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5교시, 하품을 쩍쩍 내뿜으며 잠들랑 말랑 간신히 정신줄을 붙들고 있는 종인의 뒷통수를 후려갈긴 경수는 뚱한 표정으로 종인을 바라보았다. 짝꿍이란 놈이 이렇게 틀이 막히고 재미가 없어서 되나. 경수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습관적으로 잘근거리며 종인에게 입모양으로 얘기했다. ‘수학선생님은 놀리기 제일 좋은데―’ 라고. 하지만 잠탱이 김종인의 귀에 경수의 한 마디가 유혹적으로 들릴 리가 없었다. 뭐 어쩌라고, 라는 표정으로 등을 돌리려는 종인의 손목을 붙든 경수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뭘 어떻게 할진 모르겠는데 할려면 너 혼자해. 존나 도경수 불쌍한 표정 지을 때 보면 슈렉고양이 같애.”
“맨날 홀리지, 응? 으―아, 존나 배고프잖아…. 우리학교는 급식량을 늘려야된대니까?”
툴툴거리는 경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은 종인이 중얼거렸다. 그래, 넌 성장기 어린이니까. 그 말에 발끈한 경수가 앙앙거렸지만 종인은 경수의 머리를 꾹 누르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집에 가서 아저씨한테 조르면 라면이나 먹을 수 있으려나. 교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니 잔뜩 구겨진 천원짜리 지폐 두 장이 손에 집혔다. 음…, 삼각김밥이나 사 가야겠다. 다들 알테지만, 내 동거인은 그지 새끼니까. 종인은 킥킥거리며 백현을 떠올리며 웃었다. 정말 그런 괴짜는 처음 봐. 결국 딴 생각에 헤실거리며 웃던 종인은 수학선생님께 머리 한 대 통하고 맞아버렸다.
“도경수 어디가? 너 오늘 사회봉사 때문에 학생부 가야된다며. 준면 샘 빡치면 너 뒈지는 거 알지?”
“아 그 새끼 진짜! 왕 싫어, 왕왕왕 싫어. 누가 이기나 보자니까 한 번. 나 피씨방 가야되, 빠이!”
툴툴거리며 길을 나서는 경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종인도 가방을 들쳐멨다. 생긴 건 완전 순수한 귀요미인데 하는 짓을 보면 자전거를 훔치고 타다가 걸리지를 않나, 학생부 샘한테 대들다가 맞아서 눈에 멍이 들지를 않나. 하여튼 도경수 인생 한번 겁나게 스펙터클하다. 종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교문을 나섰다. 뭐, 생긴 건 종인이 더 세 보이지만, 나름대로 성실한 학생이다. 종인은 편의점에 들러 참치 맛 삼각김밥을 두 개 사들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 내가 삼각김밥 사 왔어요. 잘했죠? 그니까 오늘은 티비 틀게 해 줘요, 꼭이다?”
“쯔쯔, 갑갑하긴. 참치 맛만 두개 사오는 등신이 여기있었네. 고맙다 종인아, 신선하고 좋네.”
“아오, 사 와도 지랄이야! 라면 끓여줘요, 밥 먹을때만이라도 티비 좀 틀게 해달라고요 제발.”
백현은 종인의 칭얼거림에도 냉정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절대 안되 김종인, 나의 문학세계를 방해하지마. 쓰고있던 뿔테안경을 살포시 내려놓고 검은 봉지를 뒤적거리며 삼각김밥을 꺼낸 백현은 능숙히 찬장을 열어 라면 두개를 꺼내들었다. 그 대신,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꼬꼬면 해주마. 예쁘게 웃는 백현에게 또 뭐라할 수가 없는지 종인은 신경질적으로 교복 와이셔츠를 풀어헤치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내가 이 또라이같은 아저씨랑 산다는 게 말이 안되지.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허탈히 웃어보이는 종인의 머리를 국자로 통하고 내려친 백현은 인간문화재라도 되는 것 마냥 심오한 표정으로 라면 국물을 후르릅 들이켰다. 캬, 이 맛이야.
“아저씨는 근데 대체 뭘 쓰길래 맨날 게임도 못 하게 하고 티비도 못 틀게 하고 그래요? 진짜 왕 치사야.”
“흠… 어른들의 이 강렬하고 짙은 정신세계를 네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아저씨 야한 거 쓰는구나? 아하하, 어쩐지 생긴 것부터 뭔가 야하다 했어.”
얼굴까지 뻘개져서 아니라고 방방 뛰는 백현을 보며 한참을 웃어제끼던 종인은 그릇을 탁하고 내려놓으며 삼각김밥을 드르륵 까서 한 입에 털어넣었다. 삼각김밥 너무 비싸, 한 입거리인데―. 툴툴거리는 종인을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본 백현은 삼각김밥이 버거운지 냉장고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애들이 식욕이 왕성하긴 하구나. 주섬주섬 라면 봉지를 쓰레기봉투에 넣은 백현은 통통 컴퓨터 앞으로 튀어갔다.
“아저씨, 나 오늘 기분 열나 심오한데 템플런 시켜주면 안되요?”
“안되. 그렇게 고릴라들 뛰어다니는 건, 애들 정서에 안좋다고 몇 번을 말하니 종인아―”
뿔테안경 속에 눈망울을 반짝이는 종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타닥타닥, 요란스레 키보드를 두드리는 백현의 옆에 다가가 뭘 그리 열심히 쓰나 바라보았지만, 날쌔게 창을 닫는 백현에게 뒷통수 한 대를 맞고서야 종인은 침대에 드러누우며 휴대폰을 만지자거렸다. 진짜 웃기는 아저씨야. 왕 웃겨 레알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도경수랑 피씨방이나 갈 걸 그랬나. 종인은 툴툴거렸다. 앙증맞은 창문 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몇 시간에 걸쳐 쓴 글이니 꼭 댓글 부탁드려요
신알신과 암호닉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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