 아. 미치겠네. 여긴 영락없이 김유권의 집이었다. 여기까지 걸어 들어와 잠든 기억이 없는걸 보니, 아무래도 어제 한 잔 두 잔 삼겹살과 함께 소주잔을 비우다 필름이 끊겨 버린 듯 했다. 아니, 대체 무슨 낯짝으로 첫 만남에 술 마시고 정신 줄까지 놓은 거야! 지호는 부스스한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한동안 패닉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화장실로 보이는 문이 열리고 유권이 걸어 나온다. ‘어, 일어났네?’ 유권은 씻고 나온 건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걸어와 바닥에 앉았다. 지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어? 어, 어.’ 더듬으며 대답했다.
“속은 괜찮아?”
“어, 어?”
“어제 술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지호와는 달리 너무나 태평한 얼굴로 말을 거는 유권. 지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니 사과부터 해야 할지 몰라 눈알만 굴려댔다. ‘아- 저, 저기.’ 일단 기억나지 않는 어젯밤의 일부터 사과해야겠다 싶어 입을 떼는 순간, 유권이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아, 저기가 화장실. 집이 좁아서 별건 없어.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지금은 좀 그래. 치워야 하거든. 저기, 화장실 옆에 문 보이지?’ 이게 무슨 소리람? 지호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로 맹하게 유권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지호의 눈빛을 보지 못한 건지 유권은 계속 조잘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월세는 30인데, 반반이면 한 달에 15만원씩, 이건 어제 말했고. 음, 그리고 생활비도 같이 내는 걸로. 아, 이것도 어제 말했나?’ 유권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니 뭔가가 이상하다. 월세는 또 뭐고, 생활비는 또 뭐람?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유권이 말을 도중에 끊고 지호가 외쳤다. ‘저기!’ 그러자 유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저기- 정말 미안한데. 내가 그게, 피, 필름이 끊...겨서....”
“뭐?”
“그러니까,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하는데, 왜 이렇게 땀이 나는 것 같냐, 지호는 생각했다. 유권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의 지호를 쳐다보며 놀랍다는 듯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우리 같이 살기로 했잖아.”
유권의 입이 열리고 말이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지호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젯밤, 저녁을 함께하며 술을 한두 잔씩 걸치다보니 술에 약한 지호는 어느새 취해 유권에게 주정을 부린 모양이었다. 유권은 지호가 저에게 갈 곳이 없다고 먼저 같이 살자는 말을 꺼냈다고 덧붙였다. 헐!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처음 만난 날, 술 마시자고 한 것도 모자라서 같이 살자고 했다고? 아오- 우지호 미친놈! 입을 다물지 못하고서 황당한 표정을 얼굴 가득히 띄우고 있는 지호의 안색을 살피며 유권은 속이 안 좋으냐고 물었다. 지호는 영혼이 없는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했다. ‘아니- 머릿속이 안 좋아. 정신이 안 좋아!’
“뭐, 괜찮다니까 다행이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의 물기를 탈탈 털며 유권이 말했다. ‘아, 나 아르바이트 하는 건 알지? 카페에서, 일주일에 다섯 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야. 그리고 쓰레기 내놓는 날은…….’ 또 다시 입을 열어 재잘재잘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는데, 머릿속이 복잡한 지호에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 그리고 고양이 알레르기 있거나, 고양이 싫어해?”
“응? 아, 아니. 없어. 그런 거.”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놓고 있던 정신 줄을 간당간당하게 붙잡은 지호가 대답했다. 아. 진짜- 김유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계속 자책을 하며 패닉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유권은 지호의 그런 고민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어!’
와. 근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쁜 거 있지. 진짜. 그 순간 지호는, 어쩌면 미친척하고 같이 살자고 말을 뱉은 것이 오히려 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은 일이 없어 밖에 나갈 일이 없다는 유권. 햇빛이 쏟아지는 TV앞에 앉아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아- 열쇠가 하나밖에 없는데. 맞춰야하나.’ 건조한 공기에 유권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다 말라가고 있었다. 이윽고 화장실 문이 열리고 머리에서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지호가 등장했다. 저기- 수건이 없는데. 지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유권이 손뼉을 치며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아! 맞다.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수건을 가지러 빨래건조대로 향했다.
“근데, 옷이 이것밖에 없어....?”
갑자기 얹혀살게 된 주제에 무슨 투정이냐고 하겠지만, 유권이 입으라며 지호에게 내어준 티셔츠는 생각보다 작아 허리춤에 바람이 들어왔다. 팔을 올리거나 허리를 굽힐 때면 옷이 위로 쑥 올라가버리는 탓에 계속 밑단을 아래로 잡아 내리며 말했다. 다행히도 바지는 프리사이즈라 별 문제가 없었지만, 무늬가 썩 맘에 들지는 않은 지호였다.
“그래? 다른 옷들도 비슷할 텐데. 많이 불편해?”
“아...........”
팔자모양으로 눈썹 끝을 늘어트리고 묻는 유권에게 차마 ‘많이 불편해!’하고 투정할 수는 없었다. 이게 전부 녹음실에 짐을 다 두고 온 멍청한 자신 탓이려니……. 지호는 으응- 고개를 가로젓고 바닥에 풀썩 앉았다. 옆에 앉아있던 애기는 지호를 가만히 바라보다 유권이 앉아있는 반대쪽으로 몸을 옮겼다. 뭐야. 저 고양이. 묘하게 거슬리는 행동이네. 젖은 뒷머리를 쓱쓱 만지며 지호는 생각했다. 아. 그러니까 대충 정리를 하자면, 어제 술 취해서 난 정신 줄을 놨고. 그래서 있을 곳이 없다고 징징대며 같이 살자고 졸랐고, 그 결과 나를 받아준거라고? 헐. 혹시 너무 착해빠져서 어디가 모자란 건 아닐까. 정말 미안한 생각이지만 잠시나마 지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험한 세상에 생전 처음 보는 웬 (그것도 제정신 같지 않은 말을 하는) 놈을 동거인으로 받아들이다니.
“배 안고파? 아. 속이 쓰리겠구나. 해장해야겠네?”
잠시 멍하니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데, 싱크대 앞에 선 유권이 말을 걸어온다. ‘어? 아, 으응-’ 어깨를 움찔거리며 돌아본 지호는 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지호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어버린 유권이 냄비를 렌지위에 올리곤 말했다.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너?’ 유권의 말에 지호는 제 생각이 읽힌 것만 같아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아냐! 그런 생각 안했어!’ 앞으로 손을 뻗어 흔들며 강한 부정을 하는데, 이번엔 냉장고를 열어 먹을거리를 찾는 듯 허리를 굽힌 유권이 말한다.
“나도 그랬어. 너처럼. 처음 상경하고 있을 곳이 없어서 막막했을 때, 나를 주워준 사람이 하나 있었거든.”
‘아! 찾았다. 아직 먹을 만하네.’ 콩나물이 담겨있는 투명한 봉지를 냉장고에서 꺼내든 유권이 싱긋 웃었다. ‘콩나물 국 괜찮지?’ 봉지를 주섬주섬 풀어내는 흰 손가락. 기타를 치던 손가락은 기특하게도 요리마저 잘 하나보다. 유권의 흰 손끝을 바라보며 멍하니 입을 헤- 벌리고 앉아있는 지호. 대답 없는 지호를 쓱 바라보다 유권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니가 갈 곳이 없다고 하는데 모른척하기가 힘들었어. 당분간 여기서 지내.’
콩나물을 꺼내어 다듬은 유권이 자고로 콩나물국에선 비린내가 나면 안 된다고 콩나물을 끓는 물 안으로 집어넣고 바로 뚜껑을 닫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맛있는 냄새가 날거란다. 그 말을 들으니 지호는 저도 모르게 왠지 배가 고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애기야-’ 유권이 부르자 신기하게도 의자에 앉아있던 녀석이 쪼르르 달려 유권의 곁으로 달려간다. 고양이가 아니라 사실은 강아지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고양이 사료를 꺼내놓는 그 풍경을 바라보는데, 왠지 거짓말쟁이가 된 것만 같아 지호는 속이 더부룩했다.
난 갈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돌아가기가 싫은 것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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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김유권과 우지호의 동거러브라인! (동거는 동거 맞는데 별 거 없을거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힣 늦어져서 죄송해요ㅠㅠ! 아르바이트 자리가 잡혀서 앞으로는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써야할 것 같아요
더 분발해야겠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핳핳핳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