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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락비/지권] Find love in your song 08 |
슬슬 퇴근할 시간이 되어간다. 유권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 옆으로 휘휘 허리운동을 하더니 제 허리에 묶여있던 앞치마를 풀어냈다. 이제 한 15분정도 남았으려나. 주머니에 넣어놓은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8시 45분. 역시, 정확하네. 유권은 살짝 미소 지으며 커피바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지훈은 포스기 옆에 놓아둔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게임중. 대충 마무리 지은 유권은 카페 안에 남아있는 자리들을 빙 둘러보다 발견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한손엔 펜을 쥐고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한 남자. 지호였다. 유권은 반가운 마음에 지호에게 다가갔다. 유권이 바 안을 빠져나가자 게임을 하던 지훈도 폰에서 시선을 떼고 유권을 바라보았다. 유권이 걷는 방향을 눈으로 좇으니 그 끝엔 지훈이 그토록 눈엣가시로 여기는 지호가 앉아있다. 아- 또 왔네. 지훈은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언제부터 와있었어? 왔으면 말 하지."
"응? 아-! 아냐, 방금! 방금 왔어!"
오로지 작사수첩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지호가 제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들어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가까운 거리에서 더욱 더 클로즈업 되어 다가오는 유권의 얼굴.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말을 버벅거린 지호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유권은 '나 좀 있음 끝나는데. 별 일 없으면 같이 들어갈래?' 라며 말을 걸었고,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퉁이가 구깃구깃한 수첩을 슬금슬금 손바닥 아래로 감추었다. 유권은 수첩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했지만, 지호는 마치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유권의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이다.
"그럼 조금만 기다릴래? 한 십 분 정도?"
"그, 그래!"
잠시 유권이 뒤를 돈 틈을 타 지호는 잽싸게 가방에 수첩을 던져 넣었다. 다시 빙글 고개를 돌린 유권에 움찔거리며 지호는 가방을 끌어안는다. 싱긋 웃는 얼굴로 유권은 사뿐사뿐 걸어 바 안으로 돌아갔고 지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제가 끄적인 글을 유권이 보기라도 했을까봐 노심초사.
. . .
퇴근길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사를 쓰던 와중 그 주인공인 김유권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인해 깜짝 놀랐던 건 지호의 1차적 시련에 불과했다. 이건 무슨 사랑의 방해꾼인지, 아까부터 자꾸 유권과 저의 사이에 끼어 가운데서 걷고 있는 덩치 큰 알바생이 지호는 불만이었다. 왜 저 녀석과 퇴근시간이 같은 건지……. 기타를 매고 다가온 유권은 창가에 기대 선 지호의 어깨를 톡톡 치며 나가자고 말했다. 그 때 차라리 잽싸게 김유권 손목을 잡고 뛰어나갔더라면! 용기 있는 행동을 취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지호는 뒤늦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카페 문을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 '형! 나도! 나도 같이 가요!' 천사표 김유권은 그 녀석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고, 착한 웃는 얼굴로 '빨리 나와 표지훈.' 이라며 응답했다. 그 결과로 이 좋은 젊음의 거리를 지호는 칙칙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것일테고. 눈동자만 굴려 녀석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니 녀석은 왠지 묘하게도 저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저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지 지호는 저만치 떨어진 유권을 바라만보며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아, 집에 먹을 거 다 떨어졌지. 장봐서 들어갈까?"
조용히 길을 걷던 유권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을 건데, 장봐야겠네.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어. 계란이랑 우유도 사자.' 유권의 집 냉장고 사정까지 알고 있는 지호가 못마땅한 듯 지훈은 지호를 한껏 째려보며 말했다. '형, 나도 같이 갈래요!' 그러자 유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너는 왜? 넌 지하철 타고 집에 가면 되잖아.' 그런 유권의 말에 지호는 왠지 모르게 승리자가 된 것만 같은 도취감에 휩싸여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아싸! 드디어 저 녀석을 떨쳐내겠구나! 허나 그런 지호의 생각은 지훈의 대답으로 인해 산산이 조각났다.
"우리 집도 우유 다 떨어졌거든요."
***
여기서마저 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지호는 마트에 들어서서 카트를 뽑는 유권의 옆자리를 재빠르게 사수했다. 지훈은 그런 지호가 맘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남아있는 유권의 옆자리에 바짝 붙어 걸었다. ‘형, 이쪽 코너부터 쭈욱 돌까요?’ 유권에게 친근하게 팔짱을 끼며 카트를 채소코너로 잡아끄는 지훈. 자꾸만 유권에게 닿는 지훈의 손길이 신경쓰이는건 지호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훈의 뒤통수를 째려보는데 둔한건지, 아예 무시하기로 한 건지 지훈은 능글맞게 웃으며 유권만을 바라볼 뿐. ‘응? 그럼 그럴까.’ 유권은 잠시 멈칫하더니 지훈이 잡아끄는 대로 순순히 끌려간다. 지호는 모자를 벗었다 다시 고쳐 쓰곤 유권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오- 저 방해꾼 같으니! 미처 뱉지 못한 불만은 속에서만 부글부글 끓어오를 뿐.
키 큰 두 남자 사이에서 거의 치이다시피 걷고 있는 유권은 얼굴은 웃고 있지만 사실 쇼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양 옆에서 바짝 붙는 것인지, 조금 앞으로 먼저 걸어 나가려 하면 다리도 긴 것들이 잽싸게 뒤쫓아 따라붙었다. ‘형, 이거 어때요? 이 우유 맛있어요!’ 지훈이 파란색으로 무어라 써진 우유를 저의 눈앞에 가져다대고 어떠냐고 물으니 뒤에서 혼잣말하듯 들려오는 지호의 목소리. ‘그것보다 저게 더 맛있는데. 그리고 유통기한을 확인해야지.’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지훈은 그 목소릴 들었는지 미간을 구기고 지호를 아주 잠깐 동안 째려보았다. 하지만, 난관이 거기에서만 그쳤다면 유권이 지금 이 상황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건 하나 고를 때에도 마치 엄마의 관심을 두고 다투는 꼬마 형제들처럼 말없는 신경전을 벌이더니, 시식코너 앞에선 정말로 아이가 되어 버린 건지 그때만큼은 신경전이고 뭐고 두 사람 모두 정신없이 너비아니를 흡입하며 유권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눈치가 보여 결국은 집어든 너비아니.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예, 예. 웃으며 인사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 뒤돌아서서 한숨을 쉬었다. 아- 돈이 넉넉지 않은데. 유권의 한숨을 알아챈 건지, 지호가 헛기침을 몇 번 한 뒤에 미안한 기색으로 쭈뼛거리며 말한다. ‘오늘은 내가 낼게. 세입자니까.’ 뒤통수를 긁적이며 시선을 괜히 가만히 두지 못하는 지호의 모습에 유권은 아무렴 어떻겠냐는 생각을 하며 그냥 웃어버렸다.
‘37890원입니다.’ 계산대위에 물건을 꺼내놓기가 무섭게 바코드를 찍는 점원. 바코드를 찍기 무섭게 액수가 올라간다. 와- 정말 간단하고 소박하게 보려던 장이었는데, 사람이 하나 늘었다고 장을 이렇게 더 보게 되네. 유권은 거의 4만원에 이르는 금액을 바라보다 부쩍 올라버린 물가에 혀를 내둘렀다. 유권이 저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는 순간 그 손을 막아선 지호가 냉큼 제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계산했다. 지호가 내민 4만원, ‘네 4만원 받았습니다.’ 점원은 남은 거스름돈을 지호에게 되돌려 준다. 유권이 왜 혼자서 다 내느냐고 지호에게 묻자 지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둘이 먹을 건데, 뭘. 그럴 수도 있지.’ 지훈이 잠시 빠트린 게 있다며 물건을 가지러 간 그 사이가 오늘의 가장 평화로운 시간인 것만 같다고 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무거우니까 나눠서 들자.”
“에이, 이정도는 들 수 있어.” “맞아요. 저것도 못 들면 남자도 아니지!”
쇼핑한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담아 끙 하고 들어 올린 지호.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 그 모습에 유권은 함께 나눠들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지호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사실 조금 무겁긴 하지만 유권 앞에서 약한 놈으로 비춰지기는 싫었던 탓이었다. 헌데, 표지훈이라는 저 곰탱이같은 녀석은 대체 언제쯤 유권에게서 떨어질는지! 유권에게 붙어서 얄밉게 구는 모습에 지호는 자꾸만 약이 올랐다. 세사람 모두에게 소리없는 전쟁과도 같았던 쇼핑이 끝나고,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지하철 역 앞에 서서 아쉬운 표정을 짓는 지훈과는 다르게 조금 멀찍이 떨어진 지호는 정말 속이 후련한 듯이 혼자 슬며시 웃고 있다. ‘형, 나도 형네 놀러갈래요.’ 마치 아이처럼 칭얼대는 지훈이 오늘따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싫다는 대답을 할 수 없던 유권은 다음에 초대하겠다며 지훈을 어르고 달랬다. 바쁘게 지하철 입구로 모여드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우두커니 멈춰 서서 유권을 놓지 못하고 서있던 지훈은 연신 ‘형, 조심히 가요! 아니, 조심해요!’ 라며 외쳤고, 유권이 알았다며 어서가라고 등을 떠밀자 그제서야 계단을 내려갔다.
“갔어?”
“응. 오늘따라 쟤가 왜 저러지.”
“평소엔 안 저래?”
오늘따라 유난을 떠는것 같은 지훈의 모습에 유권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호는 평소엔 어떻느냐고 물었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듯하던 유권은 조용히 혼잣말하듯 뱉었다. ‘저렇게 심하진 않은데.’ 하지만, 그런 유권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제 앞을 지나쳐가는 버스에 지호는 번호를 확인하고 유권의 손목을 냅다 잡고 달렸다.
“저거 타야 돼!!”
***
집에 돌아와 보니 하루 종일 저를 기다린 건지 문 앞에 애기가 쪼르르 달려 나온다. 장보기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더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했던 유권은 애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곤 지호가 내려놓은 봉지를 뒤적여 고양이 간식을 꺼냈다. ‘우리 애기 것도 사왔지롱!’ 간식봉지를 손에 쥐고 흔들며 싱긋 미소 짓는 유권이 귀엽다. 지호는 봉지에서 장 본 물건들을 꺼내놓다 말고 유권의 옆모습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 저 웃는 얼굴엔 분명히 뭔가 있어. 누군가가 유권의 어떤 점에 이렇게 홀딱 빠진 거냐고 묻는다면 제일 첫 번째로는 천사와도 같은 예쁜 미소라고 답하겠노라 지호는 생각했다.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는 제 모습을 유권이 눈치라도 챌 새라 황급히 정신을 차린 지호는 계란이며 우유 등을 냉장고에 집어넣어 정리했다. 가방을 내려놓은 유권은 애기의 사료와 간식까지 챙겨준 뒤에야 좀 씻겠다며 욕실로 향했다. 지호도 대충 신발장 근처에 내려놓았던 저의 가방을 들고 와 탁자위에 올려놓고는 바닥에 큰대자로 몸을 뻗고 누웠다. 하늘을 바라보니 천장에 켜져 있는 형광등이 눈부시다. 눈이 부셔 눈을 감아버리니 감은 눈두덩 위로 마치 태양이 떠있는 느낌이다. 보일러를 틀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바닥은 아직 조금은 차갑다. 아. 정말 이제 여기서 사는 거구나.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헤- 그래도 오늘은 여차저차 하다 손목도 잡았네. 눈을 감은채 헤실거리며 바닥에 드러누운 지호가 잠시 혼자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쯤, 주머니에 넣어놓은 핸드폰이 울린다. 몸을 일으키지 않고 주머니만 뒤적이며 핸드폰을 빼낸 지호는 어차피 뭐 박경 아니면 한해 형이겠거니 하며 발신인을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보세요-”
“지금 어디에서 뭐하고 있는 거냐.”
아버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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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글 읽기에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것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브금을 듣는편이 더 좋을것 같으신 분들은 재생버튼을 살짝 눌러주세요:)
요즘 독방에서도 몇차례 글잡대란이 있었던걸로 알아요
이젠 글잡에서 블락비 글 자체가 눈에 잘 띄질 않는다고ㅠㅠㅠㅠ엉엉
독자수도 줄고, 댓글도 줄고,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작가님들도 줄어드는것 같아요 저도 아쉽답니다...ㅠㅠ....
자기가 좋아서 쓰는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독자분들과 소통하며 글을 쓰는게 얼마나 큰 도움이고 힘이 되는지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짘권 혹은 지권....마이너 커플링인데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글솜씨이긴 하지만
늘 댓글 달아주시고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다음 편을 들고 오면서도 보람이 느껴진답니다!
독자님들 스릉해여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