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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er)
어렸을 때, 그 아이가 여자인 줄 알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징그럽게도 붙어있었던 나와 그 아이는 하루도 만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왕래하는 사이, 외동인 그 아이와 다르게 나는 형제가 많았고 특히나 쌍둥이 동생까지 셋이서 곧잘 놀곤 했다. 하얗고 여린 그 아이와 달리 우리 둘은 똑같이 키가 크고 힘이 셌다. 평생 엄마에게 큰소리 한번 낸 적 없는 아버지는 항상 작고 약한 여자나 아이를 남자인 우리가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 주변에 여자는 없었으므로 자연스레 나는 작고 약한 그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내 예상과 달리 아이는 매우 씩씩했다. 속된 말로 깡이 넘쳤다고 해야 하나, 덩치와 상관없이 시비가 들어오면 일단 짱돌부터 날리고 보는 무서운 녀석이였다. 그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았다. 아니, 사실 그 아이가 안 좋은 면이 없었다. 찬수가 그 아이를 쥐어박으면 나는 찬수를 집어던졌고 간혹 고학년들 여러명이 우르르 몰려와 그 아이를 에워쌀 때면 죽기살기로 무작정 덤벼들었다. 내겐 그 아이를 보호하고 감싸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너 아까 진짜 멋있었어."
"...멋있긴 무슨."
"진짠데?"
까딱하면 병원 신세까지 질 뻔했던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게 재잘거리기 일쑤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첫 몽정을 경험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이불이 뭔가 축축한 걸 알아차린 내가 설마 이 나이 먹고 오줌싼건가 싶어 어쩔 줄 몰라할 무렵, 나보다 여섯 살이나 위인 형이 숨넘어갈 듯 웃으며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그날 처음으로 형에게 성교육까지 받았다. 그런데 꿈에 나온 상대가 누구인지 장난스럽게 묻는 형에게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꿈에 나온 사람은, 걸그룹이나 레이싱 모델도 아닌 그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변백현을 상대로 첫 몽정을 했다. 크나큰 충격과 혼란만을 남긴 채.
"박찬녈!!! 만화책 빌리러가자. 어? 뭐해?"
"눈병신임? 종이학 접는다."
"...그건 알고, 뜬금없이 왜 접냐고 빙구야. 헐 박찬열 존나 잘접어... 종이접기 학과 있으면 수석먹겠다."
빨리 만화책 빌리러가자며 내 목을 끌어안는 손 때문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그러니까, 첫 몽정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변백현을 볼 때마다 밑에 달린 뭐가 자꾸 벌떡벌떡 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거다. 들키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 개쪽도 모자라서 인생 퇴갤 아닌가, 애국가도 곰 세마리도 다 소용이 없자 나는 방안에 틀어박혀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축구를 하면 잡념이 없어지길래 하루종일 축구도 해봤다. 방학때는 일어나서 아침운동으로 공 좀 차다가 아침먹고 공 차고 점심먹고 애들이랑 축구하고 저녁먹고 혼자 슈팅 연습하고. 김종인이 슛돌이 될 거냐며 비아냥대고 그러다 운동장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면서 비난해도 나는 꿋꿋이 공을 찼다.
자위 할 때마다 상상속 변백현이 옷을 훌훌 벗고 스트립쇼를 해대자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발악하던 나는 결국 본능을 택했다. 컴퓨터가 없어서 야동대신 만화방에 틀어박혀 몰래 잡지를 탐독했다. 한창 성욕이 들끓던 중2 여름방학 무렵 나는 지나가던 유소년 축구감독에게 스카웃 제의도 받았고(물론 거절했다)종이접기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종이학은 이천 오백마리를 넘어 엄마가 당장 갖다버리라고 윽박을 지를 때가 되서야 쓰레기통에 쑤셔박고 남는건 동네꼬마한테 줬다. 그거 사실 엄마가 너무많이 갖다버려서 천마리가 아니라 한 팔백마리 정도밖에 없었을 거다.
...지금 생각하고 보니 나의 사춘기는 꽤나 파란만장했었나보다.
"알바 하나만 그만둬, 응? 너 그러다 쓰러진다니까."
"싫어, 말했잖아 나 소년가장이라고."
"아 진짜, 그럼 그냥 우리집 들어오라니까. 어차피 형 누나 다 나가서 괜찮다고. 박찬수? 걔 그냥 밖에서 자라그래."
"말했잖아, 나 고독을 씹는 미소년임. 혼자 사는 게 편하다니까."
지랄도 가지가지다. 어렸을 때는 변백현도 설거지 하나 혼자 못 하는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큰 녀석이었다. 그런 아이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생계과 살림을 동시에 신경써야 하는 소년가장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형이나 누나도 없는 외동이라 더 외로울 것 같은데 하나도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아이가 내게 모든걸 맡기고 의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내 소유욕과 성욕은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갔다. 나는 급기야 변백현을 피하기에 이르렀다. 2주 정도 백현과 등하교를 같이 하지 않았다. 방송부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을 보러 가지도 않았다.
김종인, 김종대. 이름은 비슷한 놈들이 하는짓도 비슷한지 그 둘은 너네 요즘 내외하냐고 물어왔지만 변백현은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하고 여느때처럼 헤실거리며 잘만 돌아다녔다. 열이 뻗쳤지만 참았다. 너 왜 나 안찾아오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머리에 든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놈인데 내가 뭘 기대하나 싶었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니 미친듯이 날뛰던 성욕도 약간 사그라들었다. 그제서야 슬그머니 변백현에게 다가갔고, 아이는 별다를 거 없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둔팅이.
"아하, 친구?"
"...."
"백현, 니 친군데 왜이렇게 키가 크냐?"
"아픈데 찌르지 마요."
존잘이다. 딱 처음 보고 든 생각. 동서양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조각같은 얼굴에 변백현은 끝도없이 올려다봐야 할것 같은 기럭지라니. 그냥 처음 본 순간부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말하는 변백현 덕분에 안심했다. 알바를 갔다가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데리러 주유소로 향했다. 그런데 분명 변백현이 알바를 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웬 정장을 입은 깍두기가 총질을 하고 있는 거다. 설마 잘렸나, 불안한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물어보니 아까 저녁쯤에 퇴근하고 대타가 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대체 왜...멍하니 서있는 내게 사장님은 말해주었다.
"키 크고, 훤칠하니 잘생긴 남자가 데려갔다. 하여튼 돈도 많아, 너나 백현이랑 같은 학교 같던데."
...설마. 변백현이 즐거운 목소리로 재잘거렸던 크리스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순간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누웠다.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어 그냥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어쩐지 울고싶었다.
"어젠 웬일로 그렇게 일찍 들어갔어?"
다음날, 변백현이 최근에 알바로 구했다던 PC방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안그랬으면 데리러 오겠다는 내 말도 잊고 그를 따라갔을 리가 없잖아.
"어?! 아, 그러니까...어제 사모님이 오셔서 그냥 두 분이서 하신다고 일찍 들어가라 그러시더라. 하하하."
...거짓말이다. 입술을 꾹 깨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몇 마디 하다가 그냥 창고 정리를 핑계로 들어와버렸다. 더 마주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 있지 않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란한 타격음과 함께 변백현의 억눌린 신음과 경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앞뒤 가리지 않고 나와버렸다. 너는 내게 관심이 없다 해도, 나는 네게 갈 수밖에 없어.
(찰칵-여기보세요-)
언젠가 변백현이 가르쳐 줬었다. 증거를 남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그 와중에 무슨 정신인지 동영상까지 찍은 나는 변백현을 업은 채 PC방에서 나왔다. 평소같으면 근무시간 다 채워야 된다고 빽빽거렸을 변백현이 웬일로 조용했다. 아마 내가 화났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화가 나긴 했다. 네가 아닌 나에게 난 화지만.
"나 니가 맞고 들어오는 거 싫어."
"...."
"진짜 맞고 올만큼 찌질하면 또 몰라, 평소엔 지보다 머리통 하나 큰 나한테까지 개기면서 저번에 부잣집 중딩한테 처맞고 돈 뜯어냈을 때는 나 정말 당황했다 백현아."
사실, 그때 변백현이 왜 그랬는지 안다. 돈도 없는 애가 갑자기 어디서 돈이 났는지 생일날 후드집업을 선물하는 게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돈 나올 구멍은 정말 그 중딩밖에 없었다. 미친...이게 바로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로 뛰어들었던 효녀 심청의 마음인가 싶어 그냥 허허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도 뼈빠지게 알바한 돈을 변백현 생일선물로 몽땅 투자했었지.
이게 진실이다. 나는 변백현을 좋아한다. 비록 변백현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쓰게 웃으며 변백현을 내려다주고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와버렸다. 창문 너머로 슬그머니 쳐다본 변백현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변백현이 나를 피한다. 예전에는 내가 그 아이를 피했는데, 요즘엔 그 아이가 나를 대놓고 피한다. 내가 부르는 걸 들었음에도 도망치듯 가버리고, 당연히 나를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러는 사이 그가 전학을 왔다. 김민석. 조그만 키에 귀염상인 얼굴. 큰 키 때문에 유일하게 혼자 앉아있는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가녀리고 유약할 것 같은 생김새와 달리 조근조근 말도 잘 하고 꽤나 귀여웠다. 생긴건 판이하게 달랐지만 나는 그가 변백현과 겹쳐보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였나, 유난히 더 정이 갔다.
"전학 와서 친구 아무도 없을까봐 걱정했거든, 근데 너 만나서 다행인 거 같아."
"야, 무슨 낯간지럽게...야 그러지 마."
"진짠데."
내 면박에도 그저 예쁘게 웃는다. 상대방을 기분좋게 할 줄 알았고, 다른 사내놈들보다 스킨십이 잧았다. 내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러나 잊어보려고 해도 변백현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슬그머니 찾아가 본 교실에는 김종인과 변백현이 나란히 앉아있는 게 보였다. 쬐끄만 손으로 무언갈 열심히 하고 있다. 슬쩍 들어가려고 하자 김종인이 나를 불렀고, 그 소리에 변백현이 깜짝 놀라서 엎드린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를 피하는 게 맞다. 손에 들린 건 십자수였다. 그림은 좆도 못그리는 게 수행평가 때마다 최고점을 도맡았던 그 십자수. 돈받고 파는 용도로 쓰일 거라며 애써 내 자신을 위로해봐도 안심이 될 리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그 남자와 변백현이 나란히 웃는 모습만 맴돌았다.
그리고 그 날은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 민석이가 내게 고백했던 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잡아끈 민석이가 분리수거장에 도착하자 입술만 달싹이며 머뭇거렸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괜찮으니 말해보라며 민석이를 달랬다. 여자같은 입술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좋아해."
"뭐?"
"...너 좋아해."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민석이가 나를 좋아한다. 믿기지가 않아 다시 한 번 되물어보니 꽤 완강하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라고 말해야 되나.
"민석아, 나도 남자고 너도 남자야."
"상관없어!"
꾹 다물어진 입술에서 완고함이 느껴졌다. 내 머릿속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대사로 거절의 뜻을 전했더니 상관없단다. 커다랗고 예쁜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나는....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
"정말 미안해, 민석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그에게 더는 뭐라 말해줄 수가 없어 그냥 끌어안고 토닥여주었다. 이기적인 나는, 그 순간 살짝 웃어버렸다. 어쩌면 처음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그 아이를 좋아한다고 말한 게.
그러나 그 웃음이 무색해지게, 나는 바로 그 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고 말았다.
"좋아, 그 고백 받아줄게. 나도 백현이 좋으니까."
"제발!!!!!!"
"우리 오늘부터 1일인거야."
참을 수가 없었다. 변백현이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그 남자는 내가 보기에 모든 게 완벽했다. 근사한 자태, 차고 넘치는 돈. 와, 세상 존나 불공평하네. 씨발.
그리고 얼마 후 민석이는 자살 시도를 하다 내게 들켰다.
"...그 칼 내려놔."
"죽어버릴꺼야."
"김민석, 빨리 내려놔!!!"
피가 줄줄 흐르는 손목과 오른손에 쥐고 있는 칼을 본 나는 금방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순간만큼은 변백현이고 뭐고 민석이를 달래는 게 먼저였다.
"민석아, 제발...제발 내려놔."
"나 좋아해줘, 찬열아 나는 너밖에 없어."
"일단 말로 하자, 칼 내려놔."
눈가가 퉁퉁 부을 정도로 서럽게 우는 민석이에게서 칼을 빼앗은 후 품에 끌어안아주었다. 그의 손목에 선명하게 남은 흉터와 두껍게 감긴 압박붕대를 보자 죄책감에 머리까지 아파왔다. 나는 그 이후로 민석이를 의무적으로 챙겼다. 어딜 가든 뭘 하든, 귀찮을 정도로 따라붙었다. 나 때문에 누군가 목숨을 끊을 정도로 힘겨워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벅찬 일이었기에.
"네가 좋아한다는 애가, 변백현이야?"
"...뭐? 그걸 니가 어떻게...."
"만났어, 분리수거장에서."
당황스러웠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는데 그는 너무나 쉽게 알아챘다. 한 번 만났다는 걸로 어떻게 안 거지, 덤덤한 표정을 한 채 칠판을 걸레로 닦아내는데 손목에 여전히 감긴 압박붕대가 나를 옥죄어오는 듯 했다. 모두들 하복을 입는데 민석이만 춘추복이다. 나 때문에... 손에 든 걸레를 빼앗아 자리에 앉혔다. 내가 할게, 넌 좀 쉬어.
"찬열아."
"...응."
"나는 네가 좋아."
"...."
"그러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순수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데 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름대로 잘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민석이는 만족하지 못했던 거다. 백현이를 쳐다보기만 해도 민석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날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일부러 피했는데, 이제는 죄책감에 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석이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왔는데, 꽤 늦은 시각임에도 그 아이가 보이질 않았다. 원래라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괜히 잠이 오질 않아서 혼자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 아이의 집에 가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오지 않을 것 같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 그 아이를 업고 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 그 남자다. 끝내주게 잘난 그남자.
".....그거, 변백현이예요?"
축 늘어진 꼴을 보아하니 술에 진탕 취한 건데, 대체 이시간까지 애를 집에 안 들여보내고 뭘 한 건지. 그 남자에게 업혀있는 꼴이 보기싫어서 손을 뻗었더니 씨익 웃으며 뒤로 몸을 뺀다. 뭐하자는 거야, 띠껍게 바라보자 살짝 내려다보며 그런다.
"이것만 하게 해줘."
"...."
"정 못미더우면, 같이 올라가던가."
그 목소리에 아주 조금, 울음기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를 향해 살짝 날이 서 있었다. 애는 잠들어 있는데다 저 체격에 저 기세라면 절대 못 이긴다. 어쩔 수 없이 나란히 계단을 올라갔다. 낮게 코까지 골며 자고있는 아이를 바닥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름이 찬열이었나?"
느긋한 목소리로 묻는 말에 작게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똑바로 쳐다보면 내가 더 비참해질 것 같아서 그 남자를 등지고 서있었다. 쪽팔리지만 그가 정말로 부러웠다. 존나 몇 년동안 공들여 살찌운 헨젤을 빼앗긴 느낌,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비참했다.
"나는 네가 부러워."
"...."
"진심으로."
부러워해야 할 건 나잖아, 부러움의 대상은 당신이잖아. 내가 미치도록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걸 그렇게 쉽게 가져놓고, 뭐가 더 부러운데?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서 그냥 계단을 내려갔다. 나를 뒤따라 오던 그 남자는 내가 마지막 계단을 밟을 때쯤 내게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백현한테 잘해줘."
"...."
"이제 내 손 탈 일은 없을거니까."
...뭐?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긴 다리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간다. 쓸쓸해보이는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었다.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뭔가에 홀린듯이 그 아이의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평온한 모습, 천사같은 얼굴.
"...그래도 되는 거야?"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나 자신도 몰랐다. 그 남자? 아니면...변백현?
"정말 그래도 된다면...."
한 번만 더, 너를 향해 손을 뻗어볼래.
무릎을 꿇고 아이의 새빨간 입술에 입을 맞췄다. 황홀함. 그간 느꼈던 비참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 밤은 깊어져갔으나 나는 한동안 그 자세로 굳어있었다. 나는 절대로, 너를 포기할 수가 없다.
오글오글
20편이 완결이예요! 기다려주신 분들 감사해요ㅠ드디어 컴퓨터 고쳤어요ㅠㅠㅠ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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