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했던 가을이 지나고, 눈이 한가득 차이는 겨울이 되었다. 입김을 하아, 하고 불면 하얀 입김이 나오고,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한낮의 해에 물방울이 방울 방울 떨어지고, 저기 마당 넓게 하얀 눈이 가득 쌓였다, 수는 이른 아침부터 신이 났다. 눈을 감고 일어나자 벌써 자신의 발목까지 올라와있는 눈에 해맑은 아이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두근거림에 제 가슴에 두 손을 포옥 올리고 무엇을 상상하는지, 참으로 달콤하게 웃어보였다. 채령이의 도움을 받아 따뜻하게 치장하고는 방문을 열고 나가 그분이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그분 방 근처에 멈춰서 숨을 천천히 고르고, 제 옷을 잘 정돈한 후, 제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듣기만 해도 감미로운 그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수는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문을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수야, 일어났느냐.” “예, 황자님. 전, 전에 일어나서 벌써 단장을 마쳤는걸요?” “그렇구나. 오늘도 어여쁘다, 수야.” “아... 그, 오늘 눈이 오신 것을 보셨습니까? 얼마나 많이 왔는지, 제 발목까지 올라오더라구요...” “아, 보았다. 간밤에 눈이 참, 많이도 내렸더구나. 마당에 아주 가득 쌓였어,” “그렇다면... 그 약조를...” “무엇을 말이냐, 수야.” “그,,, 그것,,, 말입니다... 그거,,,” 우물거리며 말을 못 하는 수의 귀여운 모습에 욱은 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말을 못해 부끄러워하는 수의 모습이 귀여울 뿐만 아니라, 그의 정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아, 그것 말이냐,” “참 짓궂으십니다...” “그래,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수, 너와 손을 꼭 잡고, 그 길을 다시 걷자, 하였던 것을 내가 어찌 잊겠느냐. “예... 허면 오늘...!” “그래, 그래. 얼른 가자. 수야, 손을 잡아다오.” 욱이의 손을 꼭 잡은 수와, 욱은 사이좋게 나란히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제 앞으로 앞서가는 욱이의 발자국을 따라 걷던 수였지만, 이제는 그의 곁에서 그의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다. 눈이 가득 쌓인 이 정원은 아름다웠고, 지금 곁에 있는 이와 손을 꼭 잡고 있는 순간이 더욱이 완벽했다. 가만가만 길을 걷던 수가 눈을 잘못 밟은 것인지, 순간 휘청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손을 잡고 있던 욱도 휘정하고 수의 위에 넘어져버렸다. 그래도 욱이의 행동이 빨랐다. 그는 한 손으로 수의 머리를 받쳤다. 눈을 뜨자 제 코 앞에 있는 욱이의 모습에 수는 깜짝 놀라 토끼처럼 눈이 커다래지고,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욱이는 그런 수의 모습을 보고 입 꼬리를 말아올리며 씩 웃어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둘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수의 눈은 더더욱 커다래졌고, 어느새 욱의 소매를 꾸욱 잡고 있었다. 그런 수의 모습을 보면서 욱이는 다가가는 것을 멈추고, 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놀랬느냐. 어찌 놀란 모습도 이리 어여쁠 수 있단 말이냐.” “...” “놀라지 말거라. 다음에는 이 놀란 얼굴이 아니라, 살며시 눈을 감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 “내 그 모습을 기다리겠다, 말하지 않았느냐, 니가 익숙해질 때까지 온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황, 황자님...” “땅이 춥다. 이러다 고뿔에 걸리고 말 것이야. 욱은 넘어져있던 수를 안아 일으켜주었다. 그리고는 수의 옷에 묻은 눈들을 털어주고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양 볼을 붉게 물들인 수의 모습은 누구보다 사랑스러워보였다, 그 둘은 올 때처럼 서로의 손을 꼭 잡고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뒷모습이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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