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민] 순정 초식동물 _ 07 루한X시우민 W.밤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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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굳이 발소리를 조심하여 나오지 않아도 둘을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복도로 나와 좀 더 걷던 민석이 발길을 멈춘 곳은 반에서 꽤 떨어진 중앙 계단이었다. 민석이 조심히 뒤를 돌며 제 이마를 덮고있는 앞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빗질했다. 교실을 나오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앞머릴 흩트려 놓은 것이다. 말없이 그 뒤를 걷던 루한의 눈이 땡그래져선 민석을 내려다보았다. 교실은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민석의 얼굴은 어둡고 벌겋게 물들어있었다. 루한은 덜컥 겁이 났다. 자신 때문에 민석이 어딘가 아픈 거 아닐까, 화가나서 열이 바짝 오른 건 아닐까. 온 갖 잡다한 걱정들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와중에도 입을 뗄 순 없었다. 민석은 자신을 싫어했다. 알면서도 마음을 접지 않았다. 그런 민석이 자신 때문에 화가 나 빨개진 얼굴을 하고 있으니 죄책감 때문에라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석의 안색보다 더 빨갛게 물든 입술에서 내뱉어진 말은 뜻밖이었다. "너…, 내가 만두를 닮았다고 했잖아. …내가 만두인 이유를 100자 이내로 서술해봐." 민석이 얼굴을 훌훌털곤 팔짱을 꼈다. 자칫 오만해보이는 태도 같지만 루한의 눈엔 그저 귀여운 생명체가 팔짱을 끼는 것으로 밖에 안 보였다. "음, …일단 만두를 닮았고……." "겨우 그거?" "나 만두 좋아해. 그리고 군만두도 좋아하고, 찐만두도 좋아하고, 물만두도 좋아하고, 왕만두도 좋아하고…, 또…." "거기까지. 넌 그냥 만두가 좋은 거잖아." "…미안. 내가 어휘력이 부족해." "넌 그냥 만두랑 살아." "…정말?" 루한이 눈을 반짝였다. "어" 더 말 할 가치가 없다는 듯 민석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한심했다. 단순히 (먹는)만두를 좋아해서 저에게 이러한 말과 행동들을 했었다니. 민석은 아직 제 손에 들린 루한의 핸드폰을 들었다. 화면이 꺼져 다시 잠금이 걸린 상태였다. 빨리 패턴을 풀어 자신에게 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민석은 루한이 야금야금 자신의 사진을 찍어왔다는 것을 몰랐다.) 쥐고 있던 핸드폰을 그대로 루한의 바지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잠깐 민석의 손길이 닿은 루한의 골반 촉각이 반응하며 한 걸음 떨어졌다. 헐, 헉! 루한이 한 걸음 물러선 상태에서 뭐냐는 눈빛의 민석과 마주했다. 민석의 표정이 찡그려질만도 했다. 단지 아무 이유 없이 핸드폰을 돌려줬을 뿐인데 루한이 펄쩍 뛰며 물러섰다. 기분이 나빠졌다. 루한은 손바닥을 펴 왼쪽 가슴에 대고 심호흡을 하더니 민석의 양 손을 그러쥐듯 맞잡았다. 민석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우리집 갈래?" "…미쳤냐?" "만두랑 살라고 했잖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사람하고 살아야지. 만두 도플갱어. 알겠어요 빠오즈씨?" 이건 또 뭐야…. 민석의 이마가 한 껏 주름을 만들어내고 눈을 찡그렸다. 그리곤 잡힌 두 손을 흔들어 자유를 되찾았다. 다시 손을 잡아오진 않았다. 그저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왠지 오래 눈을 마주치기엔 부담스런 표정이었다. 과대망상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단순히 충동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정말 남자인 자신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태생이 게이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아닐까.란 걱정이 스물스물 들 법한 얼굴이었다. 이 시기에 남학생들은 가끔 성정체성에 고민한다고 한던데…. 짧은 시간에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간 민석의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그리곤 이내 홱 고갤 돌린 민석의 입에서 병신같아라며 작게 욕지거리가 새어나왔다. "저번에도 말 했지만, 나 남자 안 좋아해" "알아, 알지!" 뭐가 좋은지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민석이 방향을 튼 덕분에 루한이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다. 발길을 떼어 다시 교실로 걸어가는 민석을 빠르게 뒤쫓아 나란히 걷는 루한이 싱글벙글 입을 죽 찢어 웃었다. "교실 갈거야, 빠오즈?" "그건 또 뭐야" "빠오즈?" 민석이 침묵했다. 내가 완강히 거부하는 반응에도 루한은 뭐가 이렇게 신나는 걸까. 민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루한은 터벅터벅 걸으며 계속해서 대화를 걸었다. "만두. 중국어로 만두라는 뜻이야." "나한테 중국어 갖다 붙이지 마. 나 중국어 되게 싫어해" "흥, 싫은데, 싫은데-" 당장이라도 메롱메롱 거리며 놀리고 도망 갈 것 같은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깐족거리는 루한이 밉진 않았다. * * *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한 번 말을 건내면 쉽게 답변이 돌아온다. 이 쉬운 걸 왜 여태 시도도 안 하고 있었을까 지난 날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민석은 착했다. 평소 루한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착했다. 물론 조금 냉정하고 차가워보인다 싶었으나 요 며칠간 짧고 긴 대화를 하는 와중에 날이 선 말을 내뱉는 민석은 듣는이로 하여금 어느정도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민석의 화법이 어떻든 자신이 그렇게 느꼈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그런 행복감에 빠져있는 것도 잠시였다. 방학식이 시작되고 루한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학교가 아니면 민석을 마주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일주일 중 주말인 이틀만 빼면 5일을 민석과 같은 공간에,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수업을 들어왔다. 하지만 하계방학이 시작되면 민석과의 러브러브 대작전(루한 가칭)도 말짱 도루묵이었다. 교탁에서 반장을 도와 학급 친구들에게 방학유인물들을 나눠주려 서있던 루한은 제 품에 안겨있는 프린트물을 전부 다 바닥으로 밀치고 날려버렸다. 갑작스런 루한의 행패에 담임과 학생들이 눈을 땡그랗게 떴다. 프린트 나눠주랬더니 얘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옆에서 같은 일을 하던 반장인 종대가 다급하게 프린트들을 주웠다. "방학식 안 할거야! 하면 안 돼! 매일 학교 나와야 돼!" 주먹을 불끈 쥐며 교탁앞에서 소리치는 루한의 얼굴엔 굳은 결심이 담겨있는 듯 보였으나 출석부로 머릴 한 대 얻어 맞는 결과만을 낳았다. "루한아, 빨리 주워라" 어이없다는 표정의 담임이 출석부를 교탁에 탁탁 두드렸다. 제 머릴 쓰다듬은 루한이 혀를 쏙 내밀곤 조용히 쭈그려 프린트물을 주웠다. 구깃해진 유인물들을 차곡차곡 정리한 루한이 종대와 함께 배부했다. 그만 자리에 들어가 보라던 담임이 루한을 불러세웠다. "자, 루한이가 이렇게나 학교를 사랑하고 있는지 이 담임선생님은 처음 알았다. 그래서 너희들 모두가 기쁠 소식을 알려줄게. 세번째 프린트물 보면…." 루한이 프린트를 뒤적거렸다. "루한이가 읽어봐" "…고3 보충반 시간 안내…, 선생님." "응" "방학인데도 학교 나와요?" "그럼- 고3에게 방학이란 없거든." 앗-싸! 루한은 쾌재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 순간 다운된 탄성을 내뱉은 반 아이들은 각자 프린트물을 찢거나 구기며 한껏 짜증을 터트렸다. 루한은 들고있던 프린트물을 정독하다 말고 민석을 바라봤다. 민석 또한 머릴 긁적이며 프린트물을 꽉 쥐고 있었다. 사뿐사뿐 민석의 뒷자리로 와 앉은 루한이 톡톡 민석의 등을 두드렸다. "방학 때도 잘 해보자." 뭘 잘 해보자는 겨. 민석의 입이 뾰루퉁해졌다. * * * 여느때와 같이 교실의 문을 열려던 루한이 미동도않는 문을 보다 멀찍이 떨어졌다.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그와 더불어 교실의 불이 꺼져있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교실에 도착하는 이 순간까지도 같은 교복을 입은 3학년 학생들을 볼 수 없었다. 뭐지? 분명 보충이 있는데?! 루한이 두리번 거리다 계단쪽에서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캐치해냈다. 누군가 오는 발소리에 벽쪽에 등을 붙였다. "…어…, 너도," "김준면?" 평소와 달리 한껏 앞머리에 힘을 준 준면이 옆구리에 출석부를 낀 채 계단을 올라왔다. 그리곤 루한을 향해 가볍게 손인사를 한 후 교실의 문을 열었다. 멀찍이 떨어져있던 루한이 준면의 뒤를 쪼르르 따라 들어갔다. "있잖아, 오늘 학교 오는 날 맞지? 왜 애들이 안 오지?" "보충이니까 9시 반까지잖아. 몰랐어?" "헐. 몰랐어…. 친구들도 얘기 안 해주던데." "뭐 굳이 얘기 할 필요가 없는 거니까…. 것보다 몰라서 일찍 온거야?" "응. 그럼 넌?" "난 자습하려고." "그렇구나…." 자리에 앉은 준면이 책상에서 문제집을 꺼내들었다. 조용한 교실은 독서실 분위기가 났지만 루한이 실수로 일찍 온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샤프와 지우개를 꺼내던 준면이 문득 루한을 돌아보았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는 루한이 고개를 들자 준면과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다. "루한, 있잖아. 너 민석이랑 무슨 일 있었어?" "…어, 어어, 어?" 자칫 무미건조해 보이는 준면의 질문에 루한이 말을 더듬었다. 일, 무슨 일? 일이야 많았음에도 루한은 입을 열지 못했다. 고요한 교실의 정적만이 루한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노랫소리와 어울렸다. 고개만 돌려 말을 걸던 준면이 이내 몸을 돌려 양 책상에 팔을 걸쳤다. 짧은 대화가 아닌 여러마디를 주고 받기 위함이었다. "이제 1학기가 지났다곤 해도 둘이 크게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거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민석이가 너랑 싸웠다는 거야. 물론 직접적으로 싸웠다고 들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너도 계속해서 민석일 괴롭…혀왔고. 그 루팡이 너라며" "…그게," "너 민석이 싫어서 괴롭힌 거 아니지? 사실 그 반대 아니야?" 루한의 귓바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던 이어폰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허겁지겁 핸드폰을 들어 재생되고 있는 노래를 정지시켰다. 그리곤 문득 떠오른 민석의 말. '내 친구들은 너가 날 정말 싫어하는 걸로 알고 있어.' '사실대로 말 했다간 넌 게이로 소문날 거야' '널 배려한 건 아니야' '나도 뭔 소릴 들을지 모르니까' 루한이 꿀걱 침을 삼켰다. 아니야, 아니야 민석아. 김준면은 알고있어. 어떻게 아는 거지? 많이 티 났나? 사실 모두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안 돼! 내 마음이 밝혀지면 민석이가 피해를 입을거야! 루한이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을 억누르곤 달달 떨리는 손을 책상 아래로 숨겼다. "아, 아니거든? 싫어해서 괴롭힌거야! 민, 석…, 되게 싫어! 불어터진 만두같이 생겨서는… 못생겼어." 하지만 진심이 아닌 말을 내뱉는 루한의 속은 찢어질 듯 아팠다. 싫어하지 않아! 괴롭힌 거 아니야! 되게 좋아! 불어터진 만두라니! 너무 귀여워 죽을 것 같은데! 못난 내 주둥이를 찢어버려야지! 민석아 미안해 용서해줘! 루한이 고갤 떨구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준면은 정수리만 보이는 루한이 웃겼다. 발연기 하고있네…. "오-. 그래? 난 또 네가 어린 애 처럼 좋아하는 애 괴롭히는 그런 귀여운 앤 줄 알았네." "……." "그래서 민석이 사진 좀 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중학교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용 된 거거든. 아, 필요없지? 미안, 내가 착각 했어." "…줘, 제발…." "응?" "민석이 사진…. 보고 싶어." 그래 이거지. 이럴 줄 알았다. 역시 내 눈치는 알아 줘야 된다니까. 준면이 씩 웃었다. 어느새 준면의 자리까지 다가온 루한이 조심스레 두 손을 공손히하고 핸드폰을 내밀었다. 원본 보내줄거야? 블루투스로 보내줄거지? 조금 전 까지도 민석이 싫다며 언변을 늘어놓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친구에게 RPG게임의 아이템을 선물받기 전 아양부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본심이 나올 거면서 거짓말은. 준면이 코웃음 쳤다. "근데 나도 꽁으로 줄 순 없지. 조건이 있는데 말이야…." 보충수업 등교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자리를 채워갔다. 덩달아 루한의 핸드폰 사진 폴더도 채워갔다. 총 756개의 사진과 동영상을 민석에게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민석에게 들키는 날엔 이 금같은 자료들이 휴지통을 들어 갈 것이다. 루한은 준면에게 전송받은 민석의 중학교시절 사진들을 보면서 히죽히죽 웃고있었다. 제 옆자리에 의자를 빼 앉아 거칠게 가방을 올려놓는 세훈의 행동에도 일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제 어깨를 쿡쿡 찌르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너 뭐 하냐?" "응? …우왁!"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그늘진 세훈의 어두운 얼굴이었으니 놀랄만도 했다. 더군다나 민석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중이라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아니, 들키지 않아야 했다! "시, 신경 쓰지 마!" "뭐-야, 난 또 누구랑 카톡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갑네." "…카톡?" "너 요즘 맨날 핸드폰만 붙들고… 아, 불과 며칠 전까지구나. 애인이라도 생긴 줄 알았지." 기억을 더듬어보려는 듯 날렵한 제 턱을 손으로 훑으며 눈을 가늘게 뜬다. "애인…, 있을 리가" "그렇지? 너도 고3이니까. …그리고 나도 없는데 네가 생기면 배신이야." 장난스레 루한의 어깨를 툭 친 세훈이 하품을 하며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곤 금세 표정없이 종이에 인쇄된 글자의 매력에 빠졌다. 눈만 꿈벅거리며 세훈의 독서삼매경을 보던 루한은 준면의 조건이 생각났다. 민석의 사진을 댓가로 한 조건치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루한이 네가 인맥이 넓다는 건 잘 알고있는데, 주위에 혹시 문학소녀 없어?' '문학소녀?' '응! 내 이상형이 청순한 문학소녀거든.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긴 듣지만 정말 보기 힘들더라고. 기껏 해봐야 만화책이나 라이트노벨같은 어린애같은 책을 읽는 오타쿠들 뿐이고.' '아-. 있으면 번호 줄게.' '넌 최고야. 오늘 집가서 과사 좀 더 찾아볼게. 민석이랑 잘 되길 빈다.' 세훈은 수업시간이 남아 자습을 할 때면 항상 도서관에서 빌린 다양한 장르의 소설책들을 읽고 있었던 것 같았다. 루한의 눈엔 세훈이 문학 소년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준면과 세훈은 얼마 전 까지의 저와 민석처럼 안면만 튼 사이였다. 1학기 내내 서로의 이름만 안 채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사이. 여기서 루한의 역할이 생겨났다. '이상형', '소녀'의 단어들은 빼먹은 채 세훈의 팔목을 잡은 루한의 눈이 반짝였다. "있지 세훈아." "응?" "공부 잘 하고, 너처럼 책 읽기 좋아하는 친구 어때?" "…뭐야, 소개시려 주려고?" "응. 소개시켜 주려고. 약속장소는 내가 정해줄게." 루한은 준면에게 새 친구를 소개 시켜주는 조건으로 민석의 과거사진을 더 공유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 방학식 전 청소한 선풍기는 먼지가 낀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교실에 바람을 선사했다. 천장에 달린 에어컨은 심히 낮은 온도로 공기 자체를 차갑게 만들었다. 보충을 나오는 3학년만을 위해 가동되는 에어컨은 이렇게 하교 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잠시라도 꺼놓자는 말을 하는 이 없이 풀가동 되어 여학생들은 각자 무릎담요를 가져와 덮곤했다. 하지만 그런 아기자기한 것이 민석에겐 있을 리 만무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그렇게 환경변화에 적응을 잘 한다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지금 코에서 흐르는 것은 콧물이요, 팔에 돋아나는 것은 닭살이었다.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어도 2분단 뒷자리라는 특성상 에어컨과 선풍기의 콤보를 피할 순 없었다. 하루 종일 작동하는 에어컨이 온 교실의 열기조차 피어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민석에겐 그저 고문이었다. 민석은 책상 서랍에 곤히 잠들어있는 방학 프린트물을 꺼내어 동그랗게 구겼다. 그대로 손목의 스냅을 활용하여 경수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실패다. 종이는 멀리 가지 못하고 종대의 머리를 향해 낙하했다. 종대가 뭔 일인가 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민석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피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경수와 자리를 바꾸려 한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담임 눈에 띄지 않게 가벼운 종이를 첫 째 줄까지 던진다는 건 역시 무리였나보다. 추위에 반팔 사이로 드러난 팔뚝을 쓰다듬던 민석이 멈칫했다. 머리에 무언가 툭하고 닿았다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민석이 고갤 돌렸다. "아, 돌아봤다." "……." "집중하세요, 집중." "너 내 머리에 뭐하는 짓이에요." "부른 짓이에요. 따라 해봤어요." "…이제 부르지 마세요." 민석이 다시 고갤 돌렸다. 그리곤 엣취-하며 꽤 큰 목소리로 재채길 했다. 기침을 함으로써 정말 감기에 걸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망했다. 조금이라도 공부 해야 될 시기에. 민석의 재채기가 몇 번 지속되자 다급한 손이 민석의 목덜미를 잡아왔다. "헐 목이 뜨거워. 민석, 열나?" "안 나" 루한의 손을 떼어냈다. "아니야, 감기 걸렸잖아. 에어컨 끌게." 걱정스런 눈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한의 손목을 잡았다. "너 에어컨 껏다간 애들에 원성을 살거야. 가만히 앉아있어, …신경 쓰지 말고." "민석…. 내 걱정 해주는 거야?" "아니. 에어컨 끈 이유가 내가 되면 내가 욕 먹으니까." "나 감동먹었어. 루한이 감동!" 민석의 답은 들리지도 않는 듯 한껏 입을 벌리며 웃더니 정신을 차린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민석이가 감기에 걸렸어! 루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을 열었다. 겨울용 체육복을 집에 가져가진 않았던 것 같아서였다. 빨아 놓은 채 한 번도 입지 않은 체육복은 불쾌한 냄새따위 날리가 없음에도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루한은 민석에 눈에 조금 강아지 같아 보였다. "민석, 입어." "……." 제 앞에 체육복 상의를 내미는 루한을 물끄러미 보던 민석이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며, 명령하지 마. …쨌든, 고마워." 조심스레 양 손을 끼고 머리를 넣던 민석의 머리 위로 작지도, 크지도 않은 손이 턱 올려졌다. 그대로 행동을 정지한 민석이 제 귓가에 들리는 루한의 목소리를 듣곤 확 열이 올랐다. 작년 중국어 시간에 배워 이미 알고 있던 단어였다. "…빠오즈 커아이(包子 可爱)" 귀여워. 한국어로 들을 때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 루한에 의해 이용당한 세훈이가 포인트..예요...ㅋㅋㅋㅋㅋ 아주 깨알이죠...?! 저의 탑시드는 루민세준..세준루민이니깐여. 흑흑. 물론, 번외로도 등장시키지 않을 거지만요........ㄸㄹ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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