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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향로 전체글ll조회 763l 1
w. 행운의향로 

 

 

올 해 여름도 어김없이 사상 최고 기온을 갱신하고서야 물러날 것 처럼 사납게 울어 대었다. 높은 습도는 땀이 마르는 것 조차도 허락하지 않고, 달궈진 공기는 저녁 때가 되어 가는데도 식을 줄을 모른다. 묵직하고 재미없는 책들로 가득 찬 가방과 등이 맞닿는 부분이 벌써 흥건히 젖어 둥그렇게 자국을 남겼다. 귀에 꽂아넣은 이어폰에서 흐르는 노래가 요즘 인기있는 걸그룹의 노래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다운받은 차트 상단의 한 발라드 가수의 신곡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지호는 옷을 펄럭이며 교복 아래 흰 티를 받쳐 입은 것을 후회했다. 이런 날씨에 야속하게도 몇 백 미터 안 되는 아파트 단지는 그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어머니께 부탁해 자동차를 타기엔 거리가 민망할 만큼 가깝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토 나올 정도로 숨이 막히고 푹푹 찌는 날이나 한 겨울 뼛속까지 칼바람이 불어드는 날엔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것 또한 고역이다. 하나도 시원하지 않은 손부채를 연신 부쳐대며 지호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빨갛고 까만 가방이 언뜻언뜻 비치는 편의점 유리를 열어젖히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주머니에서 짤랑 거리는 삼백원으로는 택도 없으리라는 것을 지호는 잘 안다. 어제 저녁 반도 채 먹지 못하고 봉지채 버려버린 과자를 사는데 써버린 천 칠백원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지호가 클라이막스까지 다다른 노래를 정지하고 이어폰을 뽑았다. 아파트 세 개가 둘러싼 놀이터의 중심엔 어지러운 낙서가 즐비한 다홍색 미끄럼틀이 시선을 끌고, 동년배의 소년은 하얀 티를 입고 그 위에 앉아 있다. 분명 지호가 아는 얼굴이었다.  

 

ㅡ지훈아.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같이 갔었던 친구를 모를 리 만무했다.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뽑은 이어폰을 정리해 넣으며 나즈막히 이름을 부르니 땅바닥을 나뭇가지로 긁고 있던 지훈이 고개를 들어 지호를 바라본 후 환하게 웃으며 엉거주춤 일어서선 히죽거렸다. 

 

ㅡ지호! 

ㅡ왜 나와 있어. 밥은 먹었어? 

ㅡ응. 

 

한 쪽 다리를 저는 지훈이 달리다 넘어져 다칠까 싶어 지호가 먼저 걸음을 떼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놀이터는 종일 그늘이었을텐데도 이마가 온통 땀범벅이다. 지훈은 눈동자를 굴리며 애꿎은 팔뚝만 연신 문질러 대었다. 

 

ㅡ뭐 먹었어? 

ㅡ김치 보, 밥. 

ㅡ김치 볶음밥?  

 

눈가로 흐르는 땀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니 간지러운 듯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엊그제 얼굴에 난 상처에 붙인 대일밴드가 물기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힘없이 푸들거리는 것을 보고 지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갈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내내 뛰어놀았을 지훈의 상기된 얼굴이 아직 식지 않은 듯 붉다.  

 

ㅡ누가 해 주신 거야? 

ㅡ엄마. 

ㅡ엄마? 

ㅡ맛있어. 

 

지훈은 손을 잡고 이끄는 지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자꾸만 허공을 바라보았다. 다리를 절거나 손을 떨기도 했고, 이따금씩 침도 흘렸다. 작년 말 지훈이 그렇게 변하고 나서부터 지호는 반 정도 쓰다 남은 두꺼운 무선노트의 빈 공간을 소묘가 아닌 끊임없는 숫자들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저 때문에 미래를 잃어버린 친구를 위한 일종의 책임 같은 것이었다. 방학을 한 주 가량 앞두었던 그 날 지훈은 싸움에 말려들었고 날카로운 시멘트 조각으로 머리를 맞았다. 벌써 반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지호는 아직도 경기를 일으키며 거품을 물고 피를 흘리던 그때의 지훈을 잊지 못한다.  

 

 

 

많이 더우시죠ㅠㅠ 

모지리의 패러다임을 깨보겠어! 하고 써내려간 글이긴 한뎋... 재밌게 보셨는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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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ㅜ지후나 ㅠㅠㅠ잘읽었어영!
9년 전
독자2
헐...행운의 향로님은 참 볼때마다 문체가 너무너무 좋으신거같아요...ㅜㅜ 읽기도 편하고 묘사도 부담스럽지 않고..모지리 지훈이라니!! 대체 무슨 사고때문에 그렇게 된건지 궁금하네여~ 다음화도 기다릴게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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