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촛불이야.”
“…….”
“그래서 네가 안 싫어.”
“되게 심오하네.”
“…….”
“노을 예쁘다.”
“응.”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10.
아. 꿈이다. 초침과 분침이 12와 6을 가리키지 않는, 오늘은 평일. 꿈이야 언제든 꿀 수 있지만, 매번 눈을 뜰 수조차 없어 입자만이 맺혔던 햇빛이 죽어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낮은 허밍소리는 말이 되어 나와 대화하는 것이, 내가 매번 꿔왔던 꿈의 연장선상임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호수는 좀 더 구체화 되었고, 나와 누군가가 앉아있던 것이 통나무라는 것까지 알게 된 꿈. 일기장에 나와 있는 장면은 아닌데. 어째서 나는 일기장과 연관된 꿈을 꾸다 못해 뒷내용까지 꿔버리는 걸까. 이토록 선명하게.
어젯밤 티는 하늘에 별이 뜰 때까지 있다 갔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라. 그리고 여전히 난간 밑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은 적응이 안 된다. 내가 2층에서 번지점프 아닌 번지점프를 한 걸 목격한 원장님의 기분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일기장은 티와 관련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었는데, 다른 물어볼 것도 넘쳤던 데다가 남의 일기장을, 그것도 마법에 걸린 일기장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무리 나를 후원해주던 사람이라도 실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티와 관련이 없는 일기장이잖아.
그렇다면 이제 남은 사람은…… 민윤기.
“아. 진짜 복잡하네.”
나는 가방을 챙기며 생각했다. 호그스미드에서 강리원이 선물한 수많은 것들 중에는 가방도 있었는데, 아무거나 막 넣어도 들어가는데다 무게가 느껴지지도 않는 거의 도라에몽 가방이었다. 이걸 이제야 쓰다니.
“참. 사탕.”
오늘은 꼭 전정국한테 사탕을 줘야겠다. 강리원 때문에 얼떨결에 사긴 했는데, 갑자기 주면 이상하려나? 그래도 발표도 끝났으니 수고했단 의미 정도로는 괜찮겠지.
“칼도…… 가져갈까?”
방에 뒀다가 누가 보면 어떡해.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장검인데……. 차라리 들고 다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으니 칼도 가져가야겠다. 장검이지만 도라에몽 가방(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에는 쉽게 들어갔다. 그리고 장검이 들어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기는 그대로였고. 역시. 현대문명에 과학이 있다면 여긴 마법이 있구나. 일기장이 넘겨지지 않는 걸 보고 마법에 걸렸을 거라고 바로 생각했던 나를 떠올리며 내가 과학보다는 마법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30분도 안 돼서 깨졌다.
“야ㅡ옹.”
“…….”
예림이 앞에 앉아 있는 이 고양이는 믿기지 않겠지만 교수님이었기에.
“변신술은 이렇듯 요긴하게 쓰입니다. 이제껏 이론만 들어왔으니 알겠죠.”
순식간에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다. 제가…… 마법에 익숙해졌다고 생각은 했어도…… 아직 적응 못한 게 있는데요…… 하나는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티고, 하나는 변신술 실습입니다…….
“우읍.”
“헐. 예림아, 괜찮아?”
“물……물.”
“아쿠아멘티(Aquamenti).”
랜덤으로 이름이 불려서 변신술 실습을 하는데, 방금 불려갔다 온 예림이가 속이 메스꺼운 듯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서둘러 얼마 전에 배운 마법으로 입에 물을 넘겨주었다. 이런 마법에만 익숙해지고 싶은데 말이지.
“참. 어제 너네랑 같이 앉은 애들은 누구야? 처음 보는데.”
“교육원 친구.”
“교육원?”
“아아, 우린 고등교육 배우기 전에 중등교육으로 교육원을 다니거든. 너네랑은 명칭이 조금 다를걸?”
“머글들은 뭐라고 부르는데?”
시아가 자리에 돌아와서는 물었다.
“중학교.” 희완시
“고등교육 받기 전엔 중학교만 다녀?” 아
“아니. 초등학교도 다녀.” 희완시
“초등교육도 학교에서 한단 말이야?” 아
“그렇지?” 희완시
“되게 이상하네.” 아
“유시아 학생을 마지막으로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름이 불리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하지마세요. 실습은 다음 주까지 계속되니까요.”
“으으, 먼저 해서 다행이다.” 예림
“이제 가자, 점심 먹으러.” 시아
“아. 잠시만!” 희완나
는 짐을 챙기고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전정국에게 다가갔다. 생각해 보면 전정국이랑 겹치는 수업도 참 많단 말이지.
“너 완전 모범생이다. 맨날 맨 앞에 앉네.”
“딱히.”
“자. 이거.”
“……뭔데?”
“저번에 호그스미드 갔다가 보이길래. 너 맨날 오렌지 맛만 먹잖아. 자두맛도 먹어 보라고. 그거 종류 되게 많던데? 아. 나 친구들이 기다려서. 잘 가!”
애들이 기다릴까 서둘러 교실문 쪽으로 향했다. 가자, 하고 이끄는 내 팔을 잡더니 시아가 물었다.
“뭐 주고 온 거야?”
“사탕.”
“왜?”
“그냥, 내가 안 먹는 거라서.”
“으음…….”
“아, 맞다. 깜빡할 뻔했다. 오늘은 나 점심 못 먹을 것 같아. 교장실 가야돼서.”
“교장실?” 예림
“응. 드디어 기숙사 정했거든.”
내 말에 예림이가 크게 놀라며 물었다.
“헐, 대박! 어디로 정했는데?”
“그건 갔다 오면 말해줄게.”
“아 뭐야, 궁금하게!”
“갔다 와. 배유빈한테는 우리가 말 할게.”
“응. 맛있게 먹어!”
갈림길에서 나는 왼쪽으로 빠지며 인사했다. 애들한테 비밀로 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같은 기숙사가 아니라고 실망할까 봐. 솔직히 애들이 있는 그리핀도르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어제 티가 한 말에서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네 마음속에 이미 정해진 곳이 있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교장선생님이 교장실에 계실지 모르겠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행히 교장선생님은 교장실에 가만히 계셨다. 심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댄다. 앞에 놓인 찻잔 두 개를 보니 정말인 듯하다. 이 정도면 마법이 아니라 신기가 아닌가 생각하며 선생님 맞은편에 앉았다.
“모든 기숙사와 퀴디치 연습을 해봤다죠?”
“아, 네. 알고 계셨어요?”
“호그와트는 생각보다 말이 빠르답니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죠.”
여전히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거래를 하러 온 청부업자 같았다. 그래도 전 만큼 무서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한결 편해진 이유는 내가 호그와트에 점점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정한 기숙사는 어딘가요?”
“아. 그 전에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뭐죠?”
“기숙사가 생기더라도, 방은 그대로 쓸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방이요.”
“네.”
“왜죠?”
“네?”
“기숙사가 있다면 해당 기숙사에서 방을 쓰는 것이 관례입니다. 희완 학생이 이제껏 독방을 써왔던 이유는 이례적으로 보류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죠. 따라서 기숙사가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독방을 쓸, 교장인 제가 납득할 만한 이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까지 납득할 만 한, 정당한 이유.”
한결 편해지기는 개뿔. 입은 웃고 있지만 거래를 하러 온 청부업자 같은 말만 내뱉는 교장선생님에 잠시 당황했다. 그런데 천천히 그 말을 곱씹어보니 갑자기 화가 났다.
“저는 다들 말하는 ‘머글세계’에서 왔고, 마법이니 뭐니, 호그와트에 적응하기도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보류 판정을 받았어요. 제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낯선 사람이 낯선 곳으로 데려와서 저를 혼자 둔 셈이죠. 정황을 제대로 알 시간도 없이 이곳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전에 계속 해서 일이 생겼어요. 제 이야기를 들으셨다니 아실 거라 믿어요. 연고라고는 하나도 없는 낯선 곳에 갑자기 데려다 놓으셨으니, 자의적인 선택권 정도는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무리한 부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 말은 지금, 기숙사 선택은 타의적인 선택권이라는 말이군요?”
“네.”
잠깐의 정적. 나는 침을 삼켰다. 혹시라도 이 정적 속에 소리가 들릴까 걱정하면서. 그런데 긴장한 나와는 다르게 잠시 굳어 있던 교장선생님은 묶여 있던 무언가가 풀어진 듯 푸스스 웃음을 내뱉는 게 아닌가.
“제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군요.”
“네?”
“미안합니다. 그 점에서는 안 그래도 사과하려고 했었어요. 핑계 같지만 사실입니다. 묻고 싶은 게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 와서 사정을 늘어놔 봤자겠죠? 그동안 심경이 꽤나 복잡했겠군요.”
나는 대답을 않았다.
“좋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정, 정말요?”
“네. 사실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그럼……”
“희완 학생의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거, 한 방 먹었군요.”
교장선생님은 너털웃음을 짓더니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래서, 기숙사는?”
나는 또 다시 침을 삼켰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는지. 저 뒤쪽 찬장에 놓인 분류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흐음, 의외네요.”
“네?”
“생각지도 못한 기숙사였어요.”
“예상하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분류모자는 보류를 외쳤지만, 그동안 들려온 희완 양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저는. 이 색일 줄 알았거든요.”
교장선생님이 손가락을 튕기자 탁자 위에 내가 선택한 기숙사와 다른 색의 교복이 소환됐다. 지팡이도 없이, 주문도 안 외우고 마법을 쓸 수 있다니. 확실히 교장은 교장이구나.
“하지만, 기숙사는 희완 양의 결정이니.”
교장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고, 교복은 다시 색이 바뀌었다. 바뀐다 해도 넥타이와 니트 조끼에 붙은 로고가 다지만.
“그리고 이번 주말에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주말이요?”
“말씀해주신 대로 그동안 미뤄놓은 이야기들을 하죠. 알려줄 이야기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으니까요.”
“네.”
“참, 퀴디치복은 퀴디치 주장에게 받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일어섰다. 한국고 교복을 입고 호그와트 교복을 품에 안으니 기분이 묘했다.
“참, 내일부터 받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세요. 정식으로,”
래번클로가 되는 날이니까요.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 래번클로!?”
“쉿, 목소리 낮춰. 래번클로에서 쳐다본다.” 시아
“그리핀도르에 올 줄 알았는데…….” 유빈
“래번클로는 좀 놀랍긴 하다.” 예림
“너무 그러지마……래번클로라도 너네랑 친구잖아. 맞지?” 희완예
“뭘 물어, 당연하지.” 림
“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기숙사가 생기는 거네!” 유빈
“응. 근데 그러면 나, 내일부터 여기서 밥 못 먹는 건가?” 희완시
“아무래도 눈이 있으니까.” 아
“점심은 힘들어도 아침저녁은 괜찮지 않을까?” 유빈
저녁시간. 오후수업을 마치고 연회장에 온 나는 애들에게 기숙사 소식을 알려줬다. 예상대로 서운해 하는 유빈이였지만 기숙사가 달라도 나는 여전히 친구니까. 단순히 편 가르기가 아니라 기숙사 개념이지만 아무래도 일과 중에는 기숙사별로 움직이는 게 커서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다. 점심만 따로 먹는 건데, 뭐. 그리고 래번클로에도 꽤 아는 사람이 있고. 예를 들면, 전정국이라든가.
“참, 너네 약초학 과제 다 했어?” 유빈
“과제가 있었어?” 예림
“난 다른 과제 하느라 아직.” 시아
“비티타타 말하는 거면 찾긴 했어.” 희완유
“헐, 어디서?” 빈
“아직 못 찾았으면 먹고 나서 내가 찾은 데로 가 볼래?” 희완유
“당연하지! 그거 찾기 진짜 어렵다던데 대단하다. 어떻게 찾은 거야?” 빈
“돌아다니다 보니까 뭐…… 운이 좋았어.” 희완시
“운이 심하게 좋네.” 시아
아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또 도서관의 도움을 받았다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저녁을 다 먹은 우리는 약속대로 비티타타를 찾아 나섰다. 넷이서 빗자루를 타고 가는 건 처음이라 마음이 살짝 들떴다. 혼자 탈 때, 혹은 비행수업이나 퀴디치를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놀이공원에 수학여행을 와서 다 같이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교복을 받기도 했고, 여러모로 정해진 게 있으니 더 소속감이 드는가 보다.
“여기야. 이 호수. 여기 주변에서 찾았어.” 희완유
“와, 여긴 처음 와 보는데.” 빈
“나도. 여기까지 날아올 생각도 못했어.” 예림
“넌 어떻게 여길 알게 된 거야?” 유빈
“어? 그냥, 다니다보니까. 말했잖아, 운이 좋았다고.” 희완시
“넌 ‘그냥’이 되게 많네.” 아
“응?” 희완시
“아냐. 여기 주변에 찾아보면 되는 거지?” 아
시아가 호수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나 여기 와 본 것 같아. 저기 저쪽 숲으로 가면 다른 호수도 나오는데 거기도 한 번 찾아 봐야겠다. 비티타타는 젖은 곳을 좋아한다잖아.” 유빈
“김희완이 여기서 찾았다는데 굳이?” 시아
“나 혼자 다녀올게.” 유빈
“야, 위험한데 같이 가자.” 희완시
“난 여기 있을래.” 아
“그럼 나도 여기 있을게. 둘씩 나눠서 찾자.” 예림
그렇게 해서 시아와 예림이는 이곳에 남고 나와 유빈이는 다른 호수로 가게 됐다. 숲은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았다. 햇빛도 잘 들었고 풀이 무성하거나 나무가 크게 우거지지 않아 조금만 걸으면 물가가 나올 것 같았다.
“어, 갈림길.”
“어느 쪽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럼 여기서 또 나뉠까? 내가 왼쪽으로 갈게.”
이렇게 해서 또 다시 나는 왼쪽, 유빈이는 오른쪽으로 갈렸다. 나는 가방을 고쳐 매고 걸었다. 새소리와 바람에 부딪치는 나뭇잎파리 소리 같은 것들이 기분 좋게 울렸다. 종종 산책으로 여길 와도 괜찮겠는걸.
“…….”
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슨 소리가 들렸다. 새소리나 나뭇잎 소리가 아니라 좀 더 깊게 울리는……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그런……소리.
“뭐지? 잘못 들었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숲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나무들만 보일 뿐. 이거, 길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은데 여기가 아닌가 봐. 돌아갈까 고민하는 사이 다시 들리는 소리. 이건 분명 짐승소리다. 더 이상의 모험은 안 된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려 했으나 걸음만 멈췄다.
내 앞에 있는 저것 때문에.
곰인 것도 같고 늑대인 것도 같은 것이 천천히 다가오는데…… 고놈 참 짐승 같이 생겼네. 헉, 혹시.
“일기장에 나왔던 그 동물 나온 곳이 여긴가?”
정말 봉변이구만. 이럴 때 쓸 수 있는 마법이 뭐가 있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루모스, 아쿠아멘티, 윙가르디움레비오우사 등은 전부 쓸데없는 것이었다. 아쿠아멘티는 괜찮지 않을까? 공격할 수 있잖아. 다른 공격마법들도 분명 있는데 떠오르지 않는 것은, 마치 시험 칠 때 공부한 건데도 막상 답을 쓰려니 기억나지 않는 현상과 같았다.
곰인지 늑대인지 모를 짐승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으며, 충분히 적의라고 느껴도 될 정도였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혹시 영역을 침범한 걸까 싶어 뒷걸음질 치자 발소리에 반응한 그것이 내 쪽으로 뛰어오는 게 아닌가!
이렇게 된 이상 빗자루밖에 답이 없다. 그래, 내 손에 빗자루가 있는데 왜 마법 쓸 생각부터 했을까. 하지만 등 뒤에 닿는 무언가에 앞으로 주저앉아버렸다. 뒤에는.
“바위……?”
갑자기 없던 바위가 생겨 뒤를 막고 있었다. 설마 마법까지 쓰는 짐승인 거야? 이거 정말…… 망했는걸? 내가 배운 변신술은 고양이로 변하는 거라서 해봤자 꼼짝없이 먹힐 것 같은데. 게다가 아직 실습은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나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입을 벌리고 달려오는 짐승에 할 말을 잃었다. 너무……뾰족해서. 어쩌지. 이대로 죽기엔 아직 교복도 안 입어봤다고. 너무 억울하잖아! 뭐라도 건지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주저앉다 떨어뜨린 가방에서 칼이 삐져나온 게 보였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는 게 나을까, 칼을 휘두르는 게 나을까. 나는 다급하게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둘 다 휘두를 테다! 억!”
고민하는 사이에 죽을 것 같아서 그냥 양손에 쥐려는데 지팡이를 잡기도 전에 칼이 손에 감기더니 절로 휘둘렸……다.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칼이 휘둘린 길을 따라 거대한 바람이 일었고, 짐승은 깨갱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몸에 힘이 풀려 뒤에 기대는데 언제 사라진 것인지 바위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길이 있어 뒤로 풀썩, 누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벌떡, 일어난 건.
“너네 할멈한테 이쪽으로 다니지 말란 말 못 들었냐!”
하고, 짐승이 사라진 쪽으로 소리치는 목소리 때문에.
“이쪽 호수엔 비티타타 없어. 네 친구가 간 데는 좀 있을지 몰라도. 그래도 아까 있던 데가 더 많을 건데.”
“헐…… 누구세요?”
칼? 칼이 말을 해?
“나 지금 칼 아니고 사람인데.”
“생각을 읽어요?!”
“읽는 건 아니고 가끔 느낄 수는 있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이게 뭐냐고! 누구세요?!”
분명 이 주황머리의 사람은 칼이 맞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 손에 감겨 절로 휘둘렸던 칼이 지금 감쪽같이 사라졌고, 칼에 박혀 있던 수정의 색이 저 머리색과 똑 닮아있다.
“희완아!”
“어, 어어!”
유빈이의 부름에 대답하면서도 내 눈은 주황머리의 사람에게로 고정돼 있었다.
“웬만하면 이제 놀랄 일은 없지 않나…….”
“칼이 사람으로 변하는 건 되게 이상한 거거든요?”
“사람이 막대기로 마법 부리는 건 안 이상하고?”
“아니, 당신 누구냐고.”
“안 가? 친구 부르는데.”
“허…….”
“어쨌든 들키면 설명하기 귀찮으니 다시 변한다.”
“……헐, 진짜 변했어. 헐.”
“희완아!”
주황머리 사람이 칼로 변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황당과 당황을 모두 느끼는 중인 나는 유빈이의 목소리에 칼을 후다닥 집어넣고 일어섰다.
“큰소리가 나서 왔는데.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는데. 잘못 들은 거 아냐?”
“뭔가 동물소리 같은 게……”
“어, 근데, 내가 볼 땐 여기에 비티타타 없을 것 같아. 시아랑 예림이한테로 가자.”
“응? 나 아직 저쪽 호수 못 가봤는데…….”
“시아야아아아!”
“뭐야, 김희완! 같이 가!”
“예림아아아아!”
일단은 그 칼사람(?)이 말한 대로 아까 그 호수로 가긴 하는데…… 당황스러운 건 여전하다. 유빈이에겐 미안하지만 더 이상 다른 호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괜히 애들 이름을 부르며 걸었다. 걸으면서도 계속 드는 생각은, 지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하는 혼란들. 가방 안에 손을 넣어 보니 장검이 또 단도가 되어 있다.
이게 뭐야……. 나…… 완전히 잘못 걸린 거 아니야?
가끔 올린 짤이 안 보일 때가 있던데 사진첨부 제한도 있나요 혹시?
넷이서 대화할 때 누가 누군지 못 알아 볼 것 같은 건 옆에 옅은 회색으로 이름 적어뒀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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