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팔원
이글은 백석시인의 팔원을 모티브로 쓴 것입니다.
우현번외-겨울의 꽃
우현은 가만히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홀로 상상에 빠졌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래, 딱 이맘 때쯤이었을거다. 우현은 조용히 자신만의 상상으로 빠져들어간다.
우현은 어두스름한 새벽녘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갔다. 나가니 온세상이 하얀 천으로 덮여있는 듯 하였다. 아직 어두운끼가 가시지 않은 새벽은 살짝 달빛이 비추어 감탄이 나올정도로 아름다웠다.자신의 발목까지 쌓인 눈을 보고 그날도 어김없이 우현은 사색에 잠겼다. 그리고는 다시 방에 들어가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 생각나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의 어깨를 누가 톡톡 하고 건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현이 뒤를 돌아보자, 피부는 하얗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 살짝 올라간 입매 동그란얼굴, 오똑하고 콧망울이 둥근 코, 그리고 자신에게 인사하며 살짝 지은 미소가 묘한게 마치 겨울같은 여자였다.
우현이 여자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자 여자는 그저 자신의 입을 가리며 살풋 웃었다. 그리고는 입을열어 자신의 이름이 후유노 하나라고 소개했다. 우현은 겨울의 꽃이라는 이름의 뜻이 모순된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의 모습을 보니 어쩌면 말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현은 여자에게 여기까지 무슨일로 왔냐고 물었지만 여자는 그 말에 대답도 않고 그저 자신을 후유라 불러달라 청했다. 우현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여자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여자의 깊은 눈동자를 보니 나쁜사람은 아닌 듯 싶어 그냥 두었다. 여자는 우현이 생각나는 것을 적던 종이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달빛이 실이되어 새하얀 눈밭에 수를 두어간다
어두스름한 새벽 녘 별빛은 눈에 비춰 살랑댄다
앞에선 나그네의 그림자가 쓸쓸하게 걸어가고
갈대밭 두루미는 어찌 그리 슬피도 우느냐
여자는 글을 읽고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당신의 글은 항상 외로워요. 보면 나까지도 슬프게 만들어요."
우현은 여자의 말에 사색에 잠겼다. 이제까지 자신은 한번도 자신의 시에대한 감상을 들어 본적이 없을 뿐더러, 또 시가 외롭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우현은 시는 작가의 마음과 감정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여자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뼛속까지 외롭고 또 슬픈 삶을 사는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현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확 기분이 나빠졌다. 여자는 그런 우현을 알아채고는 다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여자의 웃는 모습을 보니 더 기분이 나빠진 우현은 자신의 시를 들고 터벅터벅 빠른걸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여자는 그런 우현을 보더니 다시 살짝 미소를 짓고는 왔던길을 되돌아 나갔다.
우현은 그날 이후 글을 쓰지 못했다. 사색에 잠길때 마다 여자의 말이 자꾸 생각나 글 쓰는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밖에는 애꿎은 달님만 우현을 비추고, 정작 기다리는 그 여자는 오질 않았다. 우현은 그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평생 글을 쓰지 못할거 같아 걱정 되었다. 그러다가 또 자신이 왜 그여자를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화를 낸다. 우현은 자신의 감정이 이렇게 동요된 것은 처음이라 이런 기분은 매우 생소했다. 그렇게 우현이 혼자 방 안에서 갈등을 겪고 있을 때, 문지방 앞에 하얀 인영이 나타났다.
하얀 인영이 말하였다.
"후유..에요. 계시나요?"
우현은 잠시 머리를 굴려 후유가 누군지 생각하다가 며칠전 찾아와 자신의 생활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문을 힘껏 열어 젖혔다. 여자는 그런 우현의 모습에 조금 놀란 듯 하다가 이내 그 묘한 미소를 지으며 우현에게 말하였다.
"제가 반가우셨나 보네요."
우현은 뻔뻔하면서 당당한 여자에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아니요. 오늘은 또 무슨일로 오셨나요..이번엔 글 쓰는 법이라도 가르치려 오셨나?"
우현이 한껏 비꼬며 말하자 여자는 또 입을 가리며 묘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네. 맞아요. 저 우현씨 가르치러 왔어요."
우현은 여자의 말을 듣고는 헛웃음 밖에 나오질 않았다.
"허.."
"대체 나한테 뭘 가르치려는 겁니까?"하니, 여자는 살풋 웃으며 답하였다.
"음...감정?"
우현은 다시 한번 기가 찼다. 자신이 돌도 아니고 이런 연필쪼가리도 아닌데 어째서 자신에게 감정을 가르치려 든단 말인가. 본시 길바닥에 나있는 잡초들도 또 짐승들도 그리고 악한 범죄를 저지를 흉악범들도 다 감정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자의 말은 우현 자신이 그런 잡초나 짐승보다도 못하다는 게 아닌가.우현은 기분이 한층 더 나빠졌다.그리고 불만에 차있는 눈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우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감정이 없다는게 아니에요.그저 표현할 줄을 모른다 라는 것 뿐이지."
우현은 여자의 말에 더 어이가 없어져 다시한번 헛웃음만 지었다. 여자는 그런 우현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하였다.
"당신은, 항상 슬픔,고통,외로움밖에 표현하지를 못해요. 당신의 작품에는 행복따위 존재하지 않아."
여자는 자신의 말이 격해지는 것을 느꼈는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줄게요. 내가..당신의 행복이 되겠어요."
우현은 터무니없는 여자의 말에 불쾌감을 느낌과 동시에, 진정 여자가 자신에게 행복이란 걸 심어 줄 수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아마 그 때의 우현은 외로웠나보다. 그런 현실성 없는 말에 놀아나 아직도 마음 한켠을 움켜쥐며 살고있으니.
여자는 그 날 이후 매일 우현의 집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여자가 찾아올 때마다 문을 열지 않거나 쫓아냈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아오는 여자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여자는 우현의 집에와서 시답지 않은 농을 던지거나 바깥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댔고, 우현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귀찮고 시끄럽다고 느꼈지만, 여자는 그런 우현을 신경쓰지않고 계속 이야기만 하였다. 어느새 우현도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갔고, 오히려 여자가 오면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 하거나 시를 써서 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짓는 여자의 묘한 미소가 우현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우현은 여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잠을 잘때도 밥을 먹을때도 심지어 글을 쓸 때 마저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자가 짓는 묘한 미소가 좋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좋았고, 그저 여자의 모든 것이 우현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우현은
그 날도 그렇게 여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여자는 우현의 집에 오지 않았다.
우현은 불안해졌다. 그래서 괜히 자신의 손톱만 뜯었다. 여자에게 무슨일이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무뚝뚝한 자신이 싫어진 것인지..
우현은 무엇이 되든 둘 다 싫었다. 여자에게 무슨일이 생겼다면 자신은 여자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살 수가 없을 것이고, 자신이 싫어졌다면 그것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현은 너무 서글퍼져 고개를 숙여 눈물을 떨궜다. 한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 여자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이제 우현은 여자 없이는 살지 못할거 같았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여자가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여자는 우현의 이마위에 있던 물수건을 갈며 우현을 향해 말하였다.
"바보같은 사람..안오면 기다리지 말았어야죠. 왜 문 앞에서.."
우현은 그런 여자의 손을 잡고 그저 사람 좋게 웃고만 있었다. 감기에 걸려 잠겨버린 목소리로 우현은 힘겹게 말을 하였다.
"이제..왔어요?"
여자는 우현의 대답에 어쩔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몇시인지는 알아요? 당신 하루를 꼬박 잠만 잤어. 벌써 자정이야."
우현은 여자의 볼을 쓸며 말했다.
"다행이다...난 당신이 내가 싫어져 떠난 줄만 알았어. 걱정하게 했다면 미안해."
여자는 우현의 말에 헛웃음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현은 그런 여자를 붙잡으며 가지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말라버린 입을 열어 떠나지 말라고, 당신을 사모하고 있으니, 떠나지 말아달라고 고백하였다.
"후유, 난 당신을 연모 합니다.당신을 사모합니다. 난..이제 당신없이는 살 수없으니까..떠나지 마요..제발 "
여자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난 곧 당신 곁을 떠나야 해요.난 당신에게 상처만 줄거야. 그런 나라도, 사랑해 줄 수 있나요?"
여자는 다시한번 물었다.
"내가 당신을 상처입힌다 해도, 그래도 나를 안아줄 수 있나요?"
우현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여자의 말랑한 입술에 자신의 다 터버려 거칠한 입술을 맞대었다. 여자는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눈을 감고 우현을 받아 들였다. 달빛이 창을 통해 둘을 영롱하게 비추고 곧, 방의 불이 꺼졌다.
우현이 일어나니 여자가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우현은 여자의 머리칼을 쓸며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여자는 잠에서 깼는지 살짝 눈을 떠 우현을 바라보았고 어젯밤 일이 생각 났는지 뺨이 붉게 물들었다. 우현은 그런 여자를 보며 살짝 입맞춤을 한 뒤, 방에서 나갔다. 여자는 우현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일어나 옷걸이에 잘 걸려져 있는 옷을 들어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우현이 있는 마당으로 나가 우현의 등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우현은 갑작스레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당황했지만 이내 여자의 향기를 맡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우현과 여자는 점점 더 깊은 사이가 되어갔고 날도 점점 따스해 지고 있었다.우현은 밝게 비추는 햇빛을 보며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봄이 오면 결혼합시다."
여자는 우현의 말에 놀란 듯 하다가 점점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그리고 우현의 손을 내치고는 차갑게 돌아섰다. 우현은 영문도 모른채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여자에게 물었고 여자는 그런 우현의 말에 대꾸도 않은 채, 그대로 우현을 지나쳐 나가 버렸다. 우현은 멍하니 여자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뒤늦게 여자를 잡으러 나갔지만,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우현은 여자를 잡기 위해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자 생각했지만, 여자의 집을 몰랐다. 그리고 여자의 집을 알기위해 여자의 행방을 아는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모두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우현은 그렇게 여자를 찾았지만, 여자를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우현은 여자가 그렇게 사라진 후, 매일을 글만 쓰며 보냈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글을쓰고, 종이를 찣고, 또 여자를 생각하며 울다가 글을쓰고. 그런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꽃샘추위도 물러간 4월의 따스한 봄 어느 날, 한통의 이름 없는 편지가 우현에게 도착했다.우현은 그 편지를 안고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는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변해갔다. 사람을 만나고, 항상 밝게 웃음 짓고 마치 여자에게 하던 것 처럼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겨울이 찾아오자 우현은 덜컥 승합 자동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네^^ 망글이 또 왔습니다. 사실 쓰면서 빨리 우현이랑 여자랑 떼놓고 싶어서 급전개 했다는 건 안비밀...
성규랑 붙여놓고 싶었어요...4편 써야하는 데 아직 5분의1밖에 안썼다는 함정...ㅁ7ㅁ8
무피그대!! 빨리 올렸으니까 칭찬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