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웅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클럽 안의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흥에 취해 있다.
와인잔을 손에 든 채로 클럽 안에 있는 여자들을 쭉 스캔하는 저 남자의 행거칩, 취한 건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친구에게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는 저 여자의 하이힐, 그리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짧은 미니 원피스. 각자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빨간색을 비췄다.
오늘 클럽 파티의 드레스코드는 '레드' 였다.
분위기는 무르익고 술에 취한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생일 축하를 위해 모였던 이 파티는 결국 추억을 풀어놓는 동창회가 되어 버렸다.
저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지 예전 이야기를 하기 바쁘다.
웃으며 이야기에 꼈다가, 또 한 잔 하자는 말에 술을 한 모금 마셨다가. 술에 잘 취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적당히 열이 올랐고 적당히 정신이 몽롱했다.
" 한 잔 더 마실래? "
언제 내 옆으로 온 건지 동창인 남자 하나가 내 옆에서 술병을 흔들며 물어온다.
" 너 설마 김동혁…. "
" 뭘 그렇게 놀라. 너무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본 거야? "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절로 새어나오는 웃음.
김동혁!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내 웃음에 김동혁 또한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 어딜 갔길래 그동안 연락 한 번 안 했어! "
" 미안. 미국에 있었어. "
" 미국? "
" 졸업하자마자 바로 갔었거든. 오늘 희재 생일이라서 온 거야. 한국에 잠깐 볼 일도 있고. "
그렇다고 연락을 한 번을 안 해? 내 반가움 섞인 핀잔에 김동혁이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보고 싶었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김동혁은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친해진 친구였다.
아니. 다시 정정. 김동혁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틀어서 처음으로 내게 진심으로 다가와준 친구였다.
중학생 때부터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 때문인지 다들 이상하게도 날 불편해했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런 취급이 정말로 싫어서 애써 내가 먼저 다가가곤 했지만 아이들은 내게 넘지 못할 선이 있는 것 처럼 행동했다. 뒤에서 작게 욕을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쟤네 부모님 △△ 그룹 회장님이라며? 진짜? 그럼 쟤가 그 소문의 막내 딸이야? 어쩐지 쟤 입고다니는 옷 봤어…? 쟤 가방도 명품이잖아, 저거…. 우리랑 비교 되서 같이 다닐 순 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욕을 먹은 이유는 없었다. 잘못을 한 것이 없었으니까.
고등학생이 되고도 달라진 건 없었다. 다들 날 무슨 괴물 보듯 행동했다. 내게 실수를 할까봐 늘 조심스러웠고 불안해했다.
친구라면 흔히 할 수 있는 그런 농담이나 장난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먼저 다가와준 건 김동혁이었다. 반장이었던 김동혁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처음으로 말을 걸었었다.
야. 너랑 나랑 음악 같은 조야. 너 떡복이 좋아해? 나 지금 배고픈데 우리 떡볶이나 먹으면서 수행평가 얘기나 좀 하자. 내가 잘 아는 떡볶이 집이 있어. 요 밑에.
김동혁과 나란히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에 젖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얘랑은 그 때 얘기만 해도 자꾸 웃음이 났다.
너 그럼 아예 미국에 사는 거야? 내 물음에 김동혁이 고개를 저었다.
" 곧 다시 올 거야. 누나가 미국에 있으니까 잠깐 유학 차원으로 간 거지. "
" 맞아! 언니는 잘 있어? "
" 말도 마. 애 낳더니 아줌마 다 됐어. "
김동혁의 말에 킥킥 웃곤 말했다. 너 방금 그 말 언니한테 다 이른다?
김동혁이 헐, 하며 내 볼을 쭉 잡아당겼다. 어디 한 번 일러보시지.
아파, 아파. 아프다고 놓아달라고 바둥거리며 그 손을 떼기 위해 내 손을 젓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내 휴대폰의 화면이 반짝이는 게 느껴진다. 김동혁도 느낀 건지 내 볼을 놓았다. 아픈 볼을 살살 쓸며 휴대폰을 집어드는데 그 이름에 순간 몸이 멈칫했다.
'바비'
왜 전화가 안 오나 했다. 으, 하고 짧게 신음이 내뱉어졌다. 술이 점점 깨는 기분이 든다.
빨리도 전화하네…. 하고 중얼거리자 김동혁이 응? 하고 되물어 온다.
여기 오기 전 바비의 모습이 눈 앞을 스쳤다. 한 번만 보내주면 안 돼요? 하는 내 애교 섞인 물음에도 바비는, 아빠가 뭐라고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은 건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그 목소리는 정말 딱딱하고 단호했다. 몇 일 전에 웃었던 게 다 거짓말이 었던 것 처럼 그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그 사람은 꼭 웃을 줄 모르는 로봇 같았다.
안 된다고 안 나갈 내가 아니지.
바비가 잠깐 다른 일을 하러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 곳의 다른 경호원들을 살살 꼬셨다. 그리고는 탈출 성공! 이정도 탈출 쯤은 내겐 누워서 떡먹기였다. 지금까지 내가 따돌린 경호원들이 몇 명인데.
자꾸만 울리는 휴대폰을 일부러 뒤집어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동혁이 물어 온다.
" 누구 전환데? "
" 바비. "
" 바비? "
" 내 경호원. "
"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
" 몰라. 안 받을래. 받으면 분명 잡혀갈 거란 말야. "
저 사람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아? 꽉 막힌 사람이야. 아빠가 뭐라고 말해놓은 건지 잠깐만 놀다 오겠다고 하는데 절대 안 보내준다니까.
칭얼대는 내 말에 김동혁은 웃으며 가만히 들어주기만 했다. 한참을 바비에 대한 푸념 섞인 내 말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클럽 안에 다시 울리기 시작한 기계음 섞인 큰 음악소리에 김동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밀어 온다.
" 가자. 춤이라도 좀 춰야지. "
김동혁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틈에 묻혀 음악에 몸을 맡긴 채로 살짝 살짝 몸을 흔들었다. 별로 오랜만인 것 같진 않은데 꽤나 즐거운 느낌이었다. 이렇게 귀를 쿵쿵 울리는 이 느낌도 좋았고 아무 생각 없이 몸을 흔들 수 있는 이 공간도 좋았다. 내가 이렇게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춤을 출 수 있는 곳. 아무런 걱정도 없이 몸을 흔들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몸을 흔들다 잠깐 주위를 살피니 김동혁은 언제 저기까지 간 건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낯선 여자들과 웃으며 함께 춤추고 있다. 저 뺀질이. 여자 앞에서만 저렇게 눈웃음 짓는 거 봐! 그런 김동혁이 밉지 않아서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내 앞으로 낯선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 춤 추는 거 좋아하세요? "
" 네? 네. "
" 외모랑은 다르게 되게 활동적인 성격이신가 봐요. "
" 외모는 어떤데요? "
내 물음에 남자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조용하실 것 같았거든요. 춤보다는 책이나 꽃 다듬는 걸 좋아할 것 같은?
남자의 말에 나도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와 딱딱해 보이지 않는 조금은 캐쥬얼한 복장. 말로 설명하자면 이 남자는 조금은 지적이고 댄디한 스타일의 남자였다.
그래도 뭐. 내 눈에는 바비보단 멋있음이 덜했다.
호감형인 이 남자와 이야기 하는게 싫지 않아서 몇 마디 더 걸어오는 그에게 웃으며 답했다. 살짝 살짝 리듬을 탄 채로 시선을 돌리다 한 곳에서 걸린다. 내 시선은 저절로 그 곳에 고정되었다.
언제부터 그 곳에 서있었던 건지 바비는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의 위쪽 벽에 기대선 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숨을 짧게 흡 하고 들이마셨다.
날 바라보던 그는 제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살짝 흔들어 보인다. 전화는 왜 안 받으십니까. 이만큼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그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실례할게요. "
남자를 향해 웃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곤 바비가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바비와 함께 온 낯익은 얼굴의 경호원에게 내 옷과 휴대폰, 나머지 짐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가져오도록 한 뒤 바비의 앞에 섰다. 왠지 이 앞에 서서 그의 시선을 받으니 몸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쭈뼛대며 제 앞에 선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는 별로 키가 크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힐을 신은 나보다 이만큼이나 컸다.
" 분명 안 된다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
" 그건…. "
" 이렇게 자꾸 마음대로 하실 겁니까. "
혼내는 듯한 그의 말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괜히 바닥만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 생일 파티에 온 것 뿐인데….
하지만 마땅히 변명을 할 것도 없었다. 파티 장소부터가 그닥 좋지는 않았다. 보수적인 저 사람에게 클럽이라는 것 자체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 뻔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보며 바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어깨에서 따뜻한 느낌이 느껴진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바비가 입고 있던 정장 마이를 벗어 내 어깨에 덮어준다.
옷을 덮어주기 위해 조금 전보다 더 가까워진 바비를 확인하고는 또 다시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조금 전 멀리서 시선이 마주쳤을 때 처럼 그렇게.
늘 내 옆에서, 내게 거리를 두고 걸어가던 사람이었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 마주보고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가슴이 쿵쿵거렸다.
클럽 안을 가득 채운 담배 향과 같은 불쾌한 향과는 전혀 다른, 기분 좋고도 시원한 바비의 향이 코 끝을 스쳤다.
" 다 큰 여자가 이렇게 입고 다니시면 어떡합니까. "
" ……. "
" 이런 거 입고 다니지 마세요. "
바비의 말에 물끄러미 바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깐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가 입은 원피스를 지나 신고 있는 구두까지로 시선을 옮겼다.
아주 약간,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또 구두 신으셨습니까. "
인상을 쓴 채로 내 구두를 내려다보던 바비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저 잘생긴 얼굴에 주름 지면 어떡하나…. 일그러진 그 얼굴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펴주고만 싶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다시 나를 올려다본 바비가 먼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따라오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하에서 밖으로 나오자 갑작스럽게 닿는 차가운 공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어깨에 덮힌 바비의 마이를 조금 더 당겨서 바람을 막고 바비의 뒷모습만 바라보니 미리 대기해둔 차로 걸음을 옮긴 바비가 뒷자리의 문을 열었다.
" 타세요. "
무뚝뚝한 바비의 말투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바비가 열어준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를 지나서 반대쪽, 그러니까 조수석의 문을 열곤 그 안으로 몸을 앉혔다.
내 행동에 순간 멍한 표정으로 밖에서 내 행동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던 바비다. 문득 정신을 차린 그는 그대로 뒷자리의 문을 닫곤 운전석의 문을 열어 차 안에 탔다.
" 뭐 하십니까. "
" 뒤에 앉기 싫어요. "
" 왜요. "
바비 얼굴 보고 싶어서요.
숨김 없는 내 말에 바비가 날 아주 잠깐, 늘 보던 눈빛과는 다른 눈빛으로 그렇게 아주 잠깐 나를 바라보았고, 그대로 바비를 보기 위해 시선을 돌린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0.5초, 약 그 정도의 짧은 아이 컨택.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눈을 맞춘 바비가 내게서 고개를 획 돌려 앞을 바라보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가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나도 시트에 몸을 기대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술을 마신 것도 있고, 클럽 안에서 춤을 춘 것도 있고, 차 안의 공기도 따뜻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몸이 나른해졌다.
무엇보다도 코를 간지럽히는 바비 향기때문에 온 몸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 내 어깨에 덮혀 있는 이 마이에서 자꾸만 낯선 바비의 향이 풍겼다.
게다가 매일 뒷자리에만 앉다가 처음으로 바비의 옆에 앉게 된 지금, 바비에게서 나는 이 향기가 조금 더 진해졌다.
" 주무실 겁니까. "
눈이 살살 감기는 나를 본 건지 바비가 운전을 하다 말고 내게 물어왔다.
졸려요….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에 감길 듯한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며 웅얼거리자 신호에 걸린 건지 차가 잠깐 멈춰선다. 바비가 잠깐 멈춘 틈을 타서 뒷좌석에서 담요를 꺼내 내 무릎 위에 올렸다. 네모 반듯하게 접힌 담요를 바라보자 살짝 웃음이 났다.
이 사람은 담요도 꼭 자기 닮게 접어놨어.
내 웃음에 바비의 시선이 또 잠깐 내게로 닿아 온다. 그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그를 향해 고개를 획 돌리자 그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앞쪽으로 돌렸다.
묘한 기분이었다. 일부러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
평소였으면 내 무릎 위로 담요를 펴서 덮어줬을 텐데 오늘은 그저 접힌 담요를 내 무릎 위에 올려두기만 할 뿐이다.
이상한 건 없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바비의 모습에 물끄러미 그 옆모습만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느껴지면 다시 날 한 번 바라볼 법도 한데 바비는 꿈쩍하지 않고 신호에 멈춰 선 채로 앞만 바라보았다. 앞에 딱히 볼 것도 없으면서….
" 혹시 말이에요. "
" 네. "
" 저한테 화났어요? "
" 네? "
" 왜 저 안 봐요. "
" 그런 거 아닙니다. "
" 맞잖아요. 나랑 눈 마주치면 피하기 바쁘고. 꼭 보기 싫은 사람 처럼. "
내 말에 바비가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하지만 또 그 시선은 내게 오래 닿아있지 않았고 금새 앞으로 돌아간다.
그런 바비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꿍한 마음이 들었다. 저 행동은 뭐야… 기분 나쁘잖아. 내가 자기 말 안 듣고 나갔다고 그러는 걸까.
화가 났으면 화를 내지 왜 사람을 본 척도 안 하는 거야…. 왠지 모르게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 말 안 하고 나온 거 때문에 화나서 그래요…? "
화를 내기보다는 조금은 주눅든 내 말투에 그제야 바비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나와 눈을 맞춘 바비는 내 옷을 향해서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곧바로 시선을 앞으로 돌렸고, 때 마침 바뀐 신호에 바비가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 화난 거 아닙니다. "
" 그럼요…. "
앞만 보고 가던 바비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 해도 저 사람 한숨 쉬는 모습을 몇 번을 보는 거야…. 그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바비가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떼다가, 잠깐 멈췄다가. 바비는 한숨과 함께 내뱉듯 대답했다.
"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
" …네? "
갑자기 저건 무슨 말이야.
네? 하고 다시 되물어오는 내 목소리에 바비가 짧게 답했다. 아가씨 옷이요.
그제야 오늘의 내 옷이 어떤 옷이었는지 기억이 났다. 몸에 딱 달라붙은 짧은 원피스는 내가 시트에 앉음과 동시에 더 짧아져서 조금은 아슬아슬한 길이가 되어 있었다. 어깨도 파였지만 그나마 어깨는 바비의 마이가 덮혀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 하는 바보같은 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나오고 곱게 접혀있던 담요를 펴서 그제야 내 무릎 위에 덮었다. 뭐라고 바비에게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문 채로.
" 너무 짧습니다. "
" 네? "
" 치마 말입니다. "
" ……. "
바비의 무뚝뚝한 말에 대답 대신 알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쪽을 힐끔 바라본 바비가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운전에 집중한 채로 말했다.
" 밑에 보면 운동화 있습니다. 그걸로 갈아 신으세요. "
" 운동화요? "
" …구두 계속 신으면 발 아프시잖습니까. "
바비의 말을 듣고 몸을 굽혀 바닥을 살피니 그 곳에 가지런히 놓여진 운동화가 한 켤레 보인다. 내 운동화 아닌데….
그렇다고 바비의 운동화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이즈가 작았다. 새하얀 운동화의 크기는 내 발에 꼭 맞을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또 콩닥거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바비가 이 신발을 준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구두를 신지 말라던 그의 말, 그리고 늘 구두를 신고다니는 나. …그래서 준비해 준걸까.
신고 있던 구두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발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잠깐 굳어 있던 풀리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집 앞에 도착한 차가 부드럽게 집 대문 앞에 멈춰선다. 시동을 끈 바비가 먼저 차에서 내려서는 반대쪽, 조수석이 있는 쪽으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열어준 문 밖으로 나가자 바비가 차 문을 닫아 온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더니 바비가 나와 마주보고 서선 나를 내려다보았다.
운동화로 갈아신은 뒤 마주한 바비는 아까 힐을 신고 있을 때 보다 조금 더 올려다 봐야만 했다.
아까 전, 차 안에서와는 다르게 꽤 오래 닿아오는 바비의 시선.
그는 나를 머리부터 발까지 쭉 한번 바라보다가 갑작스럽게 피식, 웃음을 흘려온다.
" 뭐에요, 그 웃음은…? "
갑작스러운 그의 웃음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이렇게 마주보고 보니까 가슴이 쿵쿵. 사실 아까 전에 바비가 준 운동화를 신었을 때부터 규칙적으로 콩닥대던 가슴이 웃음을 본 순간 또 쿵쿵. 귀에 울리도록 쿵쿵거렸다.
내 물음에 바비가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서 집 문을 열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그의 팔을, 정확히는 그 팔의 셔츠 소매를 살짝 쥐었다.
갑작스럽게 잡아오는 내 손길에 바비가 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 왜 웃었어요. "
궁금하게…. 날 바라보는 그 모습을 올려다보니 바비가 다시 한 번 피식 웃어온다.
왜 또 웃어요! 내 말에 바비가 웃음 머금은 그 표정으로 답해왔다.
" 아까까지는 눈 둘 곳도 없이 그렇게나 어른 같더니. "
" ……. "
" 구두 벗고나니까 이렇게나 작아지시네요. "
" …에? "
내가 작아진 게 웃긴 건가. 자기도 별로 안 크면서! 순간적으로 발끈하고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이어진 바비의 말에 순간적으로 몸이 멈췄다.
" 애 같다. 귀엽게. "
마치 어린 강아지를 보듯, 그렇게, 한 번도 날 그렇게 바라본 적 없던 그는 지금 그렇게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그 눈길에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니 멈춰서 있으니 바비가 제 셔츠 소매를 쥔 내 손을 떼온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아프지 않게 잡았다.
" 춥습니다. 들어가요, 아가씨. "
바비의 손이 닿은 곳에 꼭 또 다른 심장이 있는 것 처럼 콩닥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곳은 따끔거리기도 했고, 간질거리기도 했고, 뜨겁기도 했다.
바비의 손에 이끌려 그 뒤를 따라 걷는 내 얼굴로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양쪽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방금 그 눈빛….
아, 오늘도 저 사람에게 또 반해버렸다.
♡
미리 써둔 아가씨 2화가 날아가서 이렇게 조금은 달라진 이야기로 다시 들고 오네요 (ㅠ_ㅠ)
움, 이야기를 끊느라 급하게 마무리가 된 것 같아요
오늘은 새내기의 로맨스에 이어서 두 편!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후다닥 많이 써놓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가씨 기다려 주신 분들도 계시겠죠? (안 그러는 척 잔뜩 기대하는)
제 머리에 그려지는 지원이의 이미지를 여러분도 느끼실 수 있었음 좋겠어요..♡
최대한 상황에 비슷한 사진 찾아보도록 노력해볼게요!
그럼 여러분 하트.. ♡
내일 학교 가는 제 이쁜이들은 좋은 꿈 꾸고 학교 잘 다녀오기!
굿 밤 보내요, 이쁜이들♡
아, 그리고 아가씨는 또 다른 암호닉을 아마 받아야 할 거 같아요
늘 암호닉 신청은 받고 있습니다! 비회원 이쁜이들도 가리지 않으니 슬퍼하지 말아요, 제 독자님들
개한빈에서 쓰시던 암호닉 그대로 쓰셔도 좋고! 확인할 수 있게 암호닉을 꼭 꼭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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