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i A 06
아리아 06
종인과 백현이 함께 걷는 뒷모습을 보다가 차를 돌려 주차장을 빠져나간 찬열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백현과 종인이 걷는 쪽으로 가기 위해 핸들을 돌렸다. 여전히 투닥거리며 걷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 찬열이 속도를 늦춰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얼마간 걷던 둘이 일식집으로 들어갔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한참 보고있던 찬열이 결심한 듯 차에서 내려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에 들어가 종인과 마주보고 앉아있는 백현을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굴었다.
"백현씨. 여기 오셨네요?"
"어? 본부장님, 이런 데서 다시 보네요! 혼자 오셨어요?"
"아, 네."
"그럼 같이 먹어요!"
지난 번 같이 식사를 할 때 세훈이 찾아왔을 때 처럼 종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안좋아졌다. 다음부터는 워킹같은 연습을 해야해서 오늘 같이 먹고 언제 같이 먹어질지 모르는데 무턱대고 찬열을 끌어들인 백현이 미운 종인이었다. 백현의 옆자리에 앉은 찬열이 백현이 건네는 메뉴판을 받아들고 잠시 보더니 저는 이거, 한다. 찬열의 대답을 들은 백현이 종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점원을 불러 종인의 것까지 한꺼번에 시켜버린다. 찬열은 그런 모습에도 질투를 느꼈다. 얼마나 자주 왔길래 말도 안하고 주문하는 거야…….
"본부장님."
"네?"
"본부장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저는 스물…,"
"스물 하나? 둘? 저랑 비슷해 보이시는데."
"……스물 한 살 이에요."
"아, 저랑 동갑이셨구나! 앞으로 말 놓고 지내요, 우리!"
"……그래."
8살이나 까먹다니.
찬열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 거짓말에 뜨끔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때, 종인이 비꼬듯이 말을 걸어왔다.
"스물 한 살에 본부장 이라니. 낙하산 아니에요?"
"야, 김종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렇잖아요."
종인이 백현이 모르게 찬열을 째려보며 말했고, 찬열도 질세라 종인을 같이 노려봤다. 둘의 신경전은 밥을 먹는 내내 계속 되었다.
"형, 이거 먹어요."
"이것도 먹어."
"형 연어 좋아하죠? 연어 더 먹어요."
"장어가 맛있네. 한번 먹어봐."
자꾸만 자신의 쪽으로 오는 음식들에, 백현이 당황해했다.
어디서부터가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남자들 둘과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을 후회하는 백현이었다.
"아, 어쩌라구!"
"내 옆에 타. 난 옆에 누가 안타면 불안하더라."
"형,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뒤에 타요. 저도 누가 제 옆에 없으면 멀미를 해서."
식당에서부터 그러더니, 이번엔 찬열의 차에 타려고 할 때도 자리를 놓고 신경전 이었다. 둘 다 서로의 옆에 백현을 앉히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현의 말에 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김종인, 니가 앞에 타. 내가 혼자 뒤에 탈게."
그리하여 운전석과 보조석에 나란히 앉게 된 찬열과 종인이 있는대로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백현이 매니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핸드폰을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종인이 조용히 궁시렁 거렸다.
"옆에 사람이 안타면 멀미하기는 개뿔. 지금 멀미 하겠네."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불안해서 사고 낼거 같다."
둘은 힐끔 서로를 노려보고 찬열은 다시 정면을 봤고, 종인은 다시 창문을 봤다. 넓은 차 안에서 통화하는 백현의 목소리만 들렸다. 찬열은 그것 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어쩌다 자신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하고 생각할 때 종인이 여기서 내려달라며 말했다. 찬열이 일부러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급하게 세웠고, 그에 종인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찬열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려 했지만, 곧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아! 아이고, 아이고……."
"괜찮아?"
"응, 이마 박았어."
"미안해, 운전 천천히 할게."
"아냐, 괜찮아."
종인이 백현에게만 형, 잘 가요. 하고 인사하고 차에서 내리자, 백현이 곧 뒤따라 차에서 내렸다. 찬열이 백현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 종인이 서있는 쪽으로 오더니 다음에 봐! 하고 짧은 인사만 건넬 뿐, 다른 제스쳐는 취하지 않고 앞좌석의 문을 열어 보조석에 앉았다.
"…뭐야?"
"너 옆에 누구 없으면 불안하다며. 그래서 왔어."
"……."
설마 자신이 한 택도없는 거짓말을 믿은건가…, 찬열은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간신히 참고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백현이 찬열의 옆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찬열에게 말을 걸어왔다.
"찬열아."
원래부터 찬열은 예의 없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물론 나이를 속인 제 탓이 있었지만, 평소의 찬열이라면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찬열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어 오히려 더 좋아지는 기분에 응? 하고 대답했다.
"너 말이야…, 연락 자주 하고 그러자고 했으면서 왜 먼저 연락은 한 번도 안해?"
"……."
"어제도, 오늘도 내가 먼저 하구."
"…아,"
"난 그때 너가 그렇게 말해서, 연락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하냐?!"
"알겠어, 앞으로 자주 할…,"
"…난 니 연락 기다렸는데."
연락을 하기로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은 시간동안 찬열이 어떻게 먼저 연락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백현은 찬열이 먼저 연락해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점점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백현이 사랑스러워 찬열이 오른쪽 손을 백현에게 뻗었지만 전에 자신이 팔을 잡았을 때 당황하는 백현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고개를 숙인 채 찬열이 손을 뻗었다 다시 내리는 모습을 다 보고있던 백현이 천천히 왼손을 들어 찬열의 손등 위에 살짝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흠칫 놀란 찬열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고, 자신의 손보다 한참 작은 백현의 손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본 찬열이 손을 움직여 백현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 껴 꽉 잡았다. 백현이 고개를 들어 찬열의 얼굴을 살짝 보았고, 마주치는 두 눈에 바로 고개를 창문으로 돌렸다. 백현의 그런 모습을 보고있던 찬열이 미소지었다.
행복하다.
지금 두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은 같았다.
백현이 촬영하고 있을 때, 중간에 나가버렸던 예전과는 달리 찬열은 촬영이 끝날 때 까지 백현이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오지 않는 찬열을 찾으러 준면이 회사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촬영장에 있는 찬열을 발견하고 찬열에게 다가왔다.
"본부장님, 결제 하러 가셔야…,"
"형."
"……."
"나 오늘부터 스물 한 살이야."
"……네?"
"스물 한 살. 백현이랑 동갑."
"본부장님,"
"형이 나 대신 괜찮다싶으면 그냥 대충 결제 해줘. 나 오늘 일 안할거야."
준면이 막무가내로 나오는 찬열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갔다. 찬열이 저와 함께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았던 것이다. 예전부터 찬열을 봐 왔기 때문에 제일 잘 아는것은 준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번 말로 뱉은 얘기는 절대 무르지 않을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온적은 없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준면은 기분이 좋아졌다. 찬열 대신 찬열의 업무를 보러 가지만 준면은 웃으며 본부장실로 걸어갔다. 찬열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찬열이 이런 적은 처음이라, 준면은 찬열을 도와 찬열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찬열이 본부장이 된 이후로 한 번도 본부장님, 이 아닌 찬열아, 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준면은 이번만큼은 꼭 찬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찬열아, 형이 응원할게. 화이팅!
*
"찬열아!"
촬영이 끝난 후, 곧바로 자신에게로 오는 백현에 찬열은 마음속에서 구름이 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백현과 있으면 꼭 제가 바보가 되는 것만 같았다.
"배 안고파?"
"고파. 뭐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은데."
"몰라, 아무거나 니가 사주는거~"
백현이 활짝 웃으면서 말하자 그런 백현의 얼굴을 보고 찬열 또한 활짝 웃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입으로만 짓는 미소였지만, 찬열에게는 정말 행복한 웃음이었다. 바보가 되어도 좋았다,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백현아, 좋아해.
아직은 할 수 없는 말을 찬열이 속으로 몇번이나 되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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