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은 나 교생실습 하는 동안 있었던 일 얘기 해준다고 했었지?
사실 교생 실습 기간 동안 별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중간에 축제가 열리면서 일이 하나 터졌지.
일단 나랑 경수는 1학년 3반으로 같은 반에 배정을 받았었어. 근데 어째 첫날부터 쭉 반 분위기가 되게 어수선하고 정신 없는거야.
학교 분위기가 원래 이런가 싶어서 지망을 잘못 썼다고 후회하고있는데 며칠 있다가 학생들이 곧 축제라고 말해주더라고.
그 때부턴 어수선한 분위기도 이해가 되면서 어느새 나도 같이 들떠 애들 연습도 구경하고 그랬어.
대학 축제를 많이 봐온 사람으로서 분위기 띄우는 법이나 신경 써줘야할 부분들도 나름 자처해 알려주면서
같이 축제 분위기에 물들어가고 있을 때 쯤? 어느날 갑자기 경수가
"애들이 나보고 축제에서 노래 부르라는데"
이러는거야.
콩깍지가 씌어져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경수가 노래를 되게 잘 부르거든?
웬만한 아이돌 보컬들 뺨을 후려갈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정작 나한테는 불러준 적이 한번도 없다는게 함정이지만 그냥 옆에서 들어본 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학년 엠티에서도 그렇게 노래 부르기 싫다고 빼던 놈이 축제 무대에서 노래라니.
마치 나만 허락하면 흔쾌히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겠다는 듯이 말하니까 당황스러운거야.
솔직히 고딩들 두고 쪼잔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찬성하고 싶지도 않았고, 응원해주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한다고?"
"아마도."
"하지말지?"
그래서 속으로 불만이 되게 많았지.
내가 노래 한번 불러달라고 그러면 싫다고 여태껏 한두소절 불러준게 다면서, 이제와 애들이 불러달라니까 흔쾌히 허락한다는게
내 입장에선 얼마나 어이없고 짜증이 나는지 이해가 되니?
물론 부탁한 여학생들이 미운건 절대 아니지만, 그 상황 자체에 화가 나더라고.
남자친구의 제대로 된 노래를 2년 만에 처음으로, 그것도 내가 아닌 타인의 부탁으로 고딩 축제에서 듣는다니.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어서 좀 아니꼽다는 식으로 얘기를 계속 했더니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하지말라면 하지 마, 왜 굳이 하고싶지도 않은걸 하려고 해? 너가 언제 노래 불러달라는 부탁에 호응한 적 있어?"
"왜 또 갑자기 짜증이야."
"그럼 내가 짜증이 안 나? 너 내가 노래 불러달라고 할 땐 뭐라고 했는데?"
"싫다고 했지."
"....."
"그래서 내가 난생처음 보는 애들한테도 싫다고 거절해야 되는거야? 그럴까?"
"....."
뭐가 불만이냐는 도경수의 짜증을 시작으로 또 한바탕 싸웠어.
점심시간 학교 뒤편 주차장에서 둘이 신명나게 싸우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네. 난 진짜 이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
도경수 말에도 틀린 말은 없는 것 같았는데 진짜 서운한걸 어쩌냔 말이야.
정말로 짜증나보이는 경수 표정에 더이상 반대할 힘도 없었어. 도경수 고집이 워낙 똥고집이고, 한다면 하는 개새끼라.
그냥 많이 서운한 마음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만 벅벅 닦으면서 교실로 혼자 올라갔지.
그뒤로 한 며칠 동안 말 한마디 안섞었던 것 같아.
나랑 경수가 사귄다는건 같이 실습 온 과애들 밖에 몰라서, 걔네들 앞에서는 분위기가 특히 더 살벌했지.
도경수가 결국은 노래 부르기를 무르지 않았다는 얘기를 애들한테 들었을 땐 하다하다 축제 깽판녀가 되어볼까 싶기도 했고ㅋㅋㅋㅋㅋㅋ
도대체 나랑 싸우면서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되면서도 적응이 안되는거야.
"쌤, 여자친구 있으세..."
"있어, 2년 넘게 만난."
"아....."
매일 같은 교실에서 지내니까 항상 들려오는 도경수 철벽도 마냥 이쁘지만은 않고, 그 때 도경수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
원래 수업이 끝나면 같이 하교 했는데 그 때는 한창 연습한다고 나를 먼저 보내질 않나.
밥도 항상 같이 먹다가 다른 애들이랑 먹으라고 문자를 보내질 않나.
교생 실습이고 뭐고 항상 도경수랑 같이 다니는 여자애들이 점점 미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나이 먹고 하다하다 고딩들한테까지 이런 감정을 느껴야하나 한심하기도 했지.
심지어 어느 날은 웬일로 여자애들이 나한테 우르르 몰려오길래 드디어 나한테 관심을 주나 싶었다?
난 항상 남학생들 하고만 놀다가 여학생들이 다가오니까 귀여워서 막 살갑게 웃어주고 대답하는데
"경수 쌤 진짜 여자친구 있어요?"
"이뻐요?"
"혹시 CC에요? 선생님이랑도 친해요?"
"....."
여자 애들의 관심 같은건 역시 오로지 경수 뿐이더라.
새끼가 그 와중에 또 철벽 치면서 자기 애인있다는걸 말해버려서는, 애꿎은 나만 애 먹었어.
선생님들 눈치 보여서 사귀는 사이라는건 말하지 말자고 선 긋고 나온 실습이라 차마 내가 그 애인이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대충 이쁘다고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설명해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진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도경수 여친이 나라고 말하고 싶은걸 하루에 열댓번씩은 참았을거야.
사람 좋다고 물어보는 애들한테 뭐라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경수랑은 며칠 째 대화를 안하고 있고,
참다못한 내가 결국 축제 이틀 전에 도경수 찾아가서 먼저 말을 걸었어.
"무슨 곡 부르는데."
아직 다 풀리지도 않은 화를 억누르고 애써 침착하고 아무렇지 않게 물어봤어.
도경수가 기어코 노래를 부른다니, 모레가 축제인 마당에 뜯어말릴 수도 없으니까 그냥 자포자기한 상태로 곡명이라도 들으러 찾아갔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부르던 노래를 뚝 끊은 도경수는
"축제 때 들어."
"....."
이러고 말더라.
솔직히 거기서 구경하던 애들 없었으면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 온갖 현욕들 다 튀어나왔을걸
사람이 마음 써서 먼저 말도 걸어주고 먼저 사과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면 호응이 있어야지, 이건 뭐, 꺼지라는 듯이 그러니까 열이 더 받는거야.
노래를 잘 부르면 얼마나 잘 부른다고 유난이야,
싶지만 존나 잘부름, 짜증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수없이 얼마나 잘하나보자, 혼자 속으로 참을 인을 새겨가며 쓸쓸하게 되돌아갔지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런 자존심 상하는 일들로 더욱 기다려지고 기다려지던 축제 날이 됐어.
오전 시간에는 솔직히 대학 축제하다가 애들 축제 즐기려니까 너무 지루해서 교무실 에어컨 바람만 쐬다가
오후 시간 때, 학교 근처 큰 교회에서 무대 서는 애들 공연보러 교사석에 자리잡고 앉았어.
도경수는 또 연습해야 된다고 여자애들한테 끌려간지 오래고, 다른 과 애들이랑 앉아서 내심 도경수만 기다렸지.
"안본다더니, 남친 노래 부르는걸 보고싶긴 한가봐?"
"나한테는 불러준 적이 없어서 어떻게 부르는지 꼴이라도 봐야 쓰겠다."
나랑 도경수 싸움이 익숙한 동기들이 자꾸 나를 약 올리는데 차마 안보고 싶다는 말은 못하고 마냥 기다렸어.
피아노 연주, 합창단, 댄스팀, 마술... 은근 알차고 재밌는 무대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다가
"아, 특별 무대인가요? 교생 선생님이 축제 무대에 서는건 저도 처음입니다. 너무나도 기대되네요."
학교 전교 회장의 멘트로써 경수가 나온다는걸 알고는 자세를 고쳐앉았어.
과 애들 밖에 모르지만 나름 저기서 목 풀고있는 쟤가 내 남친인데, 나중에 잘 불렀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줘야겠다 싶어서
백번 양보했다 치고 경청할 준비로 각 잡아 앉아서 경수를 쳐다봤다?
근데 여자애들 비명에, 남자애들 환호에, 정신 없는 분위기 속에 어째 도경수 눈이 나만 졸졸 쫓는거야.
눈치 빠른 나는 그 때 뭔갈 알아챘지.
쓸데없이 예민하고 필요 이상으로 눈치가 빨라서 도경수가 마이크로 소리를 내기 전부터 "아" 하고 웃음을 터뜨렸어.
뭔가 듣기 전부터 오글 거리는 것 같고, 소리를 듣기전부터 민망한 것 같고.
눈에 잔뜩 주던 힘을 풀고 경수를 빤히 올려다봤더니 아주 작정했는지 씨익 웃더라.
그리고 이내 들리는 반주에는 익숙하게 리듬을 타더니 곧 마이크를 입 쪽으로 갖다대면서
"손을 잡고 싶은데 안아주고 싶은데 왜 내가 조심스럽지 왜 내가 조심스럽지
걷다가 닿는 어깨에 내 맘이 깊게 설레네, 별것도 아닌 스킨십에 왜 내가 설레오는지.
알죠, 당신의 웃음 앞에선 나도 순수해지네요, 이런 애틋한 감정이 나는 너무나 좋아요.
당신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귀가 떨려오네요.
정말 예쁜 여잔 당신 같은 여자, 가만히 있는데 보고 싶은 사람. 그대는 알겠죠.
툭툭 내뱉는 말에 내 사랑이 있어.
제발 가지 마요, 제발 가지 마요."
노래를 부르는데 그걸 들으면서 그동안의 마음이 눈 녹 듯 사라지는거 있잖아.
듣기는 수백명이 들어도, 부르기는 한명을 위한 부름 같았어.
너무 어둡지도 않은 템포의 노래가 꼭 경수의 음색에 맞춰져 작곡된 것 마냥 너무 듣기가 좋은거야.
도경수의 얼굴이 두개의 큰 스크린으로 비춰지니까 그제서야 걔 시선이 어느 한곳에만 머물러 있다는게 보여지고,
조금씩 따라부르는 애들도 생기면서 분위기가 따스해지는 기분? 단독으로 노래 불러주는 것보다 훨씬 좋으면 좋았지 절대 같거나 덜하진 않았어.
노래가 끝난 뒤에는 뭔가를 다 눈치챈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박수 쳐주고 경수는 꾸벅하고 무대에서 내려갔지.
혼자 얼마나 용기 냈을까, 낯도 많이 가리는데 내 응원도 없이 진짜 애 썼겠다는 걱정부터 들었어.
무대 조명이 어두워지고 다음 무대 준비가 한창일 때 얼른 일어나서 무대 뒤편으로 달려가 도경수를 찾았어.
진짜 떨렸는지 땀을 한바가지 쏟으면서 꽁꽁 잠가놨던 단추를 하나씩 푸는 경수가 보이자마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야."
"고마워."
달려가 안겨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치 빠른 내가 그저 코 앞의 짜증에만 급급해서 왜 그랬는지 그건 파악을 못했던거야, 그래서 감동도 더 한것 같고.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난 돈을 퍼부은 그 어떤 이벤트보다 감동적이고 좋았어.
덕분에 후에 교실에서 맨날 도경수 얘기에만 엮여서 정신 없었지만
나름 교생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내 수업 만큼은 준비한 대로 잘 한 것 같았고, 선생님들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그러시더라고.
4주라는 실습 기간이 너무 짧고 아쉬워서 결국엔 내가 내 번호는 물론, 경수 번호까지 뿌리고 왔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가끔 초록여고 애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경수를 초대한 다음에 시 한구절만 읽어달라고 그러면
경수가 진짜 하다못해 딱 한 구절 대충 읽어서 보이스톡 보내준다는 썰이 있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날 이후로 경수의 노래 따위 다시는 더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 축제에서 들은 노래로 1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듯 하다.
경수가 혹시라도 노래를 또 불러주는 날이 온다면 내 기꺼이 다른 썰을 쓰다 말고라도 알려줄게.
일단 다음 썰까지 빠이염!
곧 올거야~
안녕하세요!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건 아닌데 왜 연재 주기가 3일로 정해지는 것 같죠?
하....잠을 줄여가며 써보지만 오후부터 쓰기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오전 12시, 1시가 되어있고....
이틀 주기로 올리려고 들떠있던 제 마음은 이미 사흘째로 넘어가있는 시간에 좌절하고....
오늘도 다른 썰 쓰다말고, 전 글에서 교생 얘기 꺼낸 제 입방정이 생각나서 얼른 지우고 다시 썼네요ㅋㅋㅋㅋㅋㅋ바보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전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새로운 감동, new 감동... 감덩...
댓글 요정, 추천 요정 다들 감사해요♡
다음 글은 진짜 꼭 이틀안에 들고와보고 싶습니다만? 노력해보겠습니다만?
곧 또 봬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