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에게 쫓기던 조선의 아낙네들이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순결을 잃느니 절벽에 떨어져 죽는 게 낫다고 결심한다. 그때, 길채가 죽음을 결심한 하녀 종종이를 붙잡으며 말한다 “전에 강화도 때 다 뛰어내리는데 우리는 살았어. 난 살아서 좋았어.” 그렇게 길채는 죽으려는 사람들을 설득해 살자고 다짐한다. MBC 〈연인>은 병자호란이라는 환난 속에서 살아간 민초의 삶과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드라마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여성 ‘유길채’를 연기한 배우 안은진(32)은 13회에 나온 이 대사를 촬영이 힘들 때마다 꺼내 보려고 적어두었다고 한다. 길채를 연기하며 자신이 도리어 “단단해졌다”는 배우를 21일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오리지널 작품의 강세 속에 지상파 드라마로 드물게 큰 인기를 모아 계획보다 1회 연장해 지난 18일 21회로 종영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12.9%(닐슨코리아 기준)로 자체 최고를 기록했다.
방영 전 연기하는 드라마마다 흥행에 성공하는 배우 남궁민(이장현 역)의 출연작이라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안은진을 두고는 초반 미스 캐스팅 논란도 있었으나, 이장현과 유길채가 보여주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울리며 극의 인기를 견인했다. 감정에 솔직하며 발랄한 ‘애기씨’의 모습에서 병자호란 이후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생을 꾸려가는 길채 캐릭터도 드라마의 발견이었다는 평이 많았다. 안은진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리고,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역경도 있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대극과 달랐다”며 “그간 한 번도 다뤄지지 않은 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파트 2에서 길채를 통해 다뤄진 것도 드라마가 사랑받은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8~16회 정도 짧은 드라마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21부작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여주인공을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큰 서사 속에서 인물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작품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감독님과 작가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대본 리딩 때 따로 봐주시고, 남궁민 선배도 조언을 많이 해줬다. 초반 캐릭터를 모두의 힘으로 구축해 놓다 보니 다음이 덜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호연을 펼치며 올해 MBC 연기대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남궁민에 대해서는 “선배는 장면을 어떻게 찍으면 어떻게 나올지 알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명확한 답을 줘서 너무 든든했다”며 “(대상을) 열렬히 응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연인> 촬영 현장에서 아홉 커플이 탄생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됐다. 힘든 사극 촬영이 현장 스태프의 분위기를 돈독하게 만들다는 것이 이유로 분석됐다. 본인의 연애에 관해서는 “예전에 〈무한도전> 볼 때 노홍철씨의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이라는 말이 감명 깊었다”며 “같이할 수 있는 거구나 싶었고, 둘 다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2012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데뷔했고, 2018년 웹드라마 〈숫자녀 계숙자>로 드라마를 처음 시작했다. 2021년 방영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에서 레지던트 추민하 역을 맡아 김대명과 ‘추추커플’이라 불리며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연인>은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은진은 “주변 분들이 과거에는 ‘추추’라고 부르시다가 요새는 ‘길채’로도 부르신다. 부모님도 ‘길채야’이러시고, 주변 반응을 통해 (인기가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연인) 마지막 촬영을 끝낸 지 4일째라 잘 모르겠다”면서도 “작품이 잘되고 사랑받은 것뿐 아니라, ‘하면 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특별한 해였다. 배우로서 자신감을 얻은 해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62595?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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