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클리셰
∑ Almost
아침_
'삐삐-"
핸드폰 알람에 깬 나는 일주일 만에 학교를 나가려니 일어나기 힘들고 귀찮아, 잠깐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잡생각을 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방으로 들어와 나를 깨우려 했다.
"여주야, 일어나.
오늘은 학교 가야지"
그런 오빠에 나는 "응." 이라며 침대에서 일어나 대충 씻은 뒤 교복으로 갈아입고 방 밖으로 나갔고, 식탁엔 소박하게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식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입에 물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으니, 오빠가 식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신 차려, 오빠는 회사 가야 하니까 접시만 싱크대에 올려놔줘.
그리고 오늘 비 올 거 같으니까 우산 꼭 챙겨가."
말이 끝나자 의자에 걸쳐둔 정장 마이를 걸치고 빠르게 현관문을 나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잠시 멍 때리다가, 식기를 들고 일어서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곧장 거실로 걸어갔고 커튼을 걷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날씨는 역시 오빠가 말한 대로 비가 올 것처럼 우중충했다. 마치 태양이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 것처럼, 비를 잔뜩 머금은 무채색 먹구름 뒤에 숨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 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신발장 앞에 섰다.
우산을 가져가야 하는데 큰 골프우산은 오빠가 들고나갔는지 작은 투명우산만 우산꽂이에 남아있었다.
이 작은 우산을 가져가면 혹여 비가 카메라에 튀진 않을까 잠깐 멈춰 생각했지만 안 가져가는 게 가져가는 것만 못하니 일단 손에 쥐고 현관문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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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생_
일주일도 긴 시간이었는지 학교에 많은 변화가 있었나 보다.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가 다가와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여주야, 독감이었다며 얼마나 아팠던 거야 일주일씩이나 학교 못 오고…"
"아니야. 사실 이틀은 꾀병"
"헐, 뭐야 너 그런 면도 있네.
아, 맞다. 일주일 전에 우리 학교에 전학 온 애가 있는데 진짜 잘생겼어."
"아... 그래?"
"아... 그래? 라고 할게 아니야. 진짜 진짜 너무 잘생겼다니까.
근데 지금 가도 못 봐."
"왜?"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학년, 반 안 가리고 다 걔보러 가니까 선생님들이 벌점 준다고 했거든"
"그 정도로 인기가 많구나."
"웅, 진짜 많아. 벌써 추종자도 있을걸... 맞다 아침 먹었어? 우리 매점 가자"
"먹긴 먹었는데 같이 가줘?"
"헐, 나야 좋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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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_
아프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확 와닿은 날이었다. 일찍 끝나는 수요일에 학교에 남아 밀린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벌과 같은 일이다.
일주일 동안 학교를 나오지 못해서 바로 코앞까지 들이닥친 사진 공모전에 낼 사진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은 하교를 하게 되었다.
동아리 선생님과 사진을 고른 후, 교실로 돌아왔을 땐 반 우산 꽂이에서 나의 작은 투명우산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누가 가져간 것인지 모르니 개인적으로 전화를 할 수도 없고, 반톡에 물어보기엔 조금 그래서 창문 바로 옆 내 자리에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그치길 바라며 한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드르륵-'
교실문이 열린리는 소리에 저절로 소리가 난 문쪽을 보았고, 모르는 아이가 반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혹시 이 반에 박지민 없었어?"
라며 물어오는 남자애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빤히 바라보며'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 그게 사실 나 걔랑 친구거든...
나 기다려 준다 했는데 없는 거 보니, 까먹고 갔나 봐. 근데 넌 왜 여기 혼자 있어?"
빤히 쳐다보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나에게 물었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우산이 없어서"
그런 나의 대답에 깜짝 놀라며 내 앞자리에 앉아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그런 남자애가 부담스러웠던 나는 다시 시선을 창가로 옮겼다
"나 우산 있는데!"
조금 당황스러운 남자애의 말에 '어쩌란 거지?' 라는 눈으로 그 애를 쳐다보았고 남자애는 말을 이었다.
"나 우산 있는데, 씌워 줄까?"
"아니, 괜찮아. 그냥 비 그치면 갈게"
남자애의 호의를 거절하고 다시 창문을 보는데 남자애가 작은 목소리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오늘 뉴스에서 내일 아침까지 비 계속 올 거라고 했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나 우산 진짜 짱커서 두명 들어가도 남을걸?"
눈을 크게 뜨고 손짓으로 우산 크기를 과장하며 나에게 같이 쓰자고 말하는 남자애가 솔직히 좀 웃겼다.
'나를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하게 구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들어 그 애에게 물었다.
"너 나 알아?"
나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듯한 아이는 'ㅇ..어?'라고 바보처럼 되물었고 난 그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깐 심각하게 생각하던 아이는 나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 몰라. 근데 어디서 본거 같아."
전형적인 드라마에 나올듯한 대답을 하는 그 애를 보며, 이름을 물었고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번에 전학 온 김 태형이야.
넌 김...여주?"
"맞아"
"이름 이쁘다. 너랑 잘 어울려"
"너도."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내 가슴께에 달린 명찰을 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을 보더니 뜬금없는 칭찬을 해주었고 그 칭찬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근데 진짜 우산같이 안 쓸 거야?"
"음... 글쎄"
"..."
이름도 알았겠다 친하게 지내자며 손을 내미는 태형을 보고 손을 잡아 악수라면 악수인... 그런 것을 했다.
악수를 하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태형에 나는 아직 우산까지 빌려 쓰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고민을 했고 태형은 입을 다물고 내 책상 위에 있는 카메라에 관심을 가졌다.
"이거 네 꺼야? 나 사진 찍는거 좋아하는데!
근데 이 카메라 진짜 오래된 것 같아 보인다."
"응, 우리 오빠가 중2 때 생일 선물로 사준 거야."
"우와. 너 오빠랑 사이좋구나? 난 동생이랑 맨날 싸우는데..."
"아, 부모ㄴ…"
순간적으로 태형의 물음에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 말할뻔했다. 그 정도로 이 아이는 알았던 사이처럼 친근했고 친절했다.
"응?"
"아니야, 말이 헛 나왔어."
"그래, 근데 너 비 안 그치면 어떡해? 내일 아침까지 비 온다고 했어."
"글쎄... 맞고 가야겠지."
"오빠 있다며, 오빠 부르면 안 돼?"
"지금 회사에 있어. 그리고 오라하면 힘들 거야 일했잖아"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데려다줘야겠다, 그치?"
"아니, 괜찮아."
"카메라 젖을 텐데?"
"아..."
"데려다줄게 가자."
순간 카메라를 생각 못한 나는 태형의 말에 순간 멈칫했고 태형은 그런 나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내 가방까지 어깨에 멘 태형은 카메라를 내 손에 쥐어 주곤 나를 교실 밖으로 이끌었고 소라색 우산을 펴며 말했다.
"나는 너희 집 모르니까 이제 너가 내비게이션 해야해"
"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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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 교실에서의 대화는 무색할 정도로 아무 대화도 없이 '찰박' 소리를 내며 걸었고, 집 앞에 섰다.
"다 왔어."
"아, 잘 들어 가. 내일 마주치면 인사해줘"
"그래. 고마워 데려다줘서. 네 덕에 카메라 안 젖었다."
"응. 들어가"
그렇게 태형과 인사를 끝낸 뒤, 현관물을 열고 들어와 방으로 곧장 갔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곤 핸드폰을 겉옷 주머니에서 꺼내 오빠에게 문자를 넣었다.
'올 때 하늘색 우산 큰 거 하나만 사다 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