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01
Millionaire - Musiq Soulchild
"계란 한 판 채우는 거 금방이다 우리 딸?"
"알지, 누구보다 잘 알지. 나 지금 백조라고 더러 하는 소리지 엄마?"
"내 생각엔 네가 취직을 하는 길보다 좋은 남편 만나서 시집 가는 게 편히 사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계란 한 판 채우는 거 금방이라며 운을 뗐던 엄마는 어느세 내게 맞선 자리를 '권유'가 아닌 '강요'하고 있었다. 네 나이가 올 해 스물 여덟이야 이것아, 어떡할 거야, 어? 계속해서 나를 종용하던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못이기는 척 어떤 놈인지 들어나 보자고 했다. 선을 보라고 딸을 들들 볶는 엄마들이면 매 한 가지 아니겠는가, 어디서 그런 좋은 놈이 엄마 팔랑 귀와 헤픈 맘에 들어가서는.
"아이고, 내 정신이야, 사진 받아 오는 걸 깜빡했네, 되게 동글동글하고 선하게 생겼어, 잘생기기도 참 잘생겼고 소문으로는 싹싹하기도 참 싹싹하고 예의가 바른 청년이라네 글쎄. 나이는 스물 아홉이고."
"글쎄, 소문만 믿고 내가 어떻게 선을 봐, 엄마?"
"청산 그룹 다닌다는 데도?"
세상에. 나는 떡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청산그룹? 내가 대학 졸업 무렵부터 주구장창 이력서를 뽑았던 이유도, 번번히 나를 면접에서 떨어지게 했던 회사도 바로 거긴데, 어떻게? 심지어 얼마 전 면접을 보고 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그 남잔 스펙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야? 나는 박수를 짝짝 두어번 쳤다. 그런 나의 행동에 엄마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두드려 주었고, 사건은 바로 그렇게 시작 된 것이었다.
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다음 날 나는 별의 별 꽃단장을 다 하고 맞선 장소로 향했다. 어울리지 않겠지만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이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등짝을 한 대 맞고도 남았을 행동이었지만 나라는 인간 자체가 이런 것을 뭐 어떻게 하겠는가. 거절했던 맞선을 등 떠밀려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심기 불편한 일이라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흔쾌히 맞선에 나갈 줄 알았는데 왜 거절 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쉽다. 나는 자립심이 강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현대여성이다. 그런데 돈 많고 학벌 좋은 남자를 만나서 인생 피고 살아라? 절대로 내 자존심이 허락치 못 했을 뿐더러 나는 과히 그런 남자를 홀릴 만한 인물도 절대적으로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빨간딱지 맞고 열이 바짝바짝 오르는 것 보단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풀거리는 스커트에 사부작사부작 걸음을 옮겼다. 장소는 다름아닌 백화점 옥상 라운지였다. 아니 근데, 뭔 놈의 여자 기다리는 사내들이 이렇게 많아? 실눈을 뜨고 두리번 거리니 ㅅ한 남자가 거만한 자세로 내게 손을 들어 보였다. 건방져, 첫 만남부터 건방져도 너무 건방지잖아? 나는 헛기침을 하며 남자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상대가 첫 판부터 나의 기대를 져버렸으니 나도 져버리는 수밖에. 나는 아주아주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귀를 파고는 목례를 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이 귓가를 근질거리게 했다.
"그쪽 성함을 한 번 밖에 못 전해 들어서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초면부터 그쪽이라니, 호칭 정하는 센스 한 번 죽여주는군. 나는 잔에 든 얼음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명함 교환이라도 하리? 아쉽게도 난 백조였으므로 패스. 하긴, 이런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냐마는…. 나같은 애를 상대로 흔쾌히 수락했다던 당신이 병신이 아닌 이상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그냥 '예의상'이 되어버린 거겠지. 얼음물을 마시면서 여러 생각을 마쳤다.
"마찬가집니다. 전 ㅇㅇㅇ이구요."
"반갑습니다. 김종인입니다."
반갑습니다. 그 인사는 처음 눈을 마주친 그 때부터 했는 게 맞거늘, 이제 와서야 그런 인사 치레를 하는 게 우스워 나는 그냥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명함을 내게 내미는 건방진 남자. 당신 이름이 김종인이었군. 명함으로 부채질을 하듯 펄럭거리다 이내 그 위에 쓰인 글자들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
김종인
Cheongsan Baeuty CDO
jongin0114@daum.net
------------------------------------
오, 주여, 정녕 이 남자가 나와 맞선을 보겠다고 나선 그 남자가 맞는지요? 나는 한숨과도 비슷한 탄성을 뱉었다. 너무도 놀라운 광경이라서 떡 벌어진 입에서 숨이 꾹 모아져 나온 것이었다. 그래 뭐 이 정도면 어느정도 싸가지 없는 건 용서가 될 것같다. 그런데 CDO? 이건 뭐시다냐. 나는 침을 삼키며 명함의 직책을 가르키며 물었다.
"CDO? 직책이 높으신가 봐요?"
"Chief Design Officer. 청산 뷰티 디자인 담당 이삽니다. 많이 배운 집안 영애라고 들었는데, 소문이랑은 많이 다르시네요."
이...이사...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남자를 직시했다. 정말 무시무시하다. 이 남자. 하버드라도 나온 건가? 아니,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많이 배운 집안 영애라고 들었는데, 소문이랑은 많이 다르시네요. 그 말이 내 가슴을 푹 찔렀다. 그럼 지금 그 말은, 내가 많이 배운 티도 교양도 전혀 없어 보이는 그런 인간이라는 건가? 심기가 불편해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을 우물거렸다. 그런 당신은 얼마나 잘 배운 티가... 나긴 난다. 그건 인정. 명함만 보고도 뜨헉했으니. 그렇다고 뭐, 애초에 우리 집안이 그런 집안도 아니고 나는 많이 배운 인간도 아니었으니까.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슬쩍 끄덕거렸다.
"1억? 아님 2억?"
김종인이라는 남자는 내게 난데없이 2억? 3억? 하는 물음을 건네왔다. 나는 눈썹을 까딱이며 무슨말이냐는 듯 무언의 되물음을 하자 입꼬리를 씰룩이며 내게 말하는 남자다.
"글쎄, 그 정도면 쉽게 알아 들으리라 예상했는데. 내 소문 못 들은 건 아닐 테고."
소문? 무슨 소문. 내가 당신에 대해 들은 소문은 되게 동글동글하고 선하게 생겼다. 잘생기기도 참 잘생겼고, 소문으로는 싹싹하기도 참 싹싹하고 예의가 바른 청년이다. 나이는 스물 아홉. 이 정도 밖에 없는데. 계속해서 남자를 훑으니 제대로 한 방 터뜨려 주신다.
"나 엉덩이 예쁜 여자 좋아해요, 아아, 참고로 쇄골도."
순간이었다. 잔에 담겨 있던 찬 물을 남자에게 확 뿌린 것은.
'1억? 아님 2억?'
'글쎄, 그 정도면 쉽게 알아 들으리라 예상 했는데.'
'나 엉덩이 예쁜 여자 좋아해요.'
뇌가 뒤틀린 기분이었다. 이런 미친 변태새끼! 나는 악다구니를 쓰며 발을 동동 굴렀다.
"1억? 2억?! 너는 내 몸 값이 그정도로 보이니?! 나 참 웃겨서. 당신이 그 정도로 대단해?! 평판 좋게 나 있는 양반이라 기대 잔뜩 하고 왔더니만 완전 쌩 양아치 쓰레기구만 이거."
남자는 찬 물에 헙 숨을 들이 마시다 손으로 젖은 제 얼굴을 닦아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주시하는 남자의 표정에 뺨을 걷어 부칠 뻔 했다.
"무슨 소립니까 대체."
"무슨 소리? 이제 와 사람들 시선이 무섭긴 한가 봐? 엉덩이하고 쇄골이 예쁜 여자를 좋아하면 너네 동네에 널린 룸싸롱을 가, 변태자식아!"
"내 변호사를 만나보고 싶은 거야 아님 진짜 미친 거야?"
"뭐?!"
"악!"
남자에게 다가가 정강이를 그대로 차 버렸다. 뭐?! 변호사?! 요즘들어 어떤 또라이든간에 내 눈에 안 띄더라니, 드디어 나타났구나. 정말 제대로 미친 싸이코! 취향 한 번 올곧았음 좋겠군, 거기다 나같은 년이 여러 명은 당신 맞선 상대로 깔렸음 좋겠어, 그럼 당신 완전 엿 될 거거든. 한 번 보고 말 사이였지 우리, 그렇게 나는 화가 나 씩씩대다가, 이내 돌아 서 엄마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고는 자리를 빠져 나왔다.
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넌 선을 보러 나갔다 왔다더니, 그 남자는 한참을 널 기다리다 글쎄 그냥 돌아갔댄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분명 선 봤다니까?! 완전 변태 쌩양아치라고 그 자식!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엄마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이 화상아!"
엄마가 내 등짝을 매섭게 걷어 부치며 말했다. 아, 열받아 죽겠네 정말. 내가 뭘 잘못했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르니 한 대 더 걷어 부치는 엄마였다. 대체 왜 내 말은 안 믿어 주는 거야? 엄마 내 엄마 맞아? 한참을 꿍얼꿍얼대니 그제서야 빨래를 걷던 엄마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어디 말이나 해 봐라, 네가 대체 왜 그렇게 억울해하는 거야?
"나한테 엉덩이하고 쇄골이 예쁜 여잘 좋아한대. 그래놓고 1억을 줄까 2억을 줄까 이러면서 허풍을 떨더라니까?"
"뭐?"
"그럼 딱 너 나랑 하룻밤만 같이 하자 이 소리지 뭐가 더 있겠냐구."
엄만 인상을 구기며 계속 해보라고 했다.
"근데 더 웃긴 건, 그사람 청산 그룹 이사야, 이사. 거기다 생긴 것도 딱 순해 보여. 막 강아지같애."
엄마의 인상은 계속해서 구겨졌다.
"디자인과 통틀어서 이사랬나..? 내가 얼마 전에 디자인부서에 면접 보고 왔잖아, 크크... 그러고 보니 합격자 발표일이 내일이네?"
엄만 다급하게 한아름 팔에 들고 있던 빨래를 성큼성큼 다가와 거실에 내려 놓은 뒤 나를 붙잡고 말한다.
"너, 그 사람 이름이 뭐야."
"그 사람 이름...? 아..., 뭐였더라...? 잠깐만, 나 명함 있어."
주머니에 꾸깃꾸깃 아무렇게나 집어 넣어놨던 명함이 생각나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에 잡히는 종이를 주섬주섬 펴 엄마에게 건네주니 엄만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게 소리친다.
"너... 설마 진짜 이 사람이랑 선을 보고 왔단 말야?!"
"응. 청산백화점 옥상 라운지 아냐?"
"미쳤군..., 도경수씨랑 선을 주선해주니까 딴 놈한테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너?"
나는 놀라 주춤거리며 어마어마한 사실에 커진 입을 가렸다.
"그냥... 물 뿌리고... 정강이 차고... 욕 하고..."
이렇게 얘기해보니 일 정말 제대로 크게 치고 왔구나 싶었다. 엄만 내게 미쳤다며 혀를 차며 다시 빨래를 걷으러 발코니로 나간지 오래였고, 난 한참을 소파에 머리를 부여잡고 누워 고뇌에 빠졌다. 이를 어쩐담…, 정말 어쩌지…. 그렇게 한참을 두려움이 머릿속에 가득 증식했다가, 차츰 '어차피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어도 맞았을 놈이었다.' 라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였는데 뭐. 에라 모르겠다. 나는 아직까지도 매고 있던 가방을 벗어 던지며 기지개를 켰다.
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안녕하십니까, 청산 뷰티 채용 합격 통지를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ㅇㅇㅇ씨 맞으신지요?"
"예, 그런데요."
시벌, 안 그래도 취업난때문에 엉덩이나 벅벅 긁으면서 영화보고 있는 이 중요한 시기에 어떤 우라질 년이 또 장난 전화를 쳐 하고 지랄이야.감흥이 없다는 듯 대답하면 금세 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어제 김종인인가 뭔가 이상한 변태 자식과 엮이고 와서는 진이 다 빠져 죽겠구만. 욕이라도 한바탕 해 줄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에서는 내가 믿지 못 할만큼 놀라운 소리가 들린다.
"축하드립니다. 합격 되셨구요,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 부터 하시면 됩니다. 면접 장소였던 청산 백화점 별관 바로 건너인 본사 9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한 마리의 낙타처럼 씹고있던 과자가 고무처럼 느껴지는 신비를 경험했다. 그리고는 집어 들고 있던 과자봉지를 집어 던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채용 합격 전화가 오면 대개 아무도 없는 허공에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볼 수가 있겠는데, 내가 그걸 보며 과장되고 허황되고 무식한 지랄맞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말하자면, 요즘같은 시대에는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게 신이 주신 기회같은 전화가 왔다. 인서울을 들어가도, 별의 별 자격증을 다 따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으니까. 모두가 들어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그 청산 그룹에 내가 붙었단 말이다! 나는 와하하 웃고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방방 뛰었다. 엄마, 내가 호강 시켜 줄 게!
이사님, 우리 연애 할까요?
"반갑습니다! 신입 사원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세차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다들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었고, 내 자리를 안내해주는 호의까지 베풀어 주었다. 사원증이 무엇보다 빛나 보였고, 그 어떠한 것보다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는 사원증에 입을 맞추며 믿기지 않는 이 황홀함을 만끽했고, 잔 심부름을 시켜도 웃는 낯으로 반겼다. 상사들도 친절하고, 동료들도 상냥하고. 이런 좋은 분위기라면 평생 노동을 시켜도 행복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점심시간이 오고, 맛있다고 소문 난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행복하게 배를 채우고, 9층 사무실로 올라오기 전까지.
사원증을 만지작거리며 사무실로 향할 때였다. 모든 벽이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진 회사가 사내연애를 하면 원망스럽겠구나, 싶었는데, 그것말고 또 원망스러울 때가 딱 이 때구나 싶었다. 낯익은 남자 하나가 사무실에서 심각하게 부장과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자연스레 오므라들었다. 침은 바싹바싹 마르고 에어컨이 빵빵한 우리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은 삐질삐질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유리벽 가까이에 가서 남자를 훑기 시작했다. 완벽히 일치했다. 그러니까, 약 일주일 전 내가 물을 붓고, 욕을 하고, 세차게 정강이를 차버렸던 그 남자와.
나는 몸을 완전히 틀어 등을 보이게 했다. 순간적으로 내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남자의 행동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 부근을 닦기 시작했다. 입사 하루만에 이렇게 나는 퇴사가 되는 것인가. 하늘이 꺼지는 기분에 실소가 나왔다. 허허. 어이없는 웃음을 뱉고는 주저 앉았다. 신이시여, 저를 도우시옵소서. 순간이었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인영이 내쪽으로 드리워졌음을 느꼈다. 그 인영이 벌컥 열린 문에서 나오는 사람의 것임을 안 나는 황급히 주저 앉은 채로 몸을 틀어 고개를 숙였다. 눈이 마주쳤다. 젠장, 진작에 화장실로 피신을 했어야 하는 건데. 고작 일주일이라고 잊는 바보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눈물 연기를 준비하며 눈가를 촉촉이 만들었는데, 글쎄 웬 일인가. 정장을 입은 남자가 구둣발 소리를 내며 서류를 훑으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 쪽으로 직행을 하는 듯 했다. 하,시발. 존나 살았다. 안도의 한숨을 쉰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방심하고 일어 서서 가슴을 쓸어 내리며 사무실로 방향을 틀던 내 손목을 확 잡아 끈 것은 금세였다. 눈 깜짝할 새에 그에 옆으로 순식간에 이동 한 나였고, 놀란 탓에 쉬지 못한 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그가 물었다.
"신입 사원?"
놀라기도 전에 남자 향수 향기가 훅 끼친다. 내가 일주일 전 미친 싸이코라며 바락바락 악다구니를 써댔던 그 얼굴의 주인이었으며, 방금 전까지 내 앞을 스치고 지났던, 몇 발자국 이미 멀어져 있던 그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덜덜 사시나무 떨듯 떨며 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기였다. 저 남자를 향한 오기가 아니라, 혹시나 나인지 아닌지 헷갈려 할 수도 있잖아? 하는 그런 '혹시나'에 대한 오기.
"신입 사원이냐고 묻잖습니까, 내가."
"…."
"ㅇㅇㅇ씨."
그가 날 불렀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는 커녕 무서워서 도망치려고만 했던 내 자신이 쪽팔려지는 순간이었다. 일주일 전의 기억이 머리를 탁, 하고 치는 것처럼 지나갔다.
"고개 좀 듭시다."
끝끝내 나임을 알고 있던 그에게 잘릴 것이라는 예감을 끝으로 포기했다는 듯 얼굴을 들어 그를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