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aro Oshio_Twilight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되어가고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간다
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
축,생일/신해욱
'세상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은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편이었다.'
생의 이면/이승우
몸이 아프면 슬쩍 달라붙어 당신 손을 잡고 그 어깨에 기대 밥 한술 받아먹고 싶다
사랑한다고 사랑받고 싶다고 말을 못해
무슨 병에라도 옮아서는 곧 떨어져버릴 듯이 매달려 있고 싶다
사과/이향
그런건가?보이지 않는 건가?
그런건가?들리지 않는 건가?
그런건가?알지 못하는 건가?
그런건가?다 소용없는 건가?
그런건가?해가 또 지는 건가?
그런건가?이렇게 살다 가라는 건가?
그런건가?하루하루 오늘은 괴로움의 나열인데
그런건가?띄어쓰기도 없이 범람하며 밀려오는 나날
그런건가?내일도 오늘과 같다는 건가?
반투명한 불투명/김승희
너는 거대한 사물에 물을 뿌리고 있다
그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것은 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꽃이 아니다
꽃은 색이 있고 향기가 있다 무더기로 살다가 무더기로 죽는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하나이고 색이 없다
살지도 죽지도 않고 무한히 자라난다
요즘은 잘 사냐고 물었다
잘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요즘은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했다
꽃이 아닌 그것이 비닐하우스를 채웠다 현기증이 난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이곳에는 빛이 가득하다
몸을 잃을 만큼
물을 뿌렸다
물이 흩어진 곳에서 어둠이 번식한다
지엽적인 삶/송승언
발자국마다 벼랑이다.
바람 속에 찍힌 무수한 새의 발자국은 누가 남긴 유서인가.
빈정거림처럼 구름이 흩어지고 난 후 산 그림자 폭풍처럼 깊어진다.
비로소 적막이 입술을 여는 저녁이면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도 실행되지 못한 유서로 남아 고요해진다.
나 다시는 돌아가지 못해,꽃 피지 않은 꽃나무를 꺾어 편지를 쓰는 동안
그림자들 무수히 내 몸속을 들락거리고,
내 기록은 여기까지라고,막막했던 공중은 오늘 하루만큼 더 막막해질 것이고,
어제 꽃피지 못한 하루는 버려진 채 빛날 것이다.
무릎을 모으고 나를 기다리는 저 그림자의 검은 입속으로 난 무엇을 앞세울 수 있을까
나를 받아줄 수 있겠니
나를 안아줄 수 있겠니
그림자들/이승희
자신들이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아마 옳은 말일 것이다.하지만 현대사회는 타인의 불행을 지워버림으로써 본인의 불행을 확대해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들은 별 볼일 없었다.겨우 벌고,프리랜서로 일하며 뜬구름 잡는 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어떤 의미에서 세월이 그들 편인 것은 사실이었다.
감정을 자극하는 이미지의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보잘 것 없는 위안이었다.
사물들/조르주 페렉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최후의 목격자가 되지 못했다.
훗날,바람보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다.
사람만큼,나무도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일기장이 남겨졌으나,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좀더 먼 훗날,우리의 이야기는 뱀피리를 부는 소년들에 의해 노래로 구전되었다.
그 노래의 시작은,
마녀가 돌아왔다,였다.
늑대의 문장/정유진
암울한 마음.오후의 혼몽한 잠 속에서,고통은 마침내 내 머리통을 폭파해버린다.
그것도 관자놀이 부분을.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하나의 총상이었다.
상처 구멍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모서리 모양으로 찢겨 너덜거린다.
사납게 열어젖힌 양철 깡통처럼
꿈/프란츠 카프카
흑빛도 쓴 맛도 저 눈 감은 사람도
캠퍼스의 밤은 아름답지
나는 여름을 기다려
환상의 섬에 갈 거야
해변이 아담하고 인적이 드물다는
마을에서는 대마를 기르고 해 지는 바다에 떠 있다는
버스에서는 잠이 들어
나는 그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
기대어 잠드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고도 생각해
쓸데없이 우는 것이 미안하다고도 생각해
동물원에는 가지 못했어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도 못 봤어
오늘은 긴 잠을 잤거든
겨울은 길었고 우리는 걸었지/김이강
헌데 소녀의 얼굴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예뻤고,
그녀의 파란 눈은 빨려들 것만 같이 매력적이었고,그 매력에 무너지는 나 자신을 느꼈다.
나는 꽃과 같은 사물이든 새든 사람이든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늘 맥을 못 춰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습관 같은 것이 되었기에,속수무책으로 마음이 약해졌는데,
마치 그런 것처럼 했는데,그런 때에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마음을 아무리 독하게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그녀 또래였다면 그녀가 아무리 사납게 굴어도 그 못된 성격을 참으며 대책 없는 사랑에 빠졌을 것만 같았다.
어떤 작위의 세계/정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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