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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힘찬."

 

용국이 오랜만에 힘찬을 찾아왔다. 힘찬은 화가 난 듯한 용국의 모습을 보고 어떤 일인지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용국은 다짜고짜 힘찬의 연구실 문을 열어 들어섰고, 그 안에서는 영재가 무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용국은 그런 영재를 발견하자마자 힘찬을 향해 시선을 옮겨 그를 노려보았다. 힘찬은 오히려 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랬잖아. 니가 데려다가 살라고."

 

용국은 그런 힘찬을 무시하고는 그의 책장을 재빨리 뒤져댔다. 힘찬은 그걸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냈지만 용국은 힘찬이 자신을 말리기도 전에 영재의 문서를 발견했다. 힘찬이 전에 용국에게 보여 준 것이 아닌, 자신 혼자만이 몰래 쓰고 있던 것. 용국은 몇 장 되지 않는 페이지들을 하나하나 빠르게 넘겼고, 읽을수록 표정이 굳어갔다. 힘찬은 그런 용국을 보고 낭패감을 느끼면서도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주워담을 순 없다는 생각으로 그 행동을 하도록 냅두었다. 용국은 다 읽자마자 힘찬을 돌아봤다.

 

"……이게 뭐냐?"

 

용국이 힘찬에게 문서를 건내주면서 한 말이었다. 말이 건내주는것이지 사실상 그것을 들고 따진다는게 정확했다. 힘찬은 입을 열지 않았다.

 

"감정억제약물 주사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왜 니 말에 따라야 하냐? 내 환자야."
"……그래, 니 말대로 내가 데려다 간다."
"싫어."
"뭐?"
"이제와서 뭐 어쩌겠다고. 니가 데려가면 쟤가 막 웃냐? 막 울어? 지랄하지 마."

 

사실 힘찬은 감정억제제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어느정도까지는 성공했다고 치지만 그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사람이라는 제한 하에서였다. 매일 주사하면 괜찮겠지 싶었지만 내성이 생겨버려 그 상태에서 멈춰버린 듯 싶었고, 그렇다고 해서 약을 더 독하게 만들어버리면 몸이 상해버릴 것 같은 답잖은 걱정을 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고로 힘찬이 뱉은 말은 용국에게서는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용국은 힘찬의 말에 화가 억제할 수 없을만큼 나 버렸다. 옆에 앉은 영재가 여전히 두 귀가 열린채로 둘의 대화를 듣는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었다.

 

"미친새끼, 니가 원래 그런 줄은 알았지만,"
"애초에 나한테 맡겼던게 잘못이었어."
"네가 먼저 한댔잖아, 개새끼야."
"유영재 듣는다."

 

힘찬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발언에 용국이 멈칫했다. 용국이 먼저 영재를 돌아보았다. 영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용국은 이곳으로 오기 전 준홍에게서 모든 사실들을 들어버렸다. 대현은 모든 것들을 준홍에게 전해주었으므로 준홍은 영재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준홍은 '영재씨가 누구예요' 하는 질문을 별 생각 없이 용국에게 했다. 용국은 준홍에게 어떻게 영재를 알았냐는 질문부터 했다. 준홍이 대현에게서 들었다고 하자 용국은 혼란스러웠다. 대현은 자신을 아예 잊기도 했고 선생님이라는 사실은 가끔 기억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에 어떠한 관계였는지는 전혀 몰랐기에 영재에 대해서도 아예 잊을 줄 알았다.

 

'별 거 아니예요. 정대현 환자가 그러시던데, 그…… 영재가, 말을 못해서, 울고, 팔에 막 꼽고, 아파……? 그 이상은 저도 잘 몰라요.'

 

용국은 대현에게 직접 물었다. 대현은 처음에는 누구냐며 경계했지만 용국의 끝없는 물음에 결국 대답했다. 영재 많이 아파요. 팔에 링거 엄청 많아요. 하는데 용국은 그때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용국은 고맙다는 말을 대현에게 남기고는 병실을 나섰다. 대현은 그가 나가자마자 갑자기 준홍에게 머리가 아픔을 호소했고, 준홍은 그런 대현을 달래주면서 영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용국은 힘찬과 싸우고는 영재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했었다. 힘찬이 자신을 보며 온갖 욕설을 뱉든 말든 협박을 하든 말든 더이상 김힘찬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힘찬이 영재를 그렇게 쉽게 내 줄 리가 단연코 없었다. 힘찬은 끝까지 용국이 넘어가지 않자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은 영재에 대한 보고들을 절대로 알려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리고 그 협박은 용국에게 실로 당연하게 먹힐만한 것이었다. 용국은 영재가 듣지 못하도록 가장 낮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었고, 힘찬은 그런 용국을 보며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용국은 꽉 잡은 영재의 손목을 망연자실하게 놓으면서 그의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 그의 어깨가 그렇게 작아보일 수가 없었다. 힘찬은 그가 나가자마자 연구실의 문을 닫아 잠구어 버렸다.

용국은 제 연구실로 돌아가던 도중 대현의 병실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준홍이 그와 열심히 대화를 나누려는 모습을 보니 웃을 기분이 아님에도 웃음이 절로 났다. 내 살다 최 조교가 그렇게 열심인거 처음이네. 용국은 스치듯 준홍에게 그 말을 뱉었고, 정확하게 용국의 말을 다 들은 준홍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문 밖으로 돌아보니 이미 용국은 제 연구실로 들어간지 오래였다. 대현은 무슨 일이냐고 준홍에게 물었고 준홍은 입을 꾹 닫고 아무말도 못했다. 그 와중에 용국은 이미 자신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형, 지금 뭐라고 쓴 거예요.'

 

용국은 문득 그 때가 떠올랐다. 어쩌면 영재보다도 더 안타까운건 대현일 것이라는 걸, 용국은 몸소 실감했다. 영재가 사고로 인해 부분기억상실과 지능저하를 보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대현의 뇌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확신하건데, 대현은 분명 제 병을 알았을 것이다. 영재원 학생중 신경학과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가, 자신의 증세를 보고 그런 것 하나 예측 못한다는것은 말도 안 된다고, 용국은 그렇게 생각했다. 영재는 한순간에 잃어버려 그 이상으로 진전될 일도 저하될 일도 없을것이었지만 대현은 점점 잃을 것이다. 기억도, 기능도, 제 능력도, 제 머리도, 그리고 머지않아 어쩌면 목숨까지도.

 

'뭐가.'
'malignant glioma(악성 뇌교종).'

 

대현의 MRI 검사 결과를 받고 나서 꽤나 고민을 많이했다. 종양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할 말을 잃은것도 사실이다. 대현에게 전해줄 생각을 하니 기운이 빠졌다. 대현은 용국의 표정이 좋지 않은것을 보고 검사결과를 조심스레 물었으나, 용국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용국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대현의 증세를 물은 적 있음에도 계속 물었고, 무언가를 자꾸 메모해갔다. 영어로 흘러적었음에도 대현은 그것을 다 몰래 보다가 결국 결정적인 단어를 발견해버렸다.

 

'악성 뇌교종이죠. 교모세포종이야?'
'대현아.'
'말해봐요. 영어로 적으면 몰라요 내가? 교모세포종이냐고.'

 

대현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 다 맞았다. 양성도 아니고 악성, 뇌교종 중에서도 교모세포종. 용국 역시도 영재원 병원에서 몸을 담으면서 이 병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끝까지 병을 이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실상 이길 수 없는 병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대현은 대답이 없는 용국의 모습에 허황하게 웃으며 '차라리 교모세포종이라고 적어요.' 라는 용국에게 큰 못이 되는 말을 했다. 용국은 굳이 고치지 않았다. 대현과 용국 사이에서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 사이에서 많은 감정 또한 오갔다. 그 사이에서 대현의 소리없는 부정이 또한 용국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르는 법이었다. 그 적막을 먼저 깬 사람은 용국이었다. 대현이 기대한 부정이 아닌, 그저 의사로서의 발언.

 

'……일단 CCRT(교모세포종 표준치료)부터 시행할거고,'
'형.'
'……말해봐.'
'치료 안 받으면 3개월 안에 죽어, 받아도 길게는 15개월 안에 죽어.'

 

대현이 그 말을 할 때에는 이미 멍하게 있었고, 그 말은 기억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과도 같았다. 용국은 그런 대현을 보자 할말이 없어졌다. 사실이잖아. 사실이니까, 용국은 더더욱 그랬다. 여전히 멍한 대현은 외운 말을 계속 말하듯 더 이어갔다.

 

'좋은 결과를 예상한대도 악성이야. 난 이제 형 잊을지도 모르고.'
'대현아.'
'영재한테 미안하다는 사과 아직 못한거 형 알아요?'
'…….'
'영재가 나 기억할 수 있어요? 아니면 나는? 난 영재 잊어버리면 어떡해? 나 적어도 사과는 해야하는 거 아냐? 죽어버리면. 나 죽으면 사과는.'
'……15개월은 평균적인거야. 네 경우를 거기다 대입하지 마.'
'뭐든 평균이하였어, 난. 집안도, 친구도, 가족도, 형편도. 유일하게 가진게 머리고 그것때문에 여기 왔어. ……새 인생 살 줄 알았어, 나는.'
'제발, 정대현.'
'너무 웃기지 않아요? 이제 모든 걸 평균이하로 만들 작정인가봐.'

 

결국 대현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고 용국은 더이상 그에게 위로의 하얀 거짓말조차 해주지 못했다. 눈물이 기어코 흘러내림에도 용국은 닦아주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원했던 말이, 행동이, 너는 살아남을거야, 라는 말이라도. 눈물이라도 위로의 마음으로 닦아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대현은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계속 닦아냈고, 용국의 손을 덜덜 떨리는 제 손으로 잡으며 말을 더 뱉어냈다.

 

'제발 살려주세요, 형, 나, 제발요……, 나, 나 아직……'

 

용국은 그 어떤 행동도 더 하지 않았다. 대현은 상관치 않는다는 것인지, 그런 것은 생각조차 못한 것인지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나…… 아직, 공부할 것도 남았어요, 사과할 것도 남았고…… 고백할 것도 남았는데, 나…….'

 

대현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오열했다. 하지만 용국은 그를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저 등을 토닥이며 자신 역시 눈물을 잠시 훔칠 뿐이었다. 용국은 아직까지도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것이다. 그 고백이 자신을 향한 것이란것도 모를 것이고, 그 사과가 영재 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심지어 그가 왜 신경학과인지도 모를 것이다. 대현은 원망의 소리도 하지 못했다. 머리가 아팠다. 망가진 속도 참을 수 없을만큼 쓰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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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저 빵친인데여...ㅠㅠㅠㅠ잠깐 울고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어허ㅜ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대현이가 이렇게 쥬거버리면...나도 슬퍼쥬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하 자까님..스릉스릉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구름이에요ㅠㅜㅠㅠㅠㅠ엉엉울거야나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4
양말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우어엉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5
문바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6
아아 우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쩌노ㅠㅠㅠㅠ아아ㅠㅠㅠ
11년 전
독자7
미더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헐 설마..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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