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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안녕하세요. 봄이 옵니다. 이곳은 벌써 벚꽃나무에 분홍 꽃이 피었어요.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제 앞에 저 아이는요, 오늘도 어제도 겨울에도 항상 봄입니다. 

 

이곳은 사람이 많습니다.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각국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입니다. 상점이 많고 상인도 많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람 구경을 하는 상인 중 하나입니다. 제 옆 상점은 생과일 주스 집이구요, 제 앞에 포차는 장난감 가게입니다. 장난감 가게에 상인은 비눗방울 제조기로 예쁜 방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곳에 하늘과 사람들 사이로 아이의 미소들이 떠다니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제 눈 앞으로 지나가는 방울을 터트리지 않습니다. 터져버리는 방울이 아이의 미소를 영영 볼 수 없게 만드는 것 같거든요. 어제는 아이가 눈에 스프링이 달려 눈알이 튀어나오는 듯한 안경을 썼습니다.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에게 장난을 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인사동. 저는 이곳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만났던 터키 출신에 반은 한국인인 형에게 이 가게를 인수받았습니다. 형은 모국으로 떠났구요. 형이 하는 것을 보고, 부족한 점은 배워서 가게를 운영한 지 어느덧 2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오기 전부터 장난감을 팔고 있었습니다. 형의 가게에 올 때마다 보았거든요.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입니다. 사람이 많은 날에는 보일 듯 말 듯 아이의 머리칼만 눈에 담을 수 있으나 그런 날이 아닌 날엔 눈이 마주치는 행운이 있기도 했습니다. 아이스크림가게는 겨울에 장사가 되지않는다지만 저는 겨울에도 가게에 문을 열 것입니다. 봄을 보기 위해서지요. 

 

쫀득쫀득! 달콤한 터키아이스크림! 간판까지 닿을 만한 높이에 아이스크림 콘이 쌓여있습니다. 분홍색, 초록색, 노랑색. 식상한 바닐라색이 아닌 다양한 색의 콘들이 높게 겹쳐 올려져 있습니다. 손님에게 묻습니다. 무슨 색? 손님은 겹겹이 쌓여있는 콘 탑을 훑어보곤 분홍색이요! 라고 말합니다. 긴 쇠 막대기로 아이스크림을 퍼올립니다. 원뿔모양 콘에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붙이듯이 올리고 한번 더, 또 한번 더. 바닐라, 딸기, 메론, 바닐라. 이렇게 4층으로 올려주곤 손님에게 건냅니다. 

 

ㅡ와하하 장난하지마세요 

 

콘의 밑부분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뒤집습니다. 건내받으려던 손님의 손이 무안해집니다. 아 오케이, 오케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건냅니다. 한 번 눈을 흘겨 저를 쳐다본 손님이 잽싸게 낚아채려고 할 때 다시 아이스크림을 뒤집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스크림을 세워 손님의 코에 살짝 묻힙니다. 당황한 기색으로 코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내는 손님이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분홍색 뿔 부분을 쥐고 아이스크림을 핥습니다. 안녀엉. 손을 흔듭니다. 

 

저는 저 장난감 가게 상인의 이름을 모릅니다. 나이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상인을 아이라고 부릅니다. 생긴 것도, 하는 짓도 모두 아이같거든요. 행여 다칠까봐 눈을 뗄 수 없는 아이요. 별명을 그리 지어서 인지 저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니 눈을 떼지 않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엔 당연한 듯이 눈길이 장난감가게를 쳐다봅니다. 오늘은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아이의 얼굴은 볼 수 있는 날인가봅니다. 입이 참 예쁩니다. 하트가 됩니다. 저 하트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습니다. 저 하트를 제 입술로 맛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꿈만 꿀 수 있습니다. 장난감 가게 상인은 남자거든요. 

 

벚꽃 잎이 흐드러지며 이리저리 쌓였습니다. 바닥에도 지붕 위에도 아이의 머리 위에도 사뿐히 쌓였습니다.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 콘 탑의 높이가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손을 뻗어보았습니다. 한 쪽 눈을 찡끄리면 마치 제 손이 아이의 머리 위 벚꽃을 털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은 헬륨이 들어있는 기린 모습의 풍선을 들고 있습니다. 자기 머리에 있는 벚꽃이나 털 것이지 남 걱정이 우선인가 봅니다. 아이가 아기의 어깨 위 분홍 꽃잎을 털어줍니다. 저는 검지, 엄지 손가락으로 아이의 머리 위 하얀 꽃잎을 털어줍니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손을 올려 기린 모양의 풍선을 툭툭 찔러봅니다. 바람 덕분에 풍선이 옆으로 움직입니다. 마치 제가 찌른 것처럼요. 아이가 고개를 들어 휘청휘청 흔들리는 기린 모양 풍선을 올려다봅니다. 미소를 짓던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소리내어 웃으면 들릴 것만 같아 풍선을 찌르던 손을 내려 입을 가립니다. 감았던 한 쪽 눈을 뜨고 똑바로 본 장난감 가게의 풍경은 정말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ㅡ아이스크림 주세요. 콘은 음.. 초록색! 

 

제 앞에 있습니다. 보입니다. 하트 모양의 예쁜 입술이. 모르는 척 합니다. 항상 봐왔지만 처음보는 척 합니다. 초록색의 콘 위로 아이스크림을 쌓아올립니다. 사람 구경하러 온다는 인사동에 저와 아이, 둘 뿐입니다. 제 장난에 호응을 하는 손님들도 없고 지나가는 외국인도 없습니다. 사방이 환하고 제 눈에는 아이만 보입니다. 

 

ㅡ여기요. 

 

아무런 장난 없이 아이의 손에 아이스크림이 쥐어졌습니다. 멀리서 보았던 웃음이 제 눈 앞에서 그려집니다. 손을 뻗습니다. 아이의 머리 위에 있는 하얀 꽃잎을 떼어줍니다. 제 손엔 단색의 초록색 헬륨 풍선이 쥐어집니다. 바람이 붑니다. 옆에있던 콘 들이 우수수 제 위로 쏟아져내립니다. 아이, 그 아이는? 고소한 냄새 틈으로 아이를 찾습니다. 없습니다. 인사동엔 변백현, 터키 아이스크림 상인 혼자 뿐입니다. 

 

ㅡ으악! 

 

ㅡ뭐야아! 빨리 아스크림줘요 아조씨! 

 

미안, 미안. 전기라도 통한 듯 몸이 번쩍 튀어올랐습니다. 벚꽃 향에 취해 잠이 들었나봅니다. 제가 올려다 볼 만한 높이에 다섯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아기가 있습니다. 바로 앞엔 아기의 아버지가 있구요. 목마 타는 것.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 목에 많이 탔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며 아이스크림을 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닐라, 딸기, 메론, 바닐라. 그리고 딸기 맛을 한번 더 올렸습니다. 저를 아름다운 꿈에서 깨운 이 아기에게 제가 왜 그랬는 지 모르겠습니다. 고소한 옥수수 향의 과자들 틈에서 저를 구해줬기 때문일까요? 아기의 눈 앞에서 아이스크림이 거꾸로 뒤집히고 세워지고 뒤집히고 세워졌습니다. 즐거운 미소를 짓는 아기의 어깨 뒤로 장난감 가게가 보입니다. 장난감 가게의 상인을 보고 제 얼굴에도 만개한 꽃들 마냥 웃음이 피어졌습니다. 꽃비가 내립니다. 

 

가게에 손님이 줄었습니다. 저어기 밑 쌈지길 사이드에 진짜 터키인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집이 새로 생겼다하더군요. 처음에는 외국인 천지인 이곳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외국인이 하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외국인이 퍼주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까? 하고 꽤나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만만 이후 광경은 우리 가게에서 사먹은 적 없는 사람들이 룰루랄라 아이스크림을 핥고 다니더군요. 샘이 나서 쌈지길 터키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입에 묻었네- 창피해라. 라는 장난도 쳤답니다. 그렇지만 그 것도 하루 이틀이지. 와, 이젠 안되겠다싶어 국제전화도 불사하고 발신을 했습니다. 형아, 있잖아.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다보니 약 10분동안 통화를 했습니다. 모국에 가있는 터키인 형은 제 한국말을 다 알아들었는 지 수화기 너머로 즐거운 웃음을 흘렸습니다. 아랐어 배켠. 곧 갈게 항쿡에. 휴, 아직도 말하기 평가보다는 듣기 평가 점수가 높은가보네요. 그렇게 강렬했던 국제전화가 끊어지고 일주일 후에 형이 한국에 왔습니다. 저는 그 일주일동안 새삼스럽게도 봄을 훔쳐보며 살았습니다. 봄 꽃 향기에 취한 건지 아이에게 취한 건지 꼴딱 일주일이 지나는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2달을 살았는데요, 뭘. 형은 곧장 인사동 중앙에 위치한 터키 아이스크림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공항에 직접 마중가지 못 해서 미안하다며 등을 토닥여주었습니다. 아 눈이 마주쳤습니다. 장난감가게 상인은 스치듯한 시선이 아닌 정확히 우리 가게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의 뒤에서 2달 전과 같이 인사동 거리를 훑어보던 터키인 형이 어눌한 말투로 아 마좌! 라며 가게를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 장난감가게로 향했습니다. 

 

ㅡ경수! 잘 지냈어? 

 

ㅡ와, 이게 얼마만이야. 타오형! 

 

ㅡ아, 경수. 응. 우리 얼마만 인 것 가톼! 

 

아..? 저렇게 친했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무어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둘이 보였습니다. 뚱뚱한 흑인 남자가 뒤뚱뒤뚱 걸어가고 난 장난감 가게에선 형이 저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리 오라고 합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직 가까이서 보기엔 마음의 준비가.. 라고는 하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두 발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가게 옆 생과일주스를 판매하시는 상인 분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시며 생과일 주스 가게와 아이스크림 가게 사이에 서 계셨습니다. 감사하다며 허리 굽혀 인사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가까워진 상태였습니다. 

 

ㅡ경수, 내 브라더랑 인사 해봐써? 

 

ㅡ아니요.. 인사할 시간이 없었어요. 

 

ㅡ자, 인싸해. 항쿡에선 앗수? 악수? 그거. 해, 하지? 

 

형의 손에 이끌려 아이와 손을 맞잡았습니다. 어색하게 형만 바라보던 시선을 용기내어 움직였습니다. 바로 앞에 손을 맞잡고 있는 경수라는 사람의 눈과 마주했습니다. 그의 봄 내음이 콧속을 찌르고 그의 심장모양 입술이 제 입꼬리를 움직였습니다. 안녕. 처음뵙겠습니다. 

 

와, 엄청나게 덥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바닐라 색의 옥수수 콘위에 아이스크림을 크게 퍼서 올렸습니다. 아이스크림 사장이어서 좋은 이유는 이런 것에 있나봅니다. 더운 여름에 공짜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가게 안은 두 대의 냉동고로 꽉 찼습니다. 간단한 의자 두개와 선풍기 하나만 들여놓았습니다. 냉동고 문을 열어놓고 싶을 정도로 더웠습니다. 장난감 가게의 상인도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부채를, 한 손에는 물총을 들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인사동은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아이스크림 장사 역시 잘되구요. 우리 가게 위 쪽에 있는 지팡이모양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반수 였지만 다른 때보다는 우리 가게도 꽤 매출이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통 건너편으로 인사동의 광경을 바라봅니다. 아니 사실은 노골적으로 장난감가게를 보고 있지요. 아이는 입에 무언가를 넣었습니다. 볼이 볼록하게 튀어나왔습니다. 뭔가하고 봤더니 옆집 아저씨네 플라스틱 통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얼음이었습니다. 언제 와서 받아갔지? 슬쩍 고개를 돌려 옆집 생과일 주스 집을 쳐다보았는데 아저씨 또한 한 쪽 볼이 빵빵했습니다. 난 아이가 저의 가게에 오면 아이스크림도 퍼 줄 수 있는데 왜 옆집에 가서 얼음만 받아갔을까. 거의 노려보다시피 장난감가게를 쳐다보고있는데 마침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피하지 않았습니다. 타오 형이 가고 난 뒤로 간단한 손인사는 나누었거든요. 아이가 고개를 까닥 숙여보입니다. 그리고 마주한 표정은 굉장히 밝았습니다. 평소에도 미소를 잃을 적이 없는 아이이지만 오늘 제 눈에 들어온 저 표정은 저를 보고 웃는다고 제 멋대로 해석해버렸습니다. 장난감 가게와 터키 아이스크림 가게 사이에 많은 사람을 두고 제 목소리가 공기 중에 날았습니다. 

 

ㅡ경수씨! 이거 먹을래? 

 

제 물음을 듣지 못 했는지 대답이나 제스쳐가 보이지 않길래 제가 들고있던 아이스크림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알아들었는 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파를 뚫고 제 귓 속으로 아이의 목소리가 파고 들었습니다. 

 

ㅡ괜찮아요, 형! 

 

형. 

 

터키 아이스크림 특유의 쫀득함을 즐기고 있습니다. 단 맛이 풍기는 차가운 것을 입에 넣고 으으음. 몸을 한 번 떠는 것이 보입니다. 이가 시려웠나봅니다. 아니면 당분덕에 기분이 좋아졌다던가. 저는 턱을 괴고 아이의 냠냠 현장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맛있어, 경수야? 대답이라도 하듯 손님을 바라보던 경수가 고개을 두번 끄덕입니다. 

 

오늘도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장난감 가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손님은 20분 전부터 오지않고 있었기에 뜨거운 햇살이 잘됬다, 하고 저를 재워버렸나봅니다. 양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볼 살이 살짝 밀려 못난이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시장에서 수박을 통통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직업병인지 몸을 번쩍 일으켜 아이스크림 콘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또 한 번 번쩍해 손에 있던 콘을 꽉 쥐어버렸습니다. 바닐라색 옥수수 과자는 제 손에서 바스라졌습니다. 

 

ㅡ아이스크림 주세요. 콘은 음.. 초록색! 

 

어.. 응.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꽃비 내리던 봄에 꾸었던 꿈이. 저 질문에 내가 무슨 행동을 했었더라. 기억해낼 새도 없이 제 손은 당황함을 감추기위해 초록색 옥수수 콘으로 옮겨갔습니다. 눈을 맞추지 못하고 아이스크림만 퍼올렸습니다. 멀리서만 보던 경수가 너무나 가까이에 있습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얼굴이 굉장히 후끈거렸습니다. 선풍기가 꺼졌나. 바닐라, 딸기, 메론, 바닐라. 항상 똑같은 층수와 똑같은 순서로 아이스크림을 쌓아 올렸습니다. 경수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 지 궁금했지만 아이스크림을 건낼 때까지도 눈은 맞추지 못했습니다. 시선을 괜시리 주인없는 장난감가게로 보냈습니다. 

 

ㅡ여기. 

 

ㅡ뭐예요…. 

 

땀 줄기 하나가 왼쪽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렸을 때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경수는 제가 건내는 아이스크림을 받지않고 뭐예요라며 실망스러운 눈꼬리를 했습니다. 어? 하고 되묻자 경수는 아이스크림을 향해 손을 움직이며 무어라 중얼거렸습니다. 응? 하고 되묻고 나서야 그 중얼거림이 들려왔습니다. 

 

다른 손님들은.. 이렇게, 이렇게 해주면서.. 

 

ㅡ저는 왜 안해줘요? 

 

작게 중얼거리던 말이 터진 건 저는 왜 안해줘요? 였다. 뭘? 이라고 머리 속 물음표를 던지자 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사실은 올라가는 광대를 내리누르는 것이었지만, 좋아죽는 웃음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었있습니다. 끅끅 거리며 웃다가 후우하며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쌓아올렸습니다. 녹았을까봐. 정말 녹았을까 봐 더 올려준 것입니다. 네. 이젠 똑바로 경수와 마주합니다. 기대에 찬 눈동자가 보입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여기요 손님. 이라는 멘트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전합니다. 경수의 손이 아이스크림의 초록색 원뿔모양 콘을 잡으려 할 때 콘의 맨 끝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돌렸습니다. 바로 서있던 것이 뒤집힙니다. 신기하게도 5층까지 쌓아올린 단 맛에 차가운 것들이 쏟아지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형. 사람들 사이를 자나가며 경수가 손을 흔들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에 아른거리는 시야에서도 경수는 밝고 선명하였습니다. 

 

10 

경수는 더위를 많이 타나봅니다. 자주 들렀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이젠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수가 저의 아이스크림 집을 쳐다보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눈이 마주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아 솔직히, 아니 솔직히고 뭐시고 그냥 너무 좋습니다. 영영 말도 못 나눌 것 같았는데 이젠 틈만 나면 눈을 맞추니 말입니다. 그것이 저라는 이유가 아니고 아이스크림이라는 이유이긴 하지만요. 매일같이 12시쯤 지나면 경수가 가게를 잠깐 비우고 제 가게로 왔습니다. 올 때마다 공짜로 다섯탑씩 쌓아주었지만 어제부터는 장난을 쳐볼까 싶어 돈을 내라고 했습니다. 아, 같은 상인끼리 이래두 되냐며 찡찡거리는 모습이 눈으로만 담기에 아까운 광경이었습니다. 대놓고 핸드폰을 들이밀며 사진을 찍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제 값 받는다고 선언한 날엔 찡찡거리면서도 더위에 못 이겨 삼천 원을 건냈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인 오늘 12시가 조금 넘어간 시간이지만 경수가 오지않습니다. 일본에서 온 듯한 여자 손님 두명이 오호. 아하. 스고이이. 하며 아이스크림을 받아가고 저는 육천 원을 받았습니다.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장난감가게로 시선을 옮기자 딱 눈이 마주했습니다. 제 눈은 동그래졌지만 경수의 눈은 축 쳐졌습니다. 여름이 아닌 날엔 자리에 앉는 법 없이 장난감을 손에 들고 아무한테나 장난걸고 재미나하던 경수였지만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의자가 생기고 엉덩이가 딱 붙어버렸습니다. 그 표정이 적잖게 웃겨서 입을 가리고 큭큭 웃자 경수가 손을 들어 1자를 만들었습니다. 오른손으로 검지를 든 1을 표현하고 한 손은 간절함을 보이듯 검지를 든 오른쪽 손목을 잡고 있습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촉촉해 침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떨어진다 해도 제 눈엔 노란 푸우의 꿀 같겠지만요. 

 

얼굴에 미소를 띈 채 마주했던 시선을 피해버렸습니다. 의도적인 시야에 두팔이 쳐진 경수가 보입니다. 장난감가게에 없을리가 없는 소형 선풍기를 일정거리 얼굴에 댄 채 무엇을 뒤지고 있네요. 이따가 저의 가게에 온다면 번호를 받고 공짜로 아이스크림을 줘야겠습니다. 이렇게 번호를 알아내고 연락을 하는거죠. 다음 손님이 오려나싶어 고개를 주욱 빼고 인사동 거리를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에라 모르겠다하고 의자에 털썩 앉았습니다. 강에 맞춰있는 선풍기에 몸을 배치시키고 핸드폰을 꺼내어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ㅡ저기요, 형. 

 

어?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들어졌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갑작스레 경수가 눈 앞에 나타나면 심장이 찌릿해 당황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눈을 못 맞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핸드폰에서 들리는 게임오버라는 소리와 동시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 아이스크림 통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습니다. 이거랑 바꿔요. 내민 것은 조그만 기린모양 물총이었습니다.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너무 귀엽잖아.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제 눈치를 힐끗보던 경수가 자신이 여태 사용한 소형선풍기도 건냈습니다. 소형선풍기의 디자인은 소프트아이스크림콘 모양이었습니다. 

 

11 

오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인터넷을 보다가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기에 접이식 우산을 챙겼습니다. 7시 반이 조금 넘은 지금 시간에 저는 지하철을 탑니다.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립니다. 머리에 눌러쓴 스냅백을 거꾸로 돌려쓰고 핸드폰의 시계를 보니 8시가 가까워졌습니다. 경수가 이미 와서 영업준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콧잔등 위로 떨어진 물방울이 곧 빠른 속도로 굵은 빗줄기가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비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날씨가 왜이렇게 지멋대로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방에서 접이식우산을 펼쳐 들었습니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졌고 갑작스러운 비에 주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뜀박질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인사동거리가 아닌 굵은 빗줄기에 폭격을 받은 인사동거리는 음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포차에서 영업을 하는 상인들은 비닐막을 단단히 고정하여 그 속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한 뒤 오늘 장사에대해 한탄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곤 비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할 그늘밑에 자리를 잡았는데 제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어떤 상인이 저의 보금자리에 찾아주신 걸까요? 

 

ㅡ아, 비와요. 형. 

 

홀딱 젖은 경수가 있습니다. 아마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나봅니다. 병신. 급히 가게 문을 열고 좁지만 아늑한 가게 안으로 경수를 데려왔습니다. 냉장고가 거의 자리하고 의자 두개와 선풍기뿐인 내부에 경수와 제가 앉아있습니다. 아, 확실히 말하자면 젖은 경수. 언젠가 같이 앉아있을 공간이라 생각하고 두었던 의자 두개에 주인이 착석하였습니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냈습니다. 항상 땀을 흘릴까봐 수건을 한장씩 챙겼거든요. 경수에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색하게 건낸 수건으로 경수는 머리를 탈탈 털고 얼굴을 닦아내었습니다. 괜찮아? 라고 묻자 예쁘게 미소짓는 입가가 추워요 라며 열립니다. 그때 딱 드는 생각이, 진짜, 입맞추고싶다. 그 뒤로 제 시선은 경수의 입술만 바라보았습니다. 빗줄기가 포차상인들의 생계를 두드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경수 역시 포차상인인지라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의 눈이 그 입술만 바라보고 있는 지금, 더이상 같은 공간에 있다가는 정말 입을 맞춰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ㅡ형, 잠시만. 

 

애써 시선을 돌려 핸드폰의 화면을 켜 잠금화면을 풀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의 두손이 아닌 다른 손이 핸드폰을 가져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로 전화를 겁니다. 경수의 반대손에 있던 다른 핸드폰 액정이 밝아집니다. 제 번호가 보여집니다. 뭐지 이상황? 

 

ㅡ아, 되네. 물에 젖어서 안 될 줄 알았거든요. 

 

제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최근 기록이 떠있습니다. 아무런 이름으로도 저장되어 있지 않는 번호는 아마 경수의 번호일 것입니다. 자신의 핸드폰에 저의 핸드폰 번호가 뜨고 난 뒤로 몇분 뒤 경수는 잠이 들었습니다. 젖은 몸을 닦으라고 주었던 수건을 이불삼아 가슴과 배만 덮고 벽에 고개를 기댄 채 잠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10시가 넘어가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 핸드폰 위에 숫자가 나열된 것을 꾸욱 눌러 연락처 추가버튼을 눌렀습니다. 경수의 성은 아직 모르기에 그냥 경수라고 저장하려다가 고개를 들어 제 앞에 눈을 감은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너 지금 은근슬쩍 내 번호 따갔다? 하고 물었을 때 경수는 그냥 어깨만 씰룩일 뿐이었습니다. 혹시 이 아이도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아이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다해도 저를 좋아해줄리 없겠지요. 저는 그저 아이스크림 상인일 뿐인데요.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곱게 감긴 눈과 부드럽게 닫힌 입술, 하얀 수건이 살짝 튀어나온 배를 가리고 두 손은 정갈하게 모아 단전 위에 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엔 방금 제 번호가 떠올랐던 핸드폰이 들려있습니다. 얼마나 소중하면 잘 때도 손에 쥐고 자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밑으로 내려왔던 시선이 다시 올라가 경수의 얼굴에 박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입술에요. 입을 맞추고 싶습니다. 아니 손가락으로 만져보기라도 하고 싶습니다.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경수의 봄 냄새가 훅 끼치는 것만 같이 눈 잎이 핑 돌았습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경수의 고운 피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연분홍빛 입술이 가까이 보입니다. 코가 닿을 만한 거리에서 저절로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집니다. 비가 점점 잦아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저는 점점 거리를 멀리 하였습니다. 천천히 멀어지는 경수의 얼굴을 보며 제 얼굴엔 아쉬움이 보이지 읺았습니다. 잘 참았다 생각하였습니다. 만약에 입술을 맞추고 경수가 눈을 떠 저와 눈이 마주하였다면 당혹함에 제 어깨를 밀치고 비오는 거리로 뛰쳐나갔겠지요. 지금의 사이까지 오기에 여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것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기다립니다. 봄이 제 품에 안기기를. 

 

12 

그 번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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