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졌다, 폈다
w. 리미니
등에 닿는 딱딱한 나무 막대의 촉감이 낯설다. 이렇게 죽도록 맞아 본 게 얼마 만이지? 세훈은 머릿속을 더듬었다. 시험을 망쳤을 때도, 날 괴롭히던 친구를 죽어라 팼을 때도, 엄마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잃어버렸을 때도. 부모님은 털끝 하나 건들지 않았다. 공부를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아이들은 원래 그렇게 큰다, 반지보단 네가 더 소중하다. 십팔 년의 인생이 머릿속에서 파라노마처럼 스쳤다.
자꾸 정신이 몽롱했다. 땅이 울렁이고 있다는 착각까지 할 만큼. 계속 부모님과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훈아, 엄마가 많이 사랑해. 우리 아들이 제일 자랑스러워! 귓가에 부모님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몸을 움찔거리며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기다란 나무 막대를 든 아버지가 무섭게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 혼나고 있었구나.
“일어나라.”
“아버지.”
“너 같은 아들 둔 적 없다, 일어나!”
귓가를 세게 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떨리는 무릎을 딛고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려하는데 눈앞에 스파크가 튀었다. 맞은 건 뺨인데 가슴이 저렸다.
“내 집에서 나가라.”
후들거리는 다리를 접어버리며 바닥에 추하게 엎어졌다. 무어라 욕을 한 아버지가 몽둥이를 내 옆에 던지며 방을 나가셨다. 누워 올려다본 천장이 가깝게 느껴진다.방에는 눈물과 땀으로 인한 열기가 후끈거렸다.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며 현관까지 기었는지 걸었는지 모를만큼 더디게 한 걸음 씩 내딛었다. 정말 맘 같아서는 두 다리라도 자른 채 나가고 싶었다. 자꾸만 아찔해 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현관 문을 열었다.
뻥 뚫린 아파트 복도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코를 들이쉴 때마다 비릿한 핏물 냄새와 풀 냄새가 났다. 후으윽, 후으윽. 눈을 감으니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일 분 일 초가 위태롭고 힘겨웠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몸이 미끄러졌다. 벽에 기대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일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파트 현관이 나타났다.
힘들게 몸을 이끌었다.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익숙한 풍경, 냄새, 체취. 그저 그것을 따라 걸었다. 몇 분 걷다보니 아까 맞은 곳이 기어코 문제를 일으켰다. 발목이 삐그덕거리고 장기가 뒤틀린듯 배가 아팠다. 몇 번이고 넘어지려다 많이 본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서 내렸다. 복도를 기어가 1001호의 문고리를 잡았다. 돌려봐도 맞물리는 소리는 없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몇 분을 보냈을까,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내려다보고 있다. 웃음이 난다.
“뭐냐? 오세훈이냐?”
“종인이다.”
“꼴이 왜 이래?”
문 세게 열었으면 얼굴 맞았다, 너. 종인이 얼굴을 구기며 세훈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 아퍼. 좀 살살 끌어. 종인은 묵묵히 세훈을 부축하며 집안으로 들였다. 세훈이 종인의 어깨에 기대 웃었다. 웃음이 나오냐? 하는 핀잔에도 웃었다. 여기가 진짜 우리 집 같아. 가까이 다가가봐야 비린 피 냄새만 나는데 자꾸 헛소리다. 종인이 세훈을 쇼파에 뉘였다.
“물 줘?”
“아니.”
“그럼?”
“왜 다쳤냐고 안 물어봐?”
종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고 세훈만 그저 내려다 볼 뿐이었다. 맞아도 잘생겼지? 세훈이 실없이 웃었다. 종인은 따라웃지 않았다. 종인아, 종인아아. 말을 똑바로 하지 않고 자꾸만 늘어뜨린다. 종인이 세훈의 얼굴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댔다. 미약하지만 숨은 투박하게 쉬었다.
“나 더러워?”
“…….”
“대답해.”
“…….”
“대답하라고오. 김종인.”
“자라.”
세훈이 신경질을 냈다. 종인은 세훈의 손을 잡아주며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목 끝까지 올려 덮으며 손으로 멍든 눈가를 부드럽게 눌렀다. 손안에서 세훈의 속눈썹이 간질거렸다. 잘 자, 세훈아. 일어나면 그때 얘기해. 세훈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공중에 뜨는 느낌이 참 묘하다. 꽃이 졌다, 폈다.
그 시각, 세훈의 어머니는 인터넷으로 무언갈 계속 찾아댔다. 동성애자 치료법, 동성애 병원, 동성애 전염…
| 용서 |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힘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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