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성규?"
"어, 어?"
"노래를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들어."
"아니…. 노래가 좋아서"
"큭, 그게 뭐야"
이 노랠 더 듣다간 정말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이어폰을 빼버렸다. 윤두준은 노래 좋다더니 왜 빼냐고 묻는다. 그냥 닥치고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빨리 학교 마쳤으면 좋겠다. 얼른 우현이 보러 가게. 오늘 나 오는 날인 거 알고 꽃단장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남우현? 보고 싶어.
"아, 역시 우리 학교 급식 하나는 최고" "인정, 인정. 어? 김성규랑 전학생~"
막 점심을 다 먹었는지 앞문을 더럽게 시끄럽게 열며 들어오는 이성열과 장동우. 내 앞자리에 턱 앉아서 나와 윤두준을 번갈아 쳐다본다.
"둘이 밥 안 먹었냐? 겁나 맛있었는데"
"너희가 나 버리고 간 기억까지 같이 드시고 오셨나 봐요"
"지랄도 풍년이네 성규야.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시더니요"
아…. 그래? 날 깨웠었구나. 티격태격 거리는 성열과 날 보더니 킥킥 대며 웃어대는 윤두준. 설마 아까 윤두준 말대로 정말 코를 곤 건 아닐까…. 아, 쪽팔려.
"이성열 오늘 갈 거지?"
"당연한 거 아니냐. 다른 애들은 늦게 따로 간댔고 우린 동우랑 먼저 가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마치고 바로 버스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우현이가 좋아했던 버터 와플 과자랑 옛날부터 갖고 싶다고 했었던 내 증명사진. 그리고 작은 것에 더 감동하고 좋아하던 우현이를 위해 편지도 준비했다. 윤두준은 성열이와 대화하는 날 힐끔 쳐다보다 다시 노래를 듣는다.
* * *
"저기, 이성열이랑 장동우 어디 갔어?"
"동우 아까 무슨 전화 받고 급하게 가던데? 성열이도 같이."
"아….고마워."
학교가 마쳤다. 근데 같이 납골당에 가기로 했던 이성열과 장동우가 없다. 아무 말 없이 먼저 집에 가버릴 녀석들이 아닌데. 더군다나 오늘은 중요한 날이란 걸 다들 아 는데. 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야 어디야?"
"상규야 진짜 미안. 오늘 멀리서 친척분들 오셔서 집에 먼저 가야 될 거 같아"
"이성열은…?"
"성열이는 학원 수업이 앞당겨졌대. 빼먹으면 안 되는 거 알잖냐. 성열이 어머니 엄하신 거"
"그럼 우현인…."
"걱정 마, 오늘 늦게라도 갈 거니까. 성열이랑 다른 놈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아직까진 납골당에 들어가 있는 우현일 혼자서 마주 볼 자신이 없다. 아직까진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는 널 보며 같이 웃어줄 용기가 없는데 우현아. 어떡해…?
* * *
결국, 혼자 버스 터미널로 왔다. 혼자라서 그런지 더 두렵고 더 무섭다. 칠곡행 버스표를 끊고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우현인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우현인 늘 내게 그랬다.
내가 엄마를 잃어버린 건지 버려진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근데 그냥 내가 엄말 잃어버린 거라고 믿으려고. 그게 덜 슬플거 같아서.
우현이 말대로 하자면 우현이가 어머니를 잃어버렸던 곳이 칠곡이었다. 우현인 일어나보니 흥부 놀부에 나오는 흥부 집같이 생긴 집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곤 낯선 할머니가 우현일 따스히 안아줬다고 했다. 알고 있었을 거다 우현이도. 어머니가 자신을 친할머니께 맡기고 떠나갔다는걸. 이 일을 알고 있었던 난, 우현이의 두 번째 집을 칠곡 납골당으로 정한거였다.
"아…. 버스 언제 와"
타이밍이 안 맞아서 버스는 40분 뒤에나 온다. 그때까지 뭘 해야 할지. 성열이나 동우가 있었다면 덜 지루했을 텐데.우현이 한테 줄 것을 담은 쇼핑백을 두 손에 꽉 쥐고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릴 때, 어…? 어디서 본듯한 저 뒤태. 교복을 줄이지 않았지만 딱 떨어지는 모양새. 혹시….
"윤두준?"
오늘 전학 온 윤두준으로 추정되는 내 앞에 남정네를 조심스레 불러봤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나 싶어 냉큼 뒤돌아보는 남정네는 정말 윤두준이 맞았다. 날 보자마자 눈이 커진다. 뭐야, 김성규!
"너 왜 여기 있어?"
"갈 때가 있어서…. 그러는 넌?"
"나도 갈 때 있으니까 여기 있지 멍청아"
장난스레 내 머리를 헝클인다. 그래도 밖에서 보니 좀 반갑기는 하다. 오늘 본 놈이지만 참 편하단 말이지. 낯가림이 많은 내겐 신기하고 의아한 일이었다. 두준이도 버스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지 신경질을 내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놈의 버스는 언제 오시나"
"어디 가는데? 것도 혼자"
내 질문에 버스표를 슥 보여준다. 7시 10분 칠곡행? 칠곡?
"너 칠곡 가?"
"응. 엄마 만나러"
"아…. 어머니랑 떨어져 살아?"
"음, 뭐 그런 셈이지."
"나도 칠곡 가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길고 긴 칠곡행을 어떻게 혼자 가나 걱정했는데 말이다. 두준이는 어머니 만나러 간다니까 올 때는 혼자 와야 되네…. 윤두준한테 빌붙어버릴까. 윤두준은 내 옆자리 아저씨께 부탁해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난 너랑 안고 싶지 않은데 네가 심심할까봐 바꾼거다. 라는 신빙성 없는 말까지 덧붙이며. 하지만 자리를 바꾼 보람도 없이 우린 가는 내내 한마디도 없었다.
우현아, 나 가고 있어. 우리 얼마 만이지? 얼른 보고 싶다. 기다려 조금만
* * *
"아오, 허리랑 엉덩이 겁나 아프다"
"넌 이제 어디로 가?"
"엄마한테 가야지. 택시 타면 되"
"아, 그럼 월요일에 봐. 잘 가"
두준이와는 그렇게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난 택시를 잡았다. 힐끔 창문 밖을 내다보니 두준이도 택시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 * *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냥 눈물만 흐를 뿐이다. 내 눈앞에는 지금 우현이가 있다. 날 안아주던 날 보고 웃어주던 내 이름을 불러주던 우현인 없지만 그래도 지금 나와
함께 있다. 나와 찍은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우현이가 내게 기습뽀뽀를 한 사진. 우리 사귄 지 100일 됐을 때 찍은 사진. 처음 커플링 맞췄을 때 같이 찍
은 사진. 이때 우린 참 행복했었는데….
"우… 우현아…."
나왔어…. 애써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달싹여본다. 투둑 떨어지는 눈물을 우악스레 닦아내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지만 난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나쁜 놈아, 나 보고 싶었지? 근데도 어떻게 꿈에 한 번도 안 와? 난... 난 너 너무 보고 싶었는데. 우현아... 흡... 남우현아... 후... 아! 나 너 주려고 음...이거, 편지랑... 또..후...이거, 버터 와플이랑 내 증명사진... 이거.. 가져왔어"
"좀 봐봐…. 어? 이거 좀 보라고...우현아... 난...난 아직도 네가 여기...여기 있다는 게 안 믿겨...매일 아침 니 전화로 깨던 아침을 딱딱한 알람소리로 일어나야 한다는 게 아직도 안 믿겨...매일 같이 듣던 노랠, 그렇게도 좋아했던 노랠 이젠 듣기 싫어졌다는 게 안 믿기고... 속으로만...마음 속으로만 널 보고 외치고 만져야 한다는 게.... 정말...개같아"
"너 따라 죽으려다가 참...았어... 지금도 참고 있어...이런 너 보면... 진짜 확 죽어버리고 싶은데..!! 니가... 니가 기다리랬으니까... 나 원래 니 말은 다 들었잖아... 오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말고...어..? 빨리 나 보러 와야 된다....? 흑...이 나쁜 놈아 흐... 흐윽....우현... 우현아.... 우현아!!! 하..."
그렇게 난 엉엉 울었다. 이제 내 눈물을 닦아줄 너도 없는데 난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 네가 떠난 뒤 장례식장에서 탈진할 정도로 운 뒤에는 이렇게 심하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믿기지가 않아서. 어딘가로 잠시 떠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서였다.
얼마나 울었을까, 감정을 추스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사진 속 우현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아주 많이 봐두고 싶었다. 보고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싶다.
"우현아 나 이제 가볼게. 시간이 늦었어. 좀 있다가 다른 친구들이랑 성열이랑… 동우… 올꺼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너 역시 그렇겠지? 지금 날 붙잡고 있니 우현아…? 나 이제 진짜 가봐야 되. 다음에 또 올게. 보고싶을거야….
"다 울었냐?"
갑자기 들려온 다른 목소리에 우현이만 쳐다보고 있던 시선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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