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데이 Written by. 여우 |
호야-! 익숙한 애칭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저 멀리서 뛰어오는 동우가 보인다. 그래- 어서와 여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흩어진다. 그의 잔상을 멍하니 바라볼 때 누군가 내 등을 톡톡 치며 돌려세운다. 그리고 그곳에는 날 향해 웃어주는 동우가 보인다. 호야- 뭐해? 그는 내 볼을 살짝 꼬집으며 배시시 웃는다. 그런 그의 도톰한 입술을 어루만지려 다가간 내 손, 그 손에 그는 다시 흩어져버린다. 눈을 떴다 감으면 다시 나타날까-. 눈을 감은 채 그가 남기고 간 온기만을 받아들인다. * 그를 만난 건 어느 날,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날. 그런 날이었다. "호원이야-?" "누, 누구세요?" "호원이야, 호원이?" "네, 네?" "나는 장동우야, 신입생이야? 헤헤" 동아리방에 앉아서 멀뚱히 앉아만 있는 나에게 쓰윽 다가와서 이름을 불러준 그는. 그는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시간 0.2초. 그를 만난 순간, 짧은 그 순간. 그 순간은 그를 내 마음에 담아놓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 "형…." "호원이야-? 왜에?" "…제가 형이되고, 형이 제가 되는 사이하면 안될까요."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 술에 쩔은 내 목소리가 터져나온 순간. 그의 달콤한 입술은 나와 맞닿았다. * 그는 나를 항상 호야-라고 불러주었다. 매일매일이 그와 함께였고-, 그의 시간이었다. 나는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어느 날 찾아온 그는 내 사랑이 되었고, 그는 내가 되어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랑을 지우고 또 지워야 하는지. 사랑이 사랑을 머금고 흘러내릴 수 있는지. 이별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그는 나에게 사랑을 가르쳤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화난 마음이 얼굴에 가득 띤 미소 한 번에 날라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이, 내 허리를 감싸안는 손이 얼마나 달달한 것인지를. 내 모든 것은 그에게로부터 흘러나왔다. 그의 손짓 하나에 나는 꽃이 되었고, 나비가 되었고. 그리고 눈물이 되었다. *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뛰어도 약속시간이 10분은 늦은 탓에. 그래서 혹시라도 영화를 못 볼까 초조해하고 있을까봐. 그 날 따라 세워지지 않던 머리를 거리의 쇼윈도우에 비추어보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영화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그를 보고 아무생각없이 달려갔던 것 뿐. 동우형-. 8차선의 도로 위에서 초록불이 되자마자 발을 옮긴 건 다름 아닌 나.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 사람.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경적소리, 그리고 호야-!. 거의 다 건너왔는데, 왜? 대체 왜. 내 왼쪽 편에서 다가오는 트럭. 커다란 화물 트럭. 다시 바라 본 정면에 서 있는 동그란 눈의 그. 발을 옮길 수 없었다.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는 무엇이든 했다. 그의 몸이 다가오고 걸어오고, 달려오고. 나를, 나를 밀쳐내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로 내 던져진 상체를 일으켜 바라본 그가 날아갔다. 저 멀리, 그것 뿐이었다. 천사같이 착한 그였기에-. 천사가 되고 싶다고 항상 말하던 그였기에-. 단지 날아오르는 그를 보며 내가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보며 안심하는 모습. 그리고 찡그린 미간. 미소를 띤 입술. * 입관하던 날.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던 그를 보며 울부짖음조차 할 수 없었다. 차가운 손, 감겨진 눈. 역시나 띄고 있는 미소. 이게 어딜 봐서 세상을 등진 모습일까-. 살아 생전 그대로 잠만 자고 있을 뿐인데…. 나조차 울어버리면, 그는 정말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다. 유리창에 기대어 오열하는 그의 어머니, 내 허리를 잡고 꿇어앉아 매달린 그의 누이들. 뒤 돌아 입을 막고 눈물을 떨구는 그의 아버지. 울 수가 없었다. 나조차 울어버리면- 그가 가지 못할 것 같아서. * 꿈을 꾸었다. 그였다. 나를 만나던 마지막 날 입었던 청바지에 흰 티, 그리고 베이지색 마이. 끔찍한 내 기억 속처럼 새빨갛다 못해 검게 물들어버린 피는 그의 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호야-." "…." "호야." "형…. 미안해, 미안해…. 흐읍…형,흐…윽…." "호야." "흐윽…, 형." "호야, 이리온." 내가 그를 향해 한발자국 옮길 때, 그는 나에게 세발자국 다가왔다 더듬더듬 그를 향해 발자국을 옮길 때, 그는 이미 나를 안아주었다. 따스한 품, 귓가에 스미는 숨소리. 그는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매만졌다. 내 눈에 그의 입술이 자리하고, 그의 음성이 울렸다. 눈에 하는 키스는 고백-. 내 코끝에 닿은 후에 울리는 음성. 우리호야에게 행운이-. 내 입술을 스쳐 귀 밑에 닿은 입술. 호야를 사랑하고- 그리워할거에요. 마지막 내 목에 닿은 그의 입술. 호야, 안아도 될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이제 진정으로 그를 보내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그도 그것을 알고 찾아온 것일까. 그렇게도 매일 밤 그가 찾아오기를 빌었으나, 막상 그가 찾아오니 그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의 품에 매달려 하릴없이 우는 것. 겨우 진정이 되나 싶으면 내 등을 토닥이는 그의 손길이 너무나 따스해서, 그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에 품에 안겨 울고, 드디어 그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역시나 내 앞에 있는 모습은 밝은 얼굴. 행복한 미소. 그리고 무언의 끄덕임. 이제 가야한다는, 반짝이는 눈매. "형…, 흡, 같이가요…. 네?" "호야-. 동우가 선택한 거 후회하지 않게 해줘." "혀엉…. 형, 제발." "호야가 고백한 날 기억해? 호야가 나고, 내가 호야야. 동우 말 이해하지?" "흐윽…, 동우…, 동우야." "호야가 동우 따라오면, 동우는 이 선택을 한 이유가 사라져. 그렇지 호야?" "흐…으으, 흡…, 네." "동우가 가는 게, 후회없게. 동우 몫 까지, 알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저 문을 나가면 된다며 문앞까지 날 바래다 준 그를 뒤로하고 공간을 빠져나왔다. 허허벌판에 하나있던 문은 내가 빠져나오자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꿈에서 깨는 순간까지, 그리고 꿈에서 깨고 나서도 내 입술은 스스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동우형 몫까지-, 후회없게…. * 나 같은 이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그를 그리며, 이젠 사랑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심장을 떼어내고 버린다 한들, 이미 그는 내가 되고, 나는 그가 되는 것이 시작한 순간. 모든 것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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