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채령아, 오늘 왜 이렇게 궁 분위기가 어수선하지?"
"아, 오늘 등불축제가 있는 날이잖아요!"
"등불축제? 뭐하는건진 모르겠지만 재밌겠다."
"네, 엄청 재밌어요! 밤하늘에 떠다니는 등불들도 구경하고, 귀한 과자들도 맛보고, 인형극도 구경하고. 아 참, 등으로 탑을 쌓아서 소원도 빌고! 재밌는 축제예요."
"등으로 탑을 쌓아?"
"네. 그리고, 탑 쌓은 등에 소원을 빈 후 불을 붙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낭만적이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왜 그 사람이 떠올랐을까. 그 사람이 떠오르니, 일단 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보같은 소리지만, 그를 위한 소원이 왠지 이루어질것 같아서.
"채령아, 우리 등불축제, 가자."
"네? 네!"
채령이도 은근 가고싶었나보다, 저렇게 기다렸다는듯이 대답하는걸 보면. 환하게 웃는 채령이에 나도 빙긋, 웃어주었다. 축제에 가기 전, 왜인지 모르게 치장을 하였다. 간만에 얼굴에 분도 바르고, 입술도 칠하고, 내친김에 채령이도 발라주고. 잔뜩 들뜬 채령이의 재잘거림에 나도 함께 들뜨기 시작했다. 왠지, 기쁜 하루가 될 것 같아.
해가 지기 전까지는 채령이와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채령이 말대로 맛있는 과자도 맛보고, 예쁜 장신구도 구경하고, 싸움난 아주머니들 싸움 구경하고, 엿을 사달라 떼를 쓰며 아예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와 성내는 엄마를 보고서는 얼마나 웃었는지. 또 복작복작한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귀여운 인형극을 볼 때도 즐거웠다. 아, 작은 꼬마가 만들었다며 준 작은 인형도 받고.
인형은 헝겊 안에 폭신한 무언가를 넣고 꿰멘것이었는데, 예쁜 초승달 모양이었다. 열심히 인형을 만들었을 아이가 상상되어 웃으니 채령이도 따라 웃었다. 나는 바느질 진짜 못하는데.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한 사람. 달을 보면 왜 항상 그 분이 떠오를까. 하물며 이런 가짜 달이라도.
손에 인형을 꾹 쥐고, 머리꽂이 가게 앞에 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채령이에게 달려갔다.
"아가씨, 이 머리꽂이 너무 예쁘죠? 아가씨가 하면 딱일것같아요!"
"어, 이거 달 모양이야?"
"네, 반달 모양이에요."
"나, 나 나 이거 살래! 사도 되지?"
"그러믄요! 자, 제가 꽂아드릴게요."
채령이의 도움으로 은빛의 예쁜 머리꽂이를 꽂고 거울을 보니, 거울에 또 그가 비친다. 그가 보고싶은게 분명해. 빨리 궁으로 돌아가 그의 얼굴을 보고싶었지만, 소원, 그를 위한 소원을 빌기 위해 빨리 시간이 갔으면, 빨리 해가 졌으면, 빨리 달이 떴으면. 하고 빌 뿐이었다.
"어, 하늘 예쁘다."
하늘을 물들인 주홍빛깔 물감은 누가 엎지른 것일까. 너무 사랑스러워 소리내어 웃었다. 아가씨, 왜 웃어요? 응, 하늘이 너무 예뻐서. 이제 곧 달이 뜨고, 등불을 띄우겠지?
"아, 맞아! 아가씨, 우리도 얼른 등불 사러 가요. 미리 가야 예쁜 문양이 있거든요. 나중에 가면 다 안 예쁜 문양들만 남는다고요."
"응, 그래! 얼른 가자."
채령이는 꽃 문양이 그려진 등불을, 나는 반달 문양이 그려진 등불을 골랐다. 어느덧 캄캄해진 하늘을 보니, 약간 찌그러진 모양인 상현달이 떠있었다.

그 사람은 보름달을 닮았는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채령이는 내 말을 못 들었겠지만, 보름달이 아니어서 아쉽네요. 하며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탓에 괜히 찔려서 딴 얘기를 했다.
"보름달이면 달 보면서 벤치에서 치맥이 짱인데..."
"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아, 보름달, 나도 좋다고. 하하."
너무 딴 얘기를 했나보다. 당황한 나머지 어색한 웃음을 하, 하. 흘리며 하늘을 봤는데,

"우와..."
검은 하늘을 온통 노란빛의 등불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불씨를 받아 나도, 채령이도 등불을 띄웠다. 멀리 멀리 날아가기를, 마음을 꼭 꼭 담아서. 달 문양의 내 등이 저 멀리 날아가 보이지 않게 되자, 왠지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다. 꼭 그 사람처럼.
"채령아, 우리 소원 빌러 가자."
말이 등불탑이지, 사실 돌 탑 위에 등불을 올려놓고 띄우는 것이었다. 사실 이게 더 좋아. 우리 궁에도 돌 탑이 있으니까. 밤이 되니 쌀쌀해져 살짝 언 손으로 돌맹이를 주워 돌탑을 쌓았다. 채령이는 무슨 소원을 빌건지, 맹렬한 기세로 돌탑을 쌓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소리내어 웃다보니 어느새 채령이와 함께 한바탕 깔깔거리며 웃고있었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돌탑이 완성되었다.
조심스레 달 문양의 등불을 올려놓고, 눈을 꼭 감고 작은 목소리로 소원을 빌었다. 누가 들으면 안 이루어진다지만, 그 사람에게 꼭 들렸으면 해서.
"소 황자님, 우리 소 황자님 얼굴의 상처 다 없어지게 도와주세요. 마음의 상처도 다 가져가주세요. 우리 황자님 행복하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요."
마음속으로 몇 번을 더 간절하게 외친 다음에야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왠지 이루어질것같은 기분이 들어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달이 있었다. 나의 보름달.

"황자님..?"
"너 따라 왔어."
"네?"
"헌데, 너가 날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네."
"아, 아니..."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채령이는 없다. 설마 처음부터 둘이 짠거야? 어이없어 할 틈도 없이, 황자님은 내게 한 발짝 다가오며 말했다.
"머리꽂이도 곱고."
그가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또 한 발짝.
"얼굴도 곱네."
그가 내 볼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또 한 발짝 가까이 와 허리를 숙이고 눈높이를 맞춰, 한참 눈빛을 교환하다가.
"입술도, 고와."

소재를 준 뾰에게 무한 감사와 무한 미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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