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병원 신세를 졌을 때는 여태 딱 2번인가 그래.
과로에다 감기까지 겹쳐서 잠깐 입원했을 때랑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솔직히 난 평소 내가 진짜 건강한 사람이라고 자부에 쩔어 사는데, 이 입원 경력 때문에 도경수 앞에서는 말도 못꺼낸다니까.
일단 난 말했듯이 작년 초 쯤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할 수 있는 알바란 알바는 다 했었어,
보다못한 경수가 작작 좀 하라며 화를 내고 혼을 내고 그러다 말싸움으로 번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편의점, 카페, 주유소, 과외 알바까지 닥치는 대로 해댔었으니, 가만히 있을리가 없는 경수하고 싸우기를 밥 먹듯이 했지.
심지어 주유소 알바는 경수가 걱정할까봐 숨기기까지 했었거든,
카페 알바 하는 것도 숨기다가 경수한테 걸려 엄청 혼났던지라 주유소 만큼은 악착같이 숨겼었는데
결국 과외하다가 과로로 쓰러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fail...
"......"
"......경수야."
내가 과외 중에 쓰러졌다는건 지금도 기억이 안나. 어쩌다 병원까지 와 병실에 누워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눈을 떴을 땐 아무 표정이 없는 경수가 옆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어.
말그대로 무표정, 아무것도 없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경수를 보니 하려던 말들이 모두 쏙 들어갔지.
그동안 계속 말리던 경수한테 괜찮다고, 괜찮다고. 혼자 끝까지 고집부리더니 결국 이렇게 쓰러져 누워있는게 너무 미안한거야.
경수가 언제부터인지 잡고있던 내 손을 놓으면 그제서야 경수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감이 오더라고.
변명거리도 없었어. 그냥 백번 생각해도 내 잘못이었어.
유구무언, 이럴 떄 쓰는 말이더라. 할 말이 있어야 입이라도 열텐데, 내 입장에선 입 다무는게 최선 같았거든.
그러다가 침묵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몸을 꿈틀거렸어.
화라도 받아줄 생각에 상체를 일으키려 좀 뒤척거리면 갑자기 경수가
"과로래."
"....."
"도대체가 넌,"
"....."
"결국 꼭 이렇게 한번씩 사람 놀라게 해야 직성이 풀려?"
"....."
"내가 하는 말들이 말 같지가 않아? 몸 상하니까 적당히 하라는 내 말이 마냥 잔소리로만 들렸어? 그래?"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어.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내가 어디 다치는걸 경수는 진짜 극도로 싫어해.
어느 애인 둔 남친 마음이 안그러겠냐마는, 얜 진짜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내 건강에 되게 예민해.
무섭게 쏘아대는 경수 말에 틀린 말은 없는 것 같고, 혼자 또 속으로 본인 탓 하고있을 도경수한테 미안해죽겠고.
쓸데없이 찔끔 새어나온 눈물을 가리고자 시선을 최대한 밑으로 내려깔고 있었어.
경수가 얼마나 놀랐고 얼마나 화났는지는 알겠는데 이 새끼가 한번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 아빠보다 무섭다니까.
눈을 거의 감다시피 시선을 깔고 이를 앙 물어 눈물을 막고 있으니 또 경수는
"아프지 좀 말라는 말은 백번 말하면 백번 새겨들어."
"......"
"이렇게 쓰러져서 사람 놀라 뛰어오는 일 없게 하라고."
이러면서 두손으로 다시 내 손을 꼭 잡더라.
근데 그 손에 땀이 가득하고, 얇은 티셔츠 목 부근에도 땀이 축축히 젖어있는게 진짜 열나게 뛰어온 모양이더라고.
내가 쓰러졌다는 연락 받고 도경수가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만해도 난 그 상황이 눈에 빤히 보이니까 더 안쓰러운거야.
아픈 느낌도 안나는 몸을 가볍게 일으켜 얼른 경수 마실 물이나 없나하고 일어났지.
그랬더니 경수가 화들짝 놀라면서 침대를 빙 돌아 내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마침
"저녁 식사 나오셨...."
"....."
"....."
"....ΟΟΟ환자분 저녁 식사 나오셨습니다."
"....예예..."
"죄송하지만 병실에서는 스킨쉽은 물론이고, 과도한 운동도 안되세요. 환자분은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아시겠죠?"
간호사가 내 침대에 달린 식탁을 올려주더니 밥을 내려놓고 가는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스킨쉽? 과도한 운동?
병실에서 우리가 술래잡기같은 연애행각을 했다고 오해를 하는 모양이더라고.
근데 밥을 놓자마자 부리나케 걸어나가는 간호사를 붙잡아다가, 오해하지말라고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잖아ㅋㅋㅋ?
간호사가 나가자마자 멀뚱히 서있던 몸을 돌려 경수를 쳐다보며 껄껄 웃었어ㅋㅋㅋㅋㅋㅋ
난 이 어이없는 상황에 경수도 웃고있을거라 생각하고 그랬는데 도경수ㅋㅋㅋㅋㅋㅋㅋ웃기는 개뿔ㅋㅋㅋㅋㅋ
"간호사 하는 말 못들었어? 절대 안정이래. 잔말말고 다시 앉아."
"....."
개정색하면서 내 팔을 잡아다가 다시 침대에 올가게끔 밀더라.
안정이 필요하댔지, 절대 안정이라는 말은 없었는데... 꿍얼꿍얼 거리면서 침대 식탁 앞에 앉았어.
그리고 내가 앉자마자 경수도 침대 옆에 걸터 앉아서 내 쪽으로 몸을 기울길래 난 혹시 먹여주나 싶어서 가만있었다?
그랬더니 날 빤히 쳐다보던 경수가
"안먹고 뭐해."
"....먹여주는거 아니었어?"
"내가 왜."
"....나 아프잖아."
"팔 부러진거 아니면 니가 먹어. 숟가락 들 힘도 없어? 알바를 4개도 뛴 사람이?"
"......"
존나 단호한 목소리로 먹여주기를 거부하면서, 숟가락을 들어 내 손에 직접 쥐어주더라.
그래, 니가 나한테 뭘 먹여준다거나 그런건 애초에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경수가 쥐어준 숟가락을 냅다 내려놓고 젓가락을 들어 밥알 몇개를 깨작깨작 먹었어.
안그래도 밥 맛이 없는데 나온 반찬이라곤, 물 맛나는 육개장과 배추맛 나는 김치와 아무맛도 안나는 숙주나물 등등...
진짜, 사람들이 왜 병원밥이 밥맛이라고 욕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거야.
도저히 맛있는 척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그 싱거움과 밋밋함에 결국 젓가락을 내려놨어.
내가 원래 짜게 먹는 편이라 웬만한 음식들도 싱거워하는데, 병원밥은 오죽했겠니.
경수는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이럴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더 먹어."
"그만 먹을래."
"먹지도 않아놓고 뭘 그만 먹어?"
"아, 맛없어. 싫어."
"환자가 밥을 맛으로 먹어? 살려고 먹는거야. 빨리 쥐어-."
억지로 또 내 손에 젓가락을 쥐어주는거야.
내가 무슨 죽을병에 걸린 사람도 아니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살려면 밥을 먹으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싫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어. 젓가락을 쥐어주면 내려놓고, 쥐어주면 내려놓고.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 하다보니 나도 없던 짜증이 돋아서 성질이 담긴 거절을 하면
"먹여줘야 먹어?"
"....."
"아- 해."
경수가 숟가락을 들어 밥을 한숟갈 뜨더니 숙주나물을 얹어 내 입 앞에 갖다대더라고.
먹을까 말까 엄청 고민했다 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경수가 먹여주지만 존나 맛없는 밥, 먹을까 말까 되게 망설였어.
숟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얼른 먹으라는 듯이 날 쳐다보는 경수를 쳐다보면 먹고싶은데,
내 눈 앞에서 왔다갔다 거리는 못생긴 숙주나물을 쳐다보면 먹기싫고.
짧은 시간동안 되게 고민하며 인상을 구기다가 결국
"....아...."
"잘먹네. 이번엔 멸치,아-."
"....아-."
경수가 먹여주는 족족 다 받아먹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맛이고 뭐고 경수 추임새를 반찬 삼아 겨우 씹어 삼켰지, 모두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니까 내가 또 언제 도경수가 먹여주는 밥을 먹어볼까 싶기도 하고ㅋㅋㅋㅋ
밥을 싹싹 긁어 다 비워냈을 땐 나름 뿌듯함도 있더라, 시발 내가 이런 無맛의 밥상을 클리어해냈구나, 뭐 이런?
그 뒤로는 둘이 티비보고 뭐하고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진짜 한 9시~10시 돼서 밖이 깜깜해졌을 때가 되서야 내가 정신차리고
"너 집에 안 가?"
집에 안가냐고 경수를 부르면 얜 무슨 생각도 없이 "안가" 라고 말을 끊어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경수를 똑바로 돌려 앉히고 다시 한번 "안가?"라고 물으니
"안 가. 자고 가."
"......"
안간다고 침대 밑에서 보조용 이불과 베개를 잔뜩 꺼내 올려놓더라고.
그리고 그대로 진짜 자고 갔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자고 가는 건 상관이 없다만, 혹시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을까 되게 걱정했는데 불편은 무슨
병원 내부의 편의점에서 사발면 하나 사와서 맛있게 먹더니 편하게 자고 띵띵 부은 얼굴로 일어나 좋아하더라.
내가 의사 선생님께 진짜 아무렇지 않다고 당부드려서 입원일을 일주일에서 4일로 줄였는데
결국 우리 경수 그 4일 내내 병원에서 자고 갔어
무슨 하숙집 마냥 매일 집에서 옷만 갈아입고 병원와서 그 옷 입고 잠들고...
심지어 첫 날은 보조 침대에서 자더니 두번째, 세번째 밤은 보조 침대 불편하다며 내 침대에서 같이 잤다니까..
남자새끼가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여친과 같은 침대에서 잠만 잘 쳐자는지 궁금할 정도로 잠만 잘 자더라.
내가 참다못해 먼저 잠든 경수를 깨워봐도 노소용... 나만 애탔지, 나만.
아무튼 덕분에 이 때 도경수가 알바는 단칼에 끊어내고, 이 이후로 알바를 해본적이 없는 듯하다..
과외는 내가 찬영이 때문에 겨우 뜯어말려서 과외 만큼은 꽤 길게 했어.
오지게 혼났지만 나름 나쁘지만은 않은 추억이라 생각해ㅋㅋㅋㅋ
안녕하세요~ 코짱이에요~
기분 좋은 추석인데 다들 머나먼 귀향길로써 먼 가족분들을 만나셨는지요?
전 집에만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뉴스를 보니까 정말 꽉꽉 막히더라구요. 피곤하실까 걱정되네요ㅠㅠ
그래도 오실 때, 가실 때, 꼭 운전자에게 안전운전 당부하시고 가족분들 만나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음 좋겠어요.
맛있는 음식, 과일, 배 터지게 드시고 기분좋게 다같이 살 찌자구요 : )
꼭,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
글에서 비슷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불마크... 쓰는게 좋으세요?
아니, 당연히 좋으시겠지만(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벌써 쓰는건 아직 이르겠죠?
아시는 분들 알겠지만 제가 불마크 글만 쓰면 안그래도 안좋은 필력이 바닥을 기어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