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자존심
W. jh23
바보 머저리 쯤으로 인식될 법한 김성규의 말은 나의 뇌리를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내가 죄책감을 느낀 것이 바로 자신 어미의 죽음 때문이라고 여기는 김성규의 그 바보같음이 나를 잠시 멍해지게 했다. 심장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 김성규……. 끝없는 자기 혐오와 비하로 똘똘 뭉친 김성규의 껍데기를 벗겨내야만 했다. 안 그러면 김성규는 정말 죽을 것 같았으니까. 돌아가시자마자 바로 화장을 해버려 이제 더 이상 어미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이 곳에서, 나는 김성규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의무가 있었다. 바닥에 손을 짚고 주저앉은 김성규에게 다가가 얼굴을 보았다. 잔뜩 퀭해진 얼굴, 그리고 그만큼 상했을 속을 생각하니 나도 결코 마음이 좋지 않다. 안 그래도 심한 말을 해버린 김성규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 머리가 정리가 되질 않는다. 나는 천천히 김성규의 입술을 찾았다. 김성규의 뒷통수를 감싸안아 다시 눕힌 후, 그 위에 올라타 최대한 천천히, 김성규가 아프지 않도록 다가가 입술로 입술을 매만졌다. 아직까지도 설레는 김성규의 마음이 치유되길. 정말 그 생각 뿐이었다. 그 말을 하기 전, 내 입술을 탐하던 김성규의 조그만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안쓰러워 한참을 기다리자, 아예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키스를 졸라온다. 나랑만……나랑만 해……. 여전히 불안한걸까. 김성규의 치기 어린 부탁에 나도 내 넋을 놓은 채로 그대로 파고들었다. 내가 죽고 못살던 김성규의 볼살이 다 사라진 그 얼굴이 다시금 젖어들고 있었다. 왜, 왜 울어……. 키스 하는 와중에 입 안으로 들어온 짭짜름한 액체에 내 마음도 절여지는 기분. 찬 바닥에 누워 나를 담으려고 애쓰는 김성규가 기특하고 예쁘고 갸륵해서, 나는 더 속도를 올렸다. 김성규의 옷깃을 타고 흐르는 액체가 우리의 타액인지, 눈물인지 모를 일이었다.
***
밤이란 게 여우 같아서, 사람을 꼭 흔들어 놓고 가버린다. 오늘 밤도 마찬가지. 키스로 하루를 보내던 우리는 아까의 상황이 무색하게 떨어져 앉아 허공만 마주보고 있었다. 김성규와 함께 있는 집은 시간 개념도 사라진 채로,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김성규가 한참이나 굶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내가 해준 입맞춤 따위에 허기가 가실리 없었다. 나는 김성규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상황에도 부엌을 향해 일어나면서 김성규의 눈치를 살폈다. 김성규는 내 행동을 흘깃거리며 좇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턱 마주치자 괜히 피하는 척. 어쩌면 옛날의 우리 같아서 웃음이 터지려고 하다가도, 입술을 꾹 물고 눈을 내리까는 김성규를 보면 또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다 졸아버린 냄비를 대충 헹구고 다시 물을 올리자 뒤에서 바닥을 끄는 걸음소리가 들려온다. 등을 돌리자 걷던 걸음 그대로 굳어버려 내 눈을 보지 못하는 저 애처로운 인영. 왜?, 입모양으로 조심히 묻자 바닥에 널브러진 앞치마를 주워다가 걸어놓고는 턱짓으로 안방을 가리킨다. 자신이 할테니 나보곤 들어가서 쉬라는 소리였다. 내 몸이 편하고 불편하고를 떠나서, 내가 이것마저 해주지 않으면 정말 못난 애인으로 남을까봐, 나는 기어코 떼를 썼다. 내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김성규를 애써 무시한 채로 괜히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김성규는 아무래도 불안한 듯 기어이 한 마디를 던졌다.
"……나 밥 안 먹어."
오로지 김성규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려던 나에겐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그제서야 콧노래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고개를 푹 숙이곤, 안 먹는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하고 있다. 몇 끼나 굶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 김성규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흠칫하며 뒤로 물러난다. 아까까진 그렇게 키스를 해놓고선……. 이유 모를 섭섭함에 한숨을 내쉬자 다시금 불안했는지 고개를 쳐들곤 내 눈을 보려다가……결국엔 고개를 숙이고만다. 왜 안 먹어? 내 딴에는 조곤조곤하게 물어본건데 화가 난 것처럼 들렸나보다. 어쩔 줄 몰라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김성규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괜히 분주하게 준비했던 손이 부끄러워 뒤로 숨긴 채 안방으로 들어가자 따라오지도 못하는 김성규가 보인다. 진짜 바보가 틀림 없다. 예전이라면 나에게 베개라도 던지며 신경질을 냈을 김성규였다. 생각의 환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예전의 추억들이 떠올라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여야만 했다. 거실은 적막했다. 채 닫히지 않은 문 틈으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김성규는 또 소파에 앉아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봤자 덧 없을 생각들이 내 전신을 휘감고 돈다. 내 머리도 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장을 한참 보다가 샤워라도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아 벽에 걸려있던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벌떡 일어나 나오려는데, 김성규.
"미안……."
"뭐가?"
"밥, 니가 해주는 건데……"
부엌을 흘끔거리며 침대 앞으로 걸어들어온 김성규는 또 실없는 소리를 했다. 난 결코 화가 나지 않았다. 화가 났다며 나에게 났을 뿐.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데도 김성규는 불안한 모양이었다. 내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어깨에 걸친 수건을 본다. 나는 괜히 뜨끔했다. 마치 도둑질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한참이나 적막이었다. 서있는 김성규를 지나쳐 화장실로 향하려는데,
"……같이 씻어."
***
6개월 동안 보지 못했던 김성규의 나체. 살이 빠져있던 얼굴만큼이나 허리도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옷을 입어도 다 드러나는 몸매였지만 실제로 보고나니 안쓰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살이 찐 상태였다. 예전날, 김성규가 기분이 좋으면 가끔 부벼대던 복근도 살짝 사라진 상태였고. 나는 애써 김성규의 나체를 무시하며 욕조에 물을 채웠다. 즐거운 연애를 하고 있을 당시에도 몇 번 같이 씻지 않았던 우리였다. 내가 능글맞게 화장실 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귀신 같이 알아채던 김성규 덕분에 내 계획은 항상 실패하고 말았었는데. 그렇던 김성규의 자존심이 흘러가는 물처럼 되버린 것 같아 또 죄책감이 든다. 화장실 한 구석에 쪼그려앉아있던 김성규는 내 손짓에 그제서야 욕조 안으로 조심히 발을 옮겼다. 조금 뜨거울 물에도 별 말을 하지 않고 욕조 구석에 앉아 눈을 감는다. 사실, 김성규를 먼저 씻겨 내보낼 계획이었다. 같이 있다가는 나도 내 본능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성욕도, 어떤 소유욕도 아니었다. 김성규를 향해 끓어오르는 연애 세포. 단지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나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눈을 감았던 김성규는 첨벙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다가, 제 눈높이에 있는 내 골반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놀리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지라. 나도 덤덤한 척 김성규 앞에 마주앉아 있었다. 나 때문에 조금 빠져나간 물을 다시 채우면서 김성규의 눈치를 보았다. 김성규는 이 상황이 불편해보였다. 소중한 선물을 놓고 온 사람처럼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뿌연 김이 서린 타일을 보는 작은 눈동자. 뜨뜻한 물에 몸이 조금씩 노곤해지며 말할 타이밍을 찾고 있던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김성규였다.
"……되게 오랜만이다. 그치?"
"그러게."
"……솔직히 말해도 돼?"
"……응. 다 말해도 돼."
물 안에서 꼼지락대는 김성규의 손가락. 무엇을 말하려는건지 몰라도 한참이나 망설이는 시간이 아까워서 죽을 맛이었다. 적당히 달아오른 김성규의 마른 몸은 충분히 나의 리비도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건 늑대같은 짐승의 본능이 아니었다. 정말, 애인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귀여운 애인의 본능이라고 쳐두고 싶을 정도로, 어쨌든 나에겐 정말 솔직한 감정이었다. 찰랑거리는 물이 김성규의 가슴팍에 닿을 때마다 내 심장도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김성규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더 간지러웠다.
"너무 좋아……."
"……"
"그래서 꿈 같애. 꿈……. 행복해서 깨고싶지 않은 꿈……."
"나랑 이러고 있는게 꿈 같다고?"
"……응. 꿈."
그 말을 하자마자 김성규는 욕조 물에 제 얼굴을 쳐박아버렸다. 몇 초 뒤에 다시 얼굴을 드러낸 김성규의 온 몸이 붉어보이는 것은 단순한 내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성규는 떨고 있었다. 이런 꿈 같은 현실에 취해, 그러니까, 우리 둘이 있는 이 현실에 취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꿈 아닌데. 내 말에 김성규는 한 마디 더했다.
"……그 여자가 참 부러워."
"……"
"이런 꿈 같은 일을 매일 겪었을테니까……."
숨이 막혔다. 수증기로 가득해 뿌연 이 공간 속에서, 나도 잊어버린 그 여자를 잊지 못한 김성규의 얼굴은 지나치게 평온했다. 차라리 울었으면. 아까처럼 키스해달라고 조르던 얼굴이었으면. 나는 또 고개를 저었다.
"……부러워 할 필요 없어."
"……"
"이런 꿈 같은 일, 이제 네가 겪을 테니까."
"……"
"그 여자는, 이제"
"……"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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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맨날 늦는 jh23입니다ㅠㅠ 면목이 없네요ㅜㅜ 저 오늘 진짜 짱짱 오랜만에 독방 갔다가 우연히 제 글 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감사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튼 제 글 기다려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ㅠㅠ 분량도 똥이고 문체도 똥이고 뭣보다 내용도 똥이지만 예쁘게 봐주셔서 항상 힐링하고 있는 jh23! 감사합니다ㅠㅠ^ㅠㅠ 댓글과 신알신, 암호닉은 항상 받아요. 주신 분들 모두 너무 감사해!!!!!!!!!!!!!!!!!!!!!!!!!!!!!!!!! 그리고 꼭 구독료의 가치가 있으시길 ㅠㅠㅠ
+) 저 요즘 목표는형부다 메일링 신청 갑자기 짱짱 많이 받아여;;; 당황;;;; 목표는 형부다 독방에 한번 푼적이 잇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가여ㅠㅠ? 목표는형부다는 공금이 아니니까 제 글 갖고 계신 독자님께서 아무때 아무곳에서나 풀어주셔도 좋아요ㅠㅠ
그리고 제가 막 휘갈겼떤 조각글 메일링 받고 싶은 분들을 위해 조만간 메일링 신청글만 따로 올릴게요 거기서 신청해쥬시떼~S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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