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애를 키운다는건 00
이제 곧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든 나이라는 사망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는, 그저 아주 평범하디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기숙사가 싫어 창문을 넘어 탈출하다 몇주동안 병원 밥도 먹어봤고, 놀고싶은 마음에 뒷 일 생각없이 야자를 짼 후 뒤지게 맞아도 봤고,
공부도 안한 주제에 꼴에 학생 티라도 내 듯 시험성적때문에 엉엉 울어도 봤으며, 빨간줄로 찍찍 끄인 자소서를 신경질적으로 찢어도 본.
21세기 대한민국 속, 조금은 난폭한 성질을 가진 평범한 고2 여고생.
길거리를 30분만 걸어도 적어도 30번은 만날듯한 그런 평범한 아이였던 내게 조금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면,
그건 아마 피 한방울 안섞인 가족같은 친구인 박지민, 네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린 같은 병원에서 태어나 붉은 핏덩이인 채로 첫 울음을 터뜨릴 때도 함께였고,
묽은 콧물 찔찔 흘려가며 자신보다 큰 가방을 짊어진 채 씩씩하게 유치원을 향해 걸어갈 때도 함께였으며,
조금 머리가 컷다고 부모님한테 대들곤 씩씩거리며 집을 나설 때도,
작은 머리에 글자 몇개 집어 넣어보겠다고 이 학원 저 학원을 다닐때도,
심지어 이성친구한테 차여서 꼴사납게 엉엉 울때도 서로의 곁을 지킨 채 함께인 존재였다.
같은 곳에서 산 가방을 매고 같이 학교에 등교하고,
같은 반 속에 섞여 쓰잘데기 없는 장난도 치며, 잠에 취한 얼굴로 함께 집으로 향하고,
질질 짜는 얼굴에 대고 욕을 한바가지 부어줄수 있는,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존재.
말은 안했지만, 나는 이 관계에대해 조그마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냥 뭐, 짧게 만난 친구보단 오래 만난 친구가 더 편하듯이.
나 이렇게 편한 친구 있다? 이런 생각?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이 관계를 끊고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오늘이 처음이라는 거다.
뜨거운 여름방학을 학원에서 보내던 중이었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복잡한 날이기도 했고.
뭐, 고등학생에겐 일상인 그런 날 다들 있지 않은가. 생각할 건 없는데 이상하게도 사색에 빠져드는 그런 날.
공부를 하기 싫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하다보면, 나중엔 그 생각에 빠져선 멍해지는 그런 날.
원체 여성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먼지라 평소에 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길거리에 수놓인 꽃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던게 방금 전이었다.
분명 버스를 타려했던 것 같은데 이미 적정거리 이상을 걸어버린 다리덕분에 버스정류장을 한참 지나버린 나는 놀랍게도 벌써 집 근처에 도달해있었다.
걷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 평소였음 택시라도 탔을 거리를 걸어 온 게 신기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을 정도로 정신이 빠져있던 날이었다, 그 날은.
"박지온, 형아 말 들어야지."
집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발걸음이 멈춰섰다
머릿 속을 가득 채우던 잡생각들이 몽글몽글하게 퍼져 이리저리로 흩어지고,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현관 앞에는 동글동글한 머리통 두 개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박지민?
시도때도 없이 듣던 목소리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현관문 앞에 앉아있는 뜬금없는 지민의 모습에 잔뜩 인상이 찡그려졌다.
얕은 헛웃음과 함께 멈춰졌던 발걸음을 옮겨 더욱 빠르게 그를 향해 걸어갔고,
그런 내 발걸음이 다시 멈추게 된건, 지민 옆에 앉아있는 조그마한 아이를 발견한 후였다.
새싹반이라고 적힌 명찰을 매고는 노란 모자를 정갈하게 쓰고있는 아이였다.
많아도 6살?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이 딱 봐도 인기많아요, 라고 적혀있는 듯했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 지민의 옆에 있는 아이의 모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굳어섰다.
아, 정정하자면. 내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재미 없는 성격의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지만.
"자꾸 그렇게 형 말 안들으면 진짜 혼나는 수가 있어?"
"...응?"
"너네 엄마랑 다르게 형은 진짜 아주 무서운 사람이에요, 응?"
어른 흉내라도 내듯, 조그마한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짓는 지민을 보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연신 씁씁거리며 목소리를 낮추는데, 그게 하나도 무섭지 않고 웃기기만 했다.
그리고 그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입술을 삐죽이던 아이가 핏-하며 비웃음을 날렸고, 그를 본 지민의 표정이 종이장 구겨지듯 바직 구겨졌다.
화라도 내려는건지 얼굴을 붉히며 그가 벌떡 일어서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치고,
당황한듯 굳어있던 그가 울상으로 변한건 순식간이었다.
"김탄!!!"
얼굴을 잔뜩 찡그린 그가 벌떡 일어났고, 그에따라 얼떨결에 아이마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그마한 아이의 키는 벌떡 일어나도 지민의 허벅지 부근에 밖에 닿지 못했고, 낯선 사람에 잔뜩 겁을 먹은 듯한 아이가 지민의 허벅지를 꼭 끌어안았다.
나에대한 소개를 바라는듯, 아이의 자그마한 손이 지민의 바지자락을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지민은 그런 아이가 보이지도 않는 듯, 아이보다 더 겁을 먹은 표정을 하고선 내 앞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탄아..., 나 진짜 너무 힘들어가지고..."
"..."
"나 진짜 방학동안 완전 놀려고 했는데,
그래서 학원도 다 끊고 진짜...,"
"..."
"근데...,"
"아빠!!"
우물쭈물 작은 입으로 한풀이를 하던 지민의 뒤에 서 있던 아이가 쫄래쫄래 뛰어와 다시 한번 지민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포동포동한 분홍빛 볼살 사이로 이질적인 단어 하나가 툭-튀어나왔고, 그 말을 내뱉은 장본인인 남자아이의 동글동글한 눈 끝은 오롯이 지민을 향해있었다.
옅게 그을려진 피부나 밑으로 축 쳐진 눈꼬리나, 이제보니 박지민과 똑 닮은 얼굴에 입이 턱하니 벌어졌다.
"...아빠?"
"아니, 너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너 설마.."
"야, 진짜 아니거든?"
당황한 표정의 그의 작은 손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금방이라도 울 듯 인상을 찡그린 그가 열심히 내게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쟤가 우리 누나 아들인데 박지온인데.
사고쳐서 지온이 낳은 누나가 제 때 못간 신혼여행을 어제 떠났고,
나한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다녀올 때까지 잘 부탁한다는 편지만 딸랑 놓고 갔다.
쫑알쫑알 열띠게 말하던 지민이 지온을 보며 울쌍을 지었고, 자기 얘기하는 줄은 아는지 해맑게 웃던 지온이 지민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빠."
"형아라니까?"
"...아빠?"
"너 진짜 자꾸..!"
"아빠!!"
빽하니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가리키며 얘가 이렇게 드세다고, 자기 누나를 똑 닮았다고 하는 지민을 보며 그냥 웃어버렸다.
이런게 인체의 신비라는건가, 신기하게도 얼굴은 지민의 누나보단 지민을 아주 빼어 박은 듯 했다.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려 지온을 바라보자, 지온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1초,
2초,
3초,
"...뭘 봐."
날카롭게 생긴 내 얼굴에, 무서워서 눈을 피할거라 생각했는데,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게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당황한 말투가 고스란히 튀어나갔다.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뭔가 짓지도 않은 죄를 지은 기분이랄까.
왠지 모를 식은땀이 등 뒤로 줄줄 흘렀다.
"으마."
"뭐?"
아이가 나를 향해 처음 뱉은 말이 저거였다. 으마.
감탄산가? 아님 아가 용언가. 알아 듣지 못해 인상을 찡그리자,
박지민의 손을 붙잡은 채 내게 쪼르르 뛰어 온 아이가 내 옷자락을 잡고,
"엄마."
순간 끼치는 소름에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어버버 굳어버렸다.
헐.
지민도 당황한듯 내 옷자락을 붙든 아이의 손을 잡아채지만,
빠진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은 아이가 이젠 내 손을 붙들어왔다.
"엄마!"
아마, 조만간 지민과의 연락을 끊어야할 듯 싶었다.
* 시험에 지친 글쓴이의 그저 쉬어 가는 글입니다. 1화를 대책없이 올리긴 하지만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나중에 찾아 올 수도 있답니다.
여왕의 매력 보시는 분들은 으잉! 이게 뭐야 하실 수도 있고, 댓글도 달지 않은 채 이렇게 다른 글로 찾아온 거 정말정말 죄송하지만, 진짜 그저 쉬어가는 글입니다.
그래서 구독료도 없구요! 쉬어가는 글이니만큼 분량도 짧아요. 그저 시험에 많이 지쳤구나하고 양해 부탁드립니다.사랑해여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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