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l House
胡蝶夢 호접몽 : 현실(現實)과 꿈의 구별(區別)이 안 되는 것
“…나 원 참”
경수가 바닥을 바라보았다. 미쳤어 도경수 여기를 오면 어쩌자는거야. 혹시나 몰라 경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여인이 경수에게 말을 걸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경수는 여인에게 답하였다.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여인은 경수를 아련마님의 방으로 데려갔다.
“…경수?”
경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마님을 바라보았다. 어찌 저를 아십니까 .경수가 말을 하기도 전에 여인이 미소지으며 경수를 향해 말했다. 월아보러 온거구나.
“…예?”
“월아보러 온거 아니야? 네 동생말이다. 어여쁜 네 동생.”
“…저는 동생이 없습니다”
경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동생이 없단 말입니다. 마님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경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누구를 찾으러 온것입니까 도련님. 마님의 물음에 경수가 답했다. 화향이란 기녀가 있다해서 왔습니다.
“어머, 화향을 보러 온 것이라면 더욱이 월아를 만나셔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어머나 모르셨습니까 도련님?”
경수가 무엇을? 하고 물음을 가득 띄운 표정으로 마님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니 저에게 넘긴 도련님의 여동생, 월아가 기등했습니다. 경수가 마님을 향해 외쳤다. 저는 동생이 없단 말입니다!
“어머나 그럴리가.”
“도데체 무슨…”
“바로 화향이 월아인데. 모르셨던 것입니까? 도련님의 여동생이 바로 화향이옵니다”
-
[김월아 오라버니, 도씨가문의 양아들 : 도경수]
“오라버니!”
경수는 혼란스러웠다. 이 여인은 누구길래 나를 향해 오라버니라 부르는 것인가. 생각하기 싫어 생각하지 않으려했고, 떠오르려 하면 자꾸만 지웠다. 모든 것을 지웠다 생각했는데 왜 이제서야. 아니 하늘은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해주신단 말이냐. 화향은 경수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왜… 왜 이제서야 오신 겁니까…”
화향의 말에 경수는 답하지 않았다.
“이레… 이레만 지나면 오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이제서야… 어째서…”
제 품에 안겨 우는 화향을 경수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떨고있는 등이 안쓰러웠다. 경수는 손을 들어 화향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만.”
경수가 화향에게 말하고 뒤돌았다. 김월아. 도데체 누구길래 나와 엮이는 것인가. 나는 과연 그녀를 알고있는 것인가.
-
“…하”
경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깊은 어둠이 찾아온 밤. 홀로 깨어있던 경수는 계속해서 화향을 생각했다. 울었다. 나를 보며 오라버니라 했다. 이레가 지나면 온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 여인은 누구길래 나를 오라버니라 부르는 것인가. 왜 이제서야 왔냐고 어찌 물어본 것인가.
“김월아…”
경수는 계속 이름을 되내었다. 화향. 월아. 화향. 월아. 월아
…월아야.
경수의 손이 멈칫했다. 월아야. 익숙한 이름. 밝게 웃는 어린 여자아이. 소녀의 웃음에 저가 울고 웃던 기억이 하나 둘 경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안돼”
경수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도경수야. 김경수가 아니란 말이다. 어찌하여 내가 김경수라 할 수 있는 것이냐. 난 도씨가문에서 났고, 그 곳에서 자란...
‘이레가 지났단다 경수야’
아련마님의 목소리가 경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안돼.
‘저는 동생이 없습니다’
왜 그때 나는 그녀의 미소에 의심을 품지 않았는가. 경수는 얼글을 쓸어올렸다. 왜 나는… 어째서 나는… 경수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미안하다. 경수의 입에선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나왔다. 내가… 나의 행복을 위해 너를 지우려했다. 내 모든 것에서 너를 도려내려했다. 내가 미안하다.
도경수라 믿었다. 저를 도경수라 사람들이 불렀고, 저도 스스로가 도경수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는 도경수가 아니라 김경수였다. 그리고 김월아의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이것은 바뀔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아아 나는 어찌 너에게 이리 가혹한 짓을 한 것인가.
“…미안하다”
경수의 한마디가 달빛속으로 사라졌다.
-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요”
화향이 마님에게 물었다.
“무엇을 말이냐”
담뱃대를 물었던 마님이 화향에게 물었다. 무엇 그리고 누가 말이냐.
“오라버니 말입니다. 절 잊은 것일까요”
가만히 화향을 바라보던 마님이 말했다. 서찰을 보내주마. 내일 다시 만나보는 것이 어떠하냐. 마님의 말에 화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를 만났어요”
세훈은 묵묵히 화향의 곁에서 발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근데 나를 못알아보더라구요. 나 많이 변했어요?”
세훈은 어찌 대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침묵으로 답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무사님. 화향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찌 답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서… 세훈의 말에 화향은 걸음을 멈췄다.
“내가 싫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것일까요. 이 둘도 아니라면 도데체…”
세훈이 그녀를 뒤돌아 바라보았다.
“…날 아예 버리려하는 것일까요, 나의 오라버니가.”
화향의 눈에 고인 눈물을 세훈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날이 춥습니다. 세훈이 입술을 떼었다. 그만 들어가시지요. 세훈의 말에 화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만 해줘요”
방문을 닫으려는 세훈의 소매를 화향이 잡았다. 세훈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잊은거 아니라고”
“…”
“나 기억하고 있다고”
“…아”
“나 버리는거 아니라고. 경수오빠 꼭 돌아올 것이라고.”
“…아가씨”
“…한마디만 해주세요. 무사님.”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소매를 놓는 화향을 세훈이 바라보았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세훈은 그녀가 뒤로 돌자 입을 열었다. 잊은 것이 아닙니다. 세훈의 목소리에 화향이 멈추었다.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흐으…”
“아가씨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오실 겁니다”
화향은 자신의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고있었다. 떨리는 어깨에 세훈이 손을 올려 그녀를 위로했다.
“단지 돌아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훈의 말에 화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밤에 안녕하시길. 세훈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세훈이 나가고 어두운 방안은 화향의 흐느낌으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