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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한X김민석
《부제1》김종인한테 가지마
《부제2》진심
1.
[오늘 회의 열려서 아침 자습시간엔 나 없을 거야]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켰는데 루한한테서 카톡이 와있었다. 아, 맞다 애 전교회장이었지. 가끔 나는 루한이 전교회장인 것을 잊곤 한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몸이 찌뿌둥해서 기지개를 쫙 펴봐도 나른함과 찌뿌둥함은 가시질 않는다. 학교 가서 더 자야지. 남고생의 등교 준비시간은 짧다. 매우 짧다. 고데기로 머리를 펼 일도 없고
꾸밀 일도 없고 양치하고 머리감고 말리고 씻고 밥먹고 교복입고 나오면 끝인데 준비시간이 늦을 이유는 없지.
등교를 하기 전에 괜히 루한이랑 나눈 카톡을 보며 빙구처럼 웃었다. 그러다가도 루한 여자친구가 생각나면 웃음을 멈추게 된다. 감정기복이 존나 심해졌어, 병원 가야하나봐.
학교 다녀올게요.
아무도 없는 집에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문을 잠그고 나오는데, 누가 내 앞에 서있길래 깜짝 놀라서 위를 보니까 종인이가 서있었다.
종인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한게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종인이는 활짝 웃으며 내 옆에 서더니 “형! 이제 나와요? 기다렸어요!” 라고 말하며 자연스레 팔짱을 낀다.
“ 종대는? 항상 같이 등교했잖아? ”
“ 오늘 먼저 가버렸어요 ! 그래서 형이랑 둘이 가려고 이렇게 왔죠. ”
아, 그랬구나 .. 고맙지만 그다지 달갑진 않았다. 고백을 받은 이후로 괜히 볼 때마다 미안해지고 피하고 싶은데 그런 티를 전혀 못내겠으니 말이다.
짧지만 형식적인 대화들이 거쳐갔고 어느새 학교 앞에 도착했다. 월요일마다 보는 학교는 나에게 끔찍함으로 다가온다. 오늘 학교에서 보자는 루한의 짧지만 굵은
카톡메세지가 생각나면서 학교에 들어가는게 더 무서워졌다. 나 원래 이런 애 아닌데 말이야, 어? 그냥 내 원래 성격 밀고나가?!?! 라고 속으로만(...) 외치고 학교로 들어왔다.
“ 형, 저도 오늘은 먼저 교실로 가볼게요. 급한 일이 있어서. ”
“ 응? 아 그래 알겠어! 먼저 올라가. ”
네 형, 이따가 봐요.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계단쪽으로 올라가는 종인이다. 나도 그런 종인이를 보며 교실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뒤 돌아 서려는데,
갑자기 종인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형!!! 미술실에서요!!!’ 응? 미술실?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 때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면서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직도 안잊었어!?
입을 쩍 벌리고 종인이가 있는 쪽을 쳐다보니까 종인이가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요!!! 형!! 저 미술실에서 했던 말 진심이에요!!! 잘생각해요!!!’
그 때의 고백을 아직도 기억하는 듯, 맨 정신으로 고백한거 맞으니까 모르는 척 하지 말라는 뜻이 함축되어있는 듯한 저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올라가버리는 종인이다.
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서 움직이도 주저앉지도 못했다. ㅈ.. 좆됐다.
“ 악 씨발 !!!!! ”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소리 질러봤자 누가 들어주겠는가. 종인이 덕분에 실처럼 꼬인 마음을 풀지도 못하고 교실로 들어왔다 회의에 간다던 루한이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회의 안갔어?’ 라고 먼저 인사하듯이 툭 말을 건넸다. 내 목소릴 듣고 고개를 돌린 루한은 내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확 변했다. 무섭게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라고 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척 대답했다. 손에 쥔 펜을 내려놓고 나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오지마..! 오지마 씨발! 속으로 잔뜩 욕을 해줬지만 그게 들릴리가 없지.
루한의 약간 굳은 듯한 표정은 이내 부드럽게 변했고, 다정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 회의가 조금 일찍 끝났어. 이제 오는거야? ”
“ ㅇ... 응. ”
뭐가 찔린다고 말을 더듬는건지. 루한은 무심한 듯 내 머리에 손을 탁 올려놓고 살짝 쓰다듬어주더니 다시 자리로 갔다. 괜히 찜찜한 기분이지만, 나도 일단 자리에 앉았다.
고요함이 흘렀다. 그리고 하나 떠오른게 있는데, 어제 내가 술을 마시던 곳에 찾아왔다던데. 물어보려다가 괜히 혼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짜지기로 했다. 근데 먼저 말을 꺼낸 건 루한이었다.
“ 술 깼나보네. ”
“ ... 당연하지. 나 술은 잘 깬다 ”
“ 그럼 너가 했던 말도 기억나? ”
어? 내가 무슨 말 했어? 진짜로 기억이 안났다.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보고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 실수했나? 내가 고백했나? 다행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기억이 안난다고 미안하다고 하니까 별 말 안했다고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럼, 내가 했던 말도 기억 안나겠네. 라고 말하는 루한이다.
“ .. 응, 기억 안나. 뭐라고 했어? ”
“ 안알려줄래. 너가 기억해봐 ”
그리고는 슬쩍 미소를 짓는다.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이 안나는데 어쩌라고 !!!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겨서 내가 했던 말도 기억이 안나는데 .. 저번에 그랬던 기억이 있다.
술을 마시다가 전여친한테 전화로 온갖 욕을 퍼붓고 엉엉 울다가 핸드폰을 부쉈다는데. 어쩐지 액정이 깨져있더라. 그래서 핸드폰도 바꾸고 번호도 바꾸고 전여친이 있는 학교 근처로는 얼씬도 못했지만.. 그 때의 일을 변백현은 김민석 최고의 흑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 좋겠다 똥백 개새끼야, 넌 술마셔도 기억력 좋아서 자잘한게 다 기억나고.
“ 이제 술 마시지마. 밤에 술 마시면 위험하잖아 ”
“ .. 나 남자야, 뭐 어때? 그리고 나도 싸우는 것 정도는 할 수 ㅇ.. ”
“ 술 마시면 몸도 못가누던데, 너 예뻐서 여자로 착각하고 남자들이 달려들면 어떡할래. ”
별 거 아닌 말 같은데 솔직히 존나 설렜다. 귀가 빨개져서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이란 걸 눈치 챘을까 조마조마 했지만, 책에만 눈을 박으며 말하는 루한은 다행히 눈치를 챈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오늘따라 루한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 평소 같으면 혼내고 그랬을텐데, 오늘따라 잔잔한 말투하며 부드러운 눈빛까지. 낯설고 이상하고 솔직히 저러는게 더 무서웠다. 어색함을 느껴서 그냥 조용히 칠판만 보고 있는데.
“ 노는 거 허락할게. ”
“ 뭘? ”
“ 남자애들이랑 노는 것도 허락하고, 밥도 같이 먹게 해주고 집에도 같이 가고. ”
다 허락해줄게.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밥도 자기랑만 먹게하고 집에도 자기랑만 가게 하고, 놀지도 못하게 하던 애가 갑자기 저런 식으로 나오니까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자기 말만 끝내고 다시 책으로 눈을 박아버리는 루한에 나는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그냥, 조용히. 아주 조용히. 오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는 와중에 갑자기 교실로 들어오며 발랄한 목소리로 ‘민석이형!!’ 이라고 부르며 달려오는 종인이다. 헐.. 야 얼른 나가!!!
루한이 화를 낼까 마음 졸이며 고개를 돌려 루한을 봤는데, 루한은 표정 변화 없이 그저 문제를 푸는 것에만 집중하는 듯 보였다.
“ 형! 놀러왔어요! ”
“ 아... 일단 나가자 종인아. ”
종인이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루한은 나를 잡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굳어버린 석고상처럼 그저 조용히 책상에 놓여진 문제집과 교과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예전의 모습이 낫다고 생각했다. 날 거칠게 대하고 존중이란 건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때가 좋았다. 그러면서도 날 사랑스러워
해주는게 눈에 보였던 그 때를 생각했다. 지금의 루한은 그저 한없이 차갑고 조용한 전교회장으로써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 웬일이래요? 오늘은 저 형이 안붙잡네요? ”
“ .... 그러게 . ”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지만, 교실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종인이는 주절주절 얘기를 하기 바빴고 나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계속 루한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교실에 돌아가도 아까와는 똑같이 날 대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2학년 부회장 준면이가 3학년 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민석선배, 루한선배는 반에 있나요? ”
“ 아.. 준면아. 루한 지금 반에 있어. 왜? ”
“ 오늘 회의에 참석을 안해서요. 회장이 회의에 참석을 안한다는게 말이 안되서 데리러 왔죠! 종인이도 있었네? ”
“ 준면이형 안녕! 루한형 반에서 공부하던데 얼른 데려가! ”
그래. 이따 봐요 민석선배, 종인아! 그러고는 우리 반으로 들어가버린다. 곧 루한이 반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내 앞을 슥 지나치며 눈이 마주쳤다.
웃어줬다. 그리고 루한도 살짝 미소를 짓고는 저 쪽으로 준면이와 걸어갔다. 오늘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본 것 같은데.
“ ... 저, 종인아. 나 이제 교실 들어가보면 안될까? ”
“ 네? 벌써요? 나 심심한데.. ”
“ 이따가 또 올라오면 되지. 미안해, 형 먼저 들어갈게. ”
네, 알겠어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날 보내는 종인이다. 조금 맘에 걸리긴 했지만 도저히 대화를 나눌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교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날 뒤에서 안는게 느껴져 깜짝 놀라 누구야! 라고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루한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날 안는 사람은
종인이었다. 왜그래 종인아?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 형, 미술실에서 한 얘기 아직 기억하죠? 저 그거 진심이니까 잘 생각해봐요. 그리고, 제 카톡 왜 답장 안하셨어요. 앞으로는 꼭 답장해줘요 ! ”
그리고는 날 안던 팔을 풀더니 자기 층으로 올라가버린다. 카톡이라니? 어제 그런 카톡 안왔다고 말 하려는데 이미 가버린지 오래였다. 술에서 깨고 온 카톡 목록엔 루한과 도경수 뿐이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복잡한데 종인이가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4교시가 되었다.
루한은 나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고 점심시간이 되자 밥 맛있게 먹으라는 짧은 대화만 하고 루한은 교실을 쏙 빠져나갔다. 진짜 같이 안먹네 .. 라고 생각하고
변백현이랑 박찬열한테로 갔다.
“ 오세훈이랑 도경수는 어디 나간 것 같은데? ”
“ 아 그래? 크리스는 어딨어? “
“ 몰라 !! 걔 밥 안먹는대 !! 우리끼리 먹자. 오늘 치킨너겟 나옴여!!!! ”
치킨에 환장하는 놈들은 치킨너겟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미소를 지으며 급식실로 뛰어갔다. 나도 천천히 그 둘을 뒤따라갔다. 종인이의 말이 생각났다.
잘생각해달라는, 조금은 간절해보였던 그 한마디. 그 순간에도 나는 루한이 생각났다. 하지만 루한은 여자친구가 있잖아.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저 섹스파트너로만
느끼는 건 아닐까? 라고. 두렵기도 했다. 밥을 먹으러 급식실에 왔는데도 루한은 보이지 않았다. 치킨너겟을 뺏어가는 변백현과 박찬열에게 빅엿을 날려주면서도
내 시선은 루한을 찾고 있다. 아무데도 없었다. 어디 간거지?
“ 누굴 그렇게 찾냐? 아 치킨너겟 존맛. ”
“ 똥백 돼지새꺄 !!! 내 치킨너겟 뺏어가지마 !!! 종따이한테도 뺏어온 놈이!!! ”
“ 우리 종대는 착해서 아무 말도 안하던데 왜 너만 지랄이야!! 더러워서 안먹는다!!! 퉷!!! ”
“ 아 씨발!!!!! 그걸 또 뱉냐 개더러운 새끼야!!!! ”
누가 비글 아니랄까봐 밥을 먹을 때도 치킨너겟 하나로 저렇게 시끄럽게 굴 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서 먼저 가겠다고 하고, 아직 남은 밥과
반찬들을 싸그리 버렸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루한은 없었다. 남은 점심시간동안 할 짓도 없고, 책상에 엎드려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난 잠들었다.
2.
아무도 없는 학교 뒷편에 왔다. 조용해서 좋다고 생각하며 풀밭에 앉아 누웠다. 어제 술에 취해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민석의 주머니에서 폰이 삐져나와 있길래
호기심에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누군가에게 카톡이 와서 그것을 확인해보았다. 비밀번호도 안걸어놓고, 세상 참 단순하게 사네. 그런데 카톡이 온 것은 다름 아닌 김종인.
순간 표정이 찌푸려졌다. 몇 개씩 와있는 카톡을 보기 위해 대화방으로 들어갔다.
[형]
[술 마셔요?]
[진짜로 좋아해요]
[누구보다 잘해줄 자신 있는데]
[잘자요]
뭐라고 답장할 수도 없었다. 나는 김민석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냥 대화방을 나와버렸다. 별 일이야 생기겠어? 그런데 김민석에게 보낸 김종인의 카톡을 보니까 정말 민석이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엔 나도 이성을 잃어서 김민석한테 조금 .. 무언가를 저질렀지만(ㅇㅅㅁ) 그 다음 집에 오니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여자도 좋아하고 남자도 좋아하는 양성애자란 것을 깨달았다. 여자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성애자는 아닌. 남자도 여자도 다 좋아하는 양성애자.
하지만 김종인은 확실히 동성애자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야 김민석이 아니라도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지만, 김종인은 아니었다. 김민석이 아니면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전형적인 해바라기 스타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꿈에 김민석이 나와도, 김민석을 보면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도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남자였다.
내 감정을 다시 한 번 부정하며, 그래. 김민석은 아마 김종인이랑 있어야 더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했다. 김민석이 동성애자 양성애자가 아니라도, 나 역시도 남자이기 때문에 차이더라도 나와 김종인 둘 다 차이는 건데 사귀는 거면 내가 아니라 김종인이 더 맞는 거라고 그렇게 난 혼자서 결론까지 내렸다.
“ 노는 거 허락할게. ”
“ 뭘? ”
“ 남자애들이랑 노는 것도 허락하고, 밥도 같이 먹게 해주고 집에도 같이 가고. ”
다음 날 나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김민석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 문제집에만 눈을 쳐박고 있었다. 잠시 후 김종인이 우리 반으로 찾아와 김민석과 놀러나갔다.
잡고싶었고 평소처럼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스스로 내린 내 결정에 대한 확실함을 보여야 했다. 회의를 가지 않았더니 김준면이 우리 반까지 찾아와서 날 질질 끌고 나갔다. 가는 길에 김민석과 눈이 마주쳤다. 김민석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김민석도 날 보고 살짝 웃어주고 있었다. 흔들리는 감정을 애써 잡고 다시 걸어갔다.
어떻게 사람 감정이 한 순간에 변하겠는가. 중국에서 게이야동 보고 이상한 소문이 나서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그 상처를 또 다시 겪게 될까봐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 감정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면서도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김민석이 고스란히 받는 것도 싫었지만, 김종인이 옆에 있다면 그 상처 정도는 치유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 루한 선배, 여기 자료요. ”
“ 고마워 레이. 너가 고생이 많네 ”
학생회 소속 레이는 루한을 이해해주는 사람 중 하나이다. 루한과 그나마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레이에게 고민을 털어놓을까 생각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레이는 환한 보조개 웃음을 띄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다. 아 .. 입도 떼보지 못했다. 그냥 이 고민은 나 혼자 안고 살아가야겠다.
밥 먹을 기분도 아니고, 4교시까지 그저 공부만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밖으로 나왔는데 저멀리 변백현, 박찬열과 걸어가는 김민석이 보였다. 김민석이 웃고있다.
괜찮나보네.
3.
“ 나, 종인이랑 사귈까? ”
“ .... ”
“ 종인이가 잘 생각해보래. 그리고 결정 내려달라더라 ”
그 얘길 왜 나한테 하는 건가. 이런거 믿고 말 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나보다. 밤중에 불러내서 한다는 소리가 저런 거였나.
“ .. 말이 없네. 루한, 술이나 마실까? 어제 그 술집. ”
“ 무슨 술이야 .. 안 돼. ”
“ 그냥 이번이 마지막. 딱 한 번만 마시자. ”
그렇게 어제 그 술집으로 다시 왔다. 두 명 뿐이라서 조금은 좁은 방으로 자리를 잡고 술을 주문했다. 무슨 얘기를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오늘 급식 맛있었어? 친구들이랑 뭔 얘기했어? 학교 재밌었어? 맘에도 없는 질문을 막 던졌지만 고맙게도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민석이다.
“ 내가 풀어주니까 편하지? ”
“ .... 어, 편하다 ”
“ 그러면 다행이고. ”
그리고 대화는 또 끊겨버렸다. 김종인 얘기를 다시 꺼내볼까 생각하는데 마침 술이 나왔다. 두 개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건배를 한 뒤 원샷했다.
헐, 술을 원샷해 ..? 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민석은 이에 질세라 자기도 원샷을 해버렸다. 처음 마시는 술 맛은 그다지 좋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쓰고, 한 마디로 맛 없었다. 말 없이 안주만 뒤적거리는 내 꼴이 우습다.
“ 루하안. ”
“ .. 벌써 취했어? ”
“ 웅. 취해버려따. ”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긴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다음 날이 되면 기억하지 못하고, 일단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고 보는 민석이다. 취중진담. 그런 것이다.
나도 술을 몇 번이고 원샷해서 그런지 조금은 알딸딸한게 올라왔다. 으 씨발 .. 머리 아파.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테이블에 기대고 있는데 민석이가 갑자기 푹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중얼중얼.
“ 응? 뭐라고? ”
“ ……. 어?! ”
뭐라 하는지 안들려. 좀 크게 말해. 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조금씩 볼륨을 높이며 말하는 민석이다. 종인이가 계속 나한테 잘해주고 구러는데.. 나 어떠케..? 응? 어떠케...
너무 고마운데에에에.. 조금은 흔들리려고 하능데.... 그래, 나라도 그런 행동에는 조금 흔들렸을거야. 민석이의 감정에 공감해주며 조용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 밖에 없다. 미안한 감정 뿐이다. 이렇게 약한 아이구나.
“ 흑- 흐윽... 흐윽 근데.... ”
“ 왜 울어? 누가 울렸어, 혼내줄까? ”
“ 혼내줘... 혼내줘어... 루한 그새끼 혼내줘어어.. ”
어? 날 혼내달라고?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나는 곧, 응 루한이 혼내줄게. 왜 혼낼까? 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저 흐느끼며 대답을 하지 않는 민석이의 어깨를 조용히 감쌌다.
일단 울자. 닦아줄게. 코트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린 민석이의 눈을 조용히 닦아주었다. 다 울었는지 히끅- 소리를 내며 다시 술을 원샷하는 민석이다.
“ …아 하는데 .. ”
“ 어? 뭐한다고? ”
“ 좋아하는데에 .. ”
“ 누굴 좋아해? ”
“ .... 루한 그 씹새끼 ”
눈물을 닦아주던 손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날 좋아한다고? 갑작스레 전해진 민석이의 진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술 취해서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거 아니야?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민석이를 내려다보는데, 민석이가 테이블에서 고개를 서서히 세우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 예쁘다. 그 순간에도 민석이가
참으로 예쁘다고 느끼는 루한이었다.
“ 근데에 .. 그 새끼 여자친구 ... 때문에에에 .. ”
“ .... 헤어졌대 , 루한 그 새끼 헤어졌대 ”
“ 지이인짜아아? 뻥치시네 .. 히끅. ”
“ 진짠데. ”
“ ... 그냥 나 김종인이랑 .. 사귈까봐아.. ”
떨렸다. 가슴이 떨려왔다. 이런 감정이 김민석한테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에겐 느껴지지 않았다. 김민석은 술에 취했지만, 난 아직 취한 상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진심을 더 오랫동안 담아두고 싶었다. 종인이랑 사귈까... 종인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에에.. 말 끝을 늘리며 말한다. 김종인, 김종인 .. 종인이. 어쩌면 나보다 종인이가 더 잘해줄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 확실한건 내가 지금부터라도 종인이보다 민석이를 더 좋아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 .. 종인이한테 갈래애애... 루한 그새끼 잊고오오- ”
“ 그러지마. ”
“ 뭘 그러지마아아!!! ”
“ 가지마, 김종인한테 가지마. 종인이한테 마음 주지말고 그냥 있어. ”
진짜로 이기적인 나다. 민석이는 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종인이만이 민석이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기 직전에 왔던 내 마음을 꽉 잡아준건,
민석이의 취중진담이 아닐까 싶다. 다음 날이면 기억하지 못 할 것이다.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민석이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진심을 들은 걸로도 충분했다.
“ 하나만 약속하자 민석아 . ”
“ 우우웅 약속? 뭔 약소오옥? ”
“ ... 내가 너한테 고백할게. 그러니까, 너도 나 좋다는 티 좀 내. ”
4.
아씨 머리아파 .. 어제 내가 달렸나? 김종인이랑 사귈까 고민을 루한한테 털어놓은 것까진 딱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 안난다. 내가 루한이랑 술 마시러 갔었나보네 .
이번엔 현관에 엎어져있진 않고, 내 방 내 침대에서 딱 깨어났다. 어제 내가 술 마시면서 루한한테 상한 말 안했겠지? 그래, 내가 어젠 미쳤었고 종인이랑 사귀는 건
조금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섣불리 판단을 내릴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종인이랑 사귈 생각 말고, 오늘부터 나랑만 밥먹고 나랑만 얘기 할 각오하고 와]
[그리고 나 여친이랑 헤어졌으니까 여친얘기 꺼내면 혼나]
[얼른 와]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전교회장X노는애 이야기 끝나면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네요.
그 때도 읽어주실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전 행복할듯..★☆ 민석이는 왜 술만 취하면 필름이 끊겨서 중요한 얘기는 기억도 못하는걸까요!!
이제 술 먹으면서 진심을 전할 때가 끝난 것 같아요 홓호호호호호 아마도 두 편 안에는 이야기 완결날 것 같으니 그 때까지 완결달려봐요!!
암호닉분들께서 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텍파도 이메일로 보내줄 생각이에요!
다음 편은 아마 불맠이 될 듯 한데, 그러면 다음 편에서 봅시다!!
그리고 제 말투가 굉장히 여성스럽다고 느끼시는 분들!! 저 원래 말투 이렇지 않아요 ㅎㅎ...ㅎ..
이게 원래 제 말투라고요!!! ㅅ사실 저것보다 더 딱딱한 말투라고요!!! 친구 프사 가린 이유는 저랑 찍은 사진이라섷ㅎㅎ.. 카톡배경은 .... 바꾼다는 걸 깜빡하고 안바꿨네요. 이럴수가! 얼굴 안나왔으니까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