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남준과 윤기가 같이 산지 벌써 일주일이었어. 윤기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상했어. 아침부터 낮까지는 주구장창 자지를 않나, 밤이 되어서야 일어나서 활동을 하지 않나.
이 사람은 회사도 안 다니나. 백수인가. 저녁밥을 먹을 때 쯤 일어나는 윤기는 저녁밥도 깨작깨작 먹을 뿐, 오히려 많이 먹는 건 토마토주스였어.
냉장고를 열어보면 토마토 주스 팩이 한가득이었으니까. 윤기는 늦은 밤 소파에 앉아 토마토 주스 팩에다 빨대를 꽂아 빨면서 영화를 보는 걸 즐겼어.
아니면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던가. 하얀색 피아노. 달빛이 잘 드는 곳에 놓여져 있는 피아노를 치는 윤기는 꽤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어.

"아, 깼어? 미안해."
윤기가 피아노 의자의 반을 차지한 남준에게 말했어. 남준은 고개를 저었어. 피아노, 좋아하나봐요. 윤기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자장가도 칠 수 있어요? 남준은 피곤한 눈으로 물었어. 그래, 남준은 불면증 환자였어. 윤기는 피아노 위에 손가락을 올렸어.
남준의 시선은 또다시 윤기의 손에 가 꽂혔어. 부드럽게 선율이 흘러나왔어. 남준은 윤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어. 윤기가 잠시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어.
남준의 피 향기가 달큰했어. 윤기는 입술을 깨물었어. 오랜만에 맡는 인간의, 남준의 피 냄새야. 윤기의 눈동자가 잠시 붉은 기를 띄었다가 사라졌어.
남준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피아노 위에 올려진 손은 여전히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어. 자장가가 끝이 났어. 남준은 잠들었고, 윤기는 잠들지 못했어.
고요한 겨울밤이었어. 윤기는 남준의 목에 손을 갖다대었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맥박이 뛰었어. 윤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어.
그 날의 기억이 밀려왔어. 제 손으로 죽인 정인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던 날이 떠올랐어. 어렸어, 윤기도. 그리고 남준도.
고요한 적막을 깬 건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였어. 남준은 아직 깨지 못했어. 윤기는 남준을 번쩍 들어 대충 소파에 눕혀두었어.

"윤기 형."
태형이었어. 태형이 윤기의 집 안으로 발을 디뎠어. 태형의 눈가가 보기좋게 찌푸려지더니, 소파 쪽을 돌아봤어.
"민윤기."
미쳤어. 진짜, 미쳤어. 태형아. 윤기가 재빨리 태형의 이름을 불렀어. 괜찮아. 태형이 윤기를 뚫어져라 쳐다봤어. 남준의 얼굴은, 몇백년 전과 똑같았어.
남준이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부비며 일어났어. 새벽이었어, 아직. 남준은 다른 이가 있자 그 쪽을 고개를 돌려 쳐다봤어.
"윤기 형, 아는 사람이예요?"
. 태형이 욕을 내뱉었어. 반복이었어. 너무나도 달라진 게 없어서. 윤기는 남준쪽으로 몸을 틀었어. 고개를 끄덕이니 남준이 웃었어.
그러면, 얘기하다 자요. 저는 피곤해서, 들어가서 잘 테니까. 윤기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침실로 들어가는 남준의 말투도, 행동도 다 다정했어.
"형은, 결국 안 괜찮아질거야. 내가 형을 몰라?"
태형의 말이 가슴을 무너지게 했어. 가슴에 묻었던 남준이 다시 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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