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됐다.
이제 학원 일도 어느 정도 안정감 있게 처리를 하게 됐고, 학생들과도 많이 돈독해졌다.
그 중에서도 여주와 두준이는 유독 더 친해졌지만.
두준이는 2년째 알고 지내는거라 그렇다지만 여주는 신기한 케이스였다. 그냥 언젠가부터 조금씩 친해진거였으니까.
그러다보니 여주가 내게 상담을 하는 날도 잦아졌고, 기대는 날도 잦아졌었다.
그럴 때마다 여주가 안타깝고 안쓰러운건 당연했었고.
" 여주 가채점표요? "
여주 담임선생님이신 정선생님께 정중하게 부탁드리자 정선생님이 찝찝한 표정을 지으셨다.
하긴 선생님은 나랑 여주가 알고 지내는 지도 잘 모르시겠지.
여주 성적이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궁금한데 여주한테 물어보긴 그렇고...
요즘 여주가 눈에 띄게 성적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걸까.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 네. 아... 제가 여주랑 좀 친해서, 문과 자료를 찾아주려고 하는데... 여주 성적대가 대략 어느정도인지 잘 몰라서요. "
" 오, 김쌤. 여주랑 많이 친한가봐요? 여자애들이 질투하겠어. "
" 아... 그렇지는 않아요. "
다행히 정선생님이 허허 하고 웃으시며 여주 가채점표를 보여주셨다. 여주한테는 비밀이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면서.
물론... 창고를 가다가 여주를 만나서 다 불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올라서 다행이다. 기분 좋게 웃고 있어서 참 다행이야.
[ 형 오늘 모임 12시까지인거 알죠? ]
" 응. 안 그래도 지금 다 씻었어. "
[ 오케이. 우리 자주 가던 카페 앞에서 만나요. 늦게 오는 사람이 커피 쏘기! ]
" 내가 쏠 일은 없겠네. "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 우와. 형이 웬일이래요? 지각을 다하고 ㅋㅋㅋㅋㅋ "
" 그러게. 김민석이 웬일이냐? 대학 다닐 때도 한~번도 약속 시간에 안 늦은 놈이. "
장난해? 난 약속시간보다 5분이나 일찍 왔는데 이것들이 작정하고 골탕 먹이려고 일찍 나온거면서.
" 형ㅋㅋㅋㅋ 삐졌어요? 표정봐. "
" 쓰읍. 민석아. 표정 풀고 얼른 가서 커피나 사와라. "
" ... "
카페에 들어가서도 밖에서 자기들끼리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랑 동기 놀려먹는게 그렇게 좋냐?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는데
" ...쌤? "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여주다.
순간 누군지 몰라볼 뻔 했었다. 학원에서의 모습과 많이 달랐으니까.
재수생이 아니라 여대생이라고 봐도 될 만큼.
" 어... 이상해요? 이거 작년에 입고 다니던 옷인데. "
여주를 너무 뚫어져라 쳐다본건가. 여주가 자신의 옷을 매만지며 날 보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예쁘게 입으니까 달라보인다고 말하자 여주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어... 음. 내가 말을 잘못한건가. 그냥 진짜 예뻐서 그런건데. 미소를 지어보이자 여주도 살짝 웃는다.
" 형! 안 나와요? 커피 다 식겠어! "
" 어? 아.. 어, 잠깐 얘기하느라고. "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세훈이가 서있었다.
시선은 나를 지나쳐 여주에게 꽂혀있고.
" 예쁘시다~ 뭐야. 뭐야, 누구에요? "
" ..가자. "
괜히 여주에게 민폐를 끼칠까 싶어 세훈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세훈이가 나를 막았다.
" 에이, 형! 이렇게 예쁘신 분 있으면 나한테 소개해달라고 했잖아요! "
아. 뭐지.
알 수 없는 기분 나쁨이 훅 올라왔다. 네 살이나 어린 후배가 내 말을 안 들어서?
" 오세훈. "
여주가 생글생글 웃으며 세훈이의 말을 받아줬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져가는게 느껴졌다. 세훈이를 부르는 말투도 딱딱해지고.
" 잠시만요. 형! 저기 이름이 뭐에요? 어느 대? "
" 아... 저기 저는... "
" 야, 오세훈. 나와. "
또다. 또.
나도 모르게 여주의 말을 끊고 세훈이를 불렀다.
" 걔 우리 학원 원생이야. "
여주는 단순히 학원 원생이 아니다. 그것 이상의 훨씬 친한...
그런데 어째서 나도 그런 말이 나왔는 지 알 수가 없다. 혹시라도 여주가 섭섭해하는 건 아닐까.
" 아... 으하하, 미안해요. 난 대학생인줄 알았지. "
세훈이가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고는 나가버렸다.
순간 정적.
여주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냥. 그냥 오해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여주 너는 내게 단순한 학생이 아닌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 미안하다. 쌤 먼저 가볼게. "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괜찮겠지. 여주는 나랑 친하니까, 이해해주겠지.
화요일 오후. 매점에서 여주를 만났다. 둘러싸여 있는 학생들 틈 사이에서.
그런데 이상하게 여주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평소였다면 무슨 일 있나 싶어 흘금 보기만 하고 갔을텐데 그 날따라 어떻게 된건지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둘러싸인 무리를 빠져나왔다.
" 여주야. 쌤 봤는데 왜 인사를 안 해. "
여주는 그저 꾸벅 인사만하고 말 없이 뒤돌아섰다.
왜 그러지. 왜 그럴까. 머릿 속이 새햐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말에 그 일 때문인가? 그 일 때문이라면... 아.
어떻게든 여주에게 말이라도 붙이려 정선생님께 가서 여주 성적을 알아내 칭찬해주려 했는데 그마저도 반응이 이상했다.
그리고나서 계속, 쭉 여주는 나를 보고 일체 사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인사만 하고 가버리고, 어떤 날은 고개만 꾸벅 숙이고 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속이 타 들어가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럴까. 자꾸 미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준이에게... 여주의 친한친구에게...
" 나랑 친한 학생이 요즘 좀 이상한데... 그게... "
" 저기, 여주 요즘 무슨 일 있니? "
라며, 의미 없는 답만 돌아오는 질문을 해댔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 여주에게 신경을 쓰는지.
그러다가 우연히 여주를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표정이 싹 바뀌는 모습을 보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왜 이럴까. 왜.
여주를 붙잡고 무슨 일이 있냐며 묻지만 여주는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 ...아님 쌤한테 서운한 거라도 있는거야? "
그 때 그 일. 그냥 서운하다고 말해. 여주야.
" ...없어요... 그런 거... "
여주는 억지로 웃으며 내게 말한다.
아무 일도 없다고. 서운한 것도, 속상한 것도. 여주 표정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네가 나를 보며 밝게 웃었던 때가 언제였을까.
힘없이 걷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다 나도 천천히 따라갔다.
다시 예전처럼 고민을 얘기하고 웃으면서 일상 얘기를 하고 싶은데.
" 그냥 반말할게. 괜찮지? "
서점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생각을 멈추고 앞을 보자
" 아... 저... "
" 이름이 뭐야? 아, 내 소개를 안했나? 나는 스물넷 오세훈! 민석 형 후배야. "
" 아...네... "
" 대답만 하지 말고. 아, 내가 너무 들이대나? "
웃으며 여주에게 말을 거는 세훈이가 보였다.
순간, 정말 나도 모르게
" 야. "
" 어... 형. 여긴 어쩐 일로...? "
세훈이를 불렀다.
여주의 표정. 얼떨떨하고 당황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표정.
" 오세훈. "
나는 왜.
" ...네? "
언제부터.
" 찝적대지마. "
너를.
" 다시 말해줄까? 찝적대지 말라고. "
마음에 특별한 존재로 담아둔건지.
세훈이의 말을 다 끊어버리고 여주의 손목을 잡고 무작정 서점 앞을 벗어났다.
학원 앞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지금 뭘한거지. 방금까지 무슨 말을 한걸까. 제 정신이야, 김민석?
여주의 손목을 놓고 계속 생각했다. 특별한 존재. 여주, 네가 나한테...
종이 울리고, 여주가 말을 꺼냈다.
나를 좋아한다고. 아니 좋아한 줄 알았다고. 동경을 착각한 감정.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여학생들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은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하지만 이런 고백 아닌 고백은.
난생 처음이었다.
솔직히 이런 말을 들으면 기특해하는게 당연한 것 같은데 나는 왜,
" 여주야. "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쁜걸까.
"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
원래 선을 긋는 역할은 선생님이 하는건데, 학생이 그 선을 그어버렸다.
그리고 마치 지금, 그 선을 내가 넘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네가 나에게 그은 선을 나는 함부로 넘을 수 없기에
" 안녕하세요. "
" 응, 안녕. 여주야. "
" 쌤, 저 성적 많이 올랐어요! "
" 잘했어. 이제 그냥 교대는 안정으로 다 뜨겠다. "
그 선을 지키며 지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문득 여주가 프린트를 떨어트렸을 때, 그 때처럼 프린트를 주워주며 청포도 캔디를 건넸다.
이상하게도, 왜 그 때 생각이 났던건지. 조금은 미묘하게 바뀐 사이를 우리 둘 다 눈치를 채고 있었던건지...
여주가 사탕을 받자마자 후다닥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마치 서점에 가는 여주를 붙잡고 말을 걸었던 그 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또 나도 모르게 여주를 따라갔다.
그리고 천천히 따라 내려가던 그 계단 위에서...
"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을 했는데 거짓말로 고백했어. 그냥... 좋아하는게 아니라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그랬어. 근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나 사실 그 사람 진짜 좋아해. 미치겠어. 거짓말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
여주의 진짜 속마음을 들었다.
" 사람 마음이 의지대로 되는게 아니더라. 으휴, 알아... 바보 같은거.. 근데 그 땐 그게 최선이었어. 음.. 우리는 안 될 사이야. "
가슴에서 뭐가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주가 선을 긋는데, 안 될 사이라고 단정 짓는데... 나는.
" ...어...아... 쌤... 안녕하세요. "
" 여주야. "
드디어 깨달았다.
" 얘기 좀 하자. "
여주가 좋아하던 화이트 초코. 몇 달이 지나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르는데.
" ...너. "
" ...네? "
" 그 때 그랬지. 나한테. 동경을 좋아하는 걸로 착각한거라고. "
여주의 표정이 좋지 않다. 네가 그은 이 선을 넘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그 때 그 기억을 상기하게 만들어서 그런걸까.
" 네 나이 땐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아직 어리고, 젊으니까. 게다가 이 좁은 학원에서 너보다 훨씬 능력있어 보이는 선생님한테 그런 마음 품을 수 있어.
1년만 지나면 금방 변할 마음이야. 내가 누구보다 잘 알거든. 그런 애들이 많았으니까. 나는 네가 말했던대로 선생님이고, 너는 학생이야. "
여주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네가 설령 내 마음을 듣고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괜찮아.
"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학생한테 선생님의 마음 그 이상을 가져본 적이 없어.
학생들이 날 좋아해도 나는 선생님이란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내 나이 정도 되면 그럴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거든. 여주 넌 나한테 특별한 학생이야. "
특별한 학생. 그리고 너는 내게-
말을 하기 전에 입이 달라 붙는 것 같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이 말을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알아버렸기에.
" 네 고백을 듣기 전까진 그랬어. "
" ...! "
" 네가 동경을 착각한거라고 그랬을 때 내가 들어서는 안 될 기분이 들었어. 무슨 기분이었는 줄 알아? 심장에서 뭐가 쿵하고 떨어진 기분.
그 때부터 계속 고민했어. 내 감정쯤은 내 나이가 되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컨트롤이 아니라 그냥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깨달아버린걸 보면
" 안 되더라. "
" 쌤.. "
" 여주 너는 나한테 특별한 학생이기도 하지만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었던거야. "
스물여덟이면
" 너한테 이런 말을 할거란 생각, 가끔 해봤었는데... "
감정쯤은 알 나이인데
" 내 이기심으로 이런 말 하는게 아닐까 늘 걱정이 됐었는데, "
너를 보니
" ..쌤 제가 한마디만 해도 돼요? "
" ...어? "
" 우리 선생님과 제자 사이 말고, 남녀사이로 만나볼래요? "
그게 아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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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번외편 끝났습니다!!!!!!!!!!! 이제 민석이 마음을 모두 잘 아시겠져?! 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부제는 모두 연결되는 문장이었습니다 ㅎㅎㅎㅎ 다.. 알고 계셨을려나ㅏ...★☆
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늘은 좀 빨리왔죠? 이제 본격적으로 연애해야되니까 ( 저말고 여주가요...하...ha...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암호닉
시우밍 / 문돌이 / 델리만쥬 / @고3 / 매력 / 뽀리 / 간장 / 핑쿠핑쿠 / 찝적이 / 시우슈 / 뜨뚜 / 유레베 / 체리 / 암행어사
님들 사랑합ㄴㅣ다!!!!!!!!!!! 전 님들에 overdose...☆ 읽어주시고 댓달아주시고 정쥉해주시는 분들 댜량해여~★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답글!!!!!!!!!!!! 저한테 굳이 받고 싶지는 않으시겠지만!!!!!!!!!!!! 답글을 선착순 다섯분께 달아드리겠습니다 후훗... 꺼지라구요?
네..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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