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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 왔어! 많이 기다렸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경수 연락은 싸운 그 날 바로 왔었어, 집 앞이니까 내려오라는 문자가 밤 늦게 오더라고.
문자 받고 나갈까 말까 순간 고민했지, 화도 아직 덜 풀렸고, 무엇보다 난 경수 화난 이유를 모르잖아?
괜히 나갔다가 또 싸우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어쨌든 경수도 나름 연락한 이유가 있을테고, 더 질질 끌면 나만 마음고생 할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켰어.
나 때문에 맥주 원샷만 열댓번 한 모습은 미안하기도 해서 숙취해소 음료도 한 병 꺼내 집 앞으로 나왔는데
"김진성 뭐하는 새끼야?"
경수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욕을 하는거야.
김진성이라면 전 글에서 말한 복학생 선배 이름인데, 경수가 진짜 싫어해. 좋아하는게 이상하지만 아무튼 여태껏 욕을 한적은 없었거든?
아직 인사는 무슨, 난 입 한번 떼지도 못했는데 대뜸 보자마자 욕을 하니까 당황스럽잖아.
진성 오빠를 싫어하는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갑자기 이러는 이유도 모르고 급 맞장구를 쳐주기는 뭐해서 눈만 꿈뻑이는데
"아닌거 안다는 이유로 넘어가는 것도 지친다고 전해라."
"....."
"내가 왜 이런 문자들을 받아야 되는건지, 너도 설명 못하잖아."
경수가 또 갑자기 내 눈 앞에 자기 휴대전화 화면을 갖다대는거야, 보라고.
진짜 화나보이는 경수 때문에 여태껏 찍소리 한번 못내보고 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더라.
경수의 답장은 단 한번도 없이 김진성 수신 문자들만 잔뜩 찍혀있는거야.
길거리에서 내가 웬 남자랑 팔짱끼고 걸어가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말부터 몇시간 전에 온 문자로는 내가 왕게임에서 걸리는 벌칙 다 하고 있다는 내용 정도?
경수 얘기까지 종합해보면 김진성 얘가 틈틈히, 주기적으로 나에 대한 오해를 사게하려고 문자를 보내온거야, 그동안.
술집에서 도경수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사실 거절을 당했었대.
경수가 피곤하다고, 자기가 직접 나한테 전화 걸테니까 걱정말라고 그렇게 말했었는데 김진성은 또 도경수 빡칠만한 문자를 보낸거지.
경수는 아닌거 뻔히 알면서도 내가 술을 많이 마시면 인사불성 된다는걸 아니까 뛰어온거고.
문자들을 좌르륵 보니까 벌써 몇달 전부터 틈틈히 수신되어 있는데 얘는 그동안 이런 문자 받으면서 어떻게 참았나 싶더라고, 진짜.
"왜 나한테 말 안했어."
"너한테 말할게 뭐있어, 다 거짓말인데."
"......"
"가뜩이나 혼자 술 마시는 것도 걱정되는데, 그 새끼랑 같이 있다니까 화가 나서 그랬어. 속상했다면 미안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경수를 안았어. 키 차이 때문에 금세 내가 안긴 꼴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아무리 거짓말인걸 뻔히 알아도 그런 문자를 수시로 받으면 괜한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미안하고 고맙고, 무작정 화만 낸 내가 미친년이고.
당장이라도 김진성 이 새끼를 족쳐버리고 싶은데 어쩔 도리도 없잖아.
3년이면 꽤 오래 되기도 했고, 애인도 한번 생겼었던 적이 있어서 마음 정리된 줄 알았더니, 진짜 개씨발놈.
진심으로 뚜껑이 열릴 것 같이 화가 나서 김진성한테 욕 한바가지 해주겠다고 핸드폰을 꺼내들었어, 그랬더니 또 경수가
"하지 마."
"......"
하지말라고 내 핸드폰을 가져가버리는거야. 이런건 싹부터 잘라버려야 하는거고, 아무리 선배라지만 아닌건 아닌거잖아.
좋게 말할테니까 핸드폰 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달라는 핸드폰은 안주고 본인 손을 올려놓더라?
그리고 그 손을 꼭 잡고 어디론가 날 데려가는데 땀 찬다고 손 잡기도 싫어하는 도경수랑 여름에 손 잡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아서 일단은 침묵ㅋㅋㅋㅋㅋㅋㅋ
그냥 경수 손에 이끌려서 경수만 졸졸 쫓아서 한 5분 걸었나?
어쩐지 익숙한 길이다 싶었더니 아까 과 애들이랑 술 마시던 호프집에 데려온거야.
안그래도 술 잔뜩 먹고 속 쓰릴까봐 내가 가져온 숙취해소 음료도 아직 있는데 웬 또 술인가 싶어서
"여긴 왜? 애들 아직 안갔을텐데."
라고 문 앞에서 우뚝 멈췄더니
"애들이랑 마셔야지."
이러면서 내 손을 잡고 호프집으로 들어서는거야.
딸랑 소리가 나면서 도경수가 "우리 왔어" 하니까 애들 시선이 다 집중이 되는데 민망하게 환호성도 터져나오고ㅋㅋㅋㅋㅋ
쫓아 나가더니 뭐하고 왔냐고, 술 마신 애들이 짓궂은 소리를 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4학년 테이블에 우리를 앉히고 딱 마주친거지.
우리 바로 앞이 김진성이더라고. 와, 정말 얼굴보자마자 맥주를 쏟아붓고 싶었는데 간신히 참았다 진짜
본인도 뭔가 찔리기는 하는지 우리를 제대로 못보는 선배를 애써 무시하면서 분위기 띄우는 애들 쪽을 쳐다보는데
"너네 나가고 끊긴 흐름 내가 겨우 살렸으니까, 또 키스하기 싫다고 나갈꺼면 지금 빠져."
"해."
"니미 진짜?"
"미친."
"쟤네 걸리면 술 맛 존나 제대로 나겠네."
"솔로 울리러 왔나봄?"
아까 얘기로 장난스럽게 도발하는 동기한테 쿨하게 할거라고 대답하는 도경수때문에 나도 당황 애들도 당황 에블바디 당황ㅋㅋㅋ
안걸리면 그만이지만 어쨌든 한번 걸리면 진짜 키스를 해야될 기세 있잖아, 빼도박도 못하는...
자기도 애인 부르겠다는 애들부터 애인 없어서 우는 애들까지 순식간에 시끄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또 왕게임은 시작됐어.
"3번 7번 키스"
"1번 8번 키스"
"7번 9번 키스"
눈에 불을 켜고 나랑 도경수만 걸리기를 바라면서 키스란 키스는 다 시키는 애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심장 떨렸는지 알아?
내 번호도 많이 걸리고, 도경수 번호도 많이 걸렸는데 둘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는 없어서 벌주만 엄청 마시고....하....
키스가 뭐라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은 생각으로 내 나무젓가락을 뽑고 확인하면서 경수 번호를 확인했어.
1번, 6번. 그러려니 왕이 된 친구 얼굴을 보고있는데 갑자기 내 옆에 있던 동기가
"ΟΟ이 1번이네?"
내 번호를 흘리는거야.
그러는게 어딨냐고 나무젓가락으로 콕콕 찌르면서 니가 대신 벌주 마시라고 원망하고 있는데 또 이번에는 경수가
"나 6번인데."
이러는거야. 아주 떡밥을 던지시네요ㅎ 낚시꾼인줄ㅎ
경수가 남자네 어쩌네, 왕의 의견 따위 없이 1번 6번 키스하라는 큰 목소리가 오고가고 왠지 떨리는게 느껴져서 맥주를 한 잔 들이켰어.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진짜 키스를 해? 라고 물어보려다가 아까 남남키스한 동기들 보고 입을 다물었지.
그래, 너네도 했는데 우리가 안하는게 말이 되니.
어쩔 수 없이 그럼 조금의 희망만을 믿고 왕이 된 친구를 간절하게 쳐다보면
"1번이 6번에게 다가가 키스를 합니다."
내 친구 참 가차없더라.
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애들이 키스하라고 일제히 외치고 어느새 후배들 몇명도 우리 테이블로 와서 앉아있는데 진짜 너무 민망한거야, 너무.
누구 앞에서 입을 맞춰본 적이라곤 5살 유치원 생일파티 때 남자친구랑 뽀뽀한거 정도?
아까는 분명 이거 안해줬다고 도경수한테 빡쳤었는데 막상 하라고 멍석을 깔아주니까 그냥 벌주로 넘기고 싶고.
머리에 손을 받치고 왠지 흐뭇하게 날 쳐다보는 도경수는 진짜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거야.
아, 진짜 지금 생각해도 너무 당혹스럽고 민망한데 그 때에는 오죽했겠어?
머리만 긁적이면서 애들 눈치를 봤지. 도저히 용기가 안나서 애들 큰소리에 어떡하나 고민만 하고 있는데
"......"
"......"
"와 도경수 남자네."
"대박."
"야 빨리 사진 찍어 ,뭐해."
"헐"
결국 경수가 먼저 키스를 해줬어ㅠㅠ
남자 애들 환호성 소리 들리고, 여후배들 탄식 소리 들리고, 김진성은 안보인지 오래고. 정신이 진짜 혼미했어.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된 기억은 잘 안나는데 아무튼 엄청 진했던건 기억이 난다,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그렇게 한참을 붙어있다가 부끄러워 미치기 직전에 내가 먼저 떨어졌어. CC의 진정한 비애란 이런 것인가 싶었지.
그리고 내가 입술 떼자마자 술기운인지 뭔지 풀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경수때문에 더 민망해서 뻥튀기 한 20개 정도 입 속에 넣어줬어.
찍힌 사진은 이미 내 핸드폰에 저장된지 오래고, 페이스북에 올린다는 개새끼들 뜯어말리느라 진짜 고생했지.
무엇보다 제목때문에 알았겠지만 경수가 과대표거든, 국어교육과. 게다가 잘생긴 철벽남으로 유명해서 웬만한 소문은 과에 잘 돌고 그러는데
오늘은 주말이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모레 학교 나가면 돌아가며 놀림 받을게 벌써부터 징하다....
아무튼 오늘 썰에서는 철벽 경수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글이었네
벌써부터 이런 희귀템을 풀다니, 어마무시한 도경수 철벽에 곧 놀라게 될거다.
내일 쯤? 나랑 경수 교생실습할 때 있었던 일 풀러올게ㅋㅋㅋㅋ
그때까지 또 안뇽!
오늘도 안녕들하십니까!
저 이전 글의 댓글들 정말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며 얼마나 감동했는지 다들 아세요?
정말 오랜만에, 정말 염치없이 돌아온 작가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들 부터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는 분들까지 모두모두 감사해서 잊을 수가 없네요.
잊지않고 있던 무뚝뚝썰 암호닉 분들도 보여서 너무 반갑고ㅠㅠㅠㅠㅠ 이런 맛에 글 쓰는거죠, 그쵸?ㅠㅠㅠㅠㅠ
그렇다면 이번 썰도 암호닉을 빼놓을 수 없죠.
[암호닉]
한분 한분 모두 기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
그리고 다음 글부터는 분량 좀 늘려오겠어요, 제가 봐도 너무 짧네요...ㅠㅠ
곧 또 오겠습니당, 뿌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