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가온해
뜨거운 하얀색의 조명이 성종을 따갑게 비췄다. 성종은 유리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들어가 얌전히 놓여있는 구리색의 상자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성종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소중한 물건. 성종은 아쉬운듯 몇번 더 상자를 쓰다듬더니 천천히 손끝부터 상자에서 떼어냈다. 한쪽 손에 상자와 똑같은 색의 고풍스러운 키를 꾹 손에 쥔 성종이 망설임없이 몇발자국 뒤로 물러나와 유리문을 밀어닫자 삐빅ㅡ하는 단조로운 기계음이 방 안을 작게 울렸고, 성종은 더는 볼 일 없다는 듯 뚜벅뚜벅, 거친 발자국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흰색 공간을 벗어났다.
"…괜찮은거야?"
"이거요."
어두운 밖에 서있던 동우가 성종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성종은 그런 동우의 물음에 답하지않고 불쑥 꾹 쥔 주먹을 내밀었다. 동우를 향해 내밀어진 주먹, 성종이 천천히 힘을 풀자 성종의 얇은 손에 놓여있는 구리빛 키가 동우의 눈에 커다랗게 박혀들어왔다.
"이걸 왜 나한테 줘. 니꺼잖아."
동우가 성종의 손을 다시 둥그렇게 말아주며 살짝 미소지었다. 넘볼수없다는걸 봤다는듯한 동우의 태도에 성종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동우의 자켓 주머니에 키를 쑥 집어넣었다. 동우가 계속되는 성종의 태도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키를 꺼내들었다. 동우는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키를 몇 번 만지작대다가 다시 성종을 향해 내밀었다. 가져가, 이거.
"아니요, 이젠 그거 제꺼 아니에요."
제 2 키퍼, 장동우님. '저것'을 부탁드려요. 성종이 작게 내뱉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빠르게 반대편을 향해 뛰어갔다. 성종이 내뱉은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멍하니 성종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동우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 작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축제가, 체이서의 추격이ㅡ 시작되었다.
*
"…오셨네요?"
"응. 오랜만이지?"
우현이 성종을 향해 밝게 미소지었다. 성종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우현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짓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듯한 행색에 어깨를 으쓱해보인 우현이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평소보다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규찾아? 성규 있어봤자 키 잡지도 못할텐데."
"성규씨를 찾긴 하지만, 키는 저한테 없거든요."
성종이 우현의 말에 따박따박 대답했다. 우현은 그런 성종의 대답에 잠깐 표정을 굳혔다가 다시 밝게 웃으며 자켓 주머니 속에서 검은색의 권총을 꺼내들고 철컥, 하는 차가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성종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끄러운거 싫지? 우현의 말에 느릿하게 미소지은 성종이 우현을 향해 똑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공중에서 묵직하게 얽혔고, 곧 성종의 심장에 턱 닿은 권총에 성종과 우현이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우현이 빠르게 총을 성종의 가슴에서 떼내더니 살짝 방향을 틀어 방아쇠를 세게 당겼다. 성종의 심장을 제대로 관통하지도, 폐를 관통하지도 않고 어중간하게 박혀버린 총알. 성종이 그 충격에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자 우현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시 총을 들고 성종의 복부에 한 발을 박아넣었고, 곧 성종이 뜨뜻한 피를 툭, 툭 바닥에 흘리며 힘없이 바닥에 꺾어졌다. 그런 성종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현이 빙그레 웃으며 총을 주머니 속에 쑥 집어넣고 발걸음을 돌렸다.
"축제는 매년마다 돌아와. 안그래?"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은 달이, 하늘에서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
동우가 성열의 뒤편에 서서 커다란 화면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어디가 어딘지, 똑같이 하얗기만 한 영상에 짜증이 난 듯 푸른빛이 도는 자신의 머리를 살짝 쥐어뜯더니 이성열, 외부 진입로. 하고 빠르게 말했다. 성열은 그런 동우가 가소롭다는 듯 화면을 보지도 않고 읽고있던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C17, C29, D20. 여기가 공개된 통로라고 내가 몇번을 말해?"
"씁. 난 그런 능력이 없다고. 그전에 그 영상이 뭔데?"
"아ㅡ, 귀찮게 진짜."
성열이 책을 소리나게 덮더니 키보드를 몇번 두드렸다. 그러자 크게 확대되어 작은 CCTV 화면 위로 겹쳐지는 세 개의 영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동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열의 커다란 키보드에서 한 키를 꾹 눌렀다. 잠시후 삑, 삑, 삑.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기지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고, 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굵은 철문이 느리게 닫히기 시작했다.
"…차단?"
"체이서가 일을 벌이기 시작했거든."
"아. 근데 그러면 이거 차단해도 소용 없을텐데?"
얘네는 파인더 있잖아. 성열이 덮어놨던 책을 다시 펴며 동우를 향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동우는 그 말에 굳어버린 표정으로 임시방편이라 짧게 말한 후에 굵은 워커굽 소리를 내며 성열에게서 떨어져나왔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나가는 동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열이 혀를 쯧, 하고 찬 후에 다시 책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어, 형."
"……잊을거야. 아니, 잊었어."
성열이 작게 내뱉은 말에 동우가 씁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목소리에 성열이 자신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읽고있던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우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동우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쪽으로 돌려 눈을 마주한 성열이 말없이 동우를 바라보다가, 언제나 짓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동우를 문 밖으로 밀어냈다. 다녀와, 형. 이라 말하는 성열의 밝은 목소리가 동우의 처진 기분을 낫게 해주는듯했다.
그래서 밖으로 뺐어요....
그리고 암호닉 맞춰주신 베이스님, 감귤님.
집착돋돋. 놓치지않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