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세계관 주의
w.모르
* * *
"…."
그 아이는 남자의 앞에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린채 있었다.
"이곳엔 어인 일이십니까."
그 아이는 고운 미성을 가졌는데, 외모로 봐도 그 목소리를 들어봐도 성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음색에도, 몸가짐에도 미동도 없는 아이를 보며,
"어인 일이라니? 찾으러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반대편에 편안히 앉아 있던 남자는 쓰게 웃으며 다정히 말했다. 뚜렷한 이목구비, 남성다움.
그것은 남자를 정말로 남자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아주 오래전 일이잖습니까."
그땐 어렸고 또…. 아이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 처럼 남자는 벌떡 일어섰다.
"사내가 한번 뱉은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것 같으니 한 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다."
아이는 말문이 막힌채 그것이 예의에 어긋난 것인줄도 모르고 고개를 들어올려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다 아이는 눈동자를 왔다갔다 거리다가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붉은 입술이 더 붉어졌다. 고 남자는 생각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이다.
찰나의 순간 이었지만 남자는 아이와 만난 지난 십이년전, 그때를 기억해냈다.
"…알겠습니다."
아이는 숨을 고르고 나서 작게 말했다.
"황태자…."
아이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눈물을 막기 위함인지 고개를 급히 숙였다.
그것이 여기있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자, 현재 문황제의 첫째 아들이자 다음 황제가 될 남자, 수현이었다.
* * *
아이를 찾은 그 해의 황태자, 즉 그당시 수현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는데, 그는 열여섯 성인식 후 혼인을 하지 않은 첫번째 황태자였다.
단지 아이를 찾기 위해 그랬을 뿐이다.
그것이 벌써 1년전 쯤 이야기다. 지금 수현의 나이는 스물여섯.
아이의 나이는 약 열아홉이나 스물쯤 되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곳' 에 버려져서 '그곳' 에 수단이 되도록 키워졌다.
남자나 여자나 가릴것 없이 몸이나 여러가지를 만족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수현은 열세살이 되던 해, 아버지께 부탁해 시장이나 사람들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막 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그당시 일곱쯤 되어보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지쳐보였다. 하지만 수현은 지쳐보이는것 뒤에 숨어있는 정갈함을 용캐 찾아냈다.
아이는 그당시 이미 '그곳' 에서 일을 시작해야 했지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와 갖가지 핑계로 요리조리 빠져나간지 2년이 된 해였다.
'그곳' 에 아이를 주워왔던 주인도 그냥 포기해버린듯 싶었다.
"얘. 너 여기서 뭐하니?"
수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어린아이가 '그곳' 에 있는걸까? '그곳'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하늘을 보고 있어요."
아이의 목소리에 수현은 애가 닳아졌다. 아주 작은 목소리인데 또렷이 들려왔다.
그리고 수현은 호위기사가 찾아 와서 '그곳' 에 있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 낚아채갈때 까지 아이를 즐겁게 해주었다.
"너가 성인식까지 다 치르고 나면 데리러 올게. 알겠지? 그땐 나랑 혼인해줘."
"…네…!"
아이는 그토록 밝은 모습을 내비친건 생애 태어나 처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수현이 다시 한번 반하게 되어버린 계기다.
* * *
그리고 수현은 십이년 후, 스물다섯살이던 해 '그곳' 을 찾았다. 보통 성인식은 열여섯살이어서 원래라면 4년전에 찾아야 했건만 너무 늦어버렸다.
2년 동안 큰 전쟁이 벌어졌고, 남은 2년 동안은 민생안정을 위해 정사를 돌보느라 수현은 아이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선 은밀하게 작업이 이뤄져, 아주 조금 민생 안정을 일궜을때 수현은 바로 아이를 찾았다.
아이도 십이년 동안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움을 안은채.
하필이면 자기가 성인식을 치르던 해 큰 전쟁이 일어나서 엄청난 자괴감에 빠져들어야 했다.
한편으론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통에 죽어버려서 그 분도 날 잊고 새로운 분을 만나야지.
하지만 그리운건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십이년을.
그래서 전쟁시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이뤄졌던 '그짓' 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아이는 수현이 자기를 찾아왔을 때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혼란스러워서 한동안 그냥 꿇어앉은채 바닥만 바라봤다.
수현의 목소리에 눈물이 펑펑 쏟아질 뻔 했다.
-
"무슨 생각을 하느냐?"
"아… 아무것도…."
아이는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니.
그리고 성인식을 치뤘으나 아직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아이의 순결을 지켜줬다.
혼인하기엔 아직 세상이 흉흉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여태까지 그리움에 묻어둬 무의식 속에 있던 그 생각이었다.
"저…저기…."
아니야. 말하지 말까? 하지만 어쩌지. 난 남잔데.
아이는 깊은 갈등이 일어났다.
이 세상은 동성혼인이 합법적이지 않고, 경멸하다 시피 규제되고 있다.
또, 만약 수현에게 사실을 밝히면 버려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떨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몸이 안좋느냐?"
아이는 도리질을 쳤다.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그냥 이렇게 행복하고 싶다.
세상이 안정될 때 그냥 홀연히 떠나고 싶다. 그때까지만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말해야 겠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가 돌연 입술을 깨물더니 단호한 말과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해보거라."
"어째서 이름도 모르는 저를 데려가 혼인하겠다고 하신겁니까?"
"첫 눈에 반하는 것을 아느냐?"
"당신은 제 이름을 아시나요? 제가 남자인 것은요?"
수현은 입을 달싹였으나 곧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많이 컸더구나. 몸매도 다부져 졌어."
아이는 멍해졌다. 수현은 그런 아이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인과 사내를 구분을 못할까? 하긴 내 눈으로 봐서 그렇지. 다른 여인이나 사내들은 구분도 못하겠구나."
수현은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아이는 또 한동안 멍해졌다.
수현은 아이를 끌어당겨 세게 안았다.
"가슴도 아주 조금도 나와 있지 않고, 사내가 맞구나."
아이는 처음 있는 포옹에 온 몸이 새빨갛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안색이 왜그러느냐, 땀도 나고. 아프냐? 수현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아, 아니요."
아이는 그간의 걱정이 괜한 걱정인것 같아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에 수현은 다시 웃어버렸다.
"걱정말거라. 내가 이 나라를 바꿔볼테니."
수현은 축 늘어진 아이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래, 용캐 그런 생각을 하는걸 보니 나와 혼인하고 싶다고 느꼈나 보군."
아이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럼 이제 내가 널 뭐라고 불러주랴?"
아이는 붉은 얼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두 손으로 볼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다 진정하고 수현의 말에 대답했다.
"미천한 저에게 성은 없고, 이름은 현우라 합니다."
"현우라. 너와 잘 어울린다."
수현은 현우의 어깨를 잡고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사내치곤 왜소한 그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현우, 이제부터 그대는 나의 것이다."
딸리는 필력으로 쓰느라 힘들었네요. 여기까지 봐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뭐 딱히 덧글을 바라지는 않아요 (눈물) 그냥 쓴걸로 만족할게요. 바람처럼 사라질게요!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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