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성규야."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우현이와 2번째 맞는 생일. 늘 그랬다. 이 나쁜 놈은 내 생일 때나 다른 기념일 때 항상 이랬다고. 최고급 레스토랑을 통째로 덜컥 빌리고, 무슨 뭐랬더라 엄청나게 비싼 포도주랬는데. 맛은 없더구만 항상 그 포도주를 사서 잔에 따랐으며 내가 착용해도 될까 한참을 고민하게 하는 최고가의 액세서리를 선물하곤 했다. 아니. 액세서리라고 말하면 안 되지. 감히 다이아몬드 박힌 시계님께. 하, 절로 나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다.
"응, 고마워…."
"앉아, 밥 먹자."
매너가 몸에 밴 것인지 나한테만 이러는지 뭐 그런 건 모르겠고 내 의자를 빼주는 우현이. 우현이와 함께 하고 나서부터 질리도록 먹었던 스테이크와 랍스터가 이젠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옛날엔 저 신선한 핏기가 묻어나는 스테이크 한번 먹어봤으면, 나도 그렇게 부드럽다는 바닷가재 한번 먹어봤으면 그렇게 소원했지만, 지금은 같이 손잡고 돼지 국밥을 먹으러 가고 싶었다.
"이거 선물. 열어봐"
작년 내 생일선물, 얼마 전에 있었던 800일 기념 선물과 똑같은 케이스 통이였다. 똑같은 브랜드에서 늘 최고가 신상 아가를 내게 선물한다. 늘 그가 나에게 주는 건 최고급, 최고가였다. 처음엔 이런 선물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우현이 새로 취직한 곳에서 아주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고 높으신 분들께 예쁨도 많이 받고 그러다 보니 승진을 했다. 한 단계만 깡총 뛴 게 아니다. 껑충껑충. 무서운 속도로 우현은 수직상승. 무슨 수 쓴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말이다.
그때부터였지 싶다. 말도 안 되는 억 소리 나는 선물을 내게 했던 게. 우리도 초반에는 안이랬다고. 장미꽃다발 999송이에 마지막 한 송이는 나라는 오글거리는 멘트까지 그때는 정말 풋풋하고 행복했었다. 길거리에서 데이트하다 귀여운 커플 폰걸이에 행복했고 손잡고 먹는 떡볶이가 행복했으며 사랑한다는 한마디 하기가 쑥스러워 머뭇거렸던 어리숙함이 행복했다.
근데, 이게 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어? 아니…. 예쁘다."
"마음에 안 들면 가서 바꾸자. 같이 갈까? 너 마음에 드는 걸로"
"아냐, 마음에 들어. 진짜야"
작게 웃어 보인다. 기분 상할까 봐서. 내 웃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른 체 우현은 예쁘게 웃어 보인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라며. 잘 들어가지도 않는 스테이크를 코딱지만큼 잘게 썰어 입에 넣는다. 억지로. 꾸역꾸역. 깨작깨작.
"왜 그렇게 못 먹어. 속 안 좋아?"
"그냥…. 맛없어"
"네가 제일 좋아하던 거 잖아."
"이젠…. 싫어"
"…. 후, 그럼 다른 거 시키자. 저기요-"
진짜 짜증 나서 못 해먹겠네. 우리밖에 없는 큰 레스토랑을 지키고 있는 종업원을 부르려는 우현의 입을 막았다. 됐어, 그냥 이거 먹자. 또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가까스로 깊숙이 집어삼키곤
물 한 모금 스테이크 한입. 물 한 모금 스테이크 한입. 물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고개를 푹 숙이고 먹는 둥 마는 둥 거리는 내가 거슬리는지 결국 우현인 입을 연다.
"너 오늘 왜 그러는데. 생일이잖아. 기분 좋게 외식하고 들어가자는데 왜…."
"그래, 미안. 기분 좋게 내 생각하면서 이거 다 준비한 걸 텐데 난 하나도 마음에 안들거든"
"…. 뭐?"
"그래서 미안하다. 너한테서 진심이라곤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이런 것들 받고 싶지 않아"
"……."
"먼저 갈게."
결국엔 터져버렸다. 참고 참았던게 쌓이고 쌓여서. 의자에 걸쳐놓은 재킷을 들어 재빨리 그 넓디넓은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거의 뛰다시피 걸은 거 같다. 혹시나 뒤따라 나올까 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속에 있는 말을 꺼내버렸다. 지금 우현이의 얼굴을 보면 정말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빨리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을 눌렀는데 저기서 우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뛰어온다. 성규야 잠깐만!!
미안하지만 난 열림버튼을 눌러줄 마음이 없다. 닫힌 버튼을 재빨리 연속해 눌렀다. 고개는 너에게서 돌리고 눈은 다른 곳을 향한 체.
바깥은 어둑어둑했다. 그래도 초저녁이라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현과 함께 했었던 거리를 보고있자니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걸쳐졌다. 그 웃음엔 씁쓸함이 묻어났다. 많은 사람 사이로 나도 시내 거리를 걸었다. 이 작은 액세서리 집은 우현이와 내가 처음으로 폰걸이를 맞춘 곳. 여기는 둘 다 스트레스받는 일 때문에 제일 맵다고 소문난 떡볶이를 먹고 울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었었던 분식집. 여기는 우현이와 내가 처음으로 첫 키스를 했었던 작은 노래방. 살풋 웃음이 났다. 그랬었지. 우리도 이렇게 귀여운 커플이었는데 말이야. 언제 이렇게 나이 들었지? 노땅 남우현. 내 나이가 이십 대 초반인데 그렇게 으리으리한 시계를 어떻게 차고다니냐. 촌스럽긴…. 눈물이 났다. 나 안구건조증인데 남우현 때문에 다 완치됐다. 두 눈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고개를 들었지만, 눈이 따가워 깜박거리는 동시에 투둑- 눈물이 새어나왔다. 한번 흘린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개새끼…. 흡…. 누가…. 누가 그런 거 선물…. 하…. 사달랬나…?"
그렇게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울 때 누군가 나를 품 안에 가둔다. 뛰어왔는지 헉헉 거리는 숨소리와 동시에 느껴지는 심장 소리는 날 더 서럽게 만들었다. 아이처럼 울었다. 우현이 변한 후로 이렇게 마음 놓고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하아…. 그 개새끼…. 후, 여기 왔다."
여전히 숨이 차는지 버겁게 말을 꺼낸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날 더욱 꽉 안는다. 병신….
"그딴 선물 해준 바보 같은 새끼 여기 니앞에 왔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새끼야…."
"다 말해. 그동안 서운했던 거 나 미웠던 거 다 말하라고."
"…."
날 품 안에서 떼어낸다. 내 두 손을 꼭 잡고는 나와 눈을 맞춰온다. 나 지금 울고 있니…? 엄청나게 추할 텐데.
"미안해. 무능력한 나 때문에 힘들었을 너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노력했어. 꼭 취직해서 승진한다. 승진해서 너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었어. 남들보다 더 맛있는 거 먹여주고 싶었고 남들보다 더 비싼 걸로 너 자존심 세워주고 싶었고 더 편하고 좋은 거 해주려고 그저 돈, 돈. 그러고 보니까 나 너 신경은 안 쓰고 돈만 벌었던 거 같다. 레스토랑은 큰 접시 반의반도 안되는 음식 팔면서 돈은 더럽게 비싸다고 했었잖아 너. 그런 거 다 먹여주고 싶었어. 다이아몬드 박힌 시계 선물 주고 싶었고 아무도 없이 우리 둘만 있는 레스토랑에서 밥 먹여주고 싶었다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 진짜 바보 같았다. 너 혼자 두고 말이야."
"흡…. 남우현…."
내 눈물을 그 큰손으로 닦아주며 웃어준다. 그리곤 말을 계속 이었다.
"생일 되면, 우리 기념일 되면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보다 마음에 드냐고 묻는 내 질문이 더 많았던 게 이제야 기억나. 그때마다 부담 스럽다는 듯이 어색하게 웃는 널 못 본 척 억지로 밀어냈었나 봐. 이렇게 너 우는 거 보니까 정신 차려진다. 이번 생일도 장애인같이 이딴 시계 하나만 덜렁 안겨줄 뻔 했네."
다시 한 번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내 손을 잡는다. 가자. 어…. 어딜? 우현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우리가 처음으로 폰걸이를 맞췄던 작은 액세서리 집.
"우리 커플 폰걸이나 맞출까?"
"…. 응!"
채 닦지 못해 눈가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환하게 웃어 보이는 내게 입을 맞추는 우현이.
"생일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정말, 정말 많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