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남우현이에요. 그쪽은 성규씨?"
"네, 반가워요. 우현씨."
우리 둘은 친구인 명수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그냥 소개팅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명수의 친구니까 알게 된 거다. 나도 명수의 친구고 ㅡ사실은 형이다.ㅡ 그쪽도 명수의 친구고 에블바디 김명수의 친구니 그냥 소개 받은 거 뿐이다. 그냥, 그랬었다.
"야 명수야, 너 급한 일 있다고 안 했냐? 얼른 가봐"
"어? 아, 그래! 그래, 맞아 나 급한 일 있어. 응. 성규 형 다음에 보자?"
내가 그때 김명수의 음흉한 미소가 무슨 뜻인지 이해만 했어도….
"성규씨, 이렇게 만났는데 밥이라도 같이 해요"
"아, 그럴까요? 뭐 좋아하시는데요?"
"일단 나가요. 제가 잘하는 닭갈비 집 알아요."
"정말요? 저 닭갈비 좋아하는데"
분위기 좋고 날씨 좋고 오늘 머리도 잘됐고 기분 좋다. 이젠 진짜 여름인가 봐요. 안더워요?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는 우현씨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내게 손부채 질을 해주며 샐쭉 웃는데 그 모습에 두근대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이 사람, 신기하네.
"와, 진짜 맛있다. 그렇죠!"
"네, 근데 진짜 매워요"
아, 매워요? 말을 하죠. 사이다 마실래요? 음…. 탄산 안 좋아하시나? 그럼 물? 제가 물 떠올게요! 왜 여긴 물이 셀픈거야. 툴툴거리며 냉큼 일어나 물을 뜨러 간다. 빨간 혓바닥을 살짝 내밀고 헉헉 거리는 날 한참 뒤에야 보고는 어영부영 대며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고…. 뭐가 그리 급한지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살포시 웃었다.
"자, 여기 물! 그렇게 매워요? 입가가 다 빨개"
"아니에요, 그래도 맛있어서 덕분에 스트레스 다 풀렸어요"
물 한 컵을 바로 비워내는 내게 얼른 자신의 물컵을 슥 밀어준다. 그 자상한 모습에 또 한 번 웃고 왜 웃느냐며 당황하는 모습에 다시 웃고 어? 계속 웃네? 우…. 웃지마요! 라고 했다가 자기도 웃는데 그 웃는 얼굴이 너무 멋있어서 미소 지었다.
* * *
"성규씨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우현씨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잠시만 있어요 라며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본다.
"무슨 맛 먹을 건데요?"
"아무거나요!"
진짜 덥긴 덥네. 우현씨가 아이스크림을 사는 사이 난 멀뚱히 서서 손부채 질을 연신 해댔다. 갑자기 뒤에서 쑥 내미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웃었다. 바닐라 맛이네. 사실 이 맛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고.
"어떻게 알았어요?"
"응? 뭐가요?"
"나 내심 바닐라 맛 먹고싶었든요"
"내가 원래 모르는 게 없거든요"
눈꼬리를 휘어 접으며 웃어 보인다. 또 빨라지는 심장에 혹여나 들릴까 봐 헛기침을 했다.
"난 초콜릿 맛인데 바닐라 맛 맛있어요?"
"네, 전 이게 제일 부드럽고 좋아요"
"어? 저거 뭐지? 저거 좀 봐요!"
"음…?"
우현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 멀리 어느 곳을 가리켰다. 뒤돌아서 고개를 붕붕 돌리며 무언갈 찾아봐도 눈을 그렇게 크게 뜨며 놀랄만한 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우현씨의 얼굴을 쳐다봤더니 장난꾸러기처럼 웃고 있다.
"맛있네요, 바닐라 맛도"
"네에?"
우현씨의 말에 내 아이스크림을 들여다보니 반은 줄어든 거 같다. 맛만 본 건 아닌 거 같다. 아예 다 잡수셨네.
"빨리 신호등 건너요. 저기 공원가요 우리"
휘적휘적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현씨를 따라 나도 쫑쫑 거리며 쫓아갔다. 공원으로 걸어가다가 우현씨를 불러세웠다.
"우현씨 신발 끈 풀렸어요"
"아, 그러네"
"아이스크림 들고 있을게요, 묶어요"
그럼 그럴까요. 읏챠- 소리를 내며 자세를 낮춰 신발 끈을 묶는 우현씨의 뒤에 서서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버렸다. 킥킥.
"됐다. 가요!"
"여기 아이스크림."
콘만 덜렁 남겨진 허전한 아이스크림을 들고 멍하니 날 쳐다본다. 그런 우현 씨에게 샐쭉 웃어 보이며 먼저 공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허, 같이 가요!"
"뛰…. 뛰어오지 마요! 악!!"
갑자기 뛰어오는 우현 씨에 놀라 덩달아 나까지 뛰었다. 학창시절 학주 선생님께 걸려 매일 뛰어다녀 그런가 누군가 내 뒤에서 뛰어오면 필사적으로 뛰는 게 몸에 밴 것 같다.
"헉, 헉."
"하…. 뭐…. 뭐가 그리…. 하…. 빨라요"
"하…. 아, 힘들어…."
"그러게 누가 뛰랬나"
결국 내가 먼저 지쳐서 멈춰 섰다. 우현씨는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내게 걸어왔다. 벤치에 좀 앉아요.
"성규씨."
"네?"
"우리 말 놓을까요?"
"아, 그래요! 우…. 우현아"
어색해서 애써 웃어 보였다. 내가 봐도 참 어색하다.
"그래, 성규야"
"…? 나 너보다 나이 많은데?"
"말 놓자며"
"그게 야, 그런 뜻이…."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 하는 게 어딨어~ 성규야~"
아, 아니…. 아니 뭐 이런…. 멍청하게 우현을 쳐다보고 있으니 내 머리를 헝클이며 웃어 젖힌다.
"장난이야, 장난. 성규형. 오케이? 형!"
"아 뭐야, 당황했잖아"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무…. 뭐?"
"당황한 모습 보고 싶었다고. 또 당황하게 해볼까?"
"진짜 뭐라는…."
"우리 연애해보자. 성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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