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레오총수]
CAFE_V #03
W.돌쇠
프롤로그, 1편, 2편을 보고 와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도련님, 저기도 닦아요?"
원식이 투덜거렸다. 아침 여섯 시부터 가게 청소한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두 시간이 다 되도록 번쩍번쩍 빛이 나는 가게를 닦고 닦고 또 닦았다. 물론 원식이 전부 다. 청소란 걸 혼자 해 본 적이 없는 학연은 의자에 앉아서 원식아 저기 먼지! 여기 먼지! 하고 수다나 재잘재잘 떨어댈 뿐이었다. 그럼 저기도 닦아야지! 하고 눈을 동그랗게 키우는 학연의 얼굴을 째려본 원식은 한숨을 푹 쉬며 대걸레를 그쪽으로 옮겼다.
딸랑-
문에 달아 둔 종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원식과 학연은 동시에 문 쪽을 돌아보았다.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안 늦었죠?"
택운이 미소지었다.
원식의 시선이 택운에게 고정되었다. 뒤에서 내리쬐는 초가을 햇살을 그대로 받아 안 그래도 하얀 피부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새까만 머리칼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빨갛고 적당히 도톰한 입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그 피부 덕에 택운은 마치 밀랍인형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새초롬한 눈과 살짝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묘하게 어울려 고양이 같은 느낌을 주었고, 입술라인으로 넓고 얕게 파진 옅은 베이지색의 니트와 달라붙는 검은 스키니진은 상당히 간단한 의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택운을 위해 만들어진 옷처럼 잘 어울렸다. 원식이 붙잡고 있던 대걸레 손잡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 네! 정확히 와주셨네요. 유니폼으로 갈아입으시면…"
"저 분은…?"
학연의 말을 잘라먹고 대뜸 택운이 원식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정확히 원식의 눈을 바라보는 새카만 눈동자 때문에 원식은 바보처럼 입을 살짝 벌린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아, 제 보디가드인데 일 도와준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홀서빙하려구요. 라고 학연이 설명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식이 후다닥 대걸레를 집어들었다.
"안녕하세요, 김원식입니다."
"학연 씨 보디가드…?"
택운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여리여리한 미성인데도 단어 한 개 한 개가 고막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포커페이스를 간신히 유지한 채 원식이 젠틀하게 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손을 못 본 건지 못 본 척 하는 건지 택운은 잘 부탁해요. 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 뒤 원식을 그대로 스쳐지나갔다. 뻘쭘히 한 손을 내민 채 가만히 서 있는 원식을 보고 학연히 푸하하, 하고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게이라는 건,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거겠지.
"오늘은 그럼, 진열해 놓을 가장 기본적인 케익 몇 개만 만들어 놓을게요."
어느 새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택운이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주방에 달린 창문으로 소리쳤다.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해버린 학연이 아직도 멍하니 정신이 빠진 듯한 원식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원식아. 아,아, 아니에요. 원식이 손사래쳤다.
"아, 그런데 택운 씨! 저희 알바생 한두 명 정도 더 뽑을 생각인데, 혹시 주의할 사항 같은 건 없으세요?"
학연이 주방으로 크게 소리질렀다. 그 말을 듣고 택운이 생긋 웃었다.
"알바생은 전부 남자로 부탁해요."
-
"형, 어떡해요. 벌써 어둑어둑해졌어."
"나 다리아포 혀가…"
해는 져버린 지 오래였고, 동네 한 바퀴를 전부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은 건장한 이십 대 남자 재환과 상혁은 다리를 통통 두들겼다. 아니 왜 이렇게 용모 단정하고 신체 건강한 남자를 쓰려는 데가 없는 거야. 상혁이 조용히 궁시렁거렸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을 얻지 못하면 그 침대에서 당장 쫓겨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상혁은 다리아프다며 징징대는 재환을 끙차, 하고 일으켰다.
"형, 일어나요. 한 바퀴만 더 돌아보고 그때 없으면 진짜 집에 가는 거예요. 진짜!"
"혀가 나 다리아포 걷기시러 시러…"
"한 바퀴만 더 돌아요. 딱 한 바퀴!"
잔뜩 울상을 짓고 긴 다리를 일으킨 재환을 끌고 상혁이 걸음을 옮겼다. 여기도 아까 가 봤었고, 여기도… 어? 상혁의 눈에 꽤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여길 왜 아침엔 못 본 거지, 하고 생각한 상혁이 카페 앞으로 가 보았다. 새로 지은 듯 깨끗한 느낌의 카페였다. 카페 지붕 위에는 고풍스러운 글씨체로 CAFE_V 라고 적혀 있었고, 정말 다행이게도 카페 창문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남자 알바생 구함. 이라고 적혀 있었다. 남자라는 글씨에는 왠지 모르게 굵게 강조가 되어 있었다. 형 여기예요!! 하고 기쁨에 겨운 소리를 내지른 상혁이 재환을 쳐다보았다. 구겨졌던 재환의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
울리는 카페 종소리에 케익을 진열하고 있던 택운, 아직도 걸레질을 하고 있던 원식, 그리고 택운이 진열하는 케익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던 학연이 동시에 고개를 확 하고 돌렸다. 집중되는 시선에 당차게 들어오던 상혁과 재환이 시선 둘 곳을 모르고 멈칫했다. 젊은 패기로 상혁이 먼저 입을 떼었다.
"알바, 구하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
"…이게 면접이에요?"
상혁이 뻘쭘함을 참지 못하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택운에게 물었다. 택운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상혁을 빤하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면접이랍시고 자기를 데려와 놓고는 대뜸 택운의 앞에 자신을 앉혀놓고 아이컨택만 몇 분째인 건지. 재환은 의외로 쉽게 통과해서 자신의 면접을 구경하고 있는데 그것도 얄미웠다. 왜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택운이 흐음, 하고 작게 고민하는 듯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얼굴을 열심히 관찰하는 택운에게 짜증이 난 상혁이 아 됐어 안 해, 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택운은 당황하지 않고 상혁을 그저 올려다보는데 오히려 학연이 더 호들갑이었다. 어머어머 얘, 조금만 참아봐, 라는 갑작스런 치댐에 짜증이 플러스 알파로 나서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간 상혁이 진열대에 올려져 있는 퐁당 오 쇼콜라를 집어들고는 무심코 입 속으로 쑤셔넣었다.
"사부님, 제자로 받아주십쇼!!"
가게를 나간지 십 초도 안 돼서 다시 가게 문을 쾅 하고 열고 들어온 상혁이 덜컥 택운의 앞에 꿇어앉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릴 듯 말 듯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을 황당하게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건지 상혁은 택운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택운이 매우 귀여운 것을 봤을 때처럼 흐흐, 하고 웃었다.
"…그럼 그럴까?"
택운이 작게 말했다. 상혁이 예!!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택운의 손을 덥썩 잡았다. 제가 잘하겠습니다 사부님. 감격에 찬 상혁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학연이 안돼안돼! 하며 빽 소리를 질렀다. 너 우리 가게 문 부술 뻔 했다고.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마치 아줌마처럼 사투리가 섞인 잔소리를 구사해대는 학연을 쳐다보던 택운이 말했다.
"받아줘요."
"네?"
"얘랑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상혁이 학연의 면전에다 대고 베에- 하고 얄밉게 혀를 내밀었다. 상혁을 한 대 쥐어박으려던 학연이 택운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재환이랑 한상혁, 따라와."
"왜 나는 한상혁이고 재환이형은 재환이에요!"
"우리 가게 이층에 다락방 하나 있는데, 방 내줄 테니까 거기서 살아요. 꽤 쓸만할거야. 빠듯한 살림에 집세 꼬박꼬박 내는 것보다 이게 나을걸요?"
상혁의 말을 상큼하게 무시하고는 재환을 잡아끌어 이층으로 데려가는 학연을 상혁이 바락바락 대들며 뒤쫓아갔다. 방 안 좋기만 해 봐요! …아야 왜 때려! 들려오는 투닥투닥 다투는 소리에 택운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거겠지. 택운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
"아흐, 피곤해."
"한 신데 얼른 주무세요. 내일 또 일찍 가게 나가셔야 되잖아요."
열두 시에 클로즈하는 가게를 뒷정리까지 하고 나온 학연이 기지개를 쭉 펴며 침대에 그대로 엎어졌다. 젖은 머리를 털며 나온 원식이 뻗은 학연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학연의 어머니가 시켜서 하는 아르바이트였지만, 원식은 지금 평생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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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3편입니다ㅠㅠㅠ 방학해서 느무느무 좋네요ㅠㅠ
하지만 왠지 학원의 압박으로 방학이 더 바쁠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ㅠㅠ
늦게 왔죠! 죄송합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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