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정하
너에게 가지 못하고
나는 서성인다.
내 목소리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이름이여
차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다만, 보고싶었다고만 말하는 그대여
그대는 정녕
한발짝도 내게
내려오지 않을건가요
*
부드러운 선율이 가득찬 카페, 그리고 창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한 없이 바라보던 어느 오후.
나는 뜬금없이 너를 떠올렸다. 수 년을 잊고 있던 차학연, 너를.
따뜻한 카페라떼는 폭신한 휘핑크림을 얹은 채 내 앞에서 식어가고 있고, 내가 좋아하던 동그란 모양의 티라미슈는 한없이 단 향을 풍기며 내 앞에 있지만 한번 열려버린 기억은 닫히지 않고. 나는 새어나오는 감정에 파묻혀 숨이 막힌다.
.
.
.
"이거 너무 단거아냐? 핫초코에 티라미슈까지...너무 달아서 어떻게 먹어?"
"우리 자기,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한번만 먹어봐요."
우리가 자주 오던 카페. 그저 서로만 바라보고 걸어도 자연스럽게 이끌리던 그 따스한 발걸음들, 문을 열면 서로 부딪히던 금색의 소리들을 너는 좋아했다. 너의 그 아이같은 입맛을 보며 언제나 경악했었지. 그런 나를 보며 너는 그 입맛처럼 누구보다 아이같은 얼굴로 웃곤 했다. 종종 나는 생각했던 것 같아, 너의 그 웃음이 우주를 녹일 만큼 달다고. 그래서 나는 네가 먹여주는 티라미슈보다 네 미소하나 보는게 더 달다고.
"너무 달아서 머리아파. 나는 핫초코 말고 아메리카노 먹을래."
그건 너무 쓰잖아, 하며 구겨지던 네 표정을 나는 좋아했다. 코가 살짝 들려지고 입꼬리가 내려가던, 그리고 반대로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던 그 얼굴. 쪽- 하고 코끝에 뽀뽀하면 눈 녹듯이 풀어지던 그 눈빛까지. 그래, 너는 지금 생각해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어.
"그럼 우리 카페라떼먹을까? 핫초코보다는 덜 달고, 아메리카노보다는 덜 쓰고."
"그럴까? 역시 우리 여보 똑똑해."
웃으며 너는 내 손에 깍지를 낀다. 튀어나오는 마디마디 마다 가볍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눈을 올려 나를 보고는 씩- 하고 웃는다. 아, 그때의 너는 마치 영화처럼 선명하게 재생된다.
동시에 떠오르는 타는 듯한 냄새, 귀를 찢을 듯한 브레이크 소리. 그리고 슬로우모션처럼 내 앞에서 쓰러지던 너. 방금까지 웃던 네가 내 앞에서 꽃잎처럼 떨구어 지던 그 순간. 짖이겨진 꽃잎에서 흘러나오던 그 붉은 꽃물들이 내 발을 적시던 그 순간마저 잔인할 만큼 선명해서 나는 숨을 쉴 수조차 없다.
너를 잊었다고 수없이 다독이고 주문을 걸어봐도 내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내 가장 지우고싶은 순간에도 네가 있어.
빛바랜 필름영화이길 바랬는데 여전히 너는 내게 빛나던 머리칼 하나까지 선명한 기억의 조각.
후두둑,
네가 내안에 여전히 선명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득 차오르던 눈물이 떨어졌다. 그쳐지지 않는 이 눈물이 내 맘대로 그칠 수 없는 네 기억과도 같아 차마 닦지도 못한 채, 나는 창가에 흐르는 빗물들 처럼 소리없이 흐느꼈다.
너를 잊었다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어.
너를 지웠다고 생각한 그 수년의 시간이 유리처럼 깨지고, 깨어진 틈 사이로 여전히 존재하던 너의 무게가 나를 짖누른다.
내가 좋아하던 카페라떼? 내가 좋아하던 티라미슈? 모든 게 우습다.
뜬금없이 떠오른 너? 아니, 당연하게 떠오른 너이다. 나는 너를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으니까.
나는 여전히 너의 흔적들을 쫓고 있었으니까.
(아련한 요니 사진 있으신분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