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컴!!!!!!!!!
당신과 |
툭툭 쇼윈도를 치는 빗방울이 점차 거세진다. 한 차례 내리는 소나기는 답답함을 가셔 줄 정도로 세게 내렸지만 성규에게는 예외로 다가왔다. 더워지는 땅을 차갑게 식히는 소나기라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 상황을, 그러니까 성규의 발목을 묶게 만든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 성규는 비가 오기 전부터 여기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성규는 쥐고 있던 숟가락을 좀 더 세게 잡았다. 세게 쥔 덕분에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사라졌다. 어색한 표정. 어색한 시선. 어색한 분위기. 무겁고 어색함으로만 가득한 공기에 어깨가 짓눌린다고 생각하며 성규는 우현을 응시했다. 우현은 알까? 지금 분위기가 어떠한지? 의문 섞인 성규의 시선이 우현에 닿지만 알아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가게 앞에서 마주했을 때 보여줬던 그 당황스러움과 쑥스러움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뻔뻔하게까지 느껴지는 우현이다. 살짝 구부러진 눈. 언제라도 웃을 것만 같은 입꼬리. 전체적으로 인내하며 성규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현에 성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뱉는 상상은 여러 번을 한 것 같다. 짐짓 피곤한 표정을 지은 성규는 숟가락을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사실 시내를 지나치는 길이 성규의 집으로 가는 빠른 길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두운 조명 아래에 있었던 사건 이후로는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자신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도망치듯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지 말이다. 굳이 억울한 마음을 숨기고 싶은 기분이 아닌 성규는 우현을 흘겨봤다. “그래요?” 확인하듯 물어오는 우현에 성규는 “그래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우현이 나직이 목울대를 울린다. 성규가 한 말을 깊게 생각하는 태도는 아니였다. 마치, 웃음을 참으려는 것 같은. “많이 고민했어요.” 톡톡. 우현의 손가락이 일정한 리듬을 타며 테이블 두들겼다. 딱히 여유로운 사람의 행동은 아니였다. 하지만 표청 만큼은 여유롭기 짝이 앖 없었다. 묘하게 대조되는 두 다름과 약간 초조한 우현의 마음을 읽지 못한 성규는 긴장할 뿐이였다. “무엇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입을 달싹였다. 성규 자신도 무슨 말을 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치 듯한 말이였다. 하지만 성규의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캐치한 우현의 움직이 뚝 멈췄다. 그나마 톡톡거리던 반복된 소리가 사라지자 더욱 어색한 공기가 가라앉은 느낌이였다. 가게 너머로 내리는 빗소리만 미세하게 들려왔다. 그것 말고는 들리는 것이 없었다. 짜증기 가득한 성열의 목소리도 둔한 것 같은 명수도, 모두가 여기에 없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성규는 제 가슴자락을 잡았다. 쿵쿵. 조요한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심장 소리가 요란하게 다가온다. 왜 이럴까. 평소와 다름이 없는데 오늘따라 크게 느껴진다. 쿵쿵. 성규는 눈을 내리떴다. 시선을 밑으로 내린 성규의 표정은 여느때나 다름 없지만 묘하게 굳어 있었다. 지금 그가 드는 감정은 당황이였다. 성규는 메마른 제 입술을 혀로 축였다.
사실 무척이나 긴장한 상태다. 그리고 우현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곧바로 후회 하고 말았다. 얘기하지 말라고 물어서 동의한다면 지금 이 모든 상황이 헛수고로 돌아갈거다. 그건 싫다. 우현은 굳은 시선으로 성규를 응시했다. 알고있지만 애써 부정했던 감정을 깨닫던 시간과 지금 이 말을 하기 위한 다짐이 다 없어지는 것은 싫다. 우현은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였다. 사실 다짐이고 뭐고, 일단 너무 찌질한 반응이였다. ……남찌질.
속으로 했던 생각들을 다 옆으로 밀어낸 우현은 성규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성…….” “말!” 갑자기 외치는 성규에 우현이 열었던 입을 합 다물었다. 대신 눈만 끔벅이며 성규를 바라 볼 뿐이였다. 우현의 기다림은 성규에게도 느껴졌다. 성규는 슬그머니 감았단 눈을 떴다.
사실 먈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머리와 달리 입은 다른 것을 말했다. 바보, 바보. 성규는 그런 자신을 탓했지만 표정이 밝아지는 우현에 그랬던 감정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기분이였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감정이에요.”
“하지만 확실해요.” 우현은 곧은 눈빛을 성규에게 보냈다. 우현을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짓는 특유의 표정과 분위기라는 게 있다. 하지만 지금은 특유의 그 분위기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저는 그 쪽이 좋아요.” 떨리는 목소리, 떨리는 시선, 떨리는 심장. “연애하고 싶어요.” 성규는 묻고 싶었다. “누구와?” 그리고 우현은 금방 대답을 할 것이다. 바로, “당신과.”라고. 간단했다. 성규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성규가 여지껏 살면서 여자친구에게 고백 받던 순간도, 차였던 순간에도 겪을 수 없었던 느낌이였다. 고백을 받았을 때는 두근거렸고, 차였을 때는 울적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그 때 그 순간이였을 때만이였다. 그래, 지금과는 달리. 단순하게까지 느껴지는 감정이다. 옛 과거의 자신은. 성규는 아른거리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성규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집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상황이 뚜렷하지 않았다. 바로 어제 일인데. 성규는 눈을 꽉 감았다. 그러자 흐릿하던 어제의 기억이 점차 또렷하게 다가왔다. 성규는 우현에게 말했다. “착각이란 생각은 들지 않아요.”라고. 우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속이 다 시원하단 표정을 짓고 있는 우현은 천천히 “어떤 감정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착각이 아니야.”라며 성규에게 쐐기를 박았다. 착각이 아니냐는 성규의 말은 성규의 마지막 줄이였다. 그리고 우현은 그 줄을 끊어버렸다. 그 다음 말이 뭐였더라? 성규는 찬찬히 기억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
그 말에 우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입꼬리를 당겼다. “아니였죠. 하지만 그렇게 될 것 같아요.” 한 때는 평범했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말한 우현은 눈을 가늘게 휘었다. “그 쪽 한정으로.”
“나는…….” 성규의 말에 고개 숙였던 우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따스한 다갈색 눈을 보며 성규는 그 시선을 피했다. “잘 모르겠어요.” 우현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 감정을 금방 없앤 우현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성규의 오른 손등에 제 손을 올렸다. 시선을 내리 뜬 우현은 조금 허무하게 웃어보였다. “우리 서로에 알아가요.” “생일이랑,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여러가지 등등……. 아직 사귀지는 않지만. “지금은 비록 재미없게 고백 했지만, 다음에는 아니에요.” 힘이 서린 말에 흠칫 어깨를 떤 성규는 멀거니 우현을 응시했다. 서로 시선이 닿자 우현은 미소를 지었다. “꼭이요.” 그리고, 자신은 뭐라 했었지? 목이 붉게 달아오른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비명을 지른다면 성종이 화들짝 놀라겠지. 아니, 학교에 갔으려나. 성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핸드폰 벨소리에 액정을 확인하니 성규를 밤 새게 만든 장본인이 떡하니 나타났다. 성규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반색한 우현이 “지금까지 묻고 싶었어요. 핸드폰 번호.”라며 활기찬 목소리와는 달리 수줍게 건넸다. 그리고 서로 번호를 교환했지. 지금 전화가 오는 것처럼. 성규는 이불을 확 머리 끝까지 올렸다. 아니라고, 거절하는 말이 떠오르지만 입 밖으론 나오지 못했다. 성규는 손등을 제 이마 위로 올렸다. 성규의 번호를 저장한 우현의 미소는 무척이나 화사했었다. 순간 성규가 말을 잃을 정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