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U Smile <부제 : 愛憎(애증)> written by.산딸기 "나 일리가 없잖아. …병신."
그래. 가만 생각해보면 남우현은 다른동네에서 살다 전학을 왔고 난 태어 날 때 부터 쭉 이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릴적에 만날래야 만날 수 가 없었다. 더군다나 난 남우현과 저런 사진을 찍은 적도 없고. 염색 한번도 안 해봤는데 사진속 그 애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도 했고. 가만보니 내가 좀 더 피부가 하얀 것 같고…. 이것저것 따져드니 그 애와 나의 차이점은 꽤나 많았다.
"어라? 이 사진…."
아까는 급하게 보느라 몰랐었는데 이제와서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니 사진위에는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조심스레 사진에 손을 갖다 대었다. 까슬까슬한 테이프의 표면이 그대로 손에 전해진다. 산산조각난 사진을 테이프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붙였을 남우현의 모습이 생각났다. 남우현과 그 애 사이를 매꾸고 있는 테이프 자국이 지금은 저 둘이 좋지 못한 상황이란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사진 속 둘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사진 밖의 둘은 환하게 웃지 못한다는 사실이 꽤 아프게 느껴진다.
드르륵ㅡ
"우현이 소지품 가지러 왔……너 뭐 보냐?" "어,이성열…." "야,미쳤어?!"
사진 속의 그 애를 계속 바라보는데 이성열이 들어왔다. 그리곤 나를 향해 냅다 뛰어오더니 지갑을 빼앗아 든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남우현이 제 지갑 보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그걸 쳐 봐?!!" "……." "하여튼,니새끼한테 맡기는게 아니였는데."
그러면서 왜 너는 지갑 쳐 보는건데 씨발성열아? 샐쭉한 표정과 함께 이성열을 노려봤다. 하지만 나같은건 안중에도 없는 이성열은 열심히 남우현의 지갑만을 훑었다. 그리고 금새 표정을 굳힌다. 너도 봐서겠지. 남우현이 죽어라 아끼는 사진. 더 나아가 사진 속 그 애 모습을.
이성열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사진을 쳐다본다. 다시 나를 쳐다본다. 또 다시 사진을 쳐다본다. 나. 사진. 나. 사진. 그러길 수십번정도 했을까,작은 욕설과 함께 이성열이 입을 열었다.
"미친…더럽게 똑같이 생겼네."
드디어 이성열이 사진에서 눈을 뗐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미세하게 떨리는 이성열의 손 끝이 지금 이성열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려 주었다. 절망,일테지.
"하…남우현. 왜그렇게 지갑을 꽁쳐두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 "이것 때문에 죽어라 지갑은 안보여 준 거였어." "……." "……개새끼."
그 말을 끝으로 이성열은 교실 뒷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때문에 힘없이 교실바닥으로 떨어진 남우현의 지갑. 사진. 사진 속 그 애. 남우현의 과거에 있어서 소중한 사람. 아ㅡ,하고 작은 탄성이 나왔다. 그래,이제서야 하나하나 무언가가 정리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때까지 남우현이 내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넌 나를 외면했었지. 잔뜩 굳어진 얼굴로. 그건 나에게서 그 애 모습을 봤기 때문일거고,그 애와 닮은 나를 보고 아파하고 미워하고,그리워하고,사랑했을거야. 나를 향한 알 수없는 적의. 그리고 가끔가다 보이는 다정한 모습과 친절. 호원이와 같이 있는 나를 싫어하고,챙겨주다가도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등을 돌렸다. 남우현은 옛 사랑에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슬펐다가 아팠다가,그리웠다가 사랑이 되었다. 애증. 남우현은 그 애를 미워하지만 사랑한다. 나를 보며 계속해서 그 애를 생각하고 그 애를 찾는다. 그래,그거였구나. 넌 이때까지 나를 보며 그 애를 떠올렸었구나. 단 한번도,
"……나를 봐주진 않았구나."
뼈저리게 느껴지는 현실에 가슴이 쿡쿡 아파왔다. 난 벌써 너의 말 과 행동 하나하나에 온 몸이 반응하는데. 내게서 그 애의 모습만을 찾는 너에게 난 어떡하면 좋을까. 이성열이 뛰쳐나간 교실 뒷 문을 바라봤다. 남우현,양호실에 있겠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어서 빨리 너에게로 가서 사실을 듣고싶었다. 우현아,이게 모두 사실인거야? 정말로 넌,단 한번도 날 봐주지 않은거야?
숨가쁘게 달려와 양호실 앞에 다다랐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난 듣고싶었다. 너의 마음을.
"…다 봤어." "뭘 봤다는 거야." "네 지갑 속 사진." "…뭐?" "전부 다 봐버렸다고…씨발."
힘없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왠지 지금 저 둘의 대화에 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그냥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지갑 속 사진을 봤다는 상처받은 이성열의 목소리와 그 사실에 당황한 남우현의 목소리가 한데 뒤엉켜 텅 빈 복도를 울렸다.
"남우현." "……." "…남우현." "……." "…우현아." "…왜 자꾸 불러." "널 좋아해." "……." "내가…널 많이 좋아해."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는 이성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냥 강한 애인 줄 알았는데. 사랑 앞에선 이성열도 약자였다.
"사진 속의 그 애가 누군지 난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아. 니가 그 애 때문에 힘들어 하는거…누구보다 잘 알아." "……." "내가 낫게 해 줄게. 내가 보듬어 줄게. 내가 항상 곁에 있을게. 내가…내가 더 많이 사랑해 줄게." "……." "……우리 사귀자."
더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 가 없었다. 이성열의 애절한 목소리를 끝으로 양호실 문을 벌컥 열었다. 특유의 약품 냄새가 코를 찔러왔고 동시에 네가 보였다. 그 옆에서 한껏 울먹이는 너의 친구도.
하지만 막상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할 말이 없었다. 너에게 어떤 것 부터 물어야할지 막막했다. 김명수 바보 멍청이. 생각이나 쫌 하고 들어 올 껄. 우물쭈물하는 나의 위로 너의 시선이 닿는게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침대에 반쯤 앉아 있는 네 모습이,붕대를 칭칭 감고있는 네 오른팔이,서툴게 이성열의 눈물을 닦아주는 네 손이,모든게 그대로 내눈에 비춰졌다. 그러길 잠시 곧 너의 시선은 네 옆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친구에게 옮겨졌고,너는 지쳐보이지만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그리고 너의 그 미소는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꽃혀진다.
"그래,사귀자." "……." "나도 이성열,니가 좋아."
그 말을 끝으로 양호실 문을 박차고 숨가쁘게 달렸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저 공간에 계속 있자니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아서. 그래서 무작정 달렸다. 뒤에선 목놓아 우는 이성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얼마안가 난 힘없이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
*
[잘 지내고 있어?]
단순하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문자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몇일 남았지? 호원이 니가 내 곁으로 돌아오는 날이 아득하기만 하다. 호원아,니가 없으니까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이야. 사건이 얼마나 터졌는지 몰라. 있잖아,남우현이랑 이성열이 사귄대. 우리 처럼. 되게 신기하지? 근데 둘이 잘 어울려. 남우현에게만 다정스레 구는 이성열,이성열만 특별대우 해주는 남우현. 완전 둘만의 세상이 따로 없다니까.
호원이를 시작으로 한 내 생각의 끝은 결국 또 다시 남우현이였다. 니가 대체 뭔데 날 이리도 흔드는 건지. 한숨을 쉬며 폰을 집어 넣었다. 시끌벅적한 교실 풍경을 바라보다 사물함쪽을 바라봤다. 사물함에 비스듬하게 기대있는 남우현과 그런 남우현 옆에 찰싹 붙어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이성열이 보인다. 어째 저건 다른반이면서도 우리반에 있는게 낯설지가 않단 말이지.
드르륵ㅡ. 콰당탕탕ㅡ!
그때 뒷 문이 시끄럽게 열리더니 한 남학생이 팡팡 뛰어가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아니,내 쪽이 아니라….
"나아아암~~우~~혀어언~~!!!!"
커다란 괴성과 효과음과 함께 남우현의 품에 쏘옥 하고 안기는 저건…뭐지? 덕분에 남우현 옆에 찰싹 붙어있던 이성열도 나가 떨어졌다. 얼굴에 당황스런 표정을 잔뜩 띄운 이성열이 멍하니 남우현 품 속의 그 애를 쳐다본다. 저 괴스런 생명체는 무엇이며,어디서 튀어 나온것이며,남우현이랑은 또 무슨사이야?
"완전 보고싶었어!"
남우현 품에 쏙 안겨 한참을 부비적거린다. 지가 무슨 개새낀줄 아나…. 급작스런 개새끼의 출몰에 당황하던 남우현이 이내 작은 탄성과 함께 개새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자상함과 다정함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잘 왔어." "나 보고싶었어?" "당연하지." "얼만큼?" "엄청 많이." "헤~기분 좋다!"
개새끼가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에 따라 남우현의 얼굴에도 해사한 웃음이 번진다. 대체 이 상황은 무슨 상황인거야? 분명 우리학교 교복을 입고 있지만 난 저런애 처음 보는데,개새끼 넌 대체 누구냐…?
"야이씨발,얼굴 안 떼? 이게 누구껀데 니가 파고 들어!!!"
잔뜩 독이 오른 이성열이 아직도 부비적거리고 있는 개새끼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아직도 환한 웃음을 머금은 개새끼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데…얼라리? 잠깐만,너는…!!
"……장동우?" "…오?! 명수? 명수 너도 여기 있었네!"
정신없는 개새끼의 정체는 동우였다. 어린시절 곧 잘 어울렸던 나의 소중한 소꿉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