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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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완연히 다가온 한겨울에 재환이 몸을 살짝 떨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야행성인 이재환은 희미한 달빛에 의지한 채로 열린 창 밖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등을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후- 하고 내뱉는 숨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나왔다. 재환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아직도 반짝거리는 도시의 중심 유흥가들에 고정하던 시선을 재환이 이내 거두었다.
"그만하지, 재미없는데."
칫, 하고 어둠 속에서 작은 낭패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형체가 재빠르게 튀어나와 재환에게 달려들었다.
손에서는 반짝 하고 금속성의 광채가 빛났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재환의 목을 겨눈 단도가 몇 초 만에 힘없이 떨어졌다.
손목을 잡힌 어두운 형체가 잠깐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재환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커흑! 으아…아악! 아아아악!"
남자의 입에서 듣기 싫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손목뼈가 부러진 듯했다. 떨어진 단도를 나른하게 집어올린 재환이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그 단도를 빙글 돌렸다.
이재환의 아무 감정 없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형체가 등을 보였다. 달아나려는 듯 문으로 돌진하는 형체를 향해 재환이 단도를 던졌다.
단도는 정확히 남자의 뒷목을 명중시켰다.
비명 한 마디 없이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간 이재환이 뒤통수를 보이며 누워 있는 시체의 귓등을 자세하게 관찰했다.
새카만 장미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점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작고 섬세한 무늬였다.
"Black… Rose."
재환이 낮게 중얼거렸다.
진한 이목구비에는 가벼운 웃음이 서렸다.
-
"실패할 줄 알았어."
동이 터 올 즈음,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방을 그득 채운 것을 즐겁게 감상하던 학연이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신출내기였다. 어차피 죽어도 그만인, 중요하지 않은 조직원이었다는 거다.
승진이 하고 싶었던 건지 자기를 보내달랍시고 독하게도 보채길래 가 보라고 했더니. 우리 조직의 정체를 들켰음에 틀림없다.
이재환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우리가 댁 죽이고 싶어요 광고나 하고 왔다는 거지. 학연의 미간이 주름이 패였다.
이래서야, 다른 조직원을 보내도 소용이 없다. 경계와 방비는 가뜩이나 심한데 더욱 심해질 게 뻔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면 위험한 눈엣가시였다.
요 몇 달 새, V.Forte는 무서울 만큼 성장했다.
이런 조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갑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VF는 어느새 BR을 위협할 만큼 자라 있었다.
골칫거리였다. 사사건건 시비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조직이었다. 이탈리아로의 마약 유통로가 VF 때문에 거의 끊길 뻔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놈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무식하게 폭력과 고문을 일삼았다.
하지만 이재환은 생각보다 상당히 강했고, VF도 만만하게 볼 만한 조직이 아니었다.
결국 보내야 하나, 학연의 만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일단 알았어, 나가 봐."
"예."
짧게 목례를 한 남자가 학연의 방을 나갔다. 육중한 원목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학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간에 패인 주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답지 않게 초조한 기색을 보이던 학연이, 마침내 결심한 건지 이를 앙다물었다.
"운아."
사락, 하고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학연은 앉아 있던 의자를 빙글 돌렸다. 눈앞에는 아름다운 남자가 서 있었다.
새하얀 피부는 캄캄한 방을 환하게 밝힐 듯 빛이 났다. 새카만 눈동자는 속을 알 수 없이 깊고 투명했고, 손질하지 않은 생머리는 목 언저리에서 찰랑거렸다.
언제나 그렇듯 꼭 다문 입술은 무채색의 그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듯 발갰다.
정택운은 뒷세계에서는 통칭 'Black Rose' 또는 'Beautiful killer' 로 통했다.
후자 쪽으로 더 많이 불리었는데, 그 이유는 정택운이 뒷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자이기 때문일 것이고, 아무도 그의 얼굴과 이름, 목소리를 모른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암살을 주특기로 하는 BR에서 정택운은 조직의 중심이었다. 차학연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소문 또한 나돌았다. 물론 차학연은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정택운이 했던 암살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정택운의 얼굴을 본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소문과 정택운이 숨막힐 만큼 아름답다는 소문은 어느 새 뒷세계를 가득 채웠고, 그것이 별칭의 시발점이 되었다.
심지어 Black Rose 내에서도 차학연을 제외한 그 누구도 정택운의 얼굴을 몰랐다. 물론 이름 또한. 그는 그저 그 사람 또는 Beautiful Killer로 불렸다.
차학연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인 택운은 가만히 서서 학연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이번 임무는 진짜 너 맡기기 싫었는데."
"……."
"너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 운아.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존댓말 하지 말라니까."
"……."
"이재환, 정말 만만히 볼 사람 아니야. 여지껏 했던 일 중에서 제일 힘들 거라고. 너 다칠 수도 있어."
택운이 빤히 학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 표정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것 같이 보이겠지만, 학연에게는 상당히 화난 표정처럼 보였을 것이다.
학연이 황급히 변명하는 어투로 택운에게 말했다.
"아냐, 너 못 믿는 거 아니라고. 진짜야."
"……."
"그냥 다칠까 봐 걱정돼서 그래. 나랑 약속해, 그럼. 안 다치겠다고."
택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학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묻어나왔다.
택운이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학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택운이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학연이 휴대폰 홀더를 눌렀다.
네 시 십 분이었다. 슬슬 온 몸을 타고 올라오는 피로를 느낀 학연이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대었다.
하지만 걱정스러워서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정택운을 보내기가 싫었다.
학연이 도리질을 쳤다. 아니야, 운이는 잘 하겠지. 잘 할 거야.
학연이 눈을 감았다. 이내 고요하고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방 안을 울렸다.
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새로 구상했던 거 들고왔어요! 조직물 택총입니당!
조직물은 꼭 한번 써보고 싶던 거였기도 했고 이번 비쮸 수록곡에도 마침 뷰티풀 킬러라는 곡이 있어서ㅠㅠ
듣자마자 정택운이 떠오르더라구요ㅋㅋ
프롤로그라 조금 짧습니다ㅠㅠ 다음편부터는 정식 스토리가 연재되니까요, 더 길고 정성들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