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형님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
피가 묻은 칼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으며 소가 여느날과 다름없는 무뚝뚝한 답을 내놓았다. 백아는 그런 형 대신 그의 긴 검을 내려다 보았다. 저 이는 대체 저 칼로 몇 명의 목을 치고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일까. 아직도 채 마르지 못한 선혈이 묻어있는 검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점 짙어지는 소의 광기를 마냥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 아침에 제 형제들을 베어낸 손이고 검이다. 언제든지 저 검에 목이 날아갈 수 있다 하여도 이상할 것 없음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다 그 아이까지 베어 내시겠습니다."
"백아. 실언은 삼가는 게 좋을거다."
"실언이 아닙니다. 피붙이까지 벤 형님이 그 아이라고 못 벨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왕욱!"
"그 아이를 위한다 하시면서 어찌 매일 밤 두려움에 떠는 아이의 심중은 헤아리지 못하십니까!"
의자가 넘어지는 큰 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백아의 꼿꼿함에 멱살을 틀어 잡아쥔 소의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귀한 아이였다. 저를 개늑대라 부르는 이들이 늑대이고 개늑대라 불리는 저가 한낱 토끼에 불과했던 세상에서, 발칙하게도 횃불을 휘두르며 온갖 들짐승들을 쫓아내고 저를 거둔 것이 바로 그 아이의 희고 고운 손이었다. 지금껏 그 아이를 위해 수도 없이 많은 피를 손에 묻혀왔고 오직 그 아이 하나만을 위해 관심도 없던 지존의 자리에 오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 아이만을 위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그런 제 마음을 부정하며 다그치는 백아의 목소리가 온 몸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하는 것만 같아 소는 이를 악물며 눈에 심지를 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너 보다야 낫지.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너는 무엇을 했지?"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십니까?"
백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멱살을 틀어쥔 손을 잡아내는 힘이 만만찮게 강했다. 분노에 절로 떨려오는 소의 얼굴과 손을 한껏 비웃어 주기라도 하듯 여유로운 미소를 띈 백아의 입에서 보기 드물게 낮고 은밀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형님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서 있던 것일 뿐."
"네 놈이...!"
"허나 그 아이를 이리 아프게만 하신다면 이제는 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 잃었으니, 바보처럼 다시 한 번 잃지는 않겠습니다.
이가 악물리는 소리에 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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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백해 추종자야 사약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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