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고
오년 째, 매일 고백하는 여자 <3>
"뭐야. 그 변태 같은 웃음은."
"립스틱 샀는데 색깔이 너무 야하지 않아?"
"괜찮은데."
"니가 괜찮다고 했다? 너 발라봐."
"나?"
"너 립스틱 같은 거 진짜 안 바르잖아. 기껏해야 립밤 정도 바르고."
"됐어. 이런 색깔 나한테 어울리지도 않고."
"어허, 니가 괜찮다며."
"아, 싫어. 안 어울린다니까."
"그건 발라봐야 아는거지."
밥도 많이 안 먹으면서 힘만 센 것들이 내 손을 붙잡고서는 놓을 줄을 몰랐다.
내 양 손을 붙잡고 있는 친구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내 앞에 자리 잡은 친구들은 거부하며 고개를 흔드는 날 꽉 붙잡고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고 곧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엄지를 치켜 들었다.
입술 위에 얹혀진 두껍고 답답한 느낌에 코를 찡긋 거리자 한 친구는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제스쳐까지 취하며 내 칭찬을 늘어 놓고 있었다.
끝날 줄 모르고 칭찬으로 비행기를 태우는 친구들의 모습에 난 또 웃음이 났다.
"너 이렇게 퇴폐적인 면이 있었어?"
"남자 여럿 울리겠어."
"내가 무슨. 입술 답답해 죽겠어. 이거 휴지로 닦으면 닦이지?"
지우지 말라며 매달리는 친구에게 꿀밤을 먹이고는 테이블 위 휴지를 뽑아드는데 테이블 위로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가 낯설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도 남자 4명이서 왔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면 합석 하실래요?"
"합석이요?"
친구들은 속닥거리며 옆에 있던 가방을 하나둘씩 치웠고 나는 어찌해야 될 지 몰라 입술은 지우지도 못하고 전공서적이 가득 든 백팩을 끌어안았다.
친구들은 예상치 못한 합석제안에 들뜬 상태였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시계를 보는 나와 세훈의 시선이 또 맞닿았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세훈의 시선은 전과 다르게 꽤나 오랜시간 나를 향해 있었고 나는 그런 세훈의 시선을 오롯이 받아 들이기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고 술 기운탓이라고 다독여 봤지만 얼굴의 붉은 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못했다.
"이름이 뭐예요?"
"네? 아…… ㅇㅇㅇ 이요."
"전 김종인이고 24살인데 몇 살이에요?"
"23살이요."
"어려보이네요."
"아…… 감사합니다."
"한 개 먹을래요?"
"네?"
언제 왔는 지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잡은 큰 키의 서글한 인상의 남자는 앞에 놓여 있던 안주를 스스럼 없이 하나 건넸다.
끌어 안은 백팩을 놓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자 남자가 안주를 들고 아~ 소리를 낸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친구들은 벌써 연락처 교환까지 하고 난리가 났다.
어쩔 줄 모르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내 어깨까지 톡톡 쳐서 다시 아~ 소리를 냈다.
웃는 얼굴 모양의 감자튀김을 든 남자의 손이 참 까맣다고 생각하며 입을 조금 벌렸다 다시 닫는데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낸다.
아, 진짜 못 받아먹겠는데…….
"아~ 해요 빨리. 나 팔 떨어질 것 같은데."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시, 아!"
결국 남자의 손에 든 감자튀김을 조금 베어 물었고 만족스러운 듯 박수까지 친 남자가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벌린다.
설마, 아니겠지.
애써 외면하며 주머니 속의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는데 남자가 턱 빠지다며 재촉을 한다.
"아……. 저 진짜 못하겠는데."
"아아, 나 턱 빠져요."
결국 앞에 있던 안주를 하나 집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가 내 손에 든 안주를 막 받아먹으려는 찰나 남자가 옆으로 휘청였고 그 뒤에 있던 세훈이 나를 향해 까딱, 손가락을 굽혔다.
일어나라는 손짓.
"잠시만 비켜주실 수 있나요. 전 같은 과 동기인데 얘가 오늘 급한 과제가 있다고 했는데 까먹었은 것 같아서 말해주려고 왔습니다."
옆자리에서 건너 온 세훈은 내 옆의 남자를 밀치고는 내 백팩을 챙겨 제 어깨에 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훈을 바라보자 세훈은 내가 듣지도 않는 교양 과목을 대며 나를 쇼파에서 잡아 일으켰다.
친구들은 우리의 상황을 그저 지켜볼 뿐이였고 나는 세훈의 손에 이끌려 벙찐 표정의 손이 검은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또 봐요. ㅇㅇ씨."
"입술 꼴 봐라. 쥐 잡아 먹은 줄 알겠네."
"세훈아, 너 착각한 거 같은데 나 그 교양 안 들어."
"알아."
"아, 착각했구나……. 그럼 나 다시 들어가볼게. 친구들도 걱정할 거 같고."
"그 남자가 걱정할까봐 그런 건 아니고? 처음 본 남자한테 뭘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건데."
"그냥 예의차린거야."
"다 필요없고 지금 12시 지났어. 하루 지났다고."
"응?"
"어제는 끝났고 오늘이 시작 됬다고."
"……."
"뭐 잊은 거 없냐고."
"좋아해, 세훈아."
"착해, 착해. 너무 착해서 씹어 삼키고 싶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