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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결혼해."  

  

  

결혼하자, 결혼할래?도 아닌 나 결혼해. 그 누구도 아닌 내 연인 민혁이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처음 만났던 날은 조용한 낮시간의 카페 안에서였다. 혼자서 놀러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틀에 한번꼴로 카페에 와 딸기스무디를 시켜놓고 창가에 앉아있기를 좋아했고, 그 모습을 지나가던 민혁이 형이 봤다고 했다. 눈에 띄었다고,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자석에 이끌리듯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바보같은 말에 넘어가 바보같은 연애를 시작했다. 첫사랑이기에 형은 나에게 뭐든지 처음이었다. 뽀뽀도, 키스도, 관계도 다 처음이었다.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사람. 형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나고 오글거리지만 사랑이 이런거구나하고 알게 해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형이 결혼을. 처음엔 형이 나에게 청혼하려 했다가 말이 꼬여서, 잘못 말한 줄 알았다. 그래서 멍청하게 되물었다.  

  

  

"뭐?"  

"나 결혼해 유권아. 미안해."  

  

  

형은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누가 내 머리를 망치로 세게 때린듯한 기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 그리고 밀려오는 배신감과 눈물.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내 눈물이 형의 죄책감을 더 키워주기를 바랐다.  

  

그 뒤로는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정신을 놔버린 것 같다. 형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퍼붓고 커플이랍시고 맞춘 것들을 형 앞에 던져버리고 고개 숙인 형 앞에서, 사람들 시선은 생각하지 않고, 오열했다. 끝까지 고개를 들지않았다 형은. 지랄맞게도 형과 내가 만난 곳과 헤어진 곳 모두 같은 카페였다. 난 이제 그 카페에 가지않는다.  

  

형은 무슨 생각인지 며칠 뒤 나에게 청첩장을 보내왔다. 굳이 내용을 보지않아도...,내용을 확인하기 싫었다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내 눈으로 볼 자신이 없어 그냥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기대와 감정들이 마음 속에서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병신이지. 혹시나 하는 미련으로 지우지않았던 형의 번호와 같이 찍은 사진들, 남은 기억들을 그 날 모두 지워버렸다.   

  

  

  

  

"유권아, 권아. 야 뭐하냐아! 아이씨, 여기 뭔데 주변에 편의점이 없어."  

  

  

양손에 캔커피를 들고 투덜투덜 거리면서 온 지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뭐하러 또 바보같이 그 생각을 한건지. 고개를 세게 저으며 머리속에 남은 생각들을 공중에 털었다.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지호의 시선을 무시하고 괜히 지호 손에 들려있는 캔커피를 건네받기도 전에 내가 가져와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우와 나 이거 좋아하는데."  

"언제는 커피 싫다며."  

"아..."  

  

  

저번에 한번 흘리듯이 말한적이 있었는데 그걸 또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새삼스레 지호의 관심에 감동받으며 바보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도 먹을래."  

  

  

말이 끝나자마자 지호는 다시 내 손에서 캔커피를 뺏어들어 칙,하는 소리와 함께 캔커피를 열어서 나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안그래도 되는데..., 작게 중얼거리고 받아들어 마셨다. 역시 쓰다, 커피는. 저절로 찡그려지는 미간을 펴지않고 가만두니 지호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이제 다영이 데리고 가야지, 너네 누나가 기다리겠다. 맨날 늦게 데리고 들어가고."  

  

  

다영이를 집에 데려다 준다는 핑계로 유치원 마칠 때 찾아와서는 늘 이런식이다. 편한 유치원 버스를 두고 직접 데리고 다니니 다영이는 유치원에서 항상 제일 마지막에 하교하는 아이가 되었다. 처음엔 혼자 있어서 심심해요, 지호삼촌 싫어요, 하며 투덜거리더니 이제는 적응해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다. 오늘은 유치원 놀이터에서 모래를 가지고 모래성을 만드는지 눈이 심각하다. 그 모습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가 본의 아니게 미소를 띄우며 말했더니 예의상 한 말인줄 아는지 지호는 안그래도 된다고 대답하고는 캔커피를 마셨다.  

  

  

"오늘... 이상한 생각했어."  

"뭔데,"  

"이상한 사람 생각."  

"그게 뭐야."  

  

  

내 대답에 지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상한 생각?... 설마."  

  

  

하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니가 더 이상한 사람같애 지호야. 차마 하지못한 말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호는 못내 아쉬운지 따라 일어서며 커피 아직남았는데, 하고 캔을 흔들어보였다. 우리가 일어나자 이제 갈 시간이라는 걸 아는 듯 멀리서 다영이가 달려와 안겼다. 지호삼촌이 아닌 나에게. 지호는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다영 너는, 삼촌 여기있는데 쌤한테 안기냐."  

"삼촌 보다 선생님이 좋아."  

  

  

어린아이 특유의 발음으로 자기 의사를 야무지게 밝히는 다영이의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다영이는 내 앞치마를 꼭 붙들고 지호 보란듯이 더 꼭 나를 안았다. 메롱,하고 지호를 약올리는 것도 잊지않았다. 나도 지호 보란듯이 다영이를 꼭 안았다. 지호는 다영이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허,하며 애꿎은 캔커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둘이 아주 똑같애 똑같애. 이다영 빨리와, 삼촌 간다. 김유권 너는..., 내일봐 암튼."  

  

  

다영이를 안고있는 내 손을 거칠게 떼어내고 빈 캔커피를 쥐어준 지호는 단단히 삐친 것처럼 다영이를 두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러고 가다가 멈출거면서. 역시나, 유치원 정문 근처에도 가지못한 지호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뒤따라올 다영이를 기다렸다.   

  

  

"지호삼촌이 쩌어기서 기다리네, 다영이도 이제 갈까?"  

"네!"  

  

  

손짓으로 지호가 서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하니 들었는지 지호는 괜히 핸드폰을 꺼내 보는 척했다. 가끔은 다영이보다 더 어린애같다. 다영이는 유치원에서 배운대로 이쁘게 배꼽인사를 하고 지호에게 달려갔다. 지호는 다영이가 오자마자 언제그랬냐는 듯 안아들고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핸드폰을 꺼내본 척은 척이 아니라 진짜였는지 내 핸드폰에 지호에게서 카톡이 여러개 와 있었다.  

  

  

[다영ㅇ]  

[다영이가 그렇게 좋냐]  

[ㅡㅠㅠ]  

[내일봐]  

  

  

짧은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저멀리간 지호와 다영이가 보인다. 나도 슬슬 퇴근준비 해야지. 내일 지호를 만나려면 내일 할 일까지 오늘 모두 끝내놓아야한다.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오는 듯해 팔을 쭉 뻗어 스트레칭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얇은 맨투맨에 청바지를 입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간 늦을 것 같아 지호에게 미안하다는 카톡을 보내놓고 처음 와본 동네가 신기해 이리저리 둘러보며 걸었다. 처음 와본 동네라고 해봐야 겨우 버스 몇 정거장이지만 늘 동네 안에서만 머물러 있던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무래도 길을 잘못든 것 같다. 지호한테 완전 혼나겠다. 머리속에 그려지는 지호의 모습에 한숨을 폭 내쉬고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약속장소를 입으로 작게 되뇌며 혹시나 아까 본 건물이 나올까 싶어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으아, 진짜 어떡해. 진짜 '멘붕'같은 상황에 혼란스러워질 무렵, 정신을 얼마나 놓고있었는지 앞에 오는 사람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혔다.  

  

  

"아,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밀려오는 민망함에 고개도 들지못하고 그대로 지나가려는데 치료비라도 물어내라고 할 생각인지 아니면 조폭이라도 건드린건지 그 사람이 내 팔뚝을 잡아끌었다. 느낌이 좋지않다.  

  

  

"김유권."  

"..."  

"고개들어."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것 같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얌전히 모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 들으라고."  

  

  

손을 뻗어 내 턱을 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만드는 사람은, 내 눈가에 서서히 고이는 눈물을 빤히 보고있는 사람은 지호가 아닌. 형이다. 내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웠다고 생각했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게 아닌가보다. 애써 입술을 꼭 깨물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했다. 지금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형이 아니라 지호니까. 형의 손을 쳐내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지나쳤다. 형은 날 잡지 않았다.   

  

착잡한 마음으로 어딘지도 모르는 약속장소를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쪽팔리게 울기는 왜 울려고 한거야. 한숨을 푹 쉬었다. 지호, 지호한테 전화해야겠다. 진짜 화 많이 났겠지.   

  

  

"여보세요."  

["김유권. 어디야 지금."]  

"미안해 진짜, 미안, 미안..."  

["울어? 우는거야 설마? 왜? 넘어졌어?"]  

  

  

지호 목소리를 들으니까 꾸역꾸역 넘겼던 눈물이 다시금 올라왔다. 늦어서 화가 많이 났을텐데도 걱정해주는 지호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바보같이 길에서 훌쩍거리며 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으니 전화기 건너편의 지호는 안절부절 못하고 어디냐는 말만 계속 했다. 주변에 보이는 건물을 대충 말해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지호가 달려왔다.   

  

  

"왜 여기있어. 진작 전화하지."  

"우지호.."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진짜, 전화도 안하고 카톡만 보내놓으면 되냐?"  

"나 이상한 사람 만났어."  

"어?"  

  

  

-  

  

막상 올리려고 하니까 진짜 짧아보이네요  

최소 3개월은 묵은 글이에요 ..  

오타있으면 말해주세요! 

  

끝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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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범권에 짘권ㅠㅠ 사랑합니당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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