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화신 모티브로 한 썰이에요.지호의 기호대로 탈바꿈한 자신의 방을 지호는 '심해'라고 했다.아무도 방해하지않고 자신 혼자만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는, 깊은 바다같은 공간.그 곳을 재효는 '도피처'라고 생각했다.강한 척하지만 그만큼 쉽게 무너지는 우지호만의 도피처.우지호 외에는 안재효 그리고 표지훈정도만 들어설 수 있는 심해는 우지호를 위협하는 것이라곤 없었으니까.온통 짙은 파란색으로 치장된 벽지의 어두침침한 방에서 파란색이 아닌 것은 얼마없는 흰색 가구들과 보기만해도 우울해지는 방에 지호를 걱정한 재효가 걸어놨던 알록달록한 액자들이였다.빨갛고 노란 원색의 액자엔 눈길도 주지않고 풀린 눈으로 허공만을 바라보는 지호는 무기력해보였다.한동안은 아무소리도 들리지않던 집은 아침 일찍부터 소란스러웠다.역시 돈이 관련된 일이라서 그런지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날카롭게 쏘아붙혔다.아무리 눈을 감아도 소리는 줄어들 기세가 없다.오디오를 틀까, 생각하며 일으킨 몸을 멈췄다.말소리가 멈췄다.동시에 계단을 오르는 소리도 들렸다.탁탁-하고 일정한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마 안재효겠지.그 생각을 마치자마자 재효가 들어왔다.아직까지도 헝크러진 머리에 정돈되지 못한 차림새였지만 아까와는 달리 어디를 쳐다보는 지는 정확했다.지호의 시선을 온전히 받고있는 재효가 입을 떼었다."...이변호사 왔어.""그래, 금방 갈게."재효는 하고싶은 말들이 많은 듯 망설였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않고 거실로 내려갔다.지호는 자신처럼 축 쳐져 몸에 엉겨붙은 가디건을탁탁 털어 바로잡았다.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재효의 눈을 무시했다.처음엔 좋았던 재효의 관심도 이젠 부담스럽고 무거웠다.적어도 이 곳에서는 자신이 하고싶은대로있게 뒀으면 싶었다.밖에선 그러고싶어도 그러지 못할테니까.모든 조명이 꺼지고 어두운 지호의 방은 정말 심해같았다.어두운 심해를 뒤로하고 지호가 한 발 내딛었다.계단을 내려가면 얼굴도 모르는 친척들이 즐비하겠지.지호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그 사람들사이에 섞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유산은 생각대로 분배됐다.아버지가 아끼던 지훈에게 대부분의 재산이 돌아갔고 그 재산권을 양도하는 데엔 지호를 돌보라는 조건이 붙었다. 조건을 어길 시엔 모든 게 지호의 차지로 돌아갔고.그 조건을 들으며 픽 웃었다.왠지 자신이 재산의 일부가 된 듯했다.찾아온 대부분의 친척들은 거의 받지못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듯 큰소리를 질러대며 집을 나갔다.그 커다란 소음들이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가라앉았다.고요해진 집엔 변호사 이태일과 재효뿐이였다.둘을 차례로 보다 지호가 입을 열었다."엄마,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그게..."안절부절 못하던 태일이 눈을 피하며 말을 잇지못했다.엄마가 무조건 불리한 싸움이였다.검사들에게 증거는 너무 많았고 엄마를 변호할 증거는 없었다."우리 엄마...아빠 안죽였어요. 알잖아요. 변호사님도.""지호야."지호가 입술을 물었다.나가보세요. 씹어내듯 말을 내뱉었다.제 어비의 얘기를 꺼낼 때부터 자신을 쳐다보는 동정어린 눈동자가 싫었다.기분이 나빴다.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는 재효의 등 뒤로 집을 나서는 태일이 보였다.근래에 태일은 좀 이상했다.자신이 죽인 것도 아닌주제에 어미와 둘이 남은 자신을 너무 불쌍해했고 자신 혼자 남았을 땐 미안한 기색까지 보였었다.그러고보면 걸리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아버지가 쓰러진 날에 태일은 자신 옆에 있다가 아버지에게 가려는 자신을 말렸었다.그 날따라 불안해보이기도 했다."재효형, 이태일 최근 통화상대나 만나는 사람 같은 것 좀 알아줄 수 있어요?""...알았어."아무것도 묻지않고 집을 나서던 재효의 걸음이 멈췄다.너 괜찮은거야? 오랜만에 듣는 재효의 다정한 말투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팔로 눈을 가리며 웅얼거렸다."전혀. 그러니까 빨리 가"그리고 빨리 와.삼켜진 뒷말이지만 들었다는 듯 재효의 걸음이 빨라졌다.탁- 조심스럽게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이 집에서 지호는 완벽히 혼자가 됐다.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자신 혼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집인데.그 꿈이 이뤄졌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아무도 자신을 옭아매고 간섭하시 않는데도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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