胡蝶夢 호접몽 : 현실(現實)과 꿈의 구별(區別)이 안 되는 것
“… 월아는… 월아는…”
“그 다음 하실 말씀이 무엇이냔 말입니다.”
“…기녀가 되었습니다.”
종인은 찬열을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놓친 것인가. 종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의 세상은 내가 손을 뻗을 수도 없는 곳으로 사라졌단 것인가.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죄송합니다 홍월군. 그것이… 제가 알고잇는 진실입니다”
종인은 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초점이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찬열은 그런 종인을 흘끗 쳐다보았다. 거짓을 전해 충격을 나중에 얻는 것보다 진실을 빨리 아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이 제 착각이란 말입니까. 종인을 바라보던 찬열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홍월군”
“…아닙니다. 죄송하실 것이 무엇있습니까”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종인이 찬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찬열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오늘 밤은 안녕하시길. 종인이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뒤로 돌았다. 과연 오늘 밤에 안녕할 수 있을까요. 종인의 말을 들은 찬열은 그저 밝은 달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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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문 들었습니까?”
김씨가문의 장남, 김민석이 경수에게 물었다.
“무슨 소문 말입니까?”
경수가 들여다보던 책에서 눈을 들어 민석을 바라보았다. 옆에 처있던 김씨가문의 차남 (민석과 다른 김씨) 김종대가 방정맞게 웃으며 경수를 툭툭 건들였다.
“에이 진짜 몰라? 와 그 소문을 모른단 말이오?!”
종대의 목소리에 경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도데체 무슨 소문이길래 이렇게 선비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거야 김종대. 단호한 경수의 말에 종대가 눈썹을 내리며 말했다. 넌 진짜 책만보는구나? 월화에 화향이라는 기녀가 있는데 그렇게 예쁘다더라.
“월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에 경수가 갸우뚱했다. 그래 월화말이오. 유명한 기방이지 않소? 민석이 웃으며 경수를 바라보았다. 도씨가문의 자제분께서는 유흥을 즐길 줄 모르시는 것 같소. 민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경수가 미소지었다. 유흥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까. 문예에 출중한 선비가 제일 아니겠습니까.
[성균관 유생. 김씨가문의 장남 : 김민석]
“문예만 출중하면 뭣합니까, 세상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 진짜 선비지.”
민석의 말에 경수가 실소를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했다. 월화. 월화.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이름인데.
“도경수 그만 생각해. 진짜 너 그러다가 머리 팡 터져가지고 죽을지도 몰라”
“넌 진짜 걱정이 없나보다. 그렇게 열심히 유흥을 즐기는거 보면.”
“야 인생 뭐있어. 한방이지. 한방! 어차피 이번 생에서 못놀면 다음에도 못논다”
경수가 종대를 바라보았다. 도데체 어떤 기녀이길래 그리 김종대가 보고싶다 하는 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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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바로 그…”
“…김경수라 하옵니다”
경수는 자신의 앞에 있는 남성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허허 총명해보이는 아이구려. 비단 옷을 입은 남성이 경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닮았어”
“…”
“굉장히 닮았어. 우리 하준이…”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하준아! 여인은 경수를 자신의 품에 안으며 외쳤다. 서방님, 우리 하준이가 돌아온것입니까? 우리 하준이가… 우리 아가… 경수는 자신의 등을 쓰다듬는 여인의 손길이 너무 좋았다. 따뜻했다. 얼마나 바래왔던 집인가. 얼마나 매일밤 부모가 생기게 해달라 빌었던가. 경수는 자신의 두 눈을 감았다.
“네 이름은 도경수. 도경수란다.”
여인은 경수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경수의 앞에 앉았다. 그녀의 보드라운 손이 경수의 손을 감쌌다. 네 이름은 김경수가 아니라 도경수란다. 아까 자신을 보고 하준과 굉장히 닮았다고 말한 남성이 경수의 등을 쓰다듬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내 아들 경수야.
경수는 이곳의 생활이 너무나 좋았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다 볼 수가 있었고 끼니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부모가 생겼다는 사실이 경수에게 행복함을 가져다 주었다. 월아는 경수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지워져만갔다. 자신을 끌어안고 ‘하준아!’하고 외쳤던 여인을 어머니라 부르고, 자신의 등을 쓰다듬으며 ‘내 아들’이라 부른 남자를 아버지라 불렀다. 매일 아침 경수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몸종이 아침상을 치우고 나면 어머니를 찾아가서 어젯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경수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고, 도씨가문에도 따뜻함이 생겨났다.
“이레가 지났단다 경수야”
아련마님이 경수를 찾아왔다. 경수는 놀라서 여인을 바라보았다. 월아가 기다리고 있어. 경수는 아차싶었다. 행복함에 취해 모든 것을 잊고 살려했던 자신이 한순간 미웠다.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가 없는 것도, 끼니를 걱정해야했던 것도, 어린 동생이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자신이 이 가문의 자제가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도씨가문의 양아들 : 도경수]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경수의 어깨를 그의 ‘아비’라 불리는 자가 잡았다. 경수는 나의 아들일세. 경수는 마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동생이 없습니다.
경수의 말을 듣고 아련마님은 미소를 지었다. 도씨가문의 부자를 향해 고개를 숙인 그녀는 뒤돌아 대문을 나오며 웃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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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 남자와 여자를 향해 물었다. 요즘 굉장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그들을 향해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아들이 돌아왔다오, 이름은 도경수라 하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경수는 자신이 이 집의 진짜 자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바로 도씨가문의 아들 아닌가. 누군가가 경수에게 물었다. 자네 어디가문의 자제인가? 그러면 경수는 바로 ‘도씨가문의 자제, 도경수라 하옵니다’하고 답하였다.
“경수야 성균관이라 아느냐”
“…성균관 말입니까”
어느날 아비가 경수에게 물었다. 성균관. 입관해보지 않겠느냐. 경수는 아버지께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꼭 입관해 가문의 영광이 되겠습니다.
현재 스물이 되어버린 경수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했다. 다른 선비들과 함께하는 생활. 아버지 어머니와 살아가는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리고 이제 김경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경수의 마음속이든 이 세상에서든. 존재하는 것은 도경수였다.
[도경수 그리고 김민석의 다리. 징검다리 : 김종대]
“에이 그러니까 한번 가자는거 아니야”
“어딜가 김종대”
“아이 도경수- 한번씀은 월화 가보자니까? 나 진짜 민석형이랑 같이 갔는데 하안번도! 하아아안번도 그런 기녀 본적이 없어서그래!”
“그러면 민석형이랑 같이가던지”
읽던 책을 덮으며 일어나는 경수를 종대가 잡았다. 한번만 응? 한번만. 종대를 가만히 바라보던 경수가 한숨을 쉬며 민석을 바라보았다.
“가시렵니까”
“어딜말입니까”
“탐월화접. 월화 말입니다.”
“형님”
“예?”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경수가 민석과 종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뒤돌아가는 경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있었다. 궁금하구나. 도데체 그 여인이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