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또 헤어졌다고?"
순간 먹던 버블티가 목에 걸리는 기분에 잠시 콜록대다가 어이없다는 듯 너에게 물었다. 와, 다 들었으면서도 그저 핸드폰만 바라보는 네가 어찌나 얄미운지.
맘같아서는 높게 솟은 저 콧대를 주먹으로 확 때려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내 다리 앞에 있는 정강이를 세게 찼다.
"야, 이재환- 대답안해?"
그제야 슬그머니 나를 올려보다가 무심하게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드는 너. 이럴꺼면 매번 소개시켜달라는 말은 왜 하는거야? 처음에는 이재환의 싹싹한 성격과 그럴싸한 외모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두들 서로가 소개팅을 하겠다며 나섰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지, 이대로 가다간 더이상 친구들이 남아있질 않을 것 같다.
야야야, 너 입으로 들어가는 버블티도 아까워- 하고 말하며 이재환이 먹는 버블티를 뺏자 우웅, 왜규뎨. 뎨화니 배고파여 하며 윙크한다.
너 진짜 어디가서 그러지마라 하고 수백번을 말해도 저 끼부리는 버릇은 못고치려나보다.
"너 어디가서 차이고 나 좀 찾지마. 이번에 몇번 째야?"
"내가 너 아니면 찾을 사람이 누가 있어"
이번엔 꽃받침이다. 내가 졌다, 졌어. 너무나 뻔뻔스럽게 말하는 그 모습이 인정하기 싫지만 귀여워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살짝 밀어버리고 웃었다.
너랑 어떻게 하다 친해진건지 친해진 내가 잘못이지.
....차였어, 아니면 찼어? 하고 묻자 물끄러미 바라보다 차였어- 하며 씩 웃는다. 너는 잘 생긴 애가 왜 차이고 다니고 그래? 맨날 얼굴만 보니까 그렇지, 난 너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하고 타박을 주니 바로 내 얼굴만한 커다란 손날이 날아온다, 목당수- 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옵션.
"너랑 친구한 내가 죄인이다. 몇년째야 이게. 너랑 어떻게 친구됐는지 기억도 안나."
한숨처럼 말을 던지고는 눈 앞의 치즈케이크를 한 입 떠먹었다.
"내가 반해서 들이댔지, 너한테."
이거봐, 또 끼부리지. 여자친구한테나 할 법한 쑥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재환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에 핸드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순간에 내 눈은 핸드폰에서 고정되어버렸다. 순간 너무 낯설어서, 방금 도착한 친구의 카톡 속에서 묘사된 이재환과 내 앞의 이재환이 너무 다른 사람같아서.
[야, 완전 싹싹한 줄 알았는데 대박 무뚝뚝.]
그 뒤에 정색하는 귀여운 곰이 있는 카카오톡을 다시 보다가 또 이재환을 보자 이번엔 입술을 앞으로 내밀며 말한다. 우이 뎨화니도 치즈케이크쥬데욤- 뿌잉뿌잉.
[그럴리 없는데ㅋㅋㅋ 얘 완전 애교덩어리야.]
[무슨 소리야. 너 말 믿고 소개팅나갔는데 하루종일 폰만 보더라. 무슨 연락 기다리는 사람처럼.]
[이재환 사람이랑 얘기할 때 거의 폰 안보는데?]
[내가 물어도 별 말도 없고, 뭘 물으면 네네- 거리고. ]
[이재환이 말이 없다고?ㅋㅋㅋㅋㅋㅋㅋ야 말도 안되]
[아 몰라, 얼굴보고 덥썩 물었다가 짜증ㅜㅜ 앞으로 이재환의 이자도 꺼내지 마라 진짜]
친구가 보내는 카톡 속의, 내가 모르는 이재환이 신기하고 어이없어서 실실 웃는 얼굴로 한참이나 카톡을 주고 받는데 갑자기 길다란 손가락이 쑥- 하고 핸드폰을 빼았아간다. 고개를 들고 보니 부루퉁한 이재환이 눈썹을 모으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누구랑 카톡하는데 그렇게 재밌어? 남자야?"
"비밀인데?"
"진짜 남자야?"
남자면 어떻게 할껀데- 하자 부루퉁하니 삐진 척하던 눈빛이 서늘해진다. 갑자기 내 앞의 이재환이 지금까지 알던 이재환이 아닌 것 같다.
카톡 내용도 그렇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네 모습도 그렇고. 몇 년을 친구였던 우리사이에 자리했던 편안했던 공기의 온도가 바뀐 듯한 이질감.
집중하거나 기분이 상할 때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곤 하는, 그래서 검지로 슥슥 문질러주곤 했던 그 눈썹뼈 아래로 깊게 그림자진 눈이 낯설다.
"남자 아니야, 친구야. 너랑 소개팅했던 친구."
그 낯선 공기의 온도가 지속될 수록 어색해지는 맘에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곤 아, 걔. 하며 앞으로 내밀었던 몸을 다시 쓱 하고 뒤로 젖히며 의자에 깊이 기댄 너는 고개는 아래로 하고 눈만 힐끗 올린채 나를 바라본다.
"너, 대답도 똑바로 안하고 핸드폰만 봤다며."
"근데?"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대답하는 이재환의 모습에 순간 어이가 없어진 나는 목소리가 커가는 것도 모르는 채 이재환에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너가 소개시켜달라고 한 애잖아. 맨날 차여놓고 나 부르지 말고 행동 좀 똑바로 하라고."
마지막에 덧붙인 내 말이 기분이 나빴는지 이재환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그 눈은 여전히 내게 박힌 채로. 한참을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결국 내가 먼저 그 침묵에 지쳐버렸다.
"이재환 너 뭐가 문제야? 왜 그러는건데?"
"뭐가- 또 왜그래, 우리 별빛이가."
방금까지 나를 보던 그 이재환은 어디가고 또 평소의 이재환이 나와서 능청스럽게 웃음을 짓지만 하나도 먹히지 않는다.
나도 오늘은 결심했단 말이야, 오늘 너 끝장 볼 줄 알아라.
"너 핸드폰 평소엔 잘 안하잖ㅇ-"
"너랑 있을때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라 버리는 너.
어느새 나른한 포즈로 뒤로 기대어 샐쭉하게 웃던 이재환은 없어지고 팔짱을 낀 채 내 바로 앞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진 이재환의 얼굴. 근데 잠깐 아까 대답이 뭐라고?
"너...너 그리고 왜그렇게 무뚝뚝하게 굴었어, 내 친군데. 너 원래 애교도 많고-"
"그것도 너랑 있을 때만."
아, 얼굴이 달아올라서 귀끝까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같다.
고1 겨울방학부터 지금까지 5년을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면서 이랬던 적은 없었는데.
고3때 내가 좋아하던 학연 선배 얘기를 할 때도, 대학와서 보고 반했던 택운오빠 얘기를 할 때도 이렇게 얼굴이 터질 것 같진 않았는데.
자꾸 장난치지 말고! 하고 짜증을 내보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너. 이미 내 쿵쿵 뛰는 마음을 다 눈치 챘다는 듯 실실 웃는 이재환이 얄밉다.
당황스런 마음에 이만 간다고 말하며 일어나서 돌아서자마자 내 팔을 붙잡는 이재환의 커다란 손.
놀라서 뒤 돌아보니 앉은 채로 팔만 뻗어 나를 잡은 네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장난아닌데- 내가 말했잖아, 매일. 처음부터 반했다고. 그래서 들이댔다고"
이재환의 손이 닿은 팔의 언저리부터 조금씩 열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한송이, 한송이.
사실은 이미 봉우리져있던 꽃이 이제야 만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부터 너 말곤 없었어, 난."
글 내용이 어디서 많이 본 노래가사다 싶은 분 손? 물론 빅스노래죠 호홓
(어떤 곡인지 많이 맞추시면 번외써볼게여 소근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